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위대한 종교4), 불교의 창시자인 부처님께서는 2500여년 전에 살았었고,
고따마 싯닷타(Gotama Siddhattha)5)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 분의 아버지, 숫도다나(Suddhodana)는 크샤트리아(무사)계급에 속한 왕으로
현재 네팔 국경지역 근처의 까삘라와투[迦毘羅城]에서 샤카[釋迦] 족의 영토를 통치하고 있었다.
그는 고따마 가문 출신이었으므로 고따마 숫도다나라고 불리었고
그의 비(妃)는 이웃 꼴리야 족의 공주 마하마야였다.
오월 보름날, 때는 봄철,
나무는 잎과 꽃․열매가 무성하고 사람과 새․짐승들이 모두 즐거움에 젖어 있을 때였다.
그때 마하마야 왕비는 당시의 풍습에 따라 아기를 낳기 위해서 성대하게 꾸민 마차를 타고
까삘라와투를 떠나 친정인 데바다하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행은 중도에 끝나 버렸다.
왕비는 두 도시 사이에 위치한 아름다운 룸비니 동산에 이르자 꽃이 만발한 무우수 아래서
아들을 낳았다.
룸비니(현 지명은 룸민데이)는 바라나시에서 북쪽으로 백마일 거리에 있으며
눈 덮인 히말라야의 영봉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 그로부터 316년 후 아쇼카 황제6)는 싯닷타 왕자가 태어난 성지임을 표시하는
거대한 석주를 세웠다.
석주에는 아쇼카 문자 93자로 된 다섯 줄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는데
그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석가족의 성자, 붓다, 여기서 탄생하셨도다.’
(hida budhe jāte Sākyamuni)
이 거대한 석주는 지금도 볼 수 있다.
서기 7세기 중엽 중국의 구법승 현장 법사가 여기에 왔을 때는 석주는 이미 벼락으로 부러져 있었지만
‘어제 깎은 듯 생생하다’고 했다.
그 후 오랫동안 잊혀져 오던 룸비니 동산은 1896년 저명한 고고학자 커닝엄 장군7)에 의해
발굴, 확인됨으로써 룸비니의 전설이 역사적 사실로 입증되었다.
왕자가 태어난 지 닷새째 되던 날,
왕은 여덟 명의 현자를 청하여 아기의 이름을 짓고 또 왕자의 앞날을 점쳐 달라고 부탁했다.
현자들은 왕자에게 ‘목적을 달성한 사람’이란 뜻으로 싯닷타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 바라문들은 심사숙고한 후 일곱 명은 두 손가락을 펴보이면서 말했다.
“오! 왕이시여!
이 왕자가 왕위에 오르게 되면, 전 세계의 통치자인 전륜성왕(轉輪聖王 Cakravarti)이 되어
온 세계를 다스릴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세속을 떠나 출가한다면 왕자님은
정등각자(正等覺者)가 되어 사람들을 무지에서 구해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현명하고 젊은 콘단냐만은 왕자를 바라본 후 오직 한 손가락만 펴보이면서
말했다.
“오! 왕이시여! 이 왕자는 언젠가는 진리를 찾아 떠날 것입니다.
그래서 정등각자가 될 것입니다.”
왕자가 태어난 지 이레 만에 어머니 마하 마야 왕비가 세상을 떠났다.
아기는 이모 고따미 빠자빠띠에 의해 양육되었다.
이들이 아기에게 쏟은 정성은 극진하여 아기는 온갖 호강을 다 누리며 자랄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왕은 왕자로서 받아야 할 교육에도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왕자는 갖가지 학문에 능통하게 되었고 무술에 있어서도 누구보다 뛰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싯닷타 왕자는 어린 시절부터 가끔 깊은 명상에 빠져들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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