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뚜미 경은
세존께서 짜뚜마의 아말라끼 숲에 머무실 때,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목갈라나 존자를 상수로 하는 오백명의 비구들이 세존을 친견하러 왔을 때
이들이 거주하고 있는 비구들과 더불어 서로 담소를 나누고, 잠자리와 좌구를 준비하고,
발우와 가사를 정리하면서 큰 소리로 시끄럽게 떠든 것을 이유로 세존께서 이들을 내쫓으신 일을
계기로 비구들에게 설하신 경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떠들자 세존께서는 "아난다여, 그런데 이들은 누구인데 이렇게 큰 소리로 시끄럽게
떠드는가? 꼭 어부가 물고기를 끌어올릴 때와 같구나."라고 하시고, 그 비구들을 오라고 하셔서
"비구들이여, 물러가라. 나는 그대들을 내쫓는다. 그대들은 나와 함께 머물 수 없다."라고 그들을
내치십니다.
짜뚜마에 사는 사꺄족들과 이를 보고있던 사함빠디 범천은 세존께 이 비구들 중에는 이제 갓 출가하여
입문한 비구들이 있는데, 어린 씨앗이 물은 만나지 못하면 변하듯, 막 태어난 송아지가 어미를 만나지
못하면 변하듯, 그들이 세존을 친견하지 못하면 변할 수 있으므로 그들을 받아들여주실 것을 간청한
바,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세존께서 그런 이유로 그 비구들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신 것을 알고
그 비구들을 데리고 세존을 다시 찾아뵈었을 때 본 경을 설하신 것입니다.
■ 사리뿟따 존자를 경책하시고, 목갈라나 존자를 칭찬하심
- '대연민의 마음'은 침으로 수승하다.
여기서 세존께서는 일체지자이신데 그 오백명의 비구들을 '같이 머물 수 없다'고 내치신 일은
잘못 처분하신 것이 아닌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일체지자이시며,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중생들에 대한 자애와 연민이 넘치시는 분입니다. '화가 나셔서' 그러셨을리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세존과 그 제자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어부들이 물고기를 끌어올릴 때와 같이' 떠드는 것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물러가라, 나는 그대들을 내쫓는다'라고 하심은 당연한 교계요
처분이라 생각됩니다.
사꺄족들과 사함빠디 범천이 세존께 간청드리는 일도 지극한 연민의 마음의 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남의 일인데라고,, 그들의 잘못인데,,, 라고 생각하면 그만일텐데 거기 갓 출가한 비구들이 있음을 알고
그들을 연민하여 나서는 것입니다. 참으로 수승한 일입니다.
세존께서는 이 일에 대하여 사리뿟따 존자에게
'내가 비구 승가를 내칠 때 그대에게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라고 물으시고,
사리뿟따 존자가
"세존께서는 이제 무심히 지금 ‧ 여기에서의 행복한 삶에 열중하여 머무실 것이다.
우리도 이제 무심히 지금 ‧ 여기에서의 행복한 삶에 열중하여 머물러야겠다."
라고 생각했다고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그만하라, 사리뿟따여. 그만하라, 사리뿟따여.
사리뿟따여, 그대는 다시는 그런 마음을 일으키지 마라."
라고 경책하십니다.
같은 질문을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물으시자 마하목갈라나 존자께서는
"세존께서는 이제 무심히 지금 ‧ 여기에서의 행복한 삶에 열중하여 머무실 것이다.
'나와 사리뿟따 존자가 비구 승가를 돌보아야겠다.' "
라고 생각했다고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내가 비구 승가를 돌보아야 하고, 아니면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그렇게 해야 한다'라고
하시며 목갈라나 존자를 칭찬하십니다.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자애와 연민의 마음이 넘치시는 분입니다. 그분께서 갓 출가한 비구들에 대한
연민이 없으셨을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존경해 마지않는 스승께서 그러한 처분을 하셨을 때
어떤 생각을 일으켰는지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있고, 세존께서는 그를 위같이 경책하십니다.
