다섯과 셋 경은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실 때
미래, 과거, 지금여기로 자아, 세상, 존재를 추측하고, 견해를 가지고, 여러 가지 교리를 주장히는
것에 대해 그 잘못을 지적하시고, 어떻게 하여 '위없는 최상의 고요한 경지', 즉 '적멸(寂滅)'에
이르게 되는지를 설하신 경입니다.
1. 「범망경」과 「다섯과 셋 경」두 경의 차이에 대해서
■ 범망경(D1)의 존재에 대한 외도의 62견
과거의 경험을 기반으로 자아와 세상에 대한 견해를 18가지로 모색하고 거머쥠
1] 영속론자들 4가지 1) 영속론자 1: 삼매로 수십만 전생을 기억해내기 때문에 2) 영속론자 2: 삼매로 10겁의 전생을 기억해내기 때문에 3) 영속론자 3: 삼매로 90겁의 전생을 기억해내기 때문에 4) 영속론자 4: 추론과 해석으로 스스로 규명했기 때문에
2] 일부영속 일부비영속론자들 4가지
1) 일부영속 일부비영속론자 1: 바로 전생에 범천에 난 자 2) 일부영속 일부비영속론자 2: 바로 전생에 유희로 타락해버린 신들에 난 자 3) 일부영속 일부비영속론자 3: 바로 전생에 마음이 타락해버린 신들에 난 자 4) 일부영속 일부비영속론자 4: 몸(눈,귀,코,혀,몸)은 영속하지 않지만 마음은 영속한다 3]유한과 무한을 설하는 자들 4가지
1) 세상은 유한하다: 삼매에 들어 유한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세상에 머물기 때문 2) 세상은 무한하다: 삼매에 들어 세상은 무한하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세상에 머물기 때문 3) 세상은 유한하기도 무한하기도 하다: 삼매에 들어 세상은 유한하기도 무한하기도 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세상에 머물기 때문 4) 세상은 유한한 것도 무한한 것도 아니다: 추론과 해석으로 세상은 유한한 것도 무한한 것도 아니라고 스스로 규명했기 때문에
4] 애매모호한 자들 4가지
1) 유익함·해로움을 꿰뚫어 알지 못하여 거짓말이 되므로 2) 유익함·해로움을 꿰뚫어 알지 못하여 취착이 되므로 3) 유익함·해로움을 꿰뚫어 알지 못하여 논파 당하므로 4) 멍청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5] 우연발생론자들 2가지
1) 바로 전생이 무상유정천의 신들이었던 자 2) 추론과 해석으로 스스로 규명햇기 때문에
미래의 모습을 추측하여 자아와 세상에 대한 견해를 44가지로 모색하고 거머쥠 1] 사후에 자아는 인식과 함께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들 16가지 1) 자아는 물질이다 _ 색계 선정의 대상인 까시나의 물질에 생긴 닮은 표상이나 인식을 거머쥠 2) 자이는 비물질이다 _ 무색계 선정 표상을 거머쥠 3) 자아는 물질과 비물질이다 _ 색계 선정에 들었다가 무색계로 4) 자아는 물질도 아니고 비물질도 아니다 _ 단지 논리적 귀결 5) 같은 인식을 가졌다 _ 증득의 경지를 통해서 6) 각자 다른 인식을 가졌다 _ 증득이 아닌 경지를 통해서, 여러 가지 거친 대상을 통해 7) 제한된 인식을 가졌다 _ 작은 까시나를 통해서 생긴 인식 8) 무량한 인식을 가졌다 _ 큰 까시나를 통해서 생긴 인식 9) 자아는 유한하다 _ 닮은 표상을 우주 긑까지 확장하지 않음 10) 자아는 무한하다 _ 까시나를 우주 끝까지 확장하여 인식 11) 자아는 유한하기도 무한하기도 하다 _ 옆으로만 확장하여 위아래는 유한, 옆으로는 무한 12) 자아는 유한한 것도 무한한 것도 아니다 _ 논리와 해석으로 13) 전적으로 즐거운 것이다 _ 천안통으로 3선에 들어 행복을 느끼는 것을 보고 14) 전적으로 괴로운 것이다 _ 지옥에서 태어난 중생들을 보고 15) 행복한 것이도 괴로운 것이기도 하다 _ 인간세상의 중생들을 보고 16) 행복한 것도 괴로운 것도 아니다 _ 행복도 괴로움도 없이 평온하게 머무는 4선천인 광과천의 범천들을 보고
2] 사후에 자아는 인식이 없이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들 8가지 1) 자아는 물질이다.. 2) 자이는 비물질이다. 3) 자아는 물질과 비물질이다. 4) 자아는 물질도 아니고 비물질도 아니다. 5) 자아는 유한하다. 6) 자아는 무한하다 7) 자아는 유한하기도 무한하기도 하다. 8) 자아는 유한한 것도 유한한 것도 아니다. 3] 사후에 자아는 인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설하는 자들 8가지 1) 자아는 물질이다.. 2) 자이는 비물질이다. 3) 자아는 물질과 비물질이다. 