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사리뿟따 존자는 사왓티의 동쪽 원림[東園林]에 있는 미가라마마따(녹자모)의
강당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사리뿟따 존자는 "도반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다.
"도반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응답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안의 족쇄에 채인 사람과 밖의 족쇄에 채인 사람에 대해서 설하겠습니다.
잘 듣고 마음에 잡도리하십시오 이제 설하겠습니다."
"그러겠습니다, 도반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응답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2.
"도반들이여,
어떤 자가 안의 족쇄에 채인 사람입니까?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가 계를 잘 지킵니다.
그는 빠띠목카(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물고,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며,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고,
학습계목을 받아 지닙니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천상의 무리에 태어납니다.
그는 그곳에서 죽어 다시 [이 인간 세상에] 돌아옵니다.
그는 이러한 상태로 다시 돌아오는 자입니다.
도반들이여,
이 사람을 일러 안의 족쇄에 채인 자라 합니다.
그는 다시 돌아오는 자가 되어 이러한 상태로 되돌아옵니다."
3.
"도반들이여,
어떤 자가 밖의 족쇄에 채인 사람입니까?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가 계를 잘 지킵니다.
그는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물고,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며,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고,
학습계목을 받아 지닙니다.
그는 평화로운 마음의 해탈[心解脫] 가운데 하나를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천상의 무리에 태어납니다.
그는 그곳에서 죽어 다시 [이 인간 세상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자입니다.
도반들이여,
이 사람을 일러 밖의 족쇄에 채인 자라 합니다.
그는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자(불환자)가 되어 이러한 상태로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도반들이여,
다시 어떤 비구가 계를 잘 지킵니다.
그는 빠띠목카(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물고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며,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고
학습계목을 받아 지닙니다.
그는 감각적 욕망을 역겨워하고 빛바래게 하고 소멸하기 위하여 수행합니다.
그는 존재를 역겨워하고 빛바래게 하고 소멸하기 위하여 수행합니다.
그는 갈애를 부수기 위해 수행합니다.
그는 탐욕을 부수기 위해 수행합니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천상의 무리에 태어납니다.
그는 그곳에서 죽어 다시 [이 인간 세상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자입니다.
도반들이여,
이 사람을 일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 자라 불리는
밖의 족쇄에 채인 자라 합니다."
4.
그때 평등한 마음을 가진 많은 신들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신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가 사왓티의 동쪽 원림에 있는 미가라 마따의 강당에 머물면서
비구들에게 안의 족쇄에 채인 사람과 밖의 족쇄에 채인 사람에 대해서 설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대중들도 기뻐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부디 세존께서 애민하게 여기시어 사리뿟따 존자를 방문해주십시오"
세존께서 침묵으로 승낙하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린 팔을 펴고 편 팔을 구부리듯이
제따 숲에서 사라져 사왓티 의 동쪽 원림에 있는 미가라마따의 강당에 있는
사리뿟따 존자의 면전에 나타나셔서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사리뿟따 존자도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세존 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5.
"사리뿟따여,
여기 평등한 마음을 가진 많은 신들이 내게 왔다.
와서는 나에게 절을 하고 한 곁에 섰다.
사리뿟따여,
한 곁에 서서 신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가 사왓티의 동쪽 원림에 있는 미가라마따의 강당에 머물면서
비구들에 게 안의 족쇄에 채인 사람과 밖의 족쇄에 채인 사람에 대해서 설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대중들도 기뻐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부디 세존께서 애민하게 여기시어 사리뿟따 존자를 방문해주십시오' 라고.
사리뿟따여,
그 신들은 열 명, 스무 명, 서른 명, 마흔 명, 오십 명, 육십 명이
송곳 끝 하나 겨우 떨어질 정도의 좁은 곳에서 서로에게 닿지도 않은 채 서 있다.
사리뿟따여,
'이 신들은 천상에서 마음을 닦았기 때문에
열 명, 스 무명, 서른 명, 마흔 명, 오십 명, 육십 명이
함께 송곳 끝 하나 겨우 떨어질 정도의 좁은 곳에서 서로에게 닿지도 않은 채 서 있다.'
라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사리뿟따여, 그렇게 여겨서는 안 된다.
사리뿟따여,
그 신들이 열 명, 스무 명, 서른 명, 마흔 명, 오십 명, 육십 명이 함께
송곳 끝 하나 겨우 떨어질 정도의 좁은 곳에서 서로에 게 닿지도 않은 채 서 있는 것은
오직 여기서 마음을 닦았기 때문이다."
6.
"사리뿟따여,
그러므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감각기능들을 고요히 하고 마음을 고요히 하리라.
감각기능들이 고요하고 마음이 고요한 자들은
몸으로 짓는 행위도 고요하고,
말로 짓는 행위도 고요하고,
마음으로 짓는 행위도 고요하다.
청정범행을 닦는 동료 수행자들에게 고요함의 선물을 선사하리라고.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사리뿟따여, 외도들은 이 교법을 듣지 못하여 파멸한다."
* 동쪽 원림[東園林, Pubbārāma]은 사왓티의 동쪽 대문 밖에 있는 원림이 다.
