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노래, 그의 이야기/국선도(國仙道)

12. 나에게의 국선도: 제가 만난 청산거사님

이르머꼬어리서근 2010. 10. 21. 05:40

 

1. 첫 만남

 

처음 뵌게,,,,1980년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국선도 본원에서는 고려대 한국얼연수회에 대해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도복부터,,, 본원의 법사,사범들과의 교류등,,,,

학생들이라고 특별대우 받은 정도라고까지 생각이 된다.

 

왜 거사님를 집단으로 뵈러 갔는가?

시끄러웠던 시절이었기에,,,,

써클회원들  간에는 국선도 수련을 하되

"국선도의 純一한 이념이 무엇인가?"라는 것이 화두로 떠올랐고,,,

그것을 모르면서 수도를 하는 것은 공부하는 학생의 태도가 아닐 뿐 아니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아닌가 하는 내용으로 기억된다.

 

책으로 접하던 道人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 다들 마음자세가 비상했다.

기억하기로는 재곤형, 재룡형, 나, 글고 오상이가 같이 했던가????

한 5∼6名?

도장에서는 큰 모사범외 몇몇이 학생들의 기백에 우려스런 표정으로 동석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行入을 본령으로 하는 수행법에 "純一한 이념"을 갖다대는 것이 어려보이기도 하지만.....^  ^

 

 

그때 처음 백궁빌딩 맨 꼭대기 층에서 청산거사를 처음 뵈었다.

첫인상?

난 뭐 상상으로만 생각했던 도사같은 모습이라 생각했었는데......

몸집에 자그마하신데,,,,,

꼭 시골의 농부처럼,,,하여튼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가까이 앉아서 살펴보니,,,,

눈빛이 보통사람과는 달리 빛이 나셨고,,,,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분의 새끼손가락이었는데,,,

기운이 가득찬 것이 크기가 꼭 보통사람의 엄지손가락 만하더라는 것.....

 

 

드디어 질문이 나갔다.

"국선도의 純一한 이념이 무엇입니까?"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은 어떤 답이 생각나십니까?

 

제가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저는 그런 것을 잘 모릅니다.

 다만 저는 숨쉬는 법, 밝돌법을 배워서 아니 저는 그것을 여러분들에게 가르쳐 드리고,

 세상일은 오히려 여러분들이 저보다 나을 터이니, 저는 여러분들에게 배우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그 이후도 이야기는 이어졌지만,,,,

아시다시피 그 공부에 있어 차이가 엄청난 사이라서

치기어린 학생들의 어린 대화가 의미없이 뱅뱅 돌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지금에 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청산거사님은 도인이라 건방을 떠신 것도 하나 없고,,,

눈에 힘을 주신 것도 없고,,,

단리나 역리나 철학이나 수련경험을 내세워 사람을 현혹함도 전혀 없이,,,

위에서 가르쳐준다는 그런 위의를 나타내신 것도 없었읍니다.

우문에 정답을 쉬운 이야기로 겸손하게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시골농부외 같은 소박한 그분의 인품을 보여주는,,,제겐,,,그런 자리로 자리매김되어 있읍니다.

 

 

 

2. 치악산

 

카페앨범에 사진도 경수가 올려 놓았읍니다만,,,

본원의 다른 수련생들, 써클회원들이 모두 치악산에 1박2일로 수련회가 있었읍니다.

 

모두 계곡옆에 텐트를 치고는

각자의 수련을 합니다.

 

저는 중기전편의 일신일심법의 좌법을 하고 있는데,,,,

죽 돌아다니면서 지도를 하시다가,,,

한손은 등아래 뒤에,,또 한손은 제 단전자리에 두고 한참을 계십니다. 

 

그러시더니,,,

이번엔 제 양손을 잡고 똑 같이 당신에게 대게한 후

"이렇게 하시는 겁니다"하고는 호흡을 하십니다.

 

어린아이들의 배처럼,,,

뱃가죽은 아주 얇았고,,,,

숨을 들이쉬시니 마치 고무풍선처럼 뒤로부터 앞으로

엄청나게 부풀어 올랐읍니다. 포대화상의 것처럼 말입니다.

그안에는 뭐라할 수 없는 강한 힘이 쭉 내미는 것을 느꼈읍니다.

그리고 내쉬면 쭉 들어가기를 대여섯번,,,,

"숨을 쉬고내며 중간에 자기에게 맞게 멈추보라"라고 하십니다.

생전 그런 배는 처음 보았읍니다.

나중에 보니 사이즈가 달라 그렇지 정말 잠자는 어린아이들의 배 그것이었더군요.....

 

그리고는 해보라하시고

다시 제 배에 손을 대십니다.

"그래 그렇게 계속하는 겁니다"하고

다른 사람에게로 가셨읍니다.

 

도인의 한 수 가르침이라,,,,

지금도 마음 속 깊히 고맙게 지니고 있읍니다.

 

 

 

3. 그外

 

그외에 잔치자리에서나,,,,

술도 드시고,,,담배도 "오늘 잔치니 한대 피워보자"하시고 피우시고,,,

노래판이 벌어지면 꼭 재곤이兄의 청산별곡이 좋다시며

재곤선생 한 번 불러주시오라고 청하곤 했던 걸로 기억됩니다.

 

그러다 造化政 일이 일어나기 바로전날에도 때도 뵜읍니다만,,,,,,,

 

 

 

소박하시고,,,,겸손하시고,,,,,가르침을 베푸는데 인색치 않으시고,,,,

가까이 계실 때,,,잘 모시고,,,,잘 배우지 못한 것이,,,,,죄송하고,,,,,아쉽습니다,,,,,,,,,

어렸을 때는 철이 없고,,,공부가 부족하고,,,,눈을 뜨지 못하여,,,,,알아 뵙지 못하였으나,,,,,,

참으로 큰 스승이셨다고,,,,,누구에게나,,,,,감히,,,,말씀드릴 수 있읍니다,,,,,,

 

그 사건에 대하여는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좀 철이드는 저로서는,,,,,

그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왜냐고요?

어린나이에 入山하셔서 비록 공부가 심오한데 이르렀지만,,,,,

그 분의 말씀대로 세상사는 잘 모르셨던 것 아닌가 혼자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부가 끝이 없다하지만,,,,공부를 아예 다 마치신 분도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땐 말입니다....

 

만일 그야말로 무불통지한 도사나 신이었다면,,,,

그분의 인간적인 면모까지를 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분은 그분의 인과와 인연을 따른 것이기에,,,,,,

그것으로도 또 다른 큰 가르침이라 생각됩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때가 되어 밝돌법을 세상에 반듯이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것은 선령제위의 피끓는 깊은 사정이 담긴 역사적인 일이 아닐 수 없읍니다.

 

어떤 이는 엄혹한 그 시절,,,,고문의 후휴증으로 돌아가셨다 하고,,,,

어떤이는 다시 입산하여 수도 중이라고 하나,,,,

제겐 별차이가 없읍니다.

다만 그분이 보여주신 모습으로 볼 때,,, 그분의 말씀처럼,,,,,

다시 입산하게 되시어,,,,,비경선사라는 이름으로,,,,

이 고귀한 正法을 지켜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山中에서의 고행과,,,,,

세상에 나오셔서 겪으신 큰 고초와,,,,,

만난의 아려움을 겪으시면서 가르치신 큰 공덕에,,,,,,

 

삼가 合掌三拜를 올리나이다.

 

 

2008.03.06. 1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