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 번째
1-1.
"비구들이여, 나의 구참(參) 비구 제자들 가운데서 안냐꼰단냐가 으뜸이다."
* 본 품은 다시 7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첫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는 각 방면에서 으뜸인 비구 47분들을 모은 품이고,
다섯 번째는 비구니 13분을, 여섯 번째는 남자 신도 10분을,
일곱 번째는 여자 신도 10분을 모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각 방면에서 으뜸가는 80분의 부처님 제자들이 거명되고 있다.
(중복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있음)
주석서는 이 80분 의 으뜸가는 분들의 설명에 무려 335쪽을 할애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역자[대림스님]는 이를 참조해서 간략하게 주를 달았다.
이하 주해들에서 별다른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은 모두 본서의 해당부분에 상응하는
「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 에서 발췌하고 DPPN을 참조해서 옮긴 것임을 밝힌다.
안나꼰단나(Anna-Kondanna 혹은 Anñata-Kondanña) 존자는
고파 마싯닷타 태자(세존)가 태어났을 때 관상을 보기 위해서 온 8명의 바라문 가운데
한 명이었다고 한다. 관상학의 대가였던 그는 태자가 깨달은 분이 될 것을 예견하고
출가하기를 기다렸다가 다른 네 명과 함께 출가하였으며 그래서 이들은
오비구(五比丘, Pancavaggiya bhikkhu)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인간들 가운데서는 제일 먼저 법에 눈을 뜬 사람이며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 기쁨을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다.(ariñasi vata
bho Kondafnfño)" (Vin.i.12 등)라고 두 번이나 외치셨다.
그래서 그는 안냐꼰단냐(완전하게 안 꼰단냐)로 불리게 되었다.
그래서 미얀마 본에 는 Annasi-Kondañña로 나타난다.
그런지 5일 뒤에 그는 「무아상경」 (Anattalakkhana Sutta, S.iii.66f)을 듣고
아라한이 되었다.(Vin.i.13~14.)
그는 “ehi, bhikkhu(오라, 비구여.)" 정형구로 구족계를 받은 첫 번째 비구이며
전체 비구 가운데서도 첫 번째로 구족계를 받은 분이다.
그래서 그는 가장 구참(rattaifu)인 비구로 불리는 것이다.
그는 부처님의 허락을 받고 히말라야의 찻단따 숲(Chaddanta-vana)에 있는
만다끼니(Mandakini)로 들어가서12년을 머물렀으며
산을 나와 부처님의 허락을 받고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서 반열반하였다고 한다.
1-2.
"큰 통찰지를 가진 자들 가운데서 사리뿟따(사리불)가 으뜸이다."
* 사리뿟따Sariputta) 존자는
날란다 지방의 큰 바라문 가문에 태어났으며 경에서 우빠띳사(Upatissa)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그의 이름임에 분명하다.(Mi.150; V.i.42 등)
어머니의 이름이 사리(Sari) 였기 때문에 사리뿟따(Sariputta, 사리의 아들)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는 불가지론자였던 산자야 벨랏티뿟따(Sanjaya Belatthiputta)의 제자였는데
오비구 가운데 한 분이었던 앗사지(Assaji) 존자가 읊는 게송의 첫 번째 두 구절을 듣고
예류과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부처님의 상수제자였다.
사리뿟따 존자에 대한 자세한 것은 「사리뿟따 이야기」를 참조할 것.
북방에서도 사리뿟따 존자는 지혜제일로 꼽힌다.
1-3.
"신통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마하목갈라나(대목련)가 으뜸이다."
* 마하목갈라나(Maha-Moggallana) 존자는
라자가하의 꼴리따 마을 (Kolitagama)의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마을 이름을 따서
꼴리따라 불리었다. 어머니의 이름이 목갈리(Moggali 혹은 Moggalini)였기 때문에
목갈라나로 불리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사리뿟따와 절친한 친구였 으며 같이 산자야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부처님의 두 상수제자(agga savaka-yuga)로 불린다.
북방에서도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신통제일이라 불린다.
1-4.
"두타행을 하는 자들 가운데서 마하깟사빠(대가섭)가 으뜸이다."
* 마하깟사빠(Maha-Kassapa) 존자는
마가다의 마하띳타(Mahātittha) 에서 바라문으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삡빨리(Pippali)였다.
그는 일찍 결혼하였으나 아내(Bhadda)와 논의하여 둘 다 출가하였다.
(아래 A1:14:5-10 의 밧다 까멜라니 주해 참조)
「상윳따니까야」 「깟사빠 상응」 (S16)의 여러 경들은 그의 출중한 경지를 잘
드러내어 주고 있으며 부처님이 반열반하신 후 교단을 이끌었던 분이다.
북방에서도 마하깟사빠 존자는 두타 제일로 꼽힌다.
1-5.
"천안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아누룻다(아나율)가 으뜸이다."
* 아누룻다(Anuruddha) 존자는 세존의 사촌 동생이다.
아누룻다 존자에 대해서는 본서 「아누룻다 경」1(A3:127)의 주해를 참조할 것.
북방에서도 아누룻다 존자는 천안제일로 꼽힌다.
1-6.
"고귀한 가문 출신인 자들 가운데서 깔리고다야의 아들 밧디야가 으뜸이다."
* 깔리고다야의 아들 밧디야(Bhaddiya Kaligodhayaputta) 존자는 사꺄족 왕자였으며
성도 후에 까삘라왓투를 방문하신 부처님을 따라서 사꺄의 아누삐야(Anupiya)에서
아누룻다(Anuruddha), 아난다(Ananda), 바구 (Bhagu), 낌빌라(Kimbila),
데와닷따(Devadatta) 같은 왕자와 이발사 우빨리(Upali)를 비롯한
많은 사꺄의 청년들과 함께 출가하였으며 오래지 않아 아라한이 되었다.
아누릇다와는 둘도 없는 친구였으며, 아누의 어머니는 밧디야가 같이 간다면 출가를
허락하겠다하여 아누릇다는 밧디야를 설득하여 함께 출가하였다고 한다.
그는 500생을 왕이었다고 하며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를 고귀한 가문 출신
인자(ucca-kulika)들 가운데서 으뜸으로 꼽으셨다고 주석서는 설명한다.(AA.i.193)
1-7.
"감미로운 목소리를 가진 자들 가운데서 라꾼따까 (키 작은) 밧디야가 으뜸이다."
* 라꾼따까 밧디야(Lakuntaka-Bhaddiya) 존자는 사티의 장자 가문에 서 태어났으며
키가 아주 작았기 때문에 라꾼따까(난장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그는 감미로운 목소리(manjussara)를 가졌으며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듣고 달려온
여인이 웃을 때 드러낸 이빨을 보고 그것을 명상주제 로 삼아 수행하여 불환자가 되었고
뒤에 사리뿟따 존자의 가르침으로 아라한이 되었다 한다.
1-8.
"사자후를 토하는 자들 가운데서 삔돌라(식탐 많았던) 바라드와자가 으뜸이다."
* 삔돌라 바라드와자(Pindola-Bhāradvaja) 존자는
꼬삼비 우데나(Udena) 왕의 궁중제관의 아들이며 바라드와자 바라문 가문 출신이다.
그는 삼베다에 능통하였으며 500명의 바라문 학도들을 가르치다가
그것이 무의미 함을 느끼고 출가하였다고 한다.
그는 식탐이 아주 많은 자였는데 부처님의 조언으로 그것을 극복하고
아라한이 되었다 한다. 아라한이 되던 날에 각 승원을 다니면서
도든 과든 의문이 되는 것은 다 물어보라고 외쳤으며
다시 부처님의 면전에서 어느 비구의 의문이든 모두 해결해 주겠다고
사자후(sihanada)를 토했다고 한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를 사자후를 토하는 자(siha-nādika)들 가운데 으뜸으로
꼽으신 것이다. 그가 삔돌라(pindola, 식탐이 많은 자)라고 불리 는 이유는
재가자였을 때 먹는 것(pinda)을 아주 좋아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AA.i.198)
1-9.