부처님께서 어떤 아라한을 경책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섬뜩합니다. 아라한이라도 그를 교계하실
것이 있으면 그를 교계하시는 부처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리뿟따 존자의 마음에 자애와 연민이 없는 것도 아니요, 더우기 악의가 있지도 않음은
분명합니다. 이 장면에 사리뿟따 존자와 목갈라나 존자의 서로 다름은 우열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두분의 성향이 다름에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그같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그대는 다시는 그런 마음을 일으키지 마라.'라고
엄중히 가르치십니다. 이러한 장면은 소위 '대승'의 전통에서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소승'이라하며,
'소승'은 오직 자기 자신의 깨달음만을, '무심히 지금여기에서의 행복한 삶에만 열중하여 머묾'만을
소중하게 생각하여 중생들의 고통을 외면한다는 폄훼에 좋은 이야기거리로 쓰일 가능성이 많아
보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사리뿟다 존자께서도 천만에 만만에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런 말을 한다면 그들먀말로 근거없이 '성자들을 비방'하는 것이요, '사견업을 짓는' 것이니
그러한 과보로도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비참한 곳, 악처, 파멸처, 지옥에 태어남'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일화에서 얻는 소중한 가르침은 '어떤 중생들이 비록 질못이 있다 하더라도, 그 중생들에 대한
자애와 연민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비난받지 않고 수승한 것이다.'라는 믿음입니다.
세존께서는 자애경(metta sutta)에서 '어머니가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 다해 구히고
보호하듯, 모든 세상 모든 중생 나같이 여겨, 한없는 자애를 베풀고 닦는다.'고 하셨고,
비록 삶이 괴로움이라 하시고 윤회를 끝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살아있는 한에는 이같은
삶이야말로 '고귀한 삶'이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
■ 훈계의 잔소리(파도)/게걸스럽게 먹음(악어)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소용돌이) /여인(상어)의 두려움에 질려서_수행을 포기함
세존께서는 다시 부르신 이들 오백명의 비구들에게 예상되는 4가지 두려움에 대해 법문하십니다.
이들 중에서 이제 갓 집을 나와 이 법과 율에 출가한 자들이 있음을 아시니, 이들을 위해서도
응당한 가르침이라 생각됩니다.
세존께서는 먼저 이들에게 '나는 왜 출가하였나?'라는 출가의 동기를 먼저 떠오르게 하십니다.
이것은 출가하는 자가 왜 출가하는지에 대한 세존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 ‧ 탄식 ‧ 육체적 고통 ‧ 정신적 고통 ‧ 절망에 짓눌렀다.
괴로움에 짓눌렸다. 괴로움에 압도되었다.
이제 참으로 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끝을 꿰뚫어 알아야겠다.'
가 바로 그것입니다.
스님이 되기 위해서도 아니고, 생계를 얻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세곡이 싫어서 등, 혹은 전생의 인괴로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출가합니다만, 그는 사성제를 알기 전이라도 이 헤어날 수 업슨 괴로움의
무더기의 끝을 이루기 위해서 출가하는 것입니다.
1) 파도의 두려움
- 이런 이유로 출가한 그를 동료수행자들이, 특히 먼저 출가하여 아들뻘이나 손자뻘이 되는 자들이
나를 이래라저래라 사소한 것까지 가르치고 훈계하는 잔소리에 '화가 나서' 환속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잇다는 자만에 따른 분노는 마치 '파도'와 같이 계속됩니다.
2) 악어의 두려움
- 이런 이유로 출가한 그를 동료수행자들은 씹고, 먹고, 마시고, 맛보는 것까지
허락되는 것 허락되지 않는 것, 이 때에는 먹고 이때에는 먹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는 이들은 '우리 입에 재갈을 물리는구나'라고 먹고 마시는 것까지 간섭하는 것에 질려서
재가자일 때가 그리워 환속합니다.
그렇습니다. 먹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마음대로 먹고자 하는 마음은 입을 벌린 '악어'처럼 강렬한 욕망입니다,.
3) 소용돌이의 두려움
- 이런 이유로 탁발한 그이지만, 아직 그는 몸도, 말도, 마음도 왜 제어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마음챙김을 확립하지도 못했도 마음챙김이 무엇인지 왜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6가지 감각기능을
왜 단속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단속하는 것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는 마을로 탁발을 나가서 재가자였을 때 마음대로 감각적 욕망을 충족하며 살던 것을 보고,
나는 재물도 풍족했고, 꼭 출가하지 않더라도 공덕을 지으며 살 수 잇었다. 그런데 내가 왜
출가하여 이 고생을 하며 사는 것일까라고 회의하고 환속합니다.
그렇습니다. 5가지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을 향한 갈애는 '소용돌이'와 같이
우리를 언제라도 그 속으로 끌어 당기고 휩싸 버립니다.
4) 상어의 두려움
- 이런 이유로 출가한 그이지만, 몸을 제대로 감사지 않거나 옷을 제대로 입지 않은 여인을 보면
그의 마음은 다시 애욕으로 물듭니다. 그는 마음이 애욕에 물든 채로 환속합니다.
그렇습니다. 여자에 대한 애욕만큼 넘어서기 힘든 것은 없습니다.
