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비불교는 어떻게 구분될 수 있을까.
불교는 인도에서 출현했으며 당시 유행하던 여러 종교·사상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고대의 바라문교이다.
바라문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전에 형성된 베다(Veda)라는 문헌에 근거한 종교이다.
바라문교의 계승자들은 이 문헌을 ‘신(神)이 직접 전하는 말씀’으로 간주하고서
자신들의 종교적 실천을 위한 준거로 삼았다.
바라문교를 뒤이은 오늘날의 힌두교 또한 베다를 가장 권위 있는 성전으로 받들면서
‘인간에 의해 전승된 가르침’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베다는 자연의 신비에 대한 고대인들의 경외감과 찬탄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그들은 우주의 혼돈과 무질서를 넘어 그것 이면에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본질적인 무엇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자연현상의 발생과 소멸을 초월적인 정신적 실재와 연계시켜 이해하려는 태도를 갖게 된다. 그들에게 달과 별, 바다와 하늘, 여명과 황혼, 계절의 순환 등은 그 자체로 신비하고 신성한 신으로 여겨졌다. 그들은 자연현상을 신격화하고 거기에 신성(神性)을 부여하여 찬송하고 예배했다.
베다 문헌은 다수의 현인들에 의해 수 천 년의 세월에 걸쳐 형성되었다.
따라서 인간의 종교적 사색이 깊어가는 여정을 잘 드러낸다.
베다 초기의 경향은 태양이라든가 구름 따위의 단편적인 신성에 대한 찬탄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후 그들은 개개의 자연현상이 일정한 흐름과 조화 속에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하여 리따(R. ta)라는 우주적 질서 아래 온 세계가 운행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자연은 조화로운 목적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해석되기에 이른다.
그들은 그러한 법칙성을 내면의 도덕적 원리로 적용하려는 시도를 보이기도 한다.
자연의 이치에 비추어 마땅히 추구해야 할 삶의 태도를 얻고자 하였다.
베다적 사유의 가장 발전된 형태는 다수의 신성을 하나의 존재로 모으려 했던 것이다.
그들은 하늘과 허공과 땅의 신들을 한데 묶어 일체신(一切神)의 관념을 구체화 하였고,
혹은 유일신(唯一神)이라는 창조주의 개념을 탄생시켰다.
그리하여 모든 다양한 신들이 결국에는 하나의 신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인도인 특유의 화신(化身) 사상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 유일신은 만물의 운행을 관장하는 궁극의 실재이며,
그의 앞에서는 다양한 신들의 구분이 없어진다.
또한 이 유일자는 다른 일체의 존재를 있게 한 장본인으로서,
다른 어떤 것으로도 환원되거나 대체될 수 없는 절대적인 권능을 지닌다.
일신교적 사고가 정착됨으로 인해 고대의 인도인들은 스스로를 있게 한 창조주를 가슴에 품게 된다. 또한 그의 보호 아래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위치를 헤아리면서, 그와의 관계 속에서 삶의 위안과 구원을 열망하게 된다.
이러한 일신교적 사고는 이집트라든가 중동 지방에서 나타났던 유일신교 사상에 비견되곤 한다.
특히 베다의 유일신 관념은 다른 종족의 신들을 추방하거나 박해함으로써 구축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 독특한 특징이 있다.
고대 인도인들은 다양한 신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통일성을 사색한 결과 고유의 유일신 개념을 확립하였다.
불교는 베다 문헌이 완성된 지 수 백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등장하였다.
당시 인도 사회는 바라문교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까닭에 불교 또한 베다의 가르침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베다의 리따 개념은 불교의 업(業) 관념으로 구체화되었고,
그것을 도덕적 원리와 결부시키려는 시도 또한 더욱 강화된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유일신교적 사고가 신에 대한 인간의 종속을 강화시켜 스스로를 책임감 없고 무력한 존재로 만들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초월적 존재의 도움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피하려는 미신적 관행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주체적으로 살아 갈 것을 역설한다.
또한 신의 이름으로 바라문 계급만을 옹호하고 다른 태생의 사람들은 천시했던
계급제도에 대해서는 타협 없는 태도로 맞선다.
이와 같은 불교의 개혁적 성향은 당시뿐만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종교관에 대해서도
많은 반성의 계기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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