"법을 설하는 자들 가운데서 만따니의 아들 뿐나(부루나)가 으뜸이다."
* 만따니의 아들 뿐나(Punna Mantaniputta) 존자는
삘라왓투에서 가까운 도나왓투(Donavatthu)의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만따니는 안냐꼰단냐 존자의 여동생이었다.
꼰단냐 존자가 아라한이 된 후 그를 출가시켰다.
그는 까삘라왓투에서 머물면서 수행하여 아라한이 되었 다.
그는 그의 동향 사람 500명을 출가하게 하여 열 가지 설법의 기본
(dasa kathavatthuni)을 가르쳤다 하며 그들은 모두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세존을 뵙기 위해서 사왓티로 왔으며
사리뿟따 존자가 그의 명성을 듣고 그를 시험한 것이 그 유명한 「맛지마니까야」의
「역마차 경」(M24) 이다.
이 경에서 그는 부처님 가르침을 일곱 가지 청정으로 요약 설명하여
사리뿟따 존자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으며,
이것은 「청정도론」 등에서 상좌부 수행의 핵심으로 정착이 되었다.
(칠청정은 『아비담마 길라잡이」 장 $22 이하를 참조할 것)
이런 이유로 세존께서는 그를 법을 설하는 자 (dhamma-kathik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칭찬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맛지마니까야」의 「교계 뿐나 경」 (M145)에 나타나는 뿐나 존자는
만따니의 아들 뿐나 존자와는 다른 사람이다.
그는 수나빠란따 (Sunāparanta, 지금의 마하라쉬뜨라 주의 숩빠라까(Supparaka)에서
장자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사업차 사왓티에 왔다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출가하였다.
「교계 뿐나 경」에는 그가 세존의 허락을 받고 고향인 수나빠란따로 전법을 떠나는 것이
묘사되어 있다. 그는 수나빠란따 지방에 서 크게 전법활동을 하다가 순교하였다.
북방에서는 이 뿐나 존자를 설법 제일로 여기는 듯하다.
1-10.
"간략하게 설한 것에 대해 상세하게 그 뜻을 설명하는 자들가운데서
마하깟짜나(대가전연)가 으뜸이다."
* 마하깟짜나(Maha-Kaccana) 혹은 마하깟짜야나(Mahā-Kacāyana,
본 서에는 두 가지 표현이 다 나타난다.)
존자는 제니(Ujjeni, 지금 맛다쁘 라데쉬의 우자인 지방)의 짠다빳조따(Candappajjota)
왕의 궁중제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바라문 가문 출신이다. 깟짜나는 그의 족성이다.
그는 베다에 능통했으며 그의 부친이 죽은 뒤 대를 이어 궁중제관이 되었다.
그는 짠다조따 왕의 명으로 일곱 명의 친구들과 함께 부처님을 웃제니로 초대하기 위해서
부처님께 갔다가 설법을 듣고 무애해를 갖춘 아라한이 되어 출가하였다.
주석서는 깟나 존자가 간략하게 설한 것에 대해 상세하게 그 뜻을 설명 하는 자들 가운데서
으뜸인 보기로 「맛지마 니까야」 「꿀덩어리 경」 Madhupindika Sutta, M18)과
「짜나 뻬얄라」 (M133인 듯)와 「도피안 경」 (Parayana Sutta)을 들고 있다. (AA.i.209)
이 가운데 특히 맛지마니까야」 의 두 경은 멋진 보기가 된다.
북방에서도 깟짜나 존자는 논의제일로 꼽힌다.
(2) 두 번째
2-1.
"비구들이여,
마음으로 만들어진 몸을 창조하는 나의 비구 제자들 가운데서 쫄라빤타까가 으뜸이다."
* 쭐라빤타까(Culla-Panthaka) 존자는
라자가하의 부유한 상인의 딸에게 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하인과 눈이 맞아서 라자가하를 도망 나가서 살았다고 한다.
그의 형은 마하빤타까라 불린다. 두 형제는 길(pantha)에 서 태어났기 때문에(jatatta)
빤타까(Panthaka)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와 하인이 도망 다니면서
길에서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후에 형과 함께 외갓집으로 보내져서 양육되었다.
그의 형은 외할아 버지를 따라 부처님을 뵈러 다녔기 때문에 먼저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그도 형의 권유로 출가하여 형이 준 게송(A.iii.239)을 넉 달이나 외웠 지만
외울 수 없었다. 그는 승단에서 바보 빤타로 알려질 정도였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천 조각을 주시면서 '먼지 닦기(rajo-harana), 먼지 닦기'
라고 반복해서 외우라 하셨고 그런 방법을 통해서 무애해와 육신통을 갖춘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왜 마음으로 만들어진 몸을 창조하는 자(manomayarn kayarn abhinimminanta)
들 가운데서 으뜸인 지는 청정도론」 XII장 8860~67에 잘 나타나 있다.
2-2.
"마음의 전개에 능숙한 자들 가운데서 쭐라빤타까가 으뜸 이다. "
* 주석서는 쭐라빤타까 존자는 네 가지 색계 禪(rupavacara-jjhana)을 얻었기 때문에
마음의 전개에 능숙(ceto-vivatta-kusala)하다고 하고
마하빤따까 존자는 네 가지 무색계 禪을 얻었기 때문에 인식(sanna)의 전개에
능숙하다고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AA.i.210)
2-3.
"인식의 전개에 능숙한 자들 가운데서 마하빤타까9가 으뜸 이다."
* 마하빤타까(Maha-Pantaka) 존자는 쭐라빤타까 존자의 형이다.
위 쫄라빤타타 주해를 참조할 것.
2-4.
"평화롭게 머무는 자들 가운데서 수부띠(수보리)가 으뜸이다."
* 평화롭게 머무는자(arana-vihari)'란 오염원이 없이 머무는 자이다.
싸움(rana)이란 욕망(raga) 등의 오염원(kilesa)들을 말한다.
이런 것들이없기 때문에 오염원이 없이 머문다, 평화롭게 머문다고 한다."
(AA.ii.220)
수부띠(Subhuti) 존자는
수마나 상인(Sumana-setthi)의 아들이자 급고독(아나타삔디까, Anathapindika)
장자의 동생이다.
급고독원의 개원식 때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하였으며
자애와 함께하는 禪(metta- jhana)을 닦아서 아라한이 되었다.
그는 주로 숲에서 머물면서 평화롭게 지냈다고 한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평화롭게 머무는 자(arana-vihari)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맛지마 니까야」 「무쟁의 분석 」(Aranavibhanga Sutta, M139)에서도
부처님께서는 수부띠 존자를 이렇게 칭송하고 계신다.
한편 대승의 「금강경」(제품)에서도 수부띠 존자를 평화롭게 머무는 자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밝히고 있다. (得無諍三人中最爲第一 是第一)
구마라즙 스님은 무쟁삼매(無諍三昧)와 아란나행자(阿行者)라고 옮겼고
현장 스님은 무쟁주(無諍住)라고 직역하고 있다.
그러나 북방에서 수부띠 존자는 해공(解空)제일이라 불리는데
이것은 아마 공의 이치를 잘 드러낸다는 「금강경」이 세존과 수부띠 존자와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금강경」과 여기서 보듯이 수부띠존자는
무쟁제일이다.
2-5.
"공양받을 만한 자들 가운데서 수부띠가 으뜸이다."93)
* 수부띠 존자는 탁발할 때 집집마다 자애와 함께하는 禪(metta-jhāna)에 들었다가
여기서 출정하여 공양을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
(AA.i.221)
2-6.
"숲 속에 머무는 자들 가운데서 아카시아 숲에 머무는 레와따가 으뜸이다.
* 아카시아 숲에 머무는 레와따(Revata Khadiravaniya) 존자는
법의 사령관인 사리뿟따 존자의 막내 동생이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자녀들이 하나 둘 출가하는 것을 보고 막내는 출가를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를 일곱 살에 결혼을 시켰다고 한다.
