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끼 경은
세존께서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실 때 비구들에게 설하신
경입니다.
세존께서는 사슴사냥꾼이 미끼를 놓아 사슴을 잡는 것을 비유하여,
이에 대응하는 네 사슴의 무리를 예를 드십니다.
여기서 사슴사냥꾼은 사악한 마라를 두고 하신 말씀이며, 미끼는 다섯 가닥의 얽매는 감각적 욕망을
사슴의 무리는 사문·바라문들을 비유하신 것이라고 세존께서는 설하셨습니다.
1. '지배'하기 위하여
세존께서는 그 이전에 사슴사냥꾼이 미끼를 놓는 것은
사슴의 무리들이 잘 먹고, 잘 살고, 멋지고, 번창하라고 그리히는 것이 아니라
사슴의 무리들이 넋을 놓고 미끼를 먹고, 취해서, 방일해지면, 그 사슴들을 마음대로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마라의 목적이 '지배'에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천명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세존께서는 그를 두고 '사악하다'라고 설하십니다.
실제 '사악함'은 '지배'와 밀접한 관계를 맺습니다.
세상에 모든 악(惡)이 일어나는 과정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대인연경(D15)에서 갈애를 별론으로 하여
상세하게 설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http://blog.daum.net/ibakdal/17370170)
1) 갈애를 조건으로 추구가, 2) 추구를 조건으로 얻음이, 3) 얻음을 조건으로 판별이,
4) 판별을 조건으로 다시 욕망이, 5) 욕망을 조건으로 탐욕이, 7) 탐욕을 조건으로 거머쥠이,
8) 거머쥠을 조건으로 인색이, 9) 인색을 조건으로 수호가,
10) 이 수호를 원인으로 하여 몽둥이 들고, 무기를 들고 싸우고, 말다툼하고, 분쟁하고. 상호비방하고,
중상모략하고, 거짓말하는 수많은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이 생겨난다라고 천명하신 부분입니다.
참으로 과거의 역사로나 현재 목도할 수 있는 모든 악(惡)의 근본을 뿌리채 설하신 놀라운 법문입니다.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모두 그 한계를 드러냈고,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양극화에 따른 문제는 심각한 참상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우리는 그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 안에는 탐욕과 인색과 수호가 있습니다. 만일 지금이라도 어설픈 이념논쟁이 아니라 '인색하지 않음'을 근본으로 삼는다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것이 내가 나라고 한 후 길어야 몇 십년을 못넘기는 인간계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인간들이
행악하는 원인과 모습입니다.
마라는 그 지배의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계에 있어서도 '지배'는 중요한 목적 중에 하나입니다. 거대권력도 '지배' 자체만을 목적으로
혹은 그 연장을 위해서 수많은 행악을 서슴치 않습니다.
그러나 조그만 힘, 조그만 권한, 조그만 소유물, 조그만 기술, 조그만 지식만 있어도 그것으로 남을
지배하려 하고, 내 마음대로 하려하고, 상대를 괴롭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입니다. 가족, 초등학교부터, 군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나이가 많다고 해서, 혹은 고참이라고 해서, 혹은 같은 월급쟁이이면서도 상사라고 해서, 혹은 손님이라는 이유로 즉시적으로 상대방을 얕보고 지배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라의 그것은 존재들을 오도하여 그러한 소소한 행악이 일어나게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31천 존재하는 모든 존재에 대하여 그가 존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그 존재가 근원적인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길을 혼란시키고 흔들고 끊어 놓는 데서 그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가 왜 그러한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미끼 즉 다섯 가닥 감각적 욕망이 있는 곳에서
존재들을 '지배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천명하고 계시는 것을 새겨야 하겠습니다.
모든 지배하고자 하는 자의 특성이 있습니다.
1) 다섯 가닥 감각적 욕망에 나와 남을 얽어맴, 2) 성냄과 악의 , 그리고 3) 사성제라는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자신과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탐욕과 악의가 그 아버지요, 무명이 그 어머니가
되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로써 산 목숨을 해치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고 빼앗고, 삿된 음행을 자행하고, 거짓말하고,
술과 약물에 빠지고 빠지게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그가, 혹은 우리 중에 누구가 '왜 지배하고자 하는지?'를 꿰뚫어 알아야 하겠습니다.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바로 이것을 설하고 계시기도 합니다.
세존의 가르침을 보면 놀라운 것 중에 하나가 그분은 '지배'에 아무 관심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승가라 할지라도 그분이 승가를 지배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심지어는 길을 열어주신 당신까지를 포함하여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와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며, 지배하고 존경받고 명성을 얻고 경배받는 것 등은 아예 안중에 없으신 바,
오히려 그러한 것들을 모두 버리라고 천명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네 가지 수행자의 무리
세존께서는 아래와 같이 사슴의 무리에 비유하여 네 가지 사문·바라문의 무리를 말씀하셨습니다.
