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진암(識盡庵)/임승택교수님의 초기불교순례

9. 초기불교와 그 이후의 불교 - '어떻게 괴로움의 끝'에서 ‘무엇이 법’으로 변화

이르머꼬어리서근 2013. 3. 9. 18:12

 

 

 

초기불교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또한 초기불교와 그 이후 형성된 불교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붓다에 의해 직접 주도된 불교를 두고 우리는 흔히 초기불교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근본불교라는 이름을 더 선호한다.

 

또 다른 일부에서는 원시불교, 소승불교, 상좌불교, 빨리불교 등의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명칭들은 제각기 나름의 이유와 근거를 지닌다.

 

 


근본불교란 모든 불교적 가르침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표현이다.

이 명칭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부파불교, 대승불교 등의 역사적 흐름이

근본불교에 바탕을 둔다는 점에 초점을 모은다.

 

그들은 근본불교의 시대적 범위를 붓다와 그의 직제자들에 의해 남겨진 불교로 한정한다.

 

 

그런데 근본불교라는 명칭에는 그 이외의 다른 불교는 근본적이지 않다는 뉘앙스가 포함될 수 있다. 당연히 붓다의 참된 정신을 회복하고자 등장한 대승불교에서는 이러한 명칭을 수용하기 힘들다.

 

 


한편 원시불교라는 이름은 그와 반대되는 입장을 반영한다.

대승불교에서는 자신들의 불교 해석이야말로 온전하며,

붓다의 가르침을 현실에 맞게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원시불교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최초기의 불교는 아직 덜 성숙된 것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갖는다.

이것은 소승불교라는 명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소승불교라는 표현은 오로지 대승불교에서만 유통되어 온 것으로,

오랫동안 불필요한 논쟁과 갈등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원시불교든 소승불교든 후대의 입장에서 자신들에게 부합하지 않는 가르침을 폄하하려는 의도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상좌불교와 빨리불교는 스리랑카나 미얀마 등지에서 전해지는 남방권의 불교를 가리킨다. 남방의 상좌불교는 자신들의 정통성을 붓다 입멸 후 100년 무렵에 있었던 제1차 결집 이전으로까지 소급해 올라간다.

 

많은 학자들이 여기에 동조하여 상좌불교의 역사를 2300년 정도로 추산한다.

상좌불교에서는 빨리어로 기술된 경(經)·율(律)·론(論)의 온전한 삼장(三藏) 문헌을 보유한다. 빨리불교라는 명칭은 바로 이것에 근거하며, 현존하는 불교 가운데 가장 오랜 전통을 고수한다는 데에 큰 이견이 없다.

 

그러나 상좌불교 역시 붓다의 원음만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부파불교에 이르러 구체화된 교리적 해석들을 상당 부분 포함한다.

 

 


결국 특정한 입장을 배제한 온당한 표현으로 초기불교라는 명칭이 남는다.

초기불교는 역사적인 실존 인물로서 붓다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불교를 가리킨다.

 

이러한 초기불교는 그 이후 등장한 다른 불교적 가르침들과 구분되는 독특한 색채를 지닌다.

그것은 교리적 틀에 묶이지 않고 사람들의 됨됨이에 따라 가르침을 펼쳤던

붓다만의 고유한 교화방식에서 비롯된다.

 

붓다는 오로지 중생들의 괴로움을 해소하는 데에 주력하였고,

그러한 이유에서 상대방의 눈높이에 따른 다양한 가르침들을 펼쳤다.

그는 ‘어떻게’ 중생들이 안온해 질 수 있을까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붓다의 입멸 후 제자들의 관심사는 두 가지로 갈라지게 된다.

 

하나는 자신과 중생을 제도하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붓다의 가르침을 온전히 후세에까지 전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자신과 타인의 괴로움을 해소하는 일에도 태만할 수 없었지만,

붓다의 가르침을 보존하고 체계화하는 작업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언행이 붓다의 가르침에 부합하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붓다의 후계자들은 불교의 가르침에서

중요한 내용은 ‘무엇’이며, 불교와 비불교의 차이는 ‘무엇’인지의 문제에 천착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전개된 불교의 역사적 흐름은

‘어떻게’에서 ‘무엇’의 문제로 차츰 주된 관심사를 돌리게 된다.

 

상좌불교를 포함한 부파불교라든가 대승불교의 번쇄한 사변적 논의들은

이러한 과정을 걸치면서 구체화되었다.

 

우리는 초기불교와 그 이후 불교의 차이를 ‘어떻게’와 ‘무엇’이라는 잣대로써 구분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