더구나 요즘만큼 볼 것이 많고, 마음대로 볼 수 있으며, 노출이 많은 것을 자랑삼는 시대는 없었을
것입니다. 매일 대하는 '상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의 수행은 거기서 끝이 납니다,
그는 이 물질정신의 늪에서 결코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는 거기서 죽습니다.
「바다 경」(S35:228)에는 '파도와 소용돌이와, 상어와, 도깨비 있는 눈의 바다를 건넜다고 한다.'라고
언급하고, '육근이 육경의 흐름을 견딘다.'는 것을 두고 파도와 소용돌이와, 상어와, 도깨비 있는
'육경의 바다'를 건넜다고 설명하고 있고, 쿳다까 니까야의 「여시어경」(It.114)에 의하면
파도는 분노와 절망을, 소용돌이는 5가닥의 감각적 욕망을, 상어와 도깨비는 여인들을 뜻한다고
나타난다고 합니다. 여인은 상어인 동시에 도깨비라고까지 비유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이같이 설하시고,
이것을 이같은 '두려움에 질려' 공부지음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 간다라고
설하십니다.
잔소리에 대한 분노(상어),
마음대로 게걸스럽게 먹는 것(악어),
5가지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을 향한 갈애(소용돌이),
여자를 향한 갈애(상어),
의 '두려움에 질려',,,,, '두려움에 질려',,,,,,
이 부분 세존의 '두려움에 질려'라는 가르침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해보기도 전에 두려움에 질려,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인데 두려움에 압도되서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저 먼 길을 가기 위해 목적지를 보고 집을 나왔는데,,, 재산과 가족과 즐거움과 인생까지 버려 두고
수행의 길을 떠나온 나인데,,, '이것들이 과연 두려워할 만한 가치들이 있는 것들인가?,,,
내가 이것들을 두려워해야만 하는 것인가?,,, 아것을 두려워하고 압도되고마는 나는 과연 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언제까지,, 언제까지,, 이렇게 내가 만든 굴레 속에서 이같이
살아야 하는 것인가?,,, 등등 실로 여러 가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것은 첫걸음에 불과한 것입니다. 첫단추입니다. 이것이 안되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는 무엇을 하든 여기서 넘어질 수밖에 없고, 일어나서 다시 간다하더라도
몇 번이고라도 다시 넘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무릎으로 단단히 서고 다시는 여기서,
분노와 절망, 먹는 것에 빠짐, 눈귀코혀몸의 대상들을 즐김을 놓지 않음, 여자에 대한 애욕,,,
여기서 다시는 넘어지지 않아야,, 걸음을 배운 어린 아이처럼 비로소 걷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느 짐승의 첫걸음이 아니라,,, 사자의 첫걸음이요,, 산천을 떨게할,,
이 철저하게 미쳐 날뛰는 견고한 물질정신의 세계를,,, 산산히 부수고 제 자리를 찾아줄,,,
어떤 호랑이의 첫걸음입니다.
이같이 새겼습니다.
수행을 시작하는 어린 이들을 위해사 이같은 깨알법문을 마다하지 않으신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거룩하신 부처님과, 그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
시작을 모르는 과거로부터 윤회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처님, 가르침, 승가,
부모님, 스승님,
저보다 공덕이나 나이가 많은 분들께
제가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하여
몸과 말과 마음으로
잘못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 그러한 잘못을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면서
예경드립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또한 다른 이들이
저에게 범한 잘못들도
선한 이들의 마음으로 다 용서합니다.
적대와 악의와 잔인할 수 있음과 비난 모두 버립니다.
본경을 사경한 공덕 몫을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처와 제 가족들에게, 곤경과 속박을 건너려는 저 자신에게,,,,
저를 지켜보고 도우시려는 모든 천신들과 비인간들에게,,,,
어려울 때 도움을 주신 친척, 친구들, 도반들께
경를 번역하시느라 노고를 마다 않으신 대림스님과 각묵스님,
장유 반룡산과 지리산 실상사와 지리산, 설악산 그리고 보라산에, 그리고 영천의 식진암에 계시는
모든 천신들과 용들과 비인간들에게,,,
우 또다나 사야도와 일창스님께,,,
새로이 인연을 맺게된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법과 그 제자들을 보호하는 천신들을 시작으로
31천 거주하는 제도가능 모든 중생들께
부처님의 법을 따라 참된 행복과 평안을 얻으시기를,,,
이 회향으로도 큰 힘을 얻으시기를,,,
장애없이 닙바나 이르시기를 염원하면서,,,,
회향합니다.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2017.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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