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가니까야(長部)/D24.빠띠까경-신통·세상의 기원·청정

後記: 빠띠까경을 마치며,,,

이르머꼬어리서근 2014. 2. 23. 01:48

 

빠띠까경은

 

세존께서  말라에서 아누삐야라는 말라들의 성읍에 머무실 때

세존께서 걸식을 나가시려다 너무 이르기에 박가와곳따 유행승이 머무는 원림을 찾아가시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곳에서 박가와곳따 유행승은 세존께

'이제 저는 세존을 버리고 떠납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세존을 의지하여 살지 않습니다.'라며

환속한 수낙캇따가 자신에게 한 말이 사실이냐고 세존께 여쭙니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박가와곳따 유행승에게 수낙캇따와 있었던 일을

아래외 같이 전하는 것이 본경의 내용을 이루게 돕니다.

 

 

 

수낙캇따는 두 가지 이유로 세존을 떠나 환속하게 되는데

첫째는 세존께서 자신을 위해 인간을 넘어선 법에 기인한 신통의 기적을 나타내지 않으신다는 것과

둘째는 세존께서는 세상의 기원을 천명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러힌 수닉캇따의 이의제기는 오늘날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의심이나 회의를 가지게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부처님이나 그분이 전하신 위없는 법에 대한 깨우침이나 확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저 자신이 문득문득 그러한 의문이 반복적으로 떠올랐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부처님의 입장이나 가르침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존께서는 이와같은 두 가지 문제제기에 대해 아래와 같이 확고하게 천명하십니다.

 

세존께서는 누구를 위해 인간의 법을 넘어선 법에 기인한 신통의 기적을 나타내신다거나

누구를 위해 세상의 기원을 천명하신다고 약속하거나 말씀하지 않으실 뿐만아니라,

 

그것보다도,

 

인간의 법을 넘어선 법에 기인한 신통을 나타내시든 안 나타내시든 간에

세상의 기원에 대해 천명하시든 안 한시든 간에

세존께서 설하신 법은 그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한다.'는 것이며

 

그러하기에 신통의 기적을 나타낸다거나 세상의 기원을 천명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라는 것이야 말로 세존의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세존께서는 박가와곳따 유행승에게 수낙캇따와의 일을 상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 먼저는 세존께서 수닉캇따 자신을 위하여 신통을 보이지 않는다고 한 것에 대해서

다음 세 가지의 경우를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수낙캇따가 멋지다고 했던 네 다리로 걷고 먹는 자였던 꼬락까띠야가 칠일 후 죽어서

깔라깐자라는 가장 저열한 아수라의 무리에 태어닐 것이라고 예언하신 것과 결국 죽은

꼬락까띠야의 시체가 수낙캇따 앞에 일어나서 그렇게 된 것을 밝히는 것,

 

다음으로 굉장한 명성과 이득을 지닌 나체수행자 깐다라마수까가 수낙캇따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은채 분노와 성냄과 신랄함을 드러내자 수낙캇따를 이를 멋있다고 한 바,

세존께서는 곧 그가 스스로 서원하고 지키던 계를 파하고 명성이 떨어져서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시고

그대로 된 것이 있습니다.

 

위 두 가지의 경우 수낙캇따는 세존께

'세존께서는 다른 아라한을 질투하십니까?'라는 말로 도발을 하지만

세존께서는

 

'1) 나는 다른 아라한을 질투하지 핞는다.

 2) 다만 그대애개 삿된 견해가 생겼으니 그것을 버리라는 것이다.

