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 이것이 마음집중의 근거[nimittaa]이다.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 이것이 마음집중의 조건이다.
이러한 법들을 실행하고, 닦으며, 계발하는 것,
이것이 마음집중의 향상[bhaavanaa]이다."
『中部』 44 『有明小經』 MN I, 301.
*
[바른 마음집중은 근접삼매(近接三昧)와 안지삼매(安止三昧)의 두 단계로 나뉘어진다.
근접삼매는 초선(初禪)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초선에 접근해 가는 마음집중을 말하며,
안지삼매는 초선에서 사선(四禪)에 이르는 네 가지 선정(禪定)으로 대표되는 마음집중을
말한다.
이러한 선정은 다섯 감각기관의 영역[欲界]을 넘어서 있는 마음의 상태이며,
감각적인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마음집중 수행에 꾸준하게 전념할 때에만 경험될 수 있다.
이러한 선정의 상태에서는 다섯 감각기관의 모든 활동은 정지된다.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어서 생기는 어떠한 느낌들도 선정의 상태에서는 생기지 않으며,
어떠한 육체적인 느낌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외적인 모든 감각적인 느낌들이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마음은 활동적이고, 아주 기민한 상태이며, 충분히 깨어있다.
하지만 이러한 선정에 도달하는 것이 (수타원에서 아라한에 이르는)
네 부류의 성인의 깨달음[四果]를 얻는데 필수적인 조건은 아니다.
근접삼매나 안지삼매에는 네 부류의 성인의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는 힘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선정에는 번뇌나 괴로움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해주는 힘이 정말로 없다.
현상적인 존재의 모든 흐름이
영원하지 못하고[無常],
안정되어 있지 못하며[苦],
영원한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음[無我]을 통찰하는,
깊은 지혜(위빠사나)가 있을 때에야 비로소 네 부류의 성인의 깨달음은 실현될 수 있다.
이러한 통찰의 지혜는 안지삼매를 통해서가 아니라 근접삼매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네 가지의) 선정을 경험하지 않고서
네 부류의 성인의 깨달음 가운데 하나라도 얻은 사람을 일컬어
자신의 수행법으로 위빠사나만을 행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건관행자(乾觀行者; sukkha-
vipassaka) 또는 순관행자(純觀行者; suddha-vipassanaayaanika)라고 한다.
이에 반해서 선정 수행을 닦은 후에
네 부류의 성인의 깨달음의 하나를 얻은 사람을 일컬어
자신의 수행법으로 선정을 의미하는 고요함[止; samatha]을 행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지행자(止行者; samathayaanika)라고 한다.] *
<역주 :
『붓다의 말씀』의 편저자인 냐나틸로카 스님은
『대념처경(大念處經)』에 설해진 가르침을 중심으로
팔정도의 일곱 번째 덕목인 바른 마음챙김[正念]에 대한 긴 설명을 마친 후,
팔정도의 마지막 덕목인 바른 마음집중[正定]에 대해서 해설을 시작한다.
먼저 중부경전의 {有明小經}에 간단하게 설해져 있는
마음집중[禪定]의 정의, 대상, 조건, 향상에 대한 부분을 제시한 후,
구체적으로 초선(初禪)에서 사선(四禪)의 의미에 대해서 정리하고 있다.
이번에는 {有明小經}의 간단한 내용과 그에 대한 냐나틸로카 스님의 해설을 번역해 보았다.
경전에 제시된 마음집중[禪定]에 대한 정의는 가장 일반적인 정의로서 알려져 있는 정의이다.
즉 '마음이 하나의 대상에 집중되어 있는 상태'가 그 정의이다.
다음으로 마음집중의 대상으로서 사념처(四念處)가 제시되어 있는 점에는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본래 사념처 수행은 지혜의 계발과 직결되어 있어 위빠사나 수행의 내용이 되어 있음은
이제까지 살펴본 바른 마음챙김[正念]에 대한 해설을 참조하면 알 수 있다.
선정과 지혜 또는 지(止)와 관(觀), 사마타(samatha)와 위빠사나(vipassanaa)로 대표
되는 불교의 두 수행법의 대상이 동일하게 사념처(四念處)로 제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선정 수행과 지혜 수행의 공통의 기반을 확인할 수 있다.
몸∙느낌∙마음의 상태∙심신의 여러 가지 현상[身受心法]인 네 가지 마음챙김의 대상 자체가
선정 수행을 위한 대상인 동시에 지혜 수행을 위한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두 가지 수행법이 서로 깊은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법구경(法句經)』의 다음 시구에서도 확인된다.
"지혜가 없는 자에게는 선정이 없고, 선정이 없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다.
선정과 지혜를 갖춘 자, 그에게 열반은 가까이 있다."
『법구경』Dhp 372.
선정과 지혜가 사념처를 공통의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이 두 수행법은 상호 보완적인 작용을 하고 있음을 이해한다면
선정 수행을 위주로 하는 수행법과 지혜 수행을 위주로 하고 있는 수행법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임
을 알 수 있다.
냐나틸로카 스님의 해설에서 볼 수 있듯이,
지혜 수행을 의미하는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자에게는 사선(四禪)으로 대표되는 안지삼매가 아닌
초선(初禪)에 가까이 접근하는 근접삼매가 지혜의 직접적인 조건으로서의 선정의 역할을
한다. 즉, 사선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근접삼매라는 선정이 지혜의 조건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근접삼매란
초선에서 사선에 이르는 완전한 선정의 상태에 이르기 직전의 선정의 상태이다.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적인 선정론이지만
위빠사나 수행의 바탕이 되는 선정은 근접삼매라고 이해한다면 크게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위빠사나 수행에도 선정이 필요하며, 그 선정은 근접삼매라고 이해해두자.
실제로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자에게도 사선을 수행할 때 경험되는 선지(禪支; 선정의 구성요소)가
경험되는 것은 위빠사나 수행에 근접삼매가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정리하면 불교의 수행법의 두 날개인 선정과 지혜, 사마타[止]와 위빠사나[觀]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으며, 사념처를 공동의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에 의거한 수행법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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