바로 이곳에 위사카(Visakha) 즉 미가라마따가 세존과 승단을 위해서
본경의 미가라마(녹자모)의 강당(Migāramātu-pasada)을 건립하였다.
미가라마(녹자모)의 강당(Migaramātupāsāda)은 미가라마따(鹿子母)라고 불렸던
위사카(Visakha)가 동원림을 9천만의 돈을 들여 구입하고
다시 9천만의 돈을 들여 지은 이층으로 된 큰 건물이었다. 각층에는 각각 500개씩의
방이 있었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후반부 20여 년을 사왓티에 머무실 때 이곳과 급고독원을 번갈아가면서
머무셨다고 한다. 그러므 로 많은 경들이 이곳에서 설해진 것으로 나타난다.
* "욕계 존재를 안이라 하고, 색계 존재와 무색계 존재를 밖이라 한다.
안이라 불리는 욕계 존재에 대한 강한 욕망이 '안의 족쇄(ajjhatta-sarnyoja-na)'이다.
밖이라 불리는 색계와 무색계 존재에 대한 강한 욕망이 '밖의 족쇄(bahiddha
-samyojana)'이다.
혹은 다섯 가지 낮은 단계(orambhāgi ya)의 족쇄가 안의 족쇄이고
다섯 가지 높은 단계 (uddhambhāgiya)의 족쇄[結가 밖의 족쇄이다.
여기서 이 뜻은 다음과 같다. 낮은 것(orarin)이란 욕계를 말한다.
여기에 태어나게 하기 때 문에 이러한 낮은 것을 가까이 한다.
그러므로 낮은 단계(orambhagiya)이다.
높은 것(uddharin)이란 색계와 무색계를 말한다.
여기에 태어나게 하기 때문에 이러한 높은 것을 가까이 한다.
그러므로 높은 단계 (uddhambhagiya)라 한다." (AA.ii.130)
열 가지 족쇄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 「족쇄 경」 (A4:131) $1의 주해들을 참조할 것.
* 평화로운 마음의 해탈 가운데 하나:
"여덟 가지 증득, samapatti] 가운데 하나인 제4선의 증득을 말한다.
이것은 [이 禪의 구성요소들과] 반대가 되는 오염원(paccanika- kilesa)들을
고요하게 하였기 때문에 평화롭다(santa)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오염원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했기 때문에 마음의 해탈이라고
불린다."(AA.ii.134)
*"평등한 마음을 가진 신들(sama-citta devatā)'이란
마음의 미세한 상태가 동등하기 때문에 마음이 평등하다.
왜냐하면 이 모든 신들은 자신의 몸에서 미세한 닮은 마음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등한 마음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다.
다른 이유 때문에도 평등한 마음이라 한다.
[사리뿟따] 장로께서 증득[等至, samápatti, 초선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와 상수멸의
9가지 삼매]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셨지만
증득의 굳건함(samapatti-thama)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십력을 갖추신 부처님께 간청을 하여서 증득의 굳건함에 대해서
설명해달라고 말씀드리리라.'라고 모두가 한 마음 eka-citta)이 되었다.
그래서 평등한 마음이라 한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장로께서는 하나의 방법(방편, pariyaya)으로 증득과 증득의
굳건함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누가 여기에 도달했고 누가 도달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보이시면서 여래께서 [증득] 들어 계신 것을 보지 못했다.
'우리는 여래께 간청을 하여서 회중이 모두 완전하게 되도록 해야겠다.'라고
모두가 한 마음(eka-citta)이 되었다. 그래서 평등한 마음 이라 한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미래에 어떤 비구나 비구니나 신이나 인간이
'이 가르침은 [부처님] 제자(즉 사리뿟따 존자)가 설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정등각께 간청을 하여서 이 가르침이 일체지자께서 설하신 것으로
만들어야겠다. 그리하면 미래에 존중받을 것이다.'라고
모두가 한 마음(eka-citta)이 되었다. 그래서 평등한 마음이라 한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 신들은 모두 동일한 증득을 얻은 자들이었고 동일한 대상(arammana)을 가진
자들이었다고 해서 평등한 마음이라 한다." (AA.ii.135~136)
* 여기서:
여기에서(idh'eva)'란 부처님 교법(sasana) 혹은 인간 세상(manussa-loka)에서라는
말이다." (AA.ii.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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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경 「족쇄 경」 (A2:4:5)은,,,, 주석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를 간파하기가 쉽지 않다.
마지막 "사리뿟따여, 외도들은 이 교법을 듣지 못하여 파멸한다."라고 하신 바,,,,
본 경의 의미가 심대한데도 말이다.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족쇄(五下分結)을 풀어 정거천에 태어나는
불환과를 이루지는 못했어도,,, 3선천(예를 들면 광음천)까지는 태어났지만
공덕이 다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이들에 대해서 먼저 설하시고,
다음 불환자가 되어 4선천인 정거천에 태어나서 다시는 그 아래 혹은 인간계로
돌아오지 않는 불환자에 대해서 다음으로 설하셨다.