결혼식에서 하객들이 신부에게 할머니 나이 만큼 살아라고 축복의 말을 하는 것을 듣고
120살이 된 신부 할머니의 늙은 모습을 보고 저 예쁜 신부도 그와 같이 될 것이라고
깨닫고 결혼 행렬 에서 빠져나와 출가를 하였다고 한다.
다른 숲 속 거주를 하는(araññika) 비구들은 나무숲도 있고 물도 있고 걸식도 할 수 있는
숲에서 머물렀지만 그는 모래와 자갈과 바위로 된 험한 아카시아 숲에 머물렀기 때문에
세존께서 이렇게 칭송하시는 것이라고 주 석서는 밝히고 있다.(AA.i.223~224)
그리고 사리뿟따 존자에게는 세 명의 남동생 즉 쭌다(Cunda), 우빠세나 (Upasena),
레와따 (Revata)와 세 명의 여동생 즉 짤라(Cala), 우빠짤라 (Upacala),
시수빠짤라(Sisupacala)가 있었는데 모두 출가하였다고 한 다.(DhpA.ii.188)
2-7.
"禪을 얻은 자들 가운데서 깡카레와따가 으뜸이다."
* 깡카레와따(Karikhā-Revata) 존자는 사티의 아주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다.
그는 출가하여 禪의 증득(jhana-samapatti)을 통해서
십력(十力, dasa-bala, M12와 「청정도론』 XII.76 주해 참조)을 갖춘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를 禪을 얻은 자(jhayi)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칭찬하시는
것이다. 그는 아라한이 되기 전에 [율장에서]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은 허용되지
않았는가를 두고 고심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주석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후회하는 성품을 지녔기 때문에 깡카레와따(Karnkha-Revata)라고 부른다.
여기서 깡카(kankha)는 후회를 말하고 후회하는 자란 뜻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후회를 하지만 이 장로는 옳은 일에 조차도 후회를 하였다.
이 장로의 후회하는 성품이 너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깡카레와따라고 불리게
되었다."(AA.i.230)
2-8.
"열심히 정진하는 자들 가운데서 소나 꼴리위사가 으뜸이다."
* 소나 꼴리위사(Sona Kolivisa) 존자는 짬빠(Campa)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소나는 이름이고 꼴리위사는 성이다.
그가 입태했을 때부터 집안의 재산이 엄청나게 불기 시작했으며 태어나서
그는 아주 호화로운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는 수쿠말라 소나(Sukhumāla Sona)라고도 불리는데 태어나면서부터
그의 손과 발 등이 아주 섬세하였기(sukhumala) 때문이라고 한다.
그를 만나고 싶어 한 빔비사라 왕의 초청으로 라자가하에 갔다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출가하였다.
열심히 정진하였지만 아라한과를 얻지 못해서 실망하여 환속할 생각을 하고 있는 그에게
부처님께서는 류트(거문고)를 켜는 비유를 들어서 바른 정진을 일깨워 주셨으며
그래서 그는 아라한이 되었다. (A.iii.3745) 이 일화는 우리에게 거문고의 비유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를 열심히 정진하는 자(araddha-viriy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칭찬하시는 것이다.
2-9.
"감미로운 목소리로 말하는 자들 가운데서 소나 꾸띠깐나베가 으뜸이다."
* 소나 꾸띠깐나(Sona Kutikanna) 존자는
아완띠(Avanti)의 꾸라라가라 (Kuraraghara) 출신이다.
그는 꾸라라가라에서 마하깟짜나 존자 문하로 출가를 하였다.
그 후 세존을 뵈었는데 세존께서 그가 배운 것을 읊어보라 하시자
그는 깟짜나 존자께 배운 「숫따따니빠따」의 「앗타까 왁가」 (Atthaka-vagga, 제4장
여덟 편의 시품)를 낭랑하게 외워 부처님을 크게 기쁘게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감미로운 목소리로 말하는 자 (kalyana-vakkaran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 불리는 것이다.
한편 주석서는 꾸띠나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소나는 그의 이름이고 꾸띠깐나는 수식어인데 그가 [재가자였을 때 - AAT]
천만 냥 (koti) 값어치의 귀걸이(kanna)를 하고 다녔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AA.i.237)
2-10.
"공양을 얻는 자들 가운데서 시왈리가 으뜸이다."
* 시왈리(Sivali) 존자는 꼴리야(Koliya) 왕의 딸인 숩빠와사(Suppavasa, 본서 제2권
「빠와사 경」 (A4:57) §1의 주해 참조)의 아들이다.
그는 어머니의 뱃속에 7년 7일을 있었다고 하는 신비한 인물이다.
그래서 나자마자 바로 말을 하였고
태어나는 날 바로 사리뿟따 존자가 데리고 가서 출가를 시켰는데 머리를 깎으면서
첫 번째 머리칼이 떨어질 때 예류과를 얻었 고 두 번째 머리칼이 떨어질 때 일래과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신들의 공 [天供]을 많이 받는 등 세존을 제외하고는
비구들 가운데 가장 많은 공양을 받았기 때문에
세존께서는 그를 공양을 얻는 자(labhi)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2-11.
"신심이 깊은 자들 가운데서 왁깔리가 으뜸이다."
* 왁깔리(Vakkali) 존자는 사왓티의 바라문 가문 출신이다.
그는 삼베다에 능통했는데 처음 부처님을 보자 그분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세존 가까이 있기 위해서 출가하였다고 하며 먹고 씻고 하는 때를 제외하고는
온통 부처님만 생각하였다고 한다.
세존께서 왁깔리에게 하신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
(yo kho dhammarn passati so mam passati; yo mam passati so dhammam
passati)" 는 말씀은 아주 유명하다.
그의 아라한과의 증득과 죽음에 대해서는 경들과 주석서마다 조금씩 다르다.
본경에 해당하는 주석서에 의하면 그가 세존 곁에 있는 것을 너무 좋아하였기 때문에
안거를 마치던 날 세존께서 이제 떠나라는 말씀을 하시자 슬퍼서 독수리봉 산의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세존께서 “오라, 왁깔리여.”라고 부르는 말씀을 듣고 환희하여
허공을 날아오르면서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적고 있다.(AA.i.250~251)
그러나 「상윳따니까야」에는 마지막 병상에서 세존의 말씀을 들은 뒤
자결하면서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나타난다. (S.iii.119)
여러 주석서들은 그가 신심 깊은 자(saddhadhi- mutta)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부처님께서 인정하셨다고 적고 있다.
(3) 세 번째
3-1.
"비구들이여,
배우기를 좋아하는 나의 비구 제자들 가운데서 라훌라가 으뜸이다."
* 라훌라(Rahula) 존자는 세존의 외아들이다.
라훌라 존자는 세존이 출가 하시던 날 태어났다.
세존께서는 깨달음을 증득하신 지 2~3년 뒤에 부친 숫도다나(Suddhodana, 淨飯)왕의
간청으로 고향 까삘라왓투를 방문하셨는데 그때 부처님의 아내였던
야소다라(Yasodhara, 아래 A1:14:5-11 밧다 깟짜나 주해 참조)는
라훌라를 세존께 보내어서 상속물을 달라하라고 시켰다.
라훌라의 말을 듣고 세존께서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라훌라를 출가시키게 하셨다.
무소유의 삶을 사시는 부처님이 아들에게 상속물로 줄 것은 출가밖에 없었을 것이다.
라훌라 존자를 출가시키면서 세존께서는 라훌라 존자에게
"다시는 세상에 태어나지 말라(mā lokarin punar- agami-Sn.339)"라는 간곡한 말씀을
하셨다. 부처님께서 라훌라를 가르치신 여러 경들이 초기경전군에 전승되어 온다.
그 가운데서 라훌라 존자를 가르치신 최초의 경은 「맛지마 니까야」
「암발랏티까 라홀라 교계경」 (M61)인데 여기서 부처님께서는 발 씻는 세숫 대야의
비유로 그를 엄하게 가르치신다.