4) 자아는 물질도 아니고 비물질도 아니다. 5) 자아는 유한하다. 6) 자아는 무한하다 7) 자아는 유한하기도 무한하기도 하다. 8) 자아는 유한한 것도 유한한 것도 아니다. 4] 단멸론자들 7가지 1) 물질의 이 몸이 무너지면 자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2) 욕계천상의 이 몸이 무너지면 자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3) 색계천상의 이 몸이 무너지면 자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4) 공무변처의 이 몸이 무너지면 자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5) 식무변처의 이 몸이 무너지면 자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6) 무소유처의 이 몸이 무너지면 자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7) 비상비비상처의 이 몸이 무너지면 자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5] 지금여기에 궁극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주장하는 자들 5가지
1) 감각적 욕망을 마음껏 즐기며 머무는 자 2) 초선을 구족하여 머무는 자 3) 2선을 구족하여 머무는 자 4) 3선을 구족하여 머무는 자 5) 4선을 구족하여 머무는 자 |
위는 외도의 62견(見)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고, 세존께서는 범망경에서 이 외도의 62견을 타파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 62견(見)은 무엇에 대한 견해(見解)입니까?
세존께서는 이 범망경을 "뜻의 그물", "법의 그물", "범천의 그물", "견해의 그물", "전쟁에서의 위없는
승리"라고 5가지의 이름으로 받아지니라고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존께서는 성취하신 후 첫 번째 법문에서
"한없는 세월의 생사윤화 속에서
집짓는 자가 누군지 알기 위해
찾아 헤매다 헤매다 찾지 못하여
계속해서 태어났나니 이는 괴로움이었네"
(* 법구경 153∼154)
라고 설하십니다. 그분은 '나'와 내 앞에 끝업이 펼쳐졌던 이 '세상'에 대해서 답을 구하신 것입니다.
즉 '이 모든 것'은 대체 무엇이며, 왜 생겨났으며, 그 끝은 있는가, 있다면 그 끝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이 '세상'이 왜 펼쳐지는 것인지가 연기(緣起)의 가르침에 따라, 결국 '나'의 인과 내지 나의
알음알이로 인해 나의 6가지 감각장소의 접촉(六內外處)에서 펼쳐지고 '드러나고' 느끼는 것을
'세상' 혹은 '현실(Reality)'라고 인지하는 것이 '세상'이라면, '세상'이라는 것은 '나'의 투영이므로
부차적인 것이 되고, 위 질문들은 비로 '나 자신은 무엇인가?'라는 '자아론' 내지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다른 말로 이 모든 것을 이렇게 되게하는 참된 이치 즉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등가(等價)의 관게이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잘못된 견해 내지 '모든 잘못된 견해'에서 벗어나 '어떤 견해도 취착하지 않는'
자가 되는 것은 그야말로 '전쟁에서의 위없는 승리'요, '견해의 그물'에서 벗어남이요, '어부가 쳐놓은
그물에 갇혀서 오르는 고기'의 모습이 아니라 그물을 찢고 승천하는 용(龍)의 모습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망경은 '나'와 '세상'에 대한 사견(邪見)에서 어떻게 벗어나는지를 설하신 경이지만,
그 의미는 결국 '자아론' 즉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내지 '존재론' 즉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법문이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 자아(세상)를 바라보는 잘못된 견해의 기반들
위 범망경에 드러나는 자아(세상)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들의 기준을 정리해 보면,
1)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포함하여 (시간적 관점에서)
2) 우연발생론, 애매모호한 자들, 영속론, 일부영속 일부비영속론을 포함하여
(왜 생겨났는가의 원인의 관점에서)
3) 항상(존재)한가 항상하지 않는가(비존재)? 단멸론을 포함하여 (존재 비존재의 관점에서)
4) 항상(존재)한다면 물질인가 비물질인가? (드러나는 구성요소의 특질의 관점에서)
5) 항상(존재)한다면 유한한가 무한한가? (공간적 관점에서)
6) 항상(존재)한다면 인식이 함께하는가 인식이 함께하지 않는가?