'평화로운 마음의 해탈 가운데 하나'인,,, 주석처럼 제4선의 증득을 통해서다.
문제는 그 다음에 설하신 또 다른 '불환자'들인데,,,,,
1) 감각적 욕망을 역겨워하고 빛바래게 하고 소멸하고,
2) 존재를 역겨워하고 빛바래게 하고 소멸하고, 3) 갈애를 부수기 위해서,
4) 탐욕을 부수기 위해서 수행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 자라 불리는 밖의 족쇄에 채인 자'
라 하는,,, 바로 위의 불환자와는 또 다른 불환자들에 대한 것을 설하신다.
물론 높은 단계의 다섯 가지 족쇄(五上分結)까지를 다 풀어,,, 존재를 벗어버린,,,
'아라한'이 되거나 혹은 '무여열반'에 들지는 않으신 분들이지만 말이다.
분명 두 가지 다른 불환자에 대해서 나누어 설하고 계신 것이다.
물론,,, 본 경에서와 같이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그러한 두 번째의 불환자들 다음,,,
그 존재들을 벗어버리고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것까지는 아직 설명하지 않으셨다.
여기서 이야기는 급변하는데,,,,
'평등한 마음을 가진 많은 신들'의 무리가 제따 숲 급고독원에 계시던 세존을 찾아뵙곤,,
법문을 하고 있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가시자고 청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존께서 사리뿟따 존자에게 가셔서 말씀하신 요지는
이 신들이 '송곳 끝 하나 겨우 떨어질 정도의 좁은 곳에서' 10∼60명이
서로에게 닿지도 않은 채 서 있는 것이 '천상에서' 그 마음을 닦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여기서' 그 마음을 닦아서' 그런 것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감각기능들을 고요히,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에 대해서 설하시고,,,,
'외도들은 이 교법을 듣지 못하여 파멸한다.'라고 설하신다.
'평등한 마음을 가진 많은 신들', 그리고 '여기서'에 대한 여러 가지 주석은
본 경의 함의까지를 생각하면 모두 나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1) 사리뿟다 존자께서는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족쇄, 높은 단계의 다섯 가지
족쇄,,, 열 가지 족쇄를 모두 벗어 해탈, 열반에 이르는 길을 설하시는
찰라였다. 천신의 무리에 태어나는 것에 그쳐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거나
혹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지 않는 불환자까지를 설하시고 그 다음을
설하시고자 하는 찰라였다.
2) 이 법문을 듣던 일단의 천신들의 무리는 이 법문을 숙고하면서,,,,
아직 안 혹은 밖의 족쇄에 채여있는 자신들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그 안팎의 족쇄들을 모두 벗어 '존재 벗음' 즉 '해탈', '열반'에 이르는 길,,
혹은 '열반'을 잠시라도 보았다.
3) 이 일단의 천신들은 사리뿟따 존자가 하려했던 이 법문의 마지막은,,,
그때 급고독원에서 열반에 들어계시던 세존께서 하시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이를 세존께 청한다.
4) 세존께서는 그 법문의 마지막을 아래와 같이 설하신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감각기능들을 고요히 하고 마음을 고요히 하리라.
감각기능들이 고요하고 마음이 고요한 자들은
몸으로 짓는 행위도 고요하고,
말로 짓는 행위도 고요하고,
마음으로 짓는 행위도 고요하다.
청정범행을 닦는 동료 수행자들에게 고요함의 선물을 선사하리라고.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사리뿟따여, 외도들은 이 교법을 듣지 못하여 파멸한다."
이 무엇에 대한 법문인가?
바로 열 가지 족쇄들을 다 벗고,,,, 건너간,,, '해탈', '열반'에 대한 법문이다.
'감각 기능들이 고요하고, 마음이 고요하고',,,,
따라서 몸, 말, 마음의 행위가 고요한 것은 '열반'을 증득한 것을 말한다.
'고요함'이란 '열반'에 다름 아니다.
그것을 굳건하게 증득한 이는 도반들에게 그 '고요함'의 말할 수 없는 위력이
전달된다.
그 어떠한 外道에도 이러한 '족쇄 벗음', '존재 벗음', '해탈', '열반'에 대한
가르침은 없기에,,,, "외도들은 이 교법을 듣지 못하여 파멸한다."고
세존께서는 설하신 것이다.
'여기서'라 함은 어디를 두고 '여기서'라고 하셨는가?
사리뿟따 존자께서 이 경을 설하신 바로 그 자리다.
그 신들은 그들이 거주하는 천상(정거천이든 어디든)에서 그 마음 닦아
그리된 것이 아니라,,,, 사리뿟따 존자께서 이 경을 설하신 바로 그 자리에서
그 법문을 숙고하고,,,
'안이든 밖이든 모든 족쇄를 풀어버리는' 높은 마음을 닦아 그리된 것이다.
그 천신들은 훌륭한 것을 얻었고, 또한 훌륭한 일을 했다.
세존을 모셔와 이 법륜을 완성하고 장엄한 일이다. 사∼두∼ !!!
'앙굿따라니까야3 > A2. 둘의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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