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니까야(中部)/M99.수바경-초월·성냄없는 마음

※後記: 수바경을 마치며,,,

이르머꼬어리서근 2018. 5. 2. 06:51


수바 경은


세존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실 때

또데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가 세존을 찾아뵙고, 세존의 지혜를 시험하고 논박하려다가

결국 세존께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을 묻고 귀의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또데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


대림스님의 주석을 따르면, 이 수바 바라문 학도는

디가니까야 수바경(D10, http://blog.daum.net/ibakdal/17370082)의 그 수바 바라문 학도와 동일

인물입니다. 그의 아버지 또데야 바라문은 사왓티 근교 뚜디 마을의 수장이고 아주 부유했다고

하며 여러 경에서 유명한 바라문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는 세존께서 오셨을 때도 죽 한 국자, 밥 한 주걱도 드리지 않을 정도로 인색했고, 그렇게 살다가

죽어서 그 집의 개로 태어납니다. 그 개는 세존을 보고 짖었던 바, 세존께서는 전생에도 그가

세존을 경멸하여 개로 태어났는데, 또 그렇게 짖어서 내생에는 지옥(niraya)에 태어날 것이라고

하셨다 합니다.


수바는 자기 아버지가 죽어서 범천의 일원이 되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바, 절대로 이 개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세존을 헐뜯기 시작했습니다. 세존께서는 당신이 거짓이 아님을 보여주시기

위해 수바의 아버지가 전생에 죽기 전에 숨겨논 재물을 개에게 파오도록 하셨고, 수바에게 '업이 바로

중생들의 주인'이라는 가르침을 주십니다. 수바는 그렇게도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 M135, 업 분석의 짧은 경, §2의 주석 참조)


■ 세존을 논란거리로 시험함


본경을 보면 재가자는 성취하지만 출가자는 성위하지 못한다든가, 재가자는 여러 가지 일이 많아

결실이 많지만 출가지는 별다른 일이나 노력이 없으므로 결실이 적다든가 하는 그럴듯한 언사로

세존의 견해를 묻고 시험합니다.


세존께서는 재가자든 출가자든 '바르게 도닦는 자는 그 바른 도닥음으로 인해 성취하는 것이다.'라고,

재가자는 농사와 같이 일이 많고 출가자는 상업과 같이 일이 적은 편이지만 농사짓는 자나 상업을

하는 자나 모두가 실패로 적은 결실을 얻을 수도 성공하여 많은 결실을 얻을 수도 있다고 하셔서

수바가 제시하는 논란의 핵심을 분석하여 섫하십니다.


세존께서 이러한 희론에 대해 '분석하여 말씀하시고, 한쪽으로 치우쳐서 말씀하시지 않으셔서'

중도의 입장에서 오히려 논란의 본질과 핵심을 짚으시는 것은 쓸데없는 희론을 어떻게 대하시는지

그 모범을 보여주시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 오래된 전승? vs 그것의 의미, 처음 중간 끝을 아는가? '장님 줄서기'일 뿐


그러한 희론(戱論)으로 세존을 공박하지 못하자, 수바 바라문 학도는 1) 진실한 말을 함, 2) 고행,

3) 음행을 금하는 것(청정범행), 4) 만뜨라를 외우는 것(성전을 공부함), 5) 베풂이라는 바라문들의

'공덕을 쌓고 유익함을 성취하기 위한 다섯 가지 법'을 말하면서 세존께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묻습니다.


세존께서는 단 한 명의 바라문, 단 한 명의 스승, 단 한 명의 스승들의 스승, 혹은 일곱 선대에 스승에

이르기까지, 혹은 그 만뜨라를 만들고 설한 바라문들의 원조에 이르기까지 단 한 명이라도

'이 다섯 가지 법들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며, 그 결과를 명언하는 자'가 없음을 통박하십니다.