 3) 그대에게 오랜 세월 불이익과 괴로움이 있게 하지 말거라.'라고

 

담담하게 못난 제자를 가르치시는 것을 새겨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큰 이득과 명성을 가지고 있던 나체수행자 빠띠까뿟따가 여러 사람들 잎에서 세존께서

신통을 보이면 자신은 그 두 배의 신통을 보이겠다고 신통을 도전하였다는 말을 수낙캇따가

세존께 전하자,

 

세존께서는 그가 그런 말을 취소하고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런 견해를 포가하지 않고는

나의 면전에 올 수 없으며, 만일 그가 생각하기를 그렇게 하지 않고도 나의 면전에 올 수 있다고

한다면 그의 머리가 떨어질 것이다라고 수낙캇따에게 말씀하시고,

 

세존께서 막상 빠띠까뿟따애게로 다가 가시자 그는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앉은 자리에서 일어설

수조차 없었던 것, 그리고 여러 사람의 조롱에도 불구히고 그리하였던 일을 말씀하십니다.

 

그 중 목발우를 지닌 자의 제자 잘리야가 빠띠까뿟따를 비유한 사자와 자칼의 비유는 새길만 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으로부터 혹은 남에게 배워얻어 혹은 스스로 닦든 약간의 지혜와

신통이 생겼다고 하여 갈애와 자만과 견해를 벗어나지 못하는 못난 빠띠까뿟따의 모습은

많이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 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게는 세존께서는 세존께 세존이 하신 말씀을 명심하라고 도발하는 수닉캇따에게

'여래가 둘로 가버리는 그러한 애매모호한 말을 한 적이 있는가?'라고 하실 때

그렇구나! 역시 여래께서는 어떤 말씀을 하시더라도 애매모호함을 향하여 듣는 사람이

궁극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하는 경우란 없구나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어 큰 소득이 있었습니다.

 

세존께서는 신통의 대결을 보러 모인 회중들에게 법을 설하시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고

불의 요소로 삼매에 드셔 높이 공중에 올라 신변을 보이십니다.

 

 

이와 같이 꼬락까띠야, 깐다라마수까, 빠띠까뿟따의 경우에 수낙캇따에게 인간의 법을 넘어선

신통을 보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수낙캇따는 세존께서 자신을 위하여 신통을 보이지 않는다 하며

환속한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세존께서 세상의 가원에 대해 천명하지 않으신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입니다.

 

세존께서는 박가와 유행승에게 다음과 같이 천명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기원에 대해서도 꿰뚫어 안다.

 

    그것을 꿰뚫어 알 뿐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것도 꿰뚫어 안다.

 

    (그것을 넘어선) 것도 꿰뚫어 알지만

    (갈애견해자만으로) 더렵혀지지 않는다. 

 

    더렵혀지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화를 분명하게 알고,

 

    이러한 최상의 지혜를 가졌기에 어떠한 재난도 얻지 않는다."

 

 

 

우리가 만나게 되고 만나고 있는 이 세상의 기원에 대해서는 누구나 궁금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이를 꿰뚫어 알고, 이를 넘어선 것도 꿰뚤어 아시며,

그러나 갈애와 자만과 견해로 더렵혀지시지 않으므로 

세상의 기원이나 그것을 앎이 가져올 수 있는 오염원들로부터 벗어나 있으시기 때문에

완전히 평회로우시며, 최상의 지혜를 가졌기에 그러한 것들 즉 세상의 기원이나 그것을 앎에 따른

오염원이 가져올 수 있는 어떠한 재난도 얻지 않으신다고 상세하게 이 부분을 천명하고 계심을

새겨야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위와 같은 우리의 상상를 초월하는 천명을 기반으로 하고, 

세존께서는 사람들이 세상의 기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4가지 세상의 기원에 관한 견해들에 대해

그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설명하지 못하는 바로 그 원인 혹은 기원에 대해서

상세하게 아래와 같이 밝혀 설하십니다.