(개아(個我)가 비아(非我)를 인지하는가 관점에서)
7) 인식과 함께 존재한다면 그 인식은 단일한가 다양한가 제한된 것인가 무량한 것인가?
(동일한가 다른가의 관점에서)
8) 인식과 함께 존재한다면 그 느끼는 바는 괴로운 것인가 즐거운 것인가? (느낌의 관점에서)
9) 지금여기에서의 자아를 천명 (시간의 특이성 관점에서)
과 같은 관점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존재'에 대하여 위에 제시된 관점 이외에 다른 관점들이
더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생각해봅니다.
◎ '자아'에 대한 잘못된 질문들
세존께서 본경「다섯과 셋 경」(M102)의 마지막 부분에서 결국 '위없는 최상의 고요한 경지' 즉 열반
혹은 적멸(寂滅)의 지경에 대해서,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六觸處](에서)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재난과 그것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 취착없이 해탈했다."
와 같이 가르치셔서 앞에서 설하시는 바 과거로, 미래로, 지금여기로 '자아'를 천명하는 것을
논파하여 설하시는 바 , 이는「갈애 멸진의 긴 경」(M38)에서와 같이 조건을 따라 일어나고
소멸하는 도리(緣起)를 아는 자는 다음과 같이 '자아'에 대한 허망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설하시는
것과 그 궤를 같이하는 것입니다. 즉 '나' 혹은 '자아' 내지 일체 '존재'를 바로 본 자는 다시는
과거나, 미래나, 심지어 지금여기에서조차도 자신이나 존재가 무엇인지를 찾아 헤메지 않는다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 질문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 1) 나는 정말 과거에 존재했는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았는가?
2) 나는 과거에 무엇이었을까?
3) 나는 과거에 어떠했을까?
4) 나는 과거에 무엇이었다가 무엇으로 변했을까?
5) 나는 정말 미래에도 존재할까?
6) 나는 미래에 무엇이 될까?
7) 나는 미래에 어떠할까?
8) 나는 미래에 무엇이 되어 무엇으로 변할까?
9) 나는 존재하기나 하는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걸까?
10) 나는 무엇인가?
11) 나는 어떠한가?
12)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 갈애 멸진의 긴 경, M38: http://blog.daum.net/ibakdal/17372051)
분명 이해하기 어려운 도리지만, 세존께서는 '자아' ,'존재' 내지 '이 모든 것'에 대하여 이같은
말씀을 일관하게 설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성제(四聖諦)를 상세하게 설하시는 대념처경
(D22)에서도 그러합니다. 육내외처(六內外處)에서의 '근,경,식,촉,수,상,행,애,심,사'의 10가지
내지 도합 60가지에서 일체가 일어나고 소멸하는 것이니, 이 바깥에 '나'도,'세상'도, '이 모든 것'도
설 자리가 없음을 설하고 계신 것입니다. 실로 그러합니다.