이 뜻은 무엇입니까?,,,,


1) 진실한 말을 함, 2) 고행, 3) 음행을 금하는 것(청정범행), 4) 만뜨라를 외우는 것(성전을 공부함),

5) 베풂이라는 바라문들의 5가지 법이 비록 도닦음에 있어서 한가닥의 의미가 있다손치더라도

그것들이 왜 그러해야 하는지 그 시작, 그것들의 진실한 의미, 그것들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내지

그러한 법들의 끝이 무엇인지 그들은 알지 못한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오래된 전승일 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존께서는 그 법들에 대하여,


   "마치 서로를 잡고 줄을 서 있는 장님과 같아서 

    맨 앞에 선 사람도 보지 못하고, 

    가운데 사람도 보지 못하고, 

    마지막 사람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고 선언하십니다. 참으로 '완전하게 바르게 깨달으신 분'의 사자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라문의 전승이나 힌두의 전승, 혹은 다른 종교들의 가르침, 혹은 세존의 가르침으로부터 멀리

떠나버린 '대승의 전승'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시간적으로든 공간적으로든 어떤 이유로든 그렇게

오랫동안 전숭된 것이고 비록 많은 사람들에 의해 지켜지고 잇는 것이라 할지라도,,,,

'이 모든 것'을 이미 설하신 세존의 가르침에 비한다면,,,

결국 '줄을 서있는 장님'들이 줄을 잡고 있는 것과 같아서,,,

맨 앞의 사람도, 가운데 사람도, 지막 사람도 그것이 무엇인지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은 믿음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 인간의 법을 초월한다는 허망한 이야기 vs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


세존께서 이같이 말씀하시자 수바 바라문 학도는 '인간의 법을 초월하고, 상자들에게 적합한 지(知/앎)

와 견(봄/見)의 특별함'을 증득한다는 세존의 가르침에 대해서 그러한 것은 ' 1) 웃음거리이며, 단지

2) 말에 지나지 않으며, 3) 허망한 것이며, 4) 공허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세존과 세존의 가르침을 공박

하기에 이릅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에도,,, 앞으로도,,,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세존의 가르침?, 그건 당신의 믿음일 뿐이고,,, 당신의 믿음과 다른 종교와의

차이가 뭐가 있는가?,, 다른 전승이 '장님 줄서기;리면 당신의 믿음도 '장님 줄서기'다,,  아니라고?,,

그렇다면 '인간의 법을 초월한다'는데 그것을 눈앞에 증명해 보라,,,  못하지 않는가?,,, 당신이 말하는

부처님의 교설이야말로 참으로 1) 웃기는 얘기일 뿐이며, 2) 어차피 말장난에 불과하고, 3) 허망하고,

4) 공허할 뿐 아닌가?,,'라고 공격하는 것입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께왓다경(D11)에서 세존께서는 세존과 같이 신통에 능하신 분이라 할지라도 '신족통(神足通) 등에

있는 이러한 위험들 때문에', '신통의 기적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멀리하고,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http://blog.daum.net/ibakdal/17370089


그러므로 그러한 증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계정혜(戒定慧)를 닦아 해탈하여 괴로움을 종식하는 것이야말로 '가르침의 기적(敎誡神變)'이라 하시고, 이보다 더 수승한 기적이란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http://blog.daum.net/ibakdal/17370091) 스승의 가르침이 이와 같으니 '출세간의 도를 닦고, 법을

따라 머물고 행하는 것'이야말로 그 제자된 자들이 묵묵히 행해야 할 바며 드러낼 기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수바는 이같은 비난을 뽁카라사띠 바라문의 말을 빌어서 합니다만, 세존께서는 그같은 비난에 대해서

그같은 자를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라고 일축하십니다. 또한 그와 같이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 흰색, 검은색, 청색, 황색, 적색, 백색이 '내가 알지 못하고, 본 적이 없고, 그러므로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그에 동조하는 것과 같다라고 설하십니다. 이도 참으로 놀라운 법문입니다.

바로 부처님의 진실한 말씀을 믿지 못하는 우리와 같은 자를 두고한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눈멀어서,,, 자기 자신의 갈애의 노예로 태어난 것입니다.