이 가르침은 아쇼까 대왕에게도 큰 감명을 주어서 그의 명령으로 바위에 새긴
아쇼까 대왕의 칙령에서도 이 경의 일부를 언급하고 있다.
라홀라 존자는 「짧은 라훌라 교계 경」 (M147)을 통해서 아라한이 되었다.
그 외에도 라훌라를 교계하신 (Rahulovada) 경이 몇 개 더 전해온다.(M62; S.iii.105;
Aiii.152 등) 이런 라홀라 존자였기에 세존께서는 그를 배우기를 좋아하는(sikkha kama)
비구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하셨다. 북방에서는 밀행(密行)제일이라 부른다.
3-2.
"믿음으로 출가한 자들 가운데서 랏타빨라가 으뜸이다"
* 랏타빨라(Ratthapala) 존자는
꾸루(Kuru)의 툴라꼿티따(Thullakotthi- ta)의 유명한 가문 출신이다.
그의 간절한 출가 이야기와 출가 후 자기 집에 가서 가족들을 교화한 이야기는
「맛지마 니까야」 「랏타빨라 경」 (M82)에 상세히 전해온다.
이런 이유로 세존께서는 믿음으로 출가한 자 (saddha-pabbajita)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칭찬하신 것이다.
3-3.
"가장 처음으로 식권을 받은 자들 가운데서 꾼다다나가 으뜸이다."
* '식권(salaka)'은 승가 전체를 위해서 받은 대중공양을 배분하는 차례나
투표의 순서 등을 정하기 위해서 나무로 만든 표식을 말한다. (PED)
꾼다다나(Kundadhana) 존자는 사왓티의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베다에 능통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원래 다나(Dhana)였다.
그가 꾼다다나 혹은 꼰다다나라고 불리게 된 데는 이상한 인연이 있다.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출가하였는데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자신은 모르지만 젊은 여인의 모습이 항상 그를 따라다녔다.
탁발을 가면 여인네 들은 그에게 두 사람분의 음식을 주면서
'하나는 당신 여자 친구의 것입니 다.'하면서 놀렸고
비구들도 그를 '우리 존자는 참 꼬부라지기도(꾼다, kunda/konda)하지.'라면서
놀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꾼다다나 혹은 꼰다다나가 되었다 한다.
그는 상심하여 탁발을 갈 수도 없었고 제대로 수행을 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이 소문을 듣고 그에게 늘 공양을 베풀기로 약속을 하여
탁발을 가지 않고도 수행에 전념할 수 있었으며 그래서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여인의 모습은 없어졌다고 한다.
그는 세존을 상수로 여러 비구대중이 욱가나가라의 마하수밧다(Maha- Subhadda)와
사께따(Saketa)의 쭐라수밧다와 수나빠란따(Sunapara- nta)로 유행을 갔을 때
늘 제일 먼저 식권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식권을 처음 받는 비구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3-4.
"영감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왕기사가 으뜸이다."
* 왕기사(Vaigisa) 존자는 바라문 가문에 태어나서 베다에 능통한 자였다.
특히 그는 죽은 사람의 머리(sisa)를 손톱(nakha)으로 쳐서 그가
죽어서 어디에 태어났는지를 알아맞히는 재주가 있어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3년간 큰돈을 번 뒤에 부처님을 뵈러 갔다. 부처님께서는 아라한의 해골을 주시면서
알아맞히게 하였지만 그는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니그로다깜빠(Nigrodhakappa) 존자를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몸의 32 가지 부위에 대한 혐오를 수행해서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시를 잘 짓기로 유명하였다. 「장로게」에는 그가 지은 많은 시가 전 해오며
(Thag.1208~1279) 「상윳따니까야』의 「왕기사 상응」(S8)은 모두 그와 관계된 경을
모은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세존께서는 그를 영감을 가진자(patibhanavanta)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하신 것이다.
3-5.
"모든 면에서 청정한 믿음을 내게 하는 자들 가운데서 왕간따의 아들 우빠세나가 으뜸이다."
* 왕간따의 아들 우빠세나(Upasena Varigantaputta) 존자는
날라까 (Nalaka)에서 루빠사리(Rupasari)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왕간따는 그의
아버지이다. 베다에 통달했지만 출가하여 부처님 제자가 되었다.
그는 출가한 지 1년 만에 출가자의 수를 늘리기 위해 상좌를 두어서 그를 데리고
부처님께 갔다. 세존께서는 그의 성급함을 나무라셨고 그는 세존으로부터 모든 면에서
신뢰받는 제자가 되려고 결심하고 정진에 몰두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존자는 여러 가지 두타행을 닦았으며 많은 회중을 거느렸다고 한다.
그는 설법을 잘하기로 유명하였으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신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를 모든 면에서 청정한 믿음을 내게 하는 자(samanta
-pasadik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하신 것이다.
3-6.
"거처를 배당하는 자들 가운데서 말라의 후예 답바가 으뜸이다."
* 말라의 후예 답바(Dabba Mallaputta) 존자는
아누삐야(Anupiya) 혹은 꾸시나라(Ap.473)에서 말라 족의 가문에 태어났다.
그가 태속에 있을 때 그의 어머니가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화장을 하였는데
그는 나무 장작(dabba-tthambha) 안에서 발견되었으며
그래서 답바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일곱 살에 부처님을 뵙고 할머니에게 출가하겠다고 하여 출가하였는데
머리를 깎는 순간에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세존을 따라 라자가하로 갔으며 객스님들이나 신도들의 방을 배정하는 소임을
맡았다고 한다. 일곱 살의 아라한이 소임을 잘 본다는 소문을 듣고 각처에서 일부러
그를 보기 위해서 찾아오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거처를 배당하는 자
(senasana-pariñapaka)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그를 칭찬하시는 것이다.
3-7.
"신들이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하는 자들 가운데서 삘란다왓차가 으뜸이다."
* 삘린다왓차(Pilinda-Vaccha) 존자는 사티의 바라문 가문에 태어났다.
삘란다는 그의 이름이고 치는 성이다.
그는 쭐라간다라 주문 (Cula-Gandhara-vijja, Dll. 85의 주해 참조)에 능통하였는데
세존께서 정각을 이루신 날부터 그 주문이 듣지를 않았다.
그는 마하간다라 (Mahā-Gandhara) 주문이 쭐라간다라 주문을 듣지 않게 한다는
말을 듣고 부처님이 그 주문을 아실 것이라 여기고 부처님 문하로 출가하였다고 한다.
그는 부처님이 가르치신 대로 수행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전생에 그의 지도로 수행하여 천상에 태어나게 된 신들이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서
아침저녁으로 그의 시중을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신들이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하는 자(devatānarn piyamanapa)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다.
3-8.
"빠르게 최상의 지혜를 얻은 자들 가운데서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은 바히야가 으뜸이다."
*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은 바히야(Bahiya Daruciriya) 존자는
바히야 혹은 바루깟차(Bharukaccha, Ap.476)의 상인이었다고 한다.
그는 일곱 번을 배를 타고 교역을 하여 크게 성공을 하였는데
여덟 번째에는 수완나 부미(Suvannabhumi)로 향하던 중 배가 풍랑에 가라앉아
수빠라까 (Supparaka) 부근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떠밀려 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나무껍질로 옷을 삼아 음식 구걸을 다녔는데 그 후 그는
누가 옷을 주어도 입지 않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검소하게 탁발하는 수행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는 자(daru- ciriya)라고 부른다.
그는 그렇게 살면서 자신이 아라한이 되었다고 믿었다고 하는데
인연 있는 어떤 신이 그를 사티의 부처님께로 인도해서 법을 듣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는 탁발하시는 세존을 뒤따르면서 법을 설해주시기를 간청하였지만
부처님은 바른 시간이 아니라고 거절하셨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법을 설해달라는 그의 간청에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셨고
그는 법을 듣고 바로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 다음 바로 그는 송아지를 가진 암소에 받혀서 죽었다.