( * 대념처경, D22: http://blog.daum.net/ibakdal/17370353)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아 '(오온을 바로 보아),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한' 그에게는, '자아'가, '존재'가, '세상'이, 혹은 '이 모든 것'이 영원한지 영원하지 않은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물질인지 정신인지, 유한한지 무한한지, 인식이 함께하는지 아닌지,
단일한지 다양한지 제한적인지 무량한지, 괴로움인지 즐거움인지, 지금여기인지 아닌지,,,
등과 같은 것들은 모두 사족(蛇足)과도 같고 족쇄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는 그 어떤 형용으로부터도
벗어나 있습니다. 실로 '존재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도, 존재하기도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것도,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존재의 소멸' 내지 '불사(不死)'를 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
■ 다섯과 셋 경(M102)과 범망경(D1)이 다른 점
- 범망경이 자아, 존재, 세상에 대한 잘못돤 견해를 정리하고, 그것이 어디서 잘못돤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보아야 '바른 견해'가 되는 것인지를 설하시기 위해 그 잘못된 견해를 62가지로
빠짐없이 낱낱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면,
- 다섯과 셋 경은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자아, 존재, 세상에 대한 견해를 거머쥘 때, 흔히 접근하게
되는 방법인 과거로, 미래로, 혹은 지금여기로 즉, 시간적 관점에서 추측하고 거머쥐는 접근에
집중하여 설하시고 있는 것이 다른 점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위「갈애 멸진이 긴 경」
에서 예를 들어 설하신 바, 자아에 대한 잘못된 질문들과 같은 관점에서의 법문이라는 것입니다.
- 그러한 관점에서의 법문이므로 이 두 경에서 열거하고 있는 잘못된 주장들의 차이를 보면
1) 먼저 과거로 모색하는 자들에서 맨 처음 글틀에서와 같이 범망경에서 설하시는
4] 애매모호한 자들 4가지, 5] 우연발생론자 2가지에 대해서는 다섯과 셋 경에서는 아예
언급을 하지 않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미래로 모색하는 자들에서 범망경에서는 단멸론자들 7가지를 상세하게 설하시나
다섯과 셋 경에서는 간단하게 설하시며,
3)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주장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범망경에서는 감각적 욕망을 완비하여 즐기는
자들과 초선∼제4선을 구족한 자들 각각으로 5가지로 설하시나, 다섯과 셋 경에서는
초선∼제2선, 제3선, 제4선에 더하여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알고 주장하지만 실은 취착이
남아있는 자'를 별도로 언급하여 4가지로 다루고 계시는 점이 다릅니다.
4) 범망경에서는 미래로 모색하는 자들 중,
1>사후에 인식이 있는 채 존재한다는 주장의 경우 '물질·비물질, 유한·무한,
단일·다양·제한적·무량, 즐거움·괴로움'을 기준으로 16가지의 경우를 설하시고,
2> 인식이 없거나, 인식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우에는 각각 '물질·비물질, 유한·무한'을
기준으로 8가지의 경우를 제시하시는 바,
다섯과 셋 경에서는,
1> 사후에 인식이 있는 채 존재한다는 주장의 경우 '물질·비물질, 단일·다양· 제한적·무량'을
기준으로 8가지만을,
2> 인식이 없거나, 인식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경우에는 각각 '물질·비물질'을 기준으로
4가지 경우만을 설하시는 것이 다르고,
4) 범망경에서는 미래로 모색하는 자들 중 사후에 인식이 있는 채 존재한다는 경우의 위 16가지
경우를, 다섯과 셋 경에서는 오히려 과거로 모색하는 자들의 주장에서 '물질·비물질, 유한·무한,
단일·다양·제한적·무량, 즐거움·괴로움'이 아니라 '영속·비영속, 유한·무한, 단일·다양·
제한적·무량, 즐거움·괴로움'을 기준으로 16가지의 경우로 설하고 계신 점이 다른 점입니다.
범망경에서는 과거로 모색하는 자들에서 자세히 언급하셨던 영속론자 4가지,
일부영속 일부비영속론자 4가지를 간단히 축약하여 포함해서 설하시는 것도 다른 점입니다.
