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진암(識盡庵)/칠각지(七覺支)

4. 희각지 (喜覺支, pīti) - 청정의 길, 출세간의 참된 기쁨

이르머꼬어리서근 2012. 1. 15. 14:17

 

 

IV. 희각지 (喜覺支 pīti)


 

네 번째의 깨달음 인자삐띠(pīti), 기쁨 또는 환이다.

이것 역시 정신작용[心所]으로서 몸과 마음 양면에 두루 영향을 미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특성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깨달음을 향한 길을 계속해 나아갈 수가 없다.

이런 기쁨이 없으면 법이 시큰둥해지고, 실 수행이 싫어지고,

그 밖에도 갖가지 좋지 못한 징후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윤회의 족쇄로부터 궁극적으로 해탈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아주 중요한 인자인 ‘기쁨’을 증장시키려고 힘써 노력해야 한다.

 

기쁨이란 선물은 그 누구도 남에게 선사할 수 없고,

각자가 정진[正精進]과 성찰[正念]과 집중 상태에서의 정신활동[正定]으로 지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기쁨은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외부의 물질적인 것에서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들이 비록 기쁨에 아주 조그마한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지족(知足)은 진정 행복한 사람만이 갖는 특성이다.

 

범부들은 지족을 키우고 증장시키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맞닥뜨리는 일들에 대해

용기와 결단력,

그리고 체계적인 주의와 사념으로 대응해 나감으로써,

또 자신의 불선한 성향들을 제어함으로써,

그리고 깊은 생각 없이 경솔하게 행동하려는 충동을 억제함으로써

마음이 번뇌로 오염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지족을 통한 기쁨을 경험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에는 온갖 갈등이 일어난다.

 

이들 갈등을 제어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그 뿌리를 뽑으려 들기 전에

우선 이들 갈등의 원인이 되는 성향과 욕구들에 대한 고삐를 조금씩 죄어나가야 할 것이다.

 

리 말하면 지족을 계발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매혹시키는 것을 포기하기는 힘이 든다.

사람의 마음에 추악하고 불선한 생각의 형태로 출몰하는 악령을 몰아내기란 실로 어렵다.

 

이러한 해악탐․진․치(lobha, dosa, moha)가 표출한 형태이다.

 

마음을 끊임없이 닦아서 청정과 평화의 극치에 다다르기 전에는

이 군세(軍勢)를 완전히 패퇴시킬 수가 없다.

 

그저 단순하게 바깥일들을 그만 둔다거나,

단식을 하고 강이나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그밖에 이런저런 노력을 해 본다고 해서

사람이 반드시 청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일들은 사람을 행복하고 성스럽고 무해(無害)하도록 만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청정의 길,

계․정․혜(sīla, samādhi, paññā) 삼학을 닦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깨달음의 인자(sambojjhaṅga)라는 맥락에서 기쁨(pīti)을 논할 때 우리는

‘기쁨()’이 ‘즐거움()’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오온 중 수온(受蘊)에 속하는 이 '즐거움'은 아주 순간적이고 덧없는 것이다.

그 즐거운 느낌을 고통의 서곡이라고 한다면 틀린 말일까?

우리가 이 순간 매우 즐거워서 껴안은 것이 다음 순간에 고통의 원천이 되기 일쑤이다.


 

바라던 것을 손을 뻗어 잡으려 하면 더 이상 거기 있지 않거나,

 거기 있어 잡았다 해도 눈 녹듯이 사라져버린다.”


 

로버트 버언즈의 시구를 보자. 
 

"즐거움은 흐드러져 핀 양귀비꽃

 잡으려면 그만 꽃잎을 떨궈버리네

 즐거움은 강위에 떨어진 눈처럼

 한 순간 하얗다 녹아 버리네, 영원히.譯16)


 

어떤 형상을 보거나,

소리를 듣거나,

냄새를 맡거나,

맛을 보거나,

감촉을 느끼거나,

생각을 지각할 때

 

사람은 거기에 반응한다.

 

 

 

그런 감각대상이나 정신적 대상으로부터 많든 적든 즐거움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지나가버리는 현상이 스쳐가며 벌이는 잠깐 동안의 쇼일 뿐이다.

 

동물 같으면 어떤 것에서도,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오로지 쾌감을 끌어내는 데만 목적을 두겠지만 사람인 이상 ‘참된 기쁨(pīti)’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기쁨은

유정물이거나 무정물에 대해 집착하거나 애착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버림(nekkhamma)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세상사에 대해서 초연한 태도가 진정한 행복을 가져온다.

 

 

 

「염처경」에는

 

세간적 즐거움(sāmisa sukha)

출세간적 즐거움(nirāmisa sukha)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譯17) 

 

출세간적 즐거움이 세간적 즐거움보다 훨씬 수승한 것은 물론이다.

 

 


 

어느 땐가 한 번은,

부처님께서 탁발을 하러 나가셨다가 음식을 조금도 못 얻으신 적이 있었다.

 

그때 어떤 부질없는 자가 지금 부처님께서는 틀림없이 배가 고파 괴로우실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무상사(無上) 세존께서 거침없이 다음의 게송을 읊으셨다.

 

   

"아, 장애를 여읜 우리는

 언제나 행복하게 산다네

 광음천(光音天)의 신들처럼  

 기쁨을 먹고 살리."22)

                                                     * 22) 『법구경』 게송 200

 


 

남들은 사람을 해치더라도 나는 남을 해치지 않으리.

 남들은 살아있는 존재의 목숨을 빼앗더라도 나는 살생하지 않으리.

 남들은 행실이 나빠도 나는 청정하게 살리.

 

 남들은 거짓말을 하더라도 나는 진실만을 말하리.

 남들은 사람을 비방하고, 거친 말을 하고, 잡담을 일삼더라도

 나는 화합을 돕는 말, 듣기에 좋고, 사랑으로 가득 차고,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정중하고,

 마음에 담아둘만 하고, 때에 알맞고, 적절하고 합당한, 그런 말만 하리.

 

 남들은 탐욕에 빠질지라도 나는 탐심을 내지 않으리.

 나는 모든 일에 힘을 다 하고, 끝까지 겸손하고, 진리와 정직함에 있어서는 확고부동하고,

 평화롭고, 성실하고, 만족하고, 너그럽고 진실 되리.譯18)

 

                                                                  * 『장부』1경 3-27, I권 2-12쪽;  

                                                                     『중부』27경, 179-180쪽『중부』 51경, 345쪽 참조


 

 

이렇게 깊이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순수한 기쁨이 온다.

이래서 이 네 번째 깨달음의 인자인 기쁨(pīti) 역시 우리를 증지, 등각, 열반으로 이끌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