소똥에 범벅이 되어 있는 그의 시신을 부처님께서는 잘 수습하여 화장을 하게 하시고
그의 탑을 세우게 하셨다고 한다.
그는 탁발하시는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아라한과를 증득하였기
때문에 빠르게 최상의 지혜(초월지)를 얻은 자(khippa- abhinfñ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부처님의 칭찬을 받게 된 것이다.
빠르게 최상의 지혜를 얻는 자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 「상세하게 경」 (A4:162)과 흐름을 따름 경」 (A4:5) 81의
최상의 지혜에 대한 주해를 참조할 것.
3-9.
"다양하게 설법하는 자들 가운데서 꾸마라깟사빠가 으뜸이다."
* 꾸마라깟사빠(Kumara-Kassapa) 존자의 어머니는 라자가하 출신이라 고 한다.
그녀는 출가하고자 하였으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았다.
결혼한 뒤 에 남편의 동의를 받아 비구니가 되어 사왓티에 머물렀다.
출가하고 보니 그녀는 임신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승가에서 큰 문제가 되었다.
세존께서 는 우빨리 존자에게 사태 해결을 위임하셨고 상세한 조사 끝에 그녀는
결백한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우빨리 존자는 세존으로부터 큰 칭찬을 들었다고 한다.
아이가 태어나자 빠세나디 왕이 깟사빠라는 이름을 지어 아이를 키웠으며
일곱 살에 출가하였다고 한다. 그는 어린애(kumara)였을 때 승가에 들어왔고
왕이 키웠기 때문에 kumara는 왕자 즉 rajakumara라는 뜻도 됨) 꾸마라깟사빠라는
이름을 가졌다.
그는 맛지마 니까야」 「왐미까 경」 (Vammika Sutta, Mi.143) 을 통해서 아라한이 되었다.
그가 왜 다양하게 설법하는 자(citta- kathik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세존의 칭찬을
받는가 하는 것은 「디가 니까야」 제2권 「빠야시 경」 (D23)이 좋은 보기가 된다.
「빠야시 경」에 서 그는 대략 14개 정도의 상세하고 다양한 비유를 들면서
빠야시 태수에게 설법하고 있다.
3-10. "무애해를 얻은 자들 가운데서 마하꼿티따가 으뜸이다"
* 마하꼿티따(Mahā-Kotthita) 존자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 「마하꼿티따 경」(A4:174) 81의 주해를 참조할 것.
무애해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 「논사 경」 (A4:140) §1의 주해를 참조할 것.
※ 마하꼿티따 존자(ayasma Mahākotthita)는 본서 제1권 「하나의 모음」
(A1:14:3-10)에서 무애해(patisambhida)를 얻은 비구들 가운데
최상이라고 언급되었던 분이다.
그는 사왓티의 부유한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삼베다에 통달했다고 하며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하여 곧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AA.i.286)
그는 본경 외에도 여러 경에서 특히 사리뿟따 존자와 담론을 나누는데
「장로게」에서 사리뿟따 존자가 마하꼿티따 존자를 칭송하는 게송이
나타날 정도로 두 분은 교분이 깊었던 듯하다.
※ 사무애해
'네 가지 무애해(patisambhidā)'는
1. 뜻(attha)에 대한 무애해[義無碍 解]
2. 법(dhamma)에 대한 무애해[法無碍解]
3. 언어(nirutti)에 대한 무애해[詞無碍解]
4. 영감(patibhana)에 대한 무애해[辯無碍解]이다.
결과(phala)에 대한 지혜를 '뜻에 대한 무애해'라 하고,
원인(hetu)에 대한 지혜를 '법에 대한 무애해'라 한다.
뜻과 법에 대해서 [정확한] 언어를 구사함에 대한 지혜를 '언어에 대한 무애해라 하고,
앞의 지혜들을 대상으로 한 지혜 혹은 앞의 세 가지 지혜에 대해 각각의 대상, 역할 등으로
상세하게 아는 것을 '영감에 대한 무애해'라 한다고 『청정도론」(XIV.21~26)
(4) 네 번째
4-1.
"비구들이여,
많이 들은[多問] 나의 비구 제자들 가운데서 아난다가 으뜸이다."
* 아난다(Ananda) 존자는
부처님의 사촌 동생이고, 부처님의 후반부 25년 동안 시자로 있으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많이 듣고 외운 분이며,
경의 결집에서 경을 암송하는 역할을 맡아서 불법의 체계화에 지대한 역할을 한 분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북방에서는 아난다 존자를 다문제일로 간주하여 10대 제자에 포함시키고 있다.
아난다 존자에 대해 서는 「디가 니까야」 제1권 역자 서문 83의 후반부를 참조할 것.
4-2.
"마음챙김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아난다가 으뜸이다."
* "아난다 장로는
부처님 말씀을 수지한 뒤에 그것을 호지하는 마음챙김(dharanaka-sati)이
다른 장로들보다 더 강했기 때문에 마음챙김을 가진 자(satim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 한다." (AA.i.286)
4-3.
"총명한 자들 가운데서 아난다가 으뜸이다."
* "한 구절(eka-pada)을 통해서 6천의 구절을 수지하면서 스승이 말씀하신 방법대로
모든 구절들을 알기 때문에 총명한 자(gatim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 한다."
(AA.i.287)
"아주 큰 지혜를 가진 자(atisaya fñana-gati)를 '총명한 자(gatima)'라 한다.”
(MAT.ii.237)
4-4.
"활력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아난다가 으뜸이다."
* "부처님 말씀을 파악하는 노력(ugganhana-viriya)과 반복해서 익히는
(sajjhayana) 노력과 호지하는(dharana) 노력과 스승을 시봉하는 (upatthāna)
노력에 관한 한 그와 비견할 다른 자들이 없기 때문에 활력 을 가진 자(dhitim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 한다."(AA.i.287)
4-5.
"시자들 가운데서 아난다가 으뜸이다."
4-6.
"큰 회중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우루웰라깟사빠가 으뜸이다."
* 우루웰라깟사빠(Uruvela-Kassapa) 존자는
우리에게 가섭 삼형제 Tebhatika-Jatila, 직역하면 엉킨 머리 삼형제)로 알려진
세 명의 외도 수행자 가운데 맏형이다.
그들은 부처님께서 6년 고행을 하신 우루웰라의 네란자라(Neranjara) 강의 언덕에
살고 있었다. 맏형인 우루웰라 깟사빠 는 500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제일 상류에,
둘째인 나디깟사빠(Nadi- Kassapa)는 300명의 무리와 함께 중류에,
셋째인 가야깟사빠(Gaya- Kassapa)는 200명의 무리와 함께 하류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불을 섬기는 자들이었다.
부처님께서는 우루웰라의 거처로 가서 그가 섬기던 사나운 용(Naga)을 조복 받고
그들을 모두 제자로 받아들이셨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부처님께서는 천 명의 제자를
얻게 되었으며 라자가하에서 부처님의 명성이 크게 퍼지게 되었다.
그 후에 가야시사(Gayasisa)에서 그들에게 하신
부처님의 불의 설법(Aditta-sutta, S35/iv.19)을 듣고 모두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우루웰라 깟사빠는 500명의 회중을 거느렸기 때문에 큰 회중을 가진 자(maha-paris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이다.
4-7.
"자기 가문에게 청정한 믿음을 가지게 하는 자들 가운데서 깔루다이가 으뜸이다."
* 깔루다이(Kaludayi) 존자는
까뻴라왓투의 숫도다나(Sudhodhāna, 정반, 부처님의 부친) 왕의 대신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부처님과 같은 날에 태어나서 어릴 적부터 친구였다고 한다.
그를 우다이라 부르는 것은 그는 사람들의 마음이 기쁨으로 고무된 날에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하며(udaggacittadivase jatatta)
깔라(Kala)라고 부르는 것은 그는 조금 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존이 출가하신 뒤 정반왕은 그를 요직에 임명하였다고 한다.