이같은 두 경은 차이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가 의문일 수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한 마디도
허언이 없으실 뿐아니라, 말씀의 앞뒤가 다른 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말끝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경우가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 범망경과 다섯과 셋 경에서 설하심이 다른 것은 그 설하심의 목적이나 지향이 다르므로 방법을
달리하여 설하신 것일 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위 1) ∼ 3)의 차이점은 납득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왜 4)와 같은 차이점이 있을까라는 의문점은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라할 것은 없는 것은 범망경에서 과거로 모색 18가지, 미래로 모색 44가지
를 설하시는 것은 그것이 과거로든 미래로든 그것은 추론의 방향성일 뿐, 결국 '자아', '존재', 혹은
'세상'에 관한 견해를 거머쥐는 양태(樣態) 내지 그 구성요소들을 설하시기 위한 방편이라는 점,
그리고 그러한 양태들의 기반이 되는 구성요소들인 영속·비영속, 물질·비물질, 유한·무한, 단일·다양·
제한적·무량, 즐거움·괴로움 등의 요소들은 각기 다른 차원의 요소들이어서 그것을 범망경에서는
미래로 모색하는 자들의 경우에서 말씀히시고, 다섯과 셋 경에서는 과거로 모색하는 자들의
경우에서 설하셨다 하더라도 하등 모순될 것이 없다는 사실을 본다면, 이 두 경의 차이가 그 내용이
복잡하여 세존께서 잘못 설하신 것이거나, 혼란스럽게 설하셨을 수 있다는 관점은 설 자리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께서는 범망경을 설하실 때나 다섯과 셋 경을
설하실 때나 '꿰뚫어 알고, 꿰뚫어 보시고' 설하신 것이며, 취지에 따라 방편을 달리하여 설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다섯과 셋 경 _ '여래가 완전하게 깨달은 위없는 최상의 고요한 경지'/적멸(寂滅)
세존께서 본 경을 설하신 이유는 본 경의 끝에 밝히신 바외 같이 '여래가 완전하게 깨달은
이 위없는 최상의 고요한 경지'가 어떻게 해서 성취되는 것인지를 설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흔히 '이것이야말로 최상의 경지다.' 혹은 '나는 열반을 성취했다.'라고 거머쥐게
되는 잘못된 견해들의 오류들을 상세히 설하신 것이 그 내용이며, 다음과 같이 설하셨습니다.
1) 미래로 모색하는 자들의 경우에 대해서
자아, 세상, 존재에 대하여 미래로 모색하여 미래를 추측하고, 미래에 대한 견해흫 가지고, 여러 가지
교리를 주장하는 경우.
ㅇ'인식이 있고 존재하며 항상하다.'라는 주장의 경우에는
'아무 것도 없다.'라는 인식이 인식 가운데서 가장 청정하고 최상이고 제일이고 위없는 것이라고
하며, 이 무한하고 흔들림 없는 '무소유처'를 자아라고 주장하는 것을 정점으로 포함하여,
ㅇ'인식이 없고 존재하며 항상하다.'라는 주장의 경우에는
그들이 인식을 혐오하여 '인식은 종기이며 화살이다. 인식없음이야말로 고요하고 수승하다.'라고
주장하는 것을 정점으로 포함하여,
-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물질도 없고 느낌도 없고 인식도 없고 심리현상들도 없이
알음알이가 오고 가고 죽고 다시 태어나고 성장하고 증장하고 성숙해지는 것을 천명하리라.' 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
ㅇ'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닌 채 존재하며 항상하다'라는 주장의 경우에는
'인식은 병이고 인식은 종기이고 인식은 화살이다. (그러나) 인식 없음은 혼수상태이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이야말로 고요하고 수승하다.'라고 하는
'비상비비상처'의 증득을 정점으로 하는 것을 포함하여,
- 그들의 주장대로 '보아서 알고, 들어서 알고, 생각해서 아는 것과 심리현상들에 의해
이 경지를 증득한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이 경지를 증득하는데 재앙'이 되고,
이 경지는 심리현상들이 일어나면 증득을 얻었다고 할 수 없으며, 미세한 심리현상들에 의해
증득을 얻었다고 하기 때문.