 

 

- 세상이 수축할 때,

   대부분의 중생들은 광음천(제2선천인 소광천, 무량광천, 광음천 中 광음천)에 태어난다는 것

 

1) 다시 세상이 팽창할 때,

   텅 빈 범천의 궁전이 출현하고,

 

   그때 광음천에서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한 어떤 중생이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하여 죽어서

   텅 빈 범천의 궁전에 홀로 태어나게 되는데

 

   그가 범천에서 홀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실증괴 따분함이 생겨 다른 중생들이 여기에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갈망할 때 다른 중생들이 광음천의 무리에서 떨어져 범천에 태어나는데,

 

   먼저 태어난 중생은 자신이 창조자라고 생각하고,

   나중에 태어닌 자들도 그를 창조자라고 생각한다는 것.

 

   그 범천에서 죽어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는 출가하여 노력하여

   삼매에 들어 바로 전생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하는 마음의 삼매에 도달하여

   범천에 먼저 난 그 자에 의해 우리는 창조되었다라고 천명하는 범천이 창조한 것이라는

   세상의 기원

 

2) 유희로 타락해 버린 자들이라는 신들이 있어,

   오랜 세월 유희하는데 빠져 지냈기 때문에 마음챙김을 놓아버려 그 신들의 무리에서 죽은

   어떤 중생이 죽어서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는 출가하여 노력하여 삼매에 들어 바로 전생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하는

   마음의 삼매에 도달하여, 유희로 타락하지 않은 그분 신들은 영원하지만 우리는 우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마음챙김을 놓아버려 수명이 짧고 죽기 마련인 이곳에 태어났다라고

   천명하는 유희로 타락해 버린 자들이라는 세상의 기원

 

3) 마음이 타락해 버린 자들이라는 신들이 있어,

   오랜 세월 서로 분노로 응시하다가 서로의 마음을 타락하게 하여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피곤하게

   되어 그 무리에서 죽은 어떤 중생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는데,

 

   그는 출가하여 노력하여 삼매에 들어 바로 전생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하는

   마음의 삼매에 도달하여,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 응시하지 않아 마음이 타락하지 않은 그분 신들은

   영원하지만 우리는 마음이 타락하여 오랜 세월 서로 분노로 응시하여 서로의 마음을 타락하게 하여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파곤하여 수명도 짧고 죽기 마련인 이곳에 태어났다고 천명하는

   마음이 타락해 버린 신들이라는 세상의 기원

   

4) 무상유정(無想有情)이라는 신들이 있어(4선천의 제2천인 무상유정천, 광과전의 위이며 정거천의

   아래) 그들은 인식이 생겨나게 되면 그 무리에서 죽게 되는데 그중에 어떤 중생들이 죽어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는데,

 

   그는 출가하여 노력하여 삼매에 들어 바로 전생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하는

   마음의 삼매에 도달하여, 나는 전에는 존재하지 않있는데 지금은 존재하며, 이러히므로

   자아와 세상은 우연히 우연히 발생한다라고 천명하는 우연발생이라는 세상의 기원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일반 중생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세상의 기원에 대해서

다른 자들은 밝히지 못하는 그러한 왜 그러한 세상의 기원에 대한 천명들이 있는지 그 이유를

밝히셨고,

 

아울러 세존께서는 그러한 세상의 기원괴 그것을 넘어선 것도 꿰뚫어 아시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취착하지 않으심을 분명히 천명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세상의 기원에 대한 세존의 가프침에 있어서 유념하고 넘어갸야할 것은

꼬삼비 심사빠 숲에서 설하신 바 심사빠 숲 경(S56:31, http://blog.daum.net/ibakdal/17371263 )이라고 생각됩니다. 세존께서는 4아승지 십만겁을 닦으셔서 삼마삼붓도(一切知者, 正等覺, 바르게

완전하게 깨달으신 분)을 이루신 분이십니다.