세존이 성도했다는 소식을 들은 정반왕은 사람들을 보내서 세존을 까삘라왓투로
초청하려 했는데 그들은 가는 족족 부처님 말씀을 듣고 아라한이 되어 그들의
임무와는 상관없는 자들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정반왕은 깔루다이를 보냈다.
그도 세존의 말씀을 듣고 아라한이 되어 출가를 했지만 정반왕의 부탁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부처님께 간청을 하여 까삘라왓투를 방문하시게 하였다.
그는 먼저 본국으로 향하여 그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그의 가족들은 모두 세존께 대한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를 자기 가문이 청정한 믿음을 가지게 하는 자
(kula-ppasādak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하신 것이다.
4-8.
"병 없이 [장수하는] 자들 가운데서 박꿀라가 으뜸이다."
* 박꿀라(Bakkula/Bakula) 존자는
꼬삼비(Kosambi)의 부유한 상인의 집 안에 태어났다.
그가 갓난애였을 때 보모가 야무나 강에서 목욕을 시키다가
떨어뜨려 큰 고기가 삼켜버렸다고 한다.
그 고기는 잡혀서 바라나시의 상인의 집에 팔려갔는데
아이는 하나도 다치지 않고 산 채로 뱃속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상인의 아내는 자신의 아이로 삼고 키우겠다고 우겼고
왕은 두 가문에서 공동으로 그를 자식으로 삼으라고 판정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박꿀라(ba-kkula, 두 가문에 속하는 자)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80살에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출가하였으며
출가한 지 8일째 되던 새벽에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교단에서 장수한 인물로 꼽히며 120 살까지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를 병 없이 [장수하는] 자 (appábadh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꼽으신 것이다.
주석서는 초기교단 에서 장수한 인물로
마하깟사빠 존자, 박꿀라 존자, 아난다 존자를 들고 있 는데
모두 120세까지 사신 분들로 알려져 있다.(AA.iii.243-244)
4-9.
"전생을 기억하는 자들 가운데서 소비따가 으뜸이다."
* 소비따(Sobhita) 존자는 사티의 바라문 가문에 태어났으며
부처님 설법을 듣고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한다.
그는 전생을 기억하여 500겁 이전의 일을 무의식 상태에서 파악하여
마치 허공에 발을 드러내 보이듯이 보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를 전생을 기억하는 자 (pubbenivasarn anussarant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담마상가니 주석서」에 의하면 그는 아비담마의 대가였던 것 같다. (DhsA.32)
4-10.
"율을 호지하는 자들 가운데서 우빨리가 으뜸이다."
* 우빨리(Upali) 존자는 삘라왓투의 이발사 가문(kappaka-geha)에 태어났다.
그는 사까의 아누삐야(Anupiya)에서 밧디야(Bhaddiya), 아누룻다(Anuruddha),
아난다(Ananda), 바구(Bhagu), 낌빌라(Kimbila), 데와닷따(Devadatta) 같은
사꺄 족의 왕자들과 함께 출가하였으며 세존으로부터 명상주제를 받아 수행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율장에 의하면 부처님 생전에도 비구들은 그에게서 율을 배우고 싶어할 정도로
그는 율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로 추앙을 받았으며
개인적인 어 려움을 우빨리 존자와 상의하는 비구들도 많았다고 한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율장의 결집을 주도한 사람이며
북방에서도 지계제일로 부처님의 10 대 제자에 포함된 분이다.
본경에서도 세존께서는 그를 율을 호지하는 자 (vinaya-dhara)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칭찬하고 계신다.
4-11.
"비구니들을 교계하는 자들 가운데서 난다까가 으뜸이다."
* 난다까(Nandaka) 존자는 본서 「산하 경」(A3:66) §1의 주해를 참조할 것
※ 난다까 존자(ayasma Nandaka)는 본서 「하나의 모음」 (Al:14:4-11)에서
비구니들을 교계하는 자(bhikkhun-ovādak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거명된 분이다.
부처님의 권유로 비구니들에게 설법을 하였는데
첫째 날에 그들은 예류과를 증득하였고
둘째 날에는 500명이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사왓티의 부유한 장자 집안 출신이고 제따와나를 헌정하는 날에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출가하여 오래지 않아서 아라한이 되었다 고 한다. (AA.i.312, 등)
그와 관계된 몇몇 경들이 전승되어 온다.
4-12.
"감각기능들의 문을 잘 보호하는 자들 가운데서 난다가 으뜸이다."
* 난다(Nandaka) 존자는 본서 「살하 경」 (A366) §1의 주해를 참조할 것.
난다(Nanda) 존자는 세존의 이복동생으로 숫도다나(정반) 왕과 마하빠자빠띠
(Mahapajapati) 왕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처님이 까삘라를 방문하시던 삼일 째
되던 날은 난다가 태자의 대관식 겸 자나빠다깔랴니 난다(Janapadakalyani Nanda,
절세미인 난다라는 뜻)와 결혼식을 올리던 날이었다.
세존께서는 난다를 데리고 와서 출가하게 하였다. 세존의 말씀을 거절하지 못한 난다는
출가는 하였지만 아내 생각 때문에 몸도 상하고 의기소침하게 되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신통력으로 난다를 데리고 히말라야로 가서 암 원숭이를
가리키시면서 저 원숭이와 그의 아내 중에서 누 가 더 예쁘냐고 하시자
당연히 난다는 그의 아내 자나빠다깔랴니가 훨씬 예쁘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를 삼십삼천으로 데리고 가셔서
신들의 왕 인드라가 요정들과 노는 것을 보여주시면서 저 요정들과 아내 중에
누가 더 예쁘냐고 물으신다. 난다가 요정들이 훨씬 아름답다고 대답하자
세존께서는 중노릇을 잘하면 저 요정들 가운데 한 사람을 아내로 맞을 수 있다고
하신다. 그래서 난다는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고 한다.
제따 숲으로 돌아온 세존께서 장로 비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알려주셨고
장로 비구들이 난다에게 사실이냐고 묻자 그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가득하게 된다.
그래서 열심히 정진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난다 존자는 스스로를 잘 제어하고 육근을 잘 방호하고 단속하였기 때문에
세존께서는 그를 감각기능들의 문을 잘 보호하는 자(indriyesu gutta- dvara)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칭찬하신 것이다.
4-13.
"비구들을 교계하는 자들 가운데서 마하깝삐나가 으뜸이다."
* 마하깝삐나(Maha-Kappina) 존자는
꾹꾸따와띠(Kukkutavati)라는 변방에 있는 나라의 왕가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죽자 마하깝삐나라는 이름의 왕이 되었다.
그는 세존보다 나이가 많았다고 한다. 세존이 정각을 이루신 뒤에 사왓티에서 온
상인들로부터 부처님이 출현하셨다는 말을 듣고 전율을 느낀 그는 왕위를 버리고
그의 대신들과 함께 세존을 찾아와서 출가하여 모두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아내 아노자(Anoja)도 왕이 대신들과 함께 출가하였다는 말을 듣고
대신들의 아내들과 함께 역시 줄 가하여 예류과를 얻었다고 한다.
마하깝삐나 존자는 홀로 禪을 닦는 것에만 치중하였다고 하는데
이를 아신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라고 권하셨고
그는 단 한 번의 설법으로 천 명의 비구들을 아라한이 되게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를 두고 비구들을 교계하는 자(bhikkhu-ovādaka)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칭찬하신 것이다.
4-14.
"불의 요소에 능숙한 자들 가운데서 사가따가 으뜸이다."
* 사가띠(Sagata) 존자는
소나 꼴리위사(위 A1:14:2-8 주해 참조)가 빔비사라 왕을 만나러 왔을 때
부처님의 시자로 있었다고 한다. 그는 신통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는 밧다와띠까(Bhaddavatika)에서 암바띳타(Amba -tittha)라는 용의 맹렬한
화염(tejo)을 화염으로 제압하여 그를 굴복시켜서 신도들로부터 크게 칭송을 들었다.