ㅇ'중생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단멸, 멸절, 파멸'
'중생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이들의 단멸과 멸절과 파멸을 주장하는 이들은
자아가 인식을 가지고 존재한다, 인식없이 존재한다,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채
존재한다는 주장 모두를 비난한다. 그같은 주장은 그들이 애착하는 주장만을 옹호하는 것에
불과하며, 그들의 그런 모습은 마치 장사꾼들이 장터에 나갈 때 '나는 이것으로 이것을 갖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런 장사꾼처럼 천박한 모습을 버리고 솔직하게
'사후에 단멸한다.'라는 견해를 지님
- 단멸론의 주장은 존재 더미[오취온]를 두려워하고, 존재 더미를 혐오하여 단멸(없음, 非존재)로
기울지만, 실상은 존재 더미 주위를 뛰어 다니고 그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튼튼한 기둥이나 말뚝에 가죽 끈으로 묶인 개가 그 기둥이나 말뚝 주위를 뛰어 다니고
뱅뱅 돌듯이,
☞ "나는 이것에 대해 이렇게 꿰뚫어 안다."
세존께서는 위와 같이 미래로 모색하여 자아, 세상, 존재에 대한 견해를 주장하고, 그러한 견해를
거머쥐고 이것이야말로 가장 청정하고, 최상이고, 제일이며, 위없는 것이며 혹은 수승하고
고요함(寂滅)에 이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각각의 견해에 대해,
"이것들은 역시 형성된 것[有爲]이고 거친 것이다.
형성된 것들은 소멸이 있기 마련이다.
여래는 1) '이것이 있다.'라고 알고. 2) 그것을 벗어남을 보면서, 3) 그것을 넘어섰다."
라고 천명하시고, 이같이 가르치셨습니다.
2) 과거로 모색하는 자들의 경우에 대해서
자아, 세상, 존제에 대하여 과거의 경험 등을 기반하여 과거를 추측히고, 과거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여러 가지 교리를 주장하는 경우.
'영속·비영속, 유한·무한, 단일·다양·제한적·무량, 즐거움·괴로움'을 기준으로 16가지로 여러 견해를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즉 범망경의 해당 부분 상세를 따르면 자신이 삼매를 얻어 전생을 기억하는
범위, 바로 전생에 머물렀던 천상, 까시나의 증득 양태, 혹은 자신이 보고 경험했던 세상이나
대상에 따라 각기 디른 견해를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 이러한 교설과 이러한 견해를 가진 사문 ․ 바라문들이 믿음, 찬성, 구전, 이론적인 추론,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도 다른 청정하고 순수한 자기 스스로의 지혜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청정하고 순수한 개인적인 지혜가 없기 때문에 그 사문 ․ 바라문들이 단편적인 지혜라도 선언하는
것은 취착일 뿐
☞ "나는 이것에 대해 이렇게 꿰뚫어 안다."
세존께서는 위와 같이 과거로 모색하여 자아, 세상, 존재에 대한 견해를 주장하고,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라고 거머쥐는 각각의 견해들에 대해서,
"이것들은 역시 형성된 것[有爲]이고 거친 것이다.
형성된 것들은 소멸이 있기 마련이다.
여래는 1) '이것이 있다.'라고 알고. 2) 그것을 벗어남을 보면서, 3) 그것을 넘어섰다."
라고 천명하시고, 이같이 가르치셨습니다.