 

세상의 기원을 알고, 그것을 넘어선 것도 꿰뚫어 아신다고 천명하신 것은 우리 혹은 모든 중생의

눈 잎에 펼쳐지는 혹은 펼쳐질 모든 물질·정신세계에 대한 시작과 끝을 잘 아시는 분이라 천명하신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러한 세세한 것들을 낱낱이 설명하지 않으심은 그러한 것이야 말로 존재들에 있어서

1) 유익하지 않고, 2) 청정범행의 시작에도 미치지 못하며, 3) 염오로 인도하지 못하고,

4) 탐욕의 빛바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5)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6)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7) 최상의 지혜로 린도하지 못하고, 8)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9)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밝히신 것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그분 말씀대로 '내가 최상의 지혜로 안 것들 가운데 가르치지 않은 것이

훨씬 더 많지만', 그러한 것들 즉 세상의 기원이나 그것을 넘어선 것들은 알아도 존재들의 괴로움을

끝내는데 '유익하지 않으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 즉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 만을 가르치신 것이라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기실 어떤 원인을 조건으로 어떤 세상(界)에 존재하는 어떤 중생이 괴로움의 끝을 만드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은, 신통의 기적 혹은 자아나 세상의 기원에 대한 앎이 아니라 오직 진리(四聖諦)만이 필요한 것이며,

 

이는 마치 목마르고 배고픈 자에게 물과 음식과 나눔과 베풂이 간절한 것이지 

금은이나 새로운 과학기술에 따른 새로운 문명이 필요한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라고 이해하게

되며,

 

세존께서는 이와같이 합당하게 법을 펴신 것이라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나무석가모니불 ((()))

 

 

 

본경 빠띠까경의 마지막 부분에 세존께서는 박가와곳따 유행승에게 본경의 흐름인 신통이나

세상의 기원과는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일종의 '해명'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도 외도들은 세존에 대하여

1) 그는 인간의 법을 넘어선 신통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신통에 더 능하다), 혹은

2) 그는 세상의 기원에 대해서 설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의 기원을 모르거나 세상의 기원에 대해서

    내가 더 잘 안다), 그리고

3) 세존과 그 제자들인 비구들은 소위 청정한 해탈을 구족하여 머물 때

    모든 것은 부정(不淨)하다라고 말한다

   (자신들도 세상에 머무는 인간이면서 이 세상을 부정하는 부류들이다)라고

비난하였던 모양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세는 탐욕과 욕망 때문에 올비른 것에 대해 무릎꿇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고 이를 비난, 중상하는 부류가 늘 섞여 있는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마지막 부분 세존의 가르침은 다른 사문·바라문들이 근거없이 헛되이 거짓으로

사실과 다르게 세존을 비난하는 것에 대한 자연스러운 천명이요 가르침이라 생각하게 딥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승가나 재가신자들에게 혹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대해서 어떤 것이 바른 견해인가를 가르치는 중요한 가르침이라

참으로 소중하고도 고마운 별도의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문 고따마와 비구들은

 '청정한 해탈을 구족하여 머물 때에

  모든 것은 부정(不淨)하다고 꿰뚫어 안다.'고

  이렇게 말한다.'

 

라는 것이 바로 그 근거없고 헛되고 거짓으로 사실과 다르게 세존을 비닌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아래와 같이 분명히 천명하십니다.

 

 "나는 결코

 '청정한 해탈을 구족하여 머물 때

  모든 것은 부정(不淨)하다고 꿰뚫어 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청정한 해탈을 구족하여 머물 때는

  오직 청정하다고 꿰뚫어 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새겼습니다.

 

이 빠띠까경을 사경한 공덕을

항상 부처님의 법을 수호하시는

꾸웨라 천왕, 다따랏따 천왕, 위룰하까 천왕, 위루빡까 천왕 사대천왕들께 회향합니다.

그들이 붓다, 담마, 승가를 지키는 공덕으로 닙바나 성취하시기를,,,,

 

그 식솔들인 약카들과 간답바들과 꿈반다들과 욛들과 가루다들이 모두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그들이 부처님의 법을 만나고 귀의하게 되어 닙바나 성취하시기를,,,

 

제가 그들의 행복을 바라는 것처럼

그들도 나를 고난과 걱정에서 지켜주시기를,,,,

 

나무석가모니불 ((()))

 

 

2014.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