깟사빠 사자후경은
세존께서는 우준냐에서 깐나깟탈라에 있는 녹야원에 머무실 때
나체수행자 깟사빠가 세존을 찾아 뵙고
"세존께서는 고행을 비난한다.
난행고행의 삶을 사는 고행자를 전적으로 비난하고 힐난하고 비방한다."라는 갓이
사실인지 여쭙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세존께서는 그것은 있지도 않은 않은 거짓으로 세존을 헐뜯는 것이라 말씀하시고
크든 작든 고행의 삶을 살았던 고행자들이
그러한 고행 여부와는 관계없이 선처나 악처에 태어나는 것을 다 알고 보시는데
어떻게 고행자들을 전적으로 힐난, 비방하겠는가라고 답하십니다.
이어서 세존께서는
다른 사문·바라문들과 견해가 일치하기도하고 일치하지 않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서로 토론을 해보면
세존과 그 제자들이 선법은 더 성취하고, 불선법은 더 버린다고 이야기되는 점을,
또한 팔정도대로 도 닦으면
당신과 그 제자들이 시기와 법과 율에 맞는 말을 하고 있음을
스스로 알고 보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고행을 닦는 것은 사문·바라문의 본업이라고 말하면서
먹고 입고 생활하면서 고행자들이 수행하는 여러가지 금욕적인 삶의 방식에 대해서
상세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세존께서는 그러한 고행은
단지 그러한 방편으로 먹고 입고 생활하는데 몰두하여 사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지적하시며,
그러한 방식으로는
계와 마음과 통찰지의 구족을 수행하지도 구현하지도 못하며,
결국,
자애로운 마음 닦거나,
마음의 해탈과 통찰지의 해탈을 실현하고 구족할 수도 없어
그러한 고행자는 결국 사문·바라문의 본업으로부터도 멀리 있음을 통박하십니다.
그러자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사문·바라문의 본업인 고행이라는 것은
알기도 어렵고, 행하기도 어려운 것임을 세존께 말씀드립니다.
이에 세존께서는
그러한 고행이라는 것이 그 정도의 고행을 가지고
알기 어렵고 행하기도 어려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그러한 고행은 실상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물 긷는 하녀들까지도 알 수도 있고, 행할 수 있는 것임을 말씀하시며
그러한 고행과는 다른,
적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마음의 해탈과 통찰지의 해탈을 실현하여 구족하는 것이야 말로
알기도 어렵고 행하기도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설하십니다.
이에 이르자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그러면 어떤 것이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계의 구족, 마음의 구족, 통찰지의 구족인지 여쭙게 됩니다.
세존께서는 깟사빠에게
비구가 수지해야 할 43가지 戒에 대해서 말씀하신 뒤
그러한 계로써 잘 단속하여
어느 곳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하는 것, 안으로 비난받지 않는 행복을 경험하는 것이
그 '계의 구족'임을,
그 다음, 순서대로
감각기능의 단속을 구족함, 마음챙김과 알아차림, 필수품만으로 만족함,
외딴 처소를 의지하여 수행함, 다섯 가지 장애(五蓋)를 벗어남을 설하신 뒤
초선∼사선을 각각 설하시고
이것이 그 '마음의 구족'임을,
그 다음, 순서대로
이 알음알이는 무너지기 마련인 이 몸에 의지하고 묶여있음을 꿰뚫어 아는 위빳사나의 지혜,
마음으로 다른 몸을 만들어 냄, 그리고 신족통, 천이통, 타심통,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의
각 지혜를 설하신 뒤이것이 그 '통찰지의 구족'임을 설하시고,
이러한 계, 마음, 통찰지의 구족보다더 높고 수승한 계, 마음, 통찰지의 구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천명하십니다.
이어서,
성스러운 최상의 계에 관한 한,성스러운 최상의 고행을 통한 금욕에 관한 한,성스러운 통찰지에 관한 한,성스러운 최상의 해탈에 관한 한,
'나 자신과 동등한 자를 관찰하지 못하며, 내가 더 뛰어나다.'라고 천명하십니다.
또한 세존께서는,
다른 사문·바라문들이 세존을 어떻게 폄하를 하든말든
' 1) 사자후를 토하시고,
2)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하시고,
3) 아울러 그는 용맹스럽게 사자후를 토하시고,
4) 누구라도 그에게 질문을 하며,
5) 그들의 질문을 설명하시며,
6) 질문에 대한 설명으로 그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시고,
7) 들어야 할 만한 것으로 생각하며,
8) 듣고서 청정하게 믿으며,
9) 청정한 믿음을 행하고,
10) 여여함을 닦으며,
11) 도닦음을 성취한 분을 흡족하게 하시는.'
분임을 천명하십니다.
가르침에 깊히 감동한 니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귀의하여 출가하고 비구가 되며, 나중에 아라한들 중에 한 분이 됩니다.
깟사빠 사자후경은
고행(苦行)에 대한 부처님의 견해가 온전히 드러나 있습니다.
즉,
먹고 입고 생활하는데에 의도적인 고행을 무릅쓰더라도
그것이 지향하는 바가 자애를 닦고, 해탈을 수행하고 실현하는 과정이 아니라면
그것은 그러한 방편으로 먹고, 입고, 생활하는데 몰두하여 사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고행이 어렵다 하더라도 실상 물 긷는 하녀라도
마음 먹으면 알수 있고 행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방편이 아니라 도 혹은 도닦음이란
계의 구족, 마음의 구족, 통찰지의 구족을 수행하고 또 실현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그러한 결과로 자애의 마음을 닦아 지니고, 마음의 해탈과 통찰지의 해탈을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그것이 진정한 수행자의 모습임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도, 도닦음은 바로 팔정도임을 이 經에서도 밝히셨습니다.
이어서 부처님께서는
성스러운 최상의 계에 관한 한,성스러운 최상의 고행을 통한 금욕에 관한 한,성스러운 통찰지에 관한 한,성스러운 최상의 해탈에 관한 한,
'나 자신과 동등한 자를 관찰하지 못하며, 내가 더 뛰어나다.'라고 천명하시어
당신께서 최상임을 말씀하시는데 주저함이 없으시며,
이하
법을 설하는데 있어서 , 전하는데 있어서, 법을 서로 논의하는데 있어서,
또한 그 법을 듣게되는 존재들이 맺게 될 결실에 있어서,
추호의 거리낌, 일말의 의심도 없으심을 천명하십니다.
세존·아라한·정등각자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사자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과연 그분 세존께서는 어떠한 분이셨던가에 대한 알고 싶음이 생겨났습니다.
어떠한 분이시기에 '사자후'를 하실 수 있는가?
혹은 말로만 들었던 여래십력(如來十力), 사무소외(
四無所畏)란 어떤 것일까?라는 물음 말입니다.
(http://blog.daum.net/ibakdal/17371104)
이와 같이 새겼습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
2013.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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