그 뒤 세존을 모시고 꼬삼비를 가자 그의 소문을 들은 신도들이 육군비구(六群比丘)들의
선동으로 술을 공양 했고 그는 크게 취해서 인사불성이 되어버렸다.
이를 계기로 해서 술을 마시지 말라는 비구계목이 제정되었다고 한다. (Vin.iv. 108)
다음날 자신의 잘못을 안 그는 세존께 참회를 하였고 세존의 용서를 받은 그는 수행에
몰입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용을 화염(불)으로 제압하였기 때문에
불의 요소에 능숙한 자(tejodhatu-kusal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4-15.
"[스승으로 하여금 법을 설할] 영감을 일으키게 하는 자들 가운데서 라다가 으뜸이다."
* [스승으로 하여금 법을 설할] 영감을 일으키게 하는 자'는
patibhane- yyaka를 옮긴 것인데 주석서는 “스승으로 하여금 법을 설할
영감 (patibhana)을 가지게 하는 조건이 되는(paccaya-bhuta)
영감을 촉발 시키는 비구"(AA.i.327) 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이렇게 옮겼다.
즉 스승이 법을 설할 때 대중들이 알고자 하는 것을 잘 해주시도록 인연을 만들어 주는
질문이나 행동을 하는 재능이나 재치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라다(Radha) 존자는 라자가하의 바라문이었다.
나이가 들어 아들들로부터 천대를 받자 출가를 하였다. 비구들은 나이가 많다고 거절을
하였지만 세존께서 사리뿟따의 제자로 출가를 하게 하셨다.
그는 출가한지 오래지 않아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세존께서는 라다 존자를 보면 설법의 주제를 다루는 방법이나 그것을 드러내 보이는
여러 가지 비유가 잘 떠올랐다고 하는데 그것은 라다의 견해가 풍부하였고(ditthi
-samudacara) 그가 세존께 확고한 믿음(okappa- niya-saddha)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스승으로 하여금 법을 설할] 영감을 일으키게 하는 자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칭송되는 것 이다. 라다 존자는 잠시 부처님의 시자가 되기도 하였다.
4-16
"남루한 옷을 입는 자들 가운데서 모가라자가 으뜸이다."
* 모가라자(Mogharaja) 존자는 「숫따니빠따」 제5장 「도피안 품」에 나타나는
연로한 바와리(Bavari) 바라문의 16명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바라문 출신이었다.
그는 그가 「도피안 품」에서 세존께 드린 질문에 대한 세존의 답변을 듣고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가라자 존자는 검증(vinsa)만으로
아라한이 된 사람의 본보기로 언급되기도 한다. (SA.iii.256)
그 후 그는 대상이나 염색이나 옷 만드는 사람들이 버린
거친 천을 거칠게 자르고 거칠게 꿰매고 거칠게 물들여 분소의를 만들어 입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를 남루한 옷을 입는 자(lakha-civara-dhara) 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칭찬하시는 것이다.
(5) 다섯 번째
* 장로니들 가운데서 으뜸가는 13분을 들고 있다.
5-1.
"비구들이여,
나의 구참 비구니 제자들 가운데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으뜸이다."
* 마하빠자빠띠 고따미(Mahapajapati Gotami) 장로니는
데와다하 (Devdaha)의 숩빠붓다(Suppabuddha)의 딸이며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하마야(Mahāmaya) 부인의 동생이기도 하다.
마하마야 부인이 세존을 낳은 지 7일 만에 돌아가시자 세존을 양육하였으며
세존의 아버지인 숫도다나 왕과 결혼하여 세존의 계모가 되었다.
숫도다나 왕 사이에서 난다(Nanda, 위 A1:14:4-12 주해 참조)를 낳았는데
난다는 유모에게 맡기고 자신은 세존을 돌봤다고 한다.
세존께서 사꺄 족과 꼴리야 족 사이에 로히니 강물 때문에 일어난 분쟁을 중재하러
오셨을 때 500명의 사꺄 족 남자들이 출가하였다.
1) 마하빠자빠띠는 그들의 아내들과 함께 세존께 여인들도 출가하게 해달라고
간청을 하 였지만 세존께서는 거절하셨다.
2) 세존께서 웨살리로 가시자 그녀는 500명의 여인들과 함께 맨발로 웨살리까지 가서
간청을 하였지만 세존께서는 역시 거절하셨다.
3) 아난다 존자가 그녀의 편을 들어서 팔경계법으로 중재를 하여
마침내 비구니 교단이 성립되게 되었다.(Vin.ji.253ff, A.iv.2740)
그래서 마하빠자빠띠 장로니는 비구니들 가운데서 가장 구참(rattanna)이 된다.
5-2.
"큰 통찰지를 가진 자들 가운데서 케마가 으뜸이다."
* 케마(Khema) 장로니는
맛다(Madda) 지방에 있는 사갈라(Sagala)의 왕족 출신이다.
그녀는 뛰어난 외모를 가졌으며 빔비사라 왕의 첫째 왕비 였다.
세존께서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Veluvana)에 머무실 때
세존께서는 형상의 덧없음을 말씀하신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외모도 덧없다고 말씀하실 거라 여기고 세존을 뵈러 가지 않았다고 한다.
빔비사라 왕의 설득 으로 세존을 뵈러갔는데
세존은 그녀의 면전에 그녀보다 훨씬 아름다운 천상의 요정을 만들어서
그 요정이 점점 늙어서 형편없이 되어 쓰러져 죽는 모습을 보이게 하셨다.
그것을 본 그녀는 낙담에 빠졌고 부처님께서는 그녀에게 형상의 덧없음을 설하셨다.
세존의 설법을 듣고 그녀는 아라한이 되었다고 하며 왕의 허락을 받아서 출가하였다고
한다. 케마 장로니는 여러 곳에서 비구니들 가운데서 제일로 칭송되었으며
여기서도 세존께서 는 지혜제일이라 칭찬하신다.
5-3.
"신통력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웁빨라완나가 으뜸이다."
* 웁빨라완나(Uppalavannā) 장로니는
사왓티에서 상인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피부가 청련(uppala)과 같아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녀는 아름다워서 많은 왕들로부터 청혼을 받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출가하기를 원했고
그녀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출가하여 포살일에 등불을 켜고 집회소를 청소하면서
그 등불의 불꽃을 광명의 까시나(tejo-kasina)로 하여 禪을 증득하였고 무애해를 갖춘
아라한이 되었다 한다.
웁빨라완나 장로니는 특히 변형의 신통(iddhi- vikubbana, 「청정도론」
XII.22~24 참조)에 능했다고 한다.
사리뿟따 장로와 마하목갈라나 장로가 부처님의 두 비구 상수제자이듯
이 경에서 케마장로니와 웁빨라완나 장로니는 부처님의 두 비구니 상수제자로 거명된다.
5-4.
"율을 호지하는 자들 가운데서 빠따짜라가 으뜸이다."
* 빠따짜라(Patacara) 장로니는 사티의 상인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하인과 눈이 맞아서 도망을 쳐서 살았는데 해산일이 가까워지자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다시 되돌아갔고
두 번째 아이를 낳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뒤 남편은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뱀에 물려 죽고
그녀는 두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다가 강에서 두 아이를 다 잃어버렸으며
겨우 사왓티로 갔을 때 바로 전날 밤에 불이 나서 아버지도 형제도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내 그녀는 미쳐서 돌아다니느라 옷도 모두 벗겨져버렸다.
사람들이 외투를 주어도 입지 않았다.
그래서 옷(pata)도 걸치지 않고 다닌다(pataparihara- narm vina carati)고 해서
빠따짜라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다.
미쳐서 이리저리 다니다 마침내 그녀는 제따 숲으로 오게 되었고
사람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세존께로 다가갔다.
