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이렇게 말씀하시자 또데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사문 고따마께서는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을 알고 계신다.'라고 들었습니다."
"바라문 학도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곳에서 나랄까라 마을은 멀지 않고 가까운가?"
"고따마 존자시여. 이곳에서 날라까라 마을은 멀지 않고 가깝습니다."
"바라문 학도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어떤 사람이 그 날라까라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그가 날라까라 마을을 막 떠났을 때
사람들이 그에게 나랄깔라 마을로 가는 길을 묻는다고 하자.
바라문 학도여,
그 사람이 그 나랄깔라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그에게 날라까라 마을로 가는 길을 물으면
그가 대답하는 것을 주저하거나 우물쭈물대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그 사람은 날라까라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나랄까라 마을로 가는 길을 모두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라문 학도여,
그 사람이 날라까라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그에게 날라까라 마을로 가는 길을 물을 때
그가 대답하는 것을 주저하거나 우물쭈물댈 수는 있다.
하지만 여래에게 범천의 세상과 범천의 세상으로 인도하는 길의 닦음을 물으면
주저하거나 우물쭈물대지 않는다.
바라문 학도여,
나는 범천들을 잘알고, 범천의 세상을 잘 알고, 범천의 세상으로 인도하는 길의 닦음을
잘 알고, 어떻게 닦을 때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지도 잘 안다."
23.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사문 고따마께서는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을 설하신다.'라고 들었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 제게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을 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바라문 수바여, 그렇다면 들어라. 잘 마음에 간직하도록 하여라. 나는 설하리라."
"그러겠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라고 또데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는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4.
"바라문 학도여, 어떤 것이 범천의 일원이 되는 것인가?
1)
바라문 학도여, 여기 비구는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옆으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바라문 학도여,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이렇게 닦을 때
제한된 업은 더 이상 여기에 남아 있지 않고, 더 이상 여기에 정체해 있지 않다.
예를 들면 나팔수가 힘이 세면 별 어려움 없이 사방으로 자기의 소리를 알리듯,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이렇게 닦을 때
제한된 업은 더 이상 여기에 남아 있지 않고, 더 이상 여기에 정체해 있지 않다.
이것이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이다."
25.
2)
"다시 바라문 학도여, 여기 비구는
연민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연민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옆으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연민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바라문 학도여,
연민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이렇게 닦을 때
제한된 업은 더 이상 여기에 남아 있지 않고, 더 이상 여기에 정체해 있지 않다.
예를 들면 나팔수가 힘이 세면 별 어려움 없이 사방으로 자기의 소리를 알리듯,
연민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이렇게 닦을 때
제한된 업은 더 이상 여기에 남아 있지 않고, 더 이상 여기에 정체해 있지 않다.
이것이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이다."
26.
3)
"다시 바라문 학도여, 여기 비구는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옆으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바라문 학도여,
더불어 기뻐함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이렇게 닦을 때
제한된 업은 더 이상 여기에 남아 있지 않고, 더 이상 여기에 정체해 있지 않다.
예를 들면 나팔수가 힘이 세면 별 어려움 없이 사방으로 자기의 소리를 알리듯,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한 마음의 해탈을 이렇게 닦을 때
제한된 업은 더 이상 여기에 남아 있지 않고, 더 이상 여기에 정체해 있지 않다.
이것이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이다."
27.
4)
"다시 바라문 학도여, 여기 비구는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옆으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바라문 학도여,
평온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이렇게 닦을 때
제한된 업은 더 이상 여기에 남아 있지 않고, 더 이상 여기에 정체해 있지 않다.
예를 들면 나팔수가 힘이 세면 별 어려움 없이 사방으로 자기의 소리를 알리듯,
평온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이렇게 닦을 때
제한된 업은 더 이상 여기에 남아 있지 않고, 더 이상 여기에 정체해 있지 않다.
이것이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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