■ 초월의 전제조건

                   _ 다섯 가지 장애(五蓋)/감각적 욕망(五欲樂)을 떨쳐버림/삼매(마음의 조복)


세존께서는 그 다음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인 존재를 면하여 '인간의 법을 초월하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앎)과 견(봄)을 증득'하기 위하여는 무엇이 조건인지를 본 법문에서 설하고 계심을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세존께서는


1) 다섯 가지 장애(五蓋) 즉, '감각적 욕망/악의(성냄)/해태와 혼침/들뜸과 후회/의심'이라는

    모든 존재가 가지고 태어나는 다섯 가지 장애에서 벗어남

                          

2) 다섯 가지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五慾樂) 즉,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매혹적인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귀로 인식되는 소리/코로 인식되는 냄새/혀로 인식되는 맛/몸으로 인식되는

    감촉'에 '묶이고 미혹하고 집착하여', '재난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을 통찰함이 없이 그것을

    수용하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벗어남


위 두 가지 벗어남을 성취하지 못한 자가 인간의 법을 초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세존께서는

설하십니다. 경에서 확인한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혹여 어떤 사람이 신통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가 삿된 마음이 생기면 신통을 부릴 수 있는 길이 닫혀버린다는 이야기도 이같은 말씀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3) 세존께서는 여기서 초선(初禪)과 제2선을 마른 풀과 나뭇가지 같은 연료없이 타오르는 불 내지

    신통에 비유하시며 '감각적 욕망과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림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 그리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까지를 설하고 계신 바, 이같은 삼매(마음의 조복) 또한 초월의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 완전하지 않은 (바라문들의) 법에 대한 의미 부여


세존께서는 1) 진실한 말을 함, 2) 고행,3) 음행을 금하는 것(청정범행), 4) 만뜨라를 외우는 것(성전을 공부함), 5) 베풂이라는 바라문들의 '공덕을 쌓고 유익함을 성취하기 위한 다섯 가지 법'에 대해서

그것들이 가지는 의미를 부여해 주십니다.


세존께서는 그 법들이 '바르게 완전하게 깨달은 자(正等覺者)'에 의해서 선언된 '바르고 완전한 법'이

아니기에 그들의 그러한 법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설하시는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예를 들어 '연민'을 설하십니다. 위의 5가지 법들 말고 '연민에서 우러나옴'이라는 더

고귀한 공덕도 있는 바, 그렇다면 그러한 '연민에서 우러나옴'은 5가지에 더하여 6번째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공덕아닌가라고 묻는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바라문들의 '공덕을 쌓고 유익함을 성취하기 위한 5가지 법'들이란 결국 '악의 없고 적의 없는' 즉 '성냄이 없는 마음'을 닦기 위한 '마음의 장비'라고 그 의미를 부여하고 설하십니다.

이 역시 심오한 가르침이라 생각됩니다.


괴로움의 종식, 존재의 소멸 내지 '오온을 바로 보아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함'

이라는 진실 도닦음 과정이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남, 마음의 조복, 정신물질을 바로 보아 무상·

고·무아를 증득하는 과정이라고 할 때, 


1) 진실한 말을 하는 것도, 2) 고행을 하는 것도, 3) 음행을 금하는 것도, 4) 만뜨라를 외우는 것도,

5) 보시를 행하는 것도, 결국 그 긍극의 지향이나 의미는 마음의 조복(定/바른 삼매의 증득)이나 정신물질을 바로 봄(慧) 이전의 준비단계로서, 감각적 욕밍으로부터 육문을 단속하고 그것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하여 '악의와 적의의 마음'을 품고, '성을 내는' 마음을 다스리는 전체 도닦음의 과정 중

한 조각의 방편 정도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궁극의 도닦음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같은 법을 통하여 세존께서 설하시는 바 그 법들의 진실한 의미요 지향인 '적의 없고

악의 없는 마음'이라도 성취할 수 있다면 그는 참으로 고귀한 법을 증득하는 것입니다.

이같이 설하심은 바라문들의 법을 한마디로 정리해버리신 것과도 같습니다.



■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


여기에까지 이르자 비로소 수바 바라문 학도는 그 무엇인가를 알아들은 것 같습니다.

그는 세존께 '어떻게 범천의 일원이 되는가?'를 여쭙니다.


세존께서는 1)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 2) 연민을 통한 마음의 해탈, 3) 더불어 기뻐함을 통한 마음의

해탈, 4) 평온을 통한 마음의 해탈의 4가지 고귀한 머묾의 법(四梵住, 四無量心)을 설하십니다.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이 4가지 고귀한 마묾의 법을 닦으라고 설하십니다. 때로는 초선∼사선의