1) 사슴사냥꾼이 미끼를 놓아둔 곳에 잠입하여 넋을 놓고 그것을 먹는 무리
마라가 놓아둔 미끼와 세속적인 음식에 다가가서 넋을 놓고 그 음식을 먹고 취하고 방일해져서,
방일할 때 마라가 그 미끼와 세속적인 음식을 놓아둔 곳에서라면 그가 원하는대로 할 수 있게
되는 경우
2) 두려워서 미끼를 금하다가, 곤궁을 참기 어려우면 미끼로 와서 넋을 놓고 먹는 무리
숲 속 깊이 들어가서 금욕적인 생활을 하다가, 힘과 기력이 쇠진해지면
의지를 버리고 마라가 놓아둔 미끼와 세속적인 음식으로 되돌아 다시 함몰되는 경우
3) 미끼에 의지하여 미끼 근처에 거처를 정하고 넋을 놓지 않고 미끼를 먹는 무리
'세상은 영원하다, 혹은 영원하지 않다. 세상은 유한하다, 세상은 무한하다.
생명은 이 몸이다, 혹은 생명은 이 몸이 아니다.
세존은 사후에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와 같이
존재를 바로 보아 존재로부터의 번뇌를 꾾지 못하고, 실제로는 혹은 상견(常見) 혹은 단견(斷見)을
부여잡고 존재 혹은 자아의 교리에 대한 견해와 그에 대한 취착을 버리지 못한 경우
4) 사냥꾼과 그 일행들이 갈 수 없는 곳에 거처를 정한 무리
세존께서는 마라와 그 일행들이 갈 수 없는 곳에 거처를 마련한 무리들은 설사 위 3번째 무리의
경우처럼 넓은 그물을 쳐 놓아도 그들을 잡을 수가 없다고 비유하여 설하셨습니다.
이어서 그렇다면 마라와 그 일행들이 '갈 수 없는 곳'이라 함은
초선∼제4선의 선정(禪定), 공무변처 삭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의 무색계 선정, 그라고
상수멸(想受滅)의 소위 구차제주등지(九次第住等至)가 바로 그것이라고 설하셨습니다.
3. 그분이 이렇게 설하신 이유
본경을 새기면서 마음을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낍니다. 본경은 내용은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만
그렇다고해서 쉬운 것도 아닙니다.
왜 강한 아픔이 느껴지는지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저 사슴사냥꾼의 미끼에 걸려드는 세 무리 사슴의 모습은 바로 제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넋을 놓고 미끼를 먹고 방일하고, 안먹겠다고 작정을 했다가도 또 미끼에 빠지고,
먹기는 먹더라도 마음챙기면 될 것 아니냐고 했다가 큰 그물에 걸려서 사지가 잘려나가는 고통을 겪는
그 모습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제 모습입니다. 수없이 졌고 셀 수 없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선정(禪定)에 드는 모습을 생각해보지만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을 떨쳐버린'
그 모습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세존께서는 마라의 미끼와 세속적인 음식에 빠지는 세 무리에 대해서는 '마라의 지배와 힘에서 벗어날
수 없다.'라고 천명하십니다. 그 지배와 함은 너무가 강하고 몸서리가 쳐지는 것이어서 저는 공포에
짓눌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가 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거룩하신 분 세존·아라한·정등각자께서는 그러한 선정(禪定)을 거처(居處)로 삼으로라고
가르치십니다. 저는 어디에 제 집을, 피난처을 마련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하여
'마라를 눈 멀게 하고,
마라의 눈을 발판이 없도록 그렇게 빼버려
마라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간'
자가 되라고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이와 더불어 사선(四禪), 사처(四處), 그리고 상수멸(想受滅)에 이르러
통찰지로 사성제를 보아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세상에 대한 집착을 초월한 자'
가 되라고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이같이 상세한 가르침을 주신 부처님께 두 손 높이 모아 예경합니다.
거룩하신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이와 같이 새겼습니다.
이 경을 사경한 공덕 몫을
법문을 같이 듣고 수행을 같이 하는 선한 이들을 포함해서
부모님과 도움을 주신 이들을 비롯하여
삼십일 천의 모든 중생들에게 회향합니다.
회향을 받아
행복하시기를!
모든 위험이 사라지기를!
모든 걱정이 사라지기를!
모든 근심이 사라지기를!
몸과 마음 행복하게
열반에 이르게 하는 거룩한 실천을
열심히 노력하고
많이 수행하기를!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 ∼ 두 ∼ 사 ∼ 두 ∼ 사 ∼ 두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 ∼ 두 ∼ 사 ∼ 두 ∼ 사 ∼ 두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 ∼ 두 ∼ 사 ∼ 두 ∼ 사 ∼ 두 ∼
201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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