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진암(識盡庵)/임승택교수님의 초기불교순례

13. 금욕주의와 불교 - 어떻게 의혹을 뛰어넘을 것인가?

이르머꼬어리서근 2013. 3. 11. 08:10

 

금욕주의란 무엇인가.

 

세속적인 명예라든가 이익을 추구하는 따위의 욕심을 경계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난 상태에 이르려는 종교적·철학적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초기불교 또한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초기불교의 전반적인 색채가 출세간의 금욕적 삶을 지향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중생들의 삶이 탐욕과 갈애로 인해 갖가지 괴로움에 빠지게 된다고 가르쳤으며,

출가자와 재가자 모두 그것을 가라앉히는 수행을 일차적인 과제로 인식하였다.

초기불교의 궁극 목적인 열반(涅槃) 또한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소멸된 경지로 묘사되곤 한다.

 

 


불교가 출현할 당시 바라문교나 자이나교에서도 금욕주의를 가르쳤다.

 

바라문교의 금욕주의는 제식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그들은 제사의례와 관련하여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수단으로 고행(苦行)을 하였다.

 

혹독한 더위나 추위에 몸을 노출시킨다거나, 음식의 섭취를 끊는다거나,

특정한 자세로 움직이지 않는 따위의 육체적 괴로움을 일으키는 행위가 그것이다.

 

그들은 고행을 통해 초월적 능력이 함양되며,

그것으로 육체적·정신적 장애를 극복하고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고행은 편협한 이기적 자아 관념을 넘어서기 위한 수단으로도 권장되었다.

 

 


한편 자이나교에서는 모든 존재가 본래부터 청정하고 순수한 영혼을 지닌다고 보았다.

 

그런데 현실을 살아가는 중생들은 이전부터 알게 모르게 지어 온 죄업에 의해

그 영혼이 더렵혀져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본래의 깨끗함을 회복하기 위해 일체의 욕구를

억제하고 육체적인 고행을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들에 따르면 고행은 영혼에 달라붙은 업의 찌꺼기를 태워 없앨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또한 업은 물리적 법칙과 같이 실재하는 까닭에 고행을 통하지 않고서 그것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없다고 여겨졌다. 이러한 생각과 더불어 자이나교에서는 나체 수행이라든가 단식을 통해 죽음에 이르는 따위의 극단적인 금욕주의로 나아갔다.

 

 

 


바라문교나 자이나교의 금욕주의는 대체로 외적인 형식을 중요시했다.

 

특히 제식주의의 고행은 내면의 동기와는 상관없이 특정한 행위의 절차만을 염두에 두었다. 그들은 어떠한 의도에서든 일정한 형식에 따라 고행을 실천하면 원하는 결과가 뒤따른다고 보았다.

 

한편 자이나교는 욕망 자체에 대한 반성적 태도를 분명히 하고서 오로지 영혼의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해 고행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한층 고양된 면모를 보인다. 그러나 그들 역시 형식적인 고행에 경도되어 일상적인 생활마저 곤란할 지경에 이른다.

 

자이나교의 신봉자들은 숨 쉴 때 벌레를 마셔서 죽게 하는 일이 없도록 마스크를 착용하였고,

걸을 때는 발밑의 개미나 벌레들이 다치지 않도록 빗자루로 쓸면서 다녔다.

 

 

 


정신적인 안정과 평안을 위해 얼마간의 금욕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절제 없는 삶은 나태와 불건전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잡기 위해서는 3000배 정진과 같이 일시적인 고행을 감행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내면의 탐욕과 갈애를 조절할 줄 알아야만 완성된 인격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러한 이유에서 초기불교에서는 금욕적인 태도로써 스스로를 다스려 나갈 것을 권장하였다.

탐냄과 성냄 따위의 노예로 살지 말고 그들의 실체를 깨달아 의연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러나 초기불교의 금욕적 가르침은 외적인 형식보다 내면의 의도를 중요시했고,

또한 언제나 그것을 깨달음의 문제와 연계시켜 설명하곤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숫따니빠따』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생선 혹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나,

 단식하는 것이나,

 벌거벗거나,

 삭발하거나,

 상투를 틀거나,

 먼지를 뒤집어쓰거나,

 거친 가죽을 걸치는 것도,

 불의 신을 섬기는 것도, 또한

 불사(不死)를 얻기 위해 행하는 많은 종류의 고행,

 진언을 외우거나,

 희생제를 지내거나,

 제사를 올리거나,

 계절에 따라 행하는 수련 따위의 모든 것도

 

 의혹(疑惑)을 뛰어넘지 못한 사람을 청정하게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