3) 지금여기로 모색하는 자들의 경우에 대해서
이어서 세존께서는 '자아', '세상', '존재'에 대해서
1) 과거로 모색하는 견해를 배제하고,
미래로 모색하는 견해도 배제하고,
감각적 욕망의 족쇄를 완전히 떨쳐버리고 '한거에서 생긴 희열'을 구족하여 머무는 것
즉, 주석을 따르련 초선∼제2선을 구족하여 머물면서
달리 보면 '떨쳐버림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을 구족하여 머물면서
'이것이야말로 수승하다, 이것이야말로 고요하다.'라고 생각하는 경우,
2) 과거로 모색하는 견해를 배제하고
미래로 모색하는 견해를 배제하고
감각적 욕망의 족쇄를 완전히 떨쳐버린 '한거에서 생긴 희열'도 극복한
'세속을 여읜 행복'을 구족하여 머무는 것
즉, 제3선을 구족하여 머물면서
디른 말로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正念正知) 몸으로 행복을 경험하는 것' 내지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묾'을 구족하여 머물면서
'이것이야말로 수승하다, 이것이야말로 고요하다.'라고 생각하는 경우,
3) 과거로 모색하는 견해를 배제하고
미래로 모색하는 견해흫 배제하고
감각적 욕망의 족쇄를 완전히 떨쳐버린 '한거에서 생긴 희열'을 극복하고
'세속을 여의 여읜 즐거움'도 극복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구족하여 머무는 것
즉, 제4선을 구족하여 머물면서
다른 말로 '괴로움도 버리고 즐거움도 버리고, 그 이전에 기쁨과 슬픔을 소멸했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捨念淸精)'하게 머물면서
'이것이야말로 수승하다, 이것이야말로 고요하다.'라고 생각하는 경우,
☞ "나는 이것에 대해 이렇게 꿰뚫어 안다."
세존께서는 이같이 지금여기 초선∼제4선을 구족하여 머물면서 '이것이야말로 고요(寂滅)하다.'라고
여기는 경우에 대해서 이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늘이 없는 곳에 햇빛이 있고, 햇빛이 없는 곳에 그늘이 있듯이" 그와 같이 그가 그같은
선정(禪定)에 들었을 때는 그러한 고요함을 성취하지만, 그가 그러한 선정에서 벗어낫을 때는
그러한 고요함에 머물러 있을 수 없음을. 이 얼마나 소중한 가르침인 줄 모르겠습니다.
세존께서는 다른 경에서는 초선∼제4선이 색계 선정 뿐아니라, 무색계 4선정인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에 대해서도 '내 마음은 안정되지 못했고, 해탈하지 못했으며', '그 위험을
보고, 그 위험을 공부하여, 그로부터 벗어났음'을 천명하시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 띠뿟사 경, A9;41: http://blog.daum.net/ibakdal/17370449)
'괴로움의 멸진', '존재의 소멸'로 가는 과정에서 '바른 삼매(正定)'으로 가르치신 초선∼제4선에
머물러 '어것이야말로 수승하다. 이것이야말로 고요하다.(寂滅)라고 여기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도닦음에 대해서도 세존께서는
"이것들은 역시 형성된 것[有爲]이고 거친 것이다.
형성된 것들은 소멸이 있기 마련이다.
여래는 1) '이것이 있다.'라고 알고. 2) 그것을 벗어남을 보면서, 3) 그것을 넘어섰다."
라고 천명하시고, 이같이 가르치셨습니다.
4) 과거로 모색하는 견해를 배제하고
미래로 모색하는 견해흫 배제하고
감각적 욕망의 족쇄를 완전히 떨쳐버린 '한거에서 생긴 희열'을 극복하고
'세속을 여의 여읜 즐거움'을 극복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극복하여
'나는 고요하다. 나는 열반에 들었다. 나는 취착이 없다.'라고 주장하지만,
과거로 모색하는 견해에 취착하거나,
미래로 모색하는 경우에 취착하거나,
감각적 욕망의 족쇄를 떨쳐버린 '한거에서 생긴 희열'에 취착하거나,
'세상을 여읜 행복'에 취착하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취착하여,
그 취착이 남아있는 경우,
그러면서도'나는 고요하다. 나는 열반에 들었다. 나는 취착이 없다.'라고 주장하는 경우,
'이것 역시 그의 취착일 뿐'이므로
"이것은 역시 형성된 것[有爲]이고 거친 것이다.
형성된 것들은 소멸이 있기 마련이다.
여래는 1) '이것이 있다.'라고 알고. 2) 그것을 벗어남을 보면서, 3) 그것을 넘어섰다."
