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비구들이여,
걸어갈 때는'걸어간다'라고 알아차리고,
서 있을 때에는 '서 있다'라고 알아차리며,
앉아 있을 때에는 '앉아 있다'라고 알아차리며,
누워 있을 때에는 '누워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이외의 다른 몸의 동작이 있을 때, 그러한 동작을 그때그때 알아차린다."
<역주 :
위의 행주좌와(行住坐臥)에 대한 팔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나는 걸어간다”, “나는 서 있다”,“나는 앉아 있다”,“나는 누워 있다”라고 번역해야
하지만 우리말에서는 주어인 “나는”이라는 표현이 없는 것이 실제의 수행에 비추어 볼 때
더욱 적합한 표현이므로 주어는 전부 생략했다.
팔리어나 영어와 같은 印歐語에서는 문장의 문법적인 구조 상 주어가 생략되지 않지만,
실제의 수행에서는 행위의 주체인 “나”라는 존재의 설정이 없어도
행주좌와(行住坐臥) 등의 동작에 대한 알아차림이 가능하며,
결국 “자아”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 수행의 한 목적이라 할 때,
“나”라고 하는 행위의 주체를 개입시키지 않는 것이
위빠사나 수행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됨을 알 수 있다.
수행이 향상됨에 따라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나”라는 어떤 실체가 아니라,
단지 정신적인 현상(名)과 육체적 혹은 물질적인 현상(色)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즉,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은 정신적인 현상(名)과 육체적 혹은 물질적인 현상(色)일 뿐,
어디에서도 실체적인 “자아”는 발견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육체적인 동작이나 행위에 마음을 챙겨 알아차릴 때,
처음부터 “나는”또는 “내가”라고 하는 생각을 개입시키지 않는 것은
실제의 수행에 있어서 중요하다.
실제로 행주좌와 등의 동작을 알아차릴 때,
간단하게 “걸음”,“서 있음”,“앉음”,“누움”이라고 마음으로 알아차리면 된다.>
이와 같이, 그는
1) 내적으로,
2) 또는 외적으로,
3)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1)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2)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3)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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