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음의 무더기의 짧은 경은
세존께서 삭까에서 까삘라왓투의 니그로다 원림에 머무실 때,
삭까 사람 마하나마에게 설하신 경입니다.
세존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가르침에 따라 성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에 대해서 늘 말씀하시기를 이 법은 " 1) 알아차리기도 이해하기도 어렵고,
2) 평화롭고 숭고하며, 3)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4)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일아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이 법은 "1)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고, 2) 미묘하고, 3) 깊고, 4) 미세하여,
어둠의 무더기에 덮혀 있고 탐욕에 빠진 자들은 보지 못한다."라고 하셨습니다만,
설사 보고 알았다 하더라도,
실천과 수행을 통해 그 결괴를 얻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경에서 마하나마는 이렇게 말하는 바,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저는 세존께서 '탐욕은 마음의 오염원이다. 성냄은 마음의 오염원이다. 어리석음은 마음의 오염원이다.'라고 설하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때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냄, 성냄, 어리석음이
제 마음을 사로잡아 버리니. 제가 무엇이 안되어서 이런 지경을 못벗어 나는 것입니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본경에서 세존의 가르침은 실제 수행에 있어서 너무나도 소중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존께서는 마하나마가 자신이 무엇이 부족해서 그러한가를 여쭈었을 때
"바로 그 법이 그대 안에서 제거되지 않아서"라고 그 원인을 말씀하십니다.
이 부분은 얼핏 보면 말장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세존의 말씀을 곰곰히 살펴보면
참으로 실체적인 요긴한 가르침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이러한 법에 내 안에서 제거되면, 그는 더 이상 재가에 머물지 않고,
감각적 욕망에 미련을 두고 즐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존께서는
"1) 감각적 욕망이란 달콤함은 적고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는 것이어서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르게 통찰지로써 잘 본다 하더라도,
2) 그가 감각적 욕망을 멀리 여의고 해로운 법들도 멀리 여읜
희열과 행복에 도달하지 않고, 그 보다도 더 평화로운 다른 것에 도달하지 않는 한,
3) 그는 결코 감각적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라 할 수 없다."라고
간결하게 매듭지어서 천명하시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지혜가 있어서 바로 알고 본다 하더라도, 그러한 감각적인 욕망의 달콤함을 즐기는 데 머무르지 않고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선정(禪定)에 드는 행복을 누리는 자가 아니라면, 그는 결코
감각적 욕망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라고 천명하시는 것입니다.
마하나마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세존께서는 이어서 세 가지의 가르침을 더 베푸십니다.
첫째는 당신께서 보살이었을 때 당신도 그러하였음을 증명으로 말씀하시는 것이고,
둘째는 그러한 감각적 욕망의 달콤함이 어떤 재난을 가져오는지 유념하도록 상세하게 가르치시고,
셋째는 니간타들과 문답을 예로 드시면서 빔비사라 왕과 당신 중에 누가 과연 더 행복한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중 세 번째에서 당신께서 선정에 드셨을 때를 말씀하시면서,
그러한 행복이야말로 진실한 행복의 문을 여는 것임을 말씀하시는 장면은 세간이든 출세간이든
수행의 진면목이 어디서부터 출발하는 것인지를 잘 전하시는 장면이라 생각됩니다.
번다한 정신·물질의 증장에 신경쓰는 것을 아예 반전하여 신경을 뚝 꺼버리고,
예를 들면 들숨날숨에만 마음을 집중하여 삼매에 들고,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떨쳐버림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
혹은 그 이상의 선정에 드는 것을 참행복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수행의 결실을 맺어가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을 접하면서 제게는 큰 결실이 있습니다.
초선∼제4선의 정형구를 대하면서 아것이 다 무슨 말씀인가 했던 부분, 혹은 계(戒)·정(定)·혜(慧)의
가르침을 대하면서 어째서 그렇게도 선정(定)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풀렸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초선∼제4선(正定)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저는 거침없이
'초선'이라고 답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하여 초선의 정형구,
" 여기 비구는
1)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린 뒤, (원인)
2) 일으킨 생각(尋)과 고찰(伺)이 있고 (수행)
3) 떨쳐버림에 생긴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결과)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에서 가장 중요한 일구(一句)를 뽑으라고 한다면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라는 부분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않고는 그는 세존의 가르침에서 결코 진일보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고 보시, 지계의 덕목이 있는 자가 더 수승함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관문이라
생각됩니다.
초선을 증득힐 정도의 존재라면 그는 범천의 일원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린' 고귀한 자임이 분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이와 같이 새겼습니다.
이같이 고귀한 가르침을 주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두 손 높이 모아 예경합니다.
이 경을 사경한 공덕몫을
노고로 경을 번역해 주신 대림스님과 각묵스님과
부처님의 법을 지키시고 전하시는 거룩하신 승가에,
경을 copy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붓다의 옛길'님에게,
저를 지켜보시는 모든 천신들과 비인간들과 부모님, 친구, 친척 주변 여러분들과,
31천 존재하는 제도가능 모든 존재들께
거룩한 마음으로 회향합니다.
평안하시기를,,, 행복하시기를,,,
부처님의 법을 만나 행복의 문을 여시기를,,,
장애없이 열반에 이르시기를 기원하면서 회향합니다,,,,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 ∼ 두 ∼ 사 ∼ 두 ∼ 사 ∼ 두 ∼
2016.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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