라고 천명하시고, 이같이 가르치셨습니다.
4) '세존께서 깨달으신 위없는 최상의 고요한 경지/ 적멸(寂滅)'
_ 존재에 매임을 벗어난 자
세존께서는 이같이 설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 위없는 최상의 고요한 경지를 완전하게 깨달았나니
그것은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六觸處](에서)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재난과 그것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
취착없이
해탈했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재난과 그것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 취착없이 해탈한 것,
이것이 여래가 완전하게 깨달은 위없는 최상의 고요한 경지이다."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觸處)에서의 일어남과 사라짐, 달콤함과 재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 취착없이 해탈했다,,,,,,,, ((()))
이같이 새겼습니다.
이같이 상세한 가르침을 주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거룩하신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
다섯과 셋 경을 처음 접했을 때 다소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웠습니다.
니까야를 처음 접하면서 고생했던 범망경과 다소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경의 후기를 쓰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다른 경에서
말씀하신 부분의 그 뜻은 그런 의미였구나,,,, 하고 말입니다.
'존재의 소멸', '존재에 매어두는 사슬을 끊어버림'이라는 가르침은 항상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본경을 통해 비로소 알지 못했던 심오하신 뜻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간 느낌입니다.
마치 소를 찾는 자가 담 너머에 있는 소뿔을 비로소 분명히 본 듯한 기분입니다.
참으로 심오한 뜻을 상세히 전하신 다섯과 셋 경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깨달았다.'라고 혹은 '깨달은 분'이라고 칭해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식무변처를, 어떤 이는 무소유처를, 어떤 이는 무상유정천에 이르어,
어떤 이는 비상비비상처에 이르러,,,
어떤 이는 나름의 삼매에 들어 무엇을 보고 '나는 보았다.'라고 합니다.
어떤 이는 지금여기야말로 중요하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한거에서 생긴 희열을,
어떤 이는 세속을 떨쳐버린 행복에 들어,,, 어떤 이는 행복도 슬픔도 실로 소멸하여,,,
'나는 다 이루었다.' 여깁니다. 어떤 이는 감각적 욕망을 떨쳐버린 채,,,
혹은 어떤 이는 마음 속 깊이 갈애가 남아있어 그를 추구하면서,,,
어떤 이는 '취착'이 남아 있는 것이 보이는데도 나는 '열반을 증득했다, 적멸에 이르렀다.'고 하면서
'이렇게 도닦아야 바르게 도닦는 것이다.''라고,, 열반에 도움이 되는 여러 닦음을 가르치려 합니다.,,,,,
고구정녕하게 가르치신 본 경의 가르침을 새기면서,,, 저는 입이 다물어졌습니다.
시작을 모르는 과거로부터 윤회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처님, 가르침, 승가,
부모님, 스승님,
저보다 공덕이나 나이가 많은 분들께,
혹은 이때까지 저와 인연이 닿았던 천신들, 비인간들, 사람들,
축생들, 혹은 미물의 몸을 입었던 분들이라 할지라도,
제가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하여
취착으로,, 애욕으로,,, 성냄으로,,, 폭력과 잔인함으로,,, 무명으로,,,
몸과 말과 마음으로 잘못한 것들,,,
수미산처럼 쌓여있습니다.
이제 그러한 잘못을 진실로 참회하며,,,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면서
예경드립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또한 다른 이들이
저에게 범한 잘못들도
때를 씻어버린 선한 분들의 마음으로 다 용서합니다.
마음 속 깊이 박힌 적대와 악의와 잔인할 수 있음과 비난과 쇠살들 모두 뽑아버립니다.
본경을 사경한 공덕 몫을
긴 세월 인욕으로 살아오신 어머님이 건강하시기를,,, 오래 사시기를,,, 평안하시기를 기원하면서
부처님의 법을 만나 무너지지 않는 행복 얻으시기를 기원하면서,,,
화향합니다. ((()))
31천 거주하는 제도가능 모든 중생
장애없이 닙바나에 이르시기를
사∼두∼ 사∼두∼ 사∼두∼
2018.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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