바른 삼매의 증득 다음에 이 법을 설하시고, 그 다음에 통찰지의 법을 설하시는 것을 보면,,,

자애, 연민, 더불어 기뻐함, 평온의 마음을 닦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수행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자애가 없는 자, 연민이 없는 자, 더불어 기뻐함이 없는 자, 평온을 지향하지 않는 자,,, 결코 부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자애가, 연민이, 더불어 기뻐함이,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항상 우리의 마음을 울립니다. 비록 그것이 구경의 법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으로 족할만큼 행복한 것입니다. 참으로 고귀하고 실천하기도 어려운 일입니다만,,,

스승께서는 '나팔수가 힘이 세면 별 어려움 없이 사방으로 자기의 소리를 알리듯' 그렇게 실현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런 마음이 되었을 때 그의 업은 더 이상 여기(욕계)에 남아있지 않고, 그러기에 더 이상

여기(욕계)에 정체되어 있지 않다라고 가르치십니다.



■ 수바 바라문 학도의 귀의


수바는 깊이 감명하여 세존께 귀의합니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자눗소니 바라문을 만납니다.그는 세존께서 지혜가 탁월한지 지자인지 수바에게 묻습니다. 수바는 "내가 누구라고, 내가 어찌 감히 사문 고따마의 통찰지가 탁월한지를 알겠습니까? 그분과 같은 자라야 그분의 통찰지가 탁월한지를 알 것입니다."라고 답합니다.

                

자눗소니 바라문이 수바에게 그대는 크게 세존을 칭송하는군요라고 하지 수바는 "내가 누구라고, 내가 어찌 감히 사문 고따마를 칭송한다는 말입니까? 고따마 존자께서는 신과 인간 가운데서 최상이라고

칭송이 자자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둘 다 법다운 답변이라 생각됩니다. 누구라서 세존의 지혜를 가늠하며, 누구라서 부처님을 칭송할 수

있겠습니까?,,,,

                        

수바는 자눗소니 바라문에게 바라문들의 5가지 법은 '악의 없고 적의 없는 마음' 즉 '성냄없는 마음'을 

닦기 위한 마음의 도구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그에게 전합니다. 자눗소니 바라문은 이

이야기의 뜻을 한 번에 알아듣습니다. 자신들이 받들고 수행해 온 법들의 의미를 깨달은 것입니다.

                

                

               

이같이 새겼습니다.

이같이 상세한 법문을 해주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거룩하신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





시작을 모르는 과거로부터 윤회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처님, 가르침, 승가,

부모님, 스승님,

저보다 공덕이나 나이가 많은 분들께,

혹은 이때까지 저와 인연이 닿았던 천신들, 비인간들, 사람들, 

축생들, 혹은 미물의 몸을 입었던 분들이라 할지라도,

                                                  

제가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하여

몸과 말과 마음으로

잘못한 것들,,,  수미산처럼 쌓여있습니다.

                       

이제 그러한 잘못을 진실로 참회하며,,,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면서

예경드립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또한 다른 이들이

저에게 범한 잘못들도

때를 씻어버린 선한 분들의 마음으로 다 용서합니다.

마음 속 깊이 박힌 적대와 악의와 잔인할 수 있음과 비난과 쇠살들 모두 뽑아버립니다.

                          


본경을 사경한 공덕 몫을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처와 제 가족들에게,

곤경과 속박을 건너 세간과 출세간의 빚을 갚고자 하는 저 자신에게,,,,

저를 지켜보고 도우시는 모든 천신들과 비인간들에게,,,,

어려울 때 도움을 주신 친척, 친구들, 도반들께,

경을 번역하시느라 노고를 마다 않으신 대림스님과 각묵스님 건강하고 평안하시기를,,,

장유 반룡산과, 지리산 실상사와 지리산, 설악산, 그리고 보라산에, 그리고 영천의 식진암에 계시는

모든 천신들과 용들과 비인간들에게,,,

우 또다나 사야도와 일창스님께,,,


부처님의 법 듣기를 좋아하고 그 제자들을 보호하는 천신들을 시작으로

31천 거주하는 제도가능 모든 중생들께,


부처님의 법을 따라 무너지지 않는 행복과 평안을 얻으시기를,,,

여래님들의 무한한 자애와 지혜와 위신력이 함께 하시기를,,, 보호 받으시기를,,,

이 회향으로도 이 늪을 진흙탕을 윤회와 미혹을 벗어나고 건너갈 큰 힘을 얻으시기를,,,

장애없이 닙바나 이르시기를 염원하면서,,,,

회향합니다.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2018.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