세존은 연민 가득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말씀을 건넸고
세존의 자비심에 감복되어 그녀는 정신이 들어서 땅에 쓰러졌다.
깨어나서 사람들이 준 외투를 걸친 뒤 세존이 하신 말씀을 듣고 예류자가 되어
출가하였다. 어느 날 물에 손을 씻다가 세존의 말씀을 듣고 아라한이 되었다.
그 후 빠따짜라 장로니는 많은 여인들에게 훌륭한 스승이 되었으며
세존으로부터 율을 호지하는(vinaya-dhara) 비구니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칭찬을 받게 된 것이다.
5-5.
"법을 설하는 자들 가운데서 담마딘나가 으뜸이다."
* 담마딘나(Dhammadinnā) 장로니는
라자가하의 거부 위사카(Visakha) 장자의 아내였다.
(사왓티에 사는 녹자모의 남편 위사카가 아님)
그녀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불환자가 되어 남편의 동의를 받아 출가하였다.
남편은 그녀를 황금 가마에 태워서 출가시켰다고 한다.
출가하여 숲 속에서 홀로 거주하며 수행을 하여 무애해를 갖춘 아라한이 되었다.
아라한이 되어 라자가하로 세존을 뵈러갔다가 남편을 만나서 나눈 대화가
「맛지마 니까야」 「짧은 방등경」(M44)이다.
비구니의 설법이 경으로 남은경우는 드문데 「짦은 방등경」은 담마딘나 장로니의
깊은 통찰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멋진 경이다.
이 경을 통해서 왜 세존께서는 담마딘나 장로니가 설법제일이라고 칭찬하셨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5-6.
"禪을 얻은 자들 가운데서 난다가 으뜸이다.
* 난다(Nanda) 장로니는
숫도다나(정반) 왕과 마하빠자빠띠 왕비 사이에서 난 딸이었다.
그래서 난다 존자(위 Al:14:4-12 주해 참조)의 여동생이며
세존의 이복 여동생이기도 하다.
그녀가 자신의 미모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아신 부처님이 그녀를 위해서 하신
설법을 듣고 외모의 헛됨을 깨닫고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난다 장로니는 루빠난다 (Rupananda)라고도 불린다.
아라한이 된 후 禪에 들기를 좋아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난다 장로니를 禪을 얻은(jhayi) 비구니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칭찬하시는 것이다.
마하빠자빠띠 왕비가 출가할 때 함께 출가한 여인들 가운데 세 명의 난다가 있었는데,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본문의 난다 장로니는 순다리 (Sundari)난다 혹은
루빠난다라 불렀고 난다 존자의 아내였던 난다는 자나빠다니 난다라 불렀고
사꺄족 케마의 딸인 난다는 아비루빠 (Abhirupa)난다라고 불렀다.
전부 뛰어난 미인이라는 의미이다.
5-7.
"열심히 정진하는 자들 가운데서 소나가 으뜸이다."
* 소나(Sona) 장로니는
사왓티의 덕망 있는 가문에 태어났는데 결혼하여 많은 아들과 딸을 낳았다.
그래서 바후뿟띠까(Bahuputtika, 많은 아들을 가진 소나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녀는 나이 들어서 재산을 모두 아들들에게 나누어주었지만 아들들의 무시를 당하자
늦은 나이에 출가하였다 한다.
낮에는 비구니들을 시봉하고 밤에는 열심히 정진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한다.
그래서 그녀는 열심히 정진하는 자(āraddha-viriya)들 가운데 으뜸 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5-8.
"천안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사꿀라가 으뜸이다."
* 사꿀라(Sakula) 장로니는 사티의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났다.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것을 듣고 출가하여 오래지 않아서 아라한이 되었다.
그 후 사꿀라 장로니에게는 천안이 생겼으며
세존께서는 천안을 가진(dibba- cakkhuka) 비구니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하셨다.
5-9.
"빠르게 최상의 지혜(초월지)를 얻은 자들 가운데서 곱슬머리 밧다가 으뜸이다."
* 곱슬머리 밧다(Bhadda Kundalakesa) 장로니는 라자가하의 부유한 상인의
집에 태어났다. 그녀가 태어나던 날 라자가하의 궁중제관에게도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이름을 삿뚜까(Sattuka)라 하였다.
그 아이는 커서 손버릇이 좋지 않아 늘 도적질을 하다가 마침내 잡혀서 라자가하 성 밖에서
교수형에 처하기 위해서 끌려 나가게 되었다.
그런 그를 보고 밧다는 첫눈에 반해서 아버지에게 간청을 하였고
아버지는 뇌물을 써서 뚜까를 구출해서 그녀에게 데리고 왔다.
그녀는 사랑에 빠졌지만 그 남자는 밧다의 장신구가 탐이 나서 밧다를 꼬드겨
절벽으로 데리고 갔다. 삿뚜까가 그녀를 죽이려 하자 밧다는 마지막으로
그를 한번 안아보고 싶다고 하고는 그의 뒤로 가서 그를 밀어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인 뒤 니간타 교단으로 출가했다.
그래서 고행으로 머리를 모두 다 뽑아버렸는데 나중에 곱슬머리가 다시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곱슬머리 밧다라 불리게 되었다.
그녀는 니간타의 가르침에 만족하지 못하고 각지를 다니면서 여러 수행자들을 만나
토론하여 그들을 모두 논파할 정도로 출중하였다.
그러나 후에 사리뿟따 존자를 만나서 사리뿟따 존자에게 논파당한 뒤
사리뿟따 존자의 제자가 되고자 하였으나 존자는 그녀를 부처님께로 인도하였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그녀는 즉시에 아라한이 되었으며 부처님께서
직접 구족계를 주셨다. 세존의 말씀을 즉시 알아듣고 아라한이 되었기 때문에
빠르게 최상의 지혜를 얻는(khippa-abhinñā) 비구니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세존께서는 칭찬하신 것이다.
5-10.
"전생을 기억하는 자들 가운데서 밧다 까뻴라니가 으뜸이다."
* 밧다 까삘라니(Bhaddā-Kapilāni) 장로니는
사갈라의 꼬시야곳(Ko- siyagotta) 바라문의 딸이면서
마하깟사빠 존자의 재가시절 아내이기도 하다.
마하깟사빠 존자는 재가시절에 팔리 바라문 학도(Pipphali manava)라 불렸는데
결혼을 하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그림을 그려 이렇게 생긴 여인과 결혼하겠다고 하였는데
사람들이 밧다 까삘라니를 찾아냈다고 한다.
그들은 결혼하여 함께 살았지만 부부관계를 맺지 않았으며
깟사빠 존자가 출가하자 그녀도 따라서 출가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는 아직 비구니 승가가 형성되지 않았을 때라서
그녀는 제따 숲 근처의 띳티야 원림(Titthiyarama)에서 5년을 머문 뒤에
비구니 교단이 성립되자 비구니 계를 받고 출가하여 곧 아라한이 되었으며
아라한이 된 뒤에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가 생겼다고 한다.
5-11.
"위대한 최상의 지혜(초월지)를 얻은 자들 가운데서 밧다 깟짜나가 으뜸이다."
* 밧다 깟짜나(Bhadda Kaccanā) 장로니는
다름 아닌 세존의 아내였고 라훌라 존자의 어머니였다.
장로니는 경과 주석서에서 밧다 깟짜나라는 이름보다는
라훌라의 어머니(Rahulamatā)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
장로니는 야소다라(Yasodhara), 빔바데위(Bimbadevi), 빔바순다리(Bimbasundari)
등으로도 나타나며 북방 문헌에는 야소다라로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녀는 세존과 같은 날에 태어났다고 하며 몸이 황금(kaccana) 빛이었기 때문에
밧다 깟짜나로 불리었다고 한다. (바라문 족성인 깟짜나 가문과는 아무 관련이 없음)
16살에 세존과 결혼을 하였고 라훌라를 낳은 날에 세존은 출가를 하였다.
그녀는 숫도다나 왕이 서거한 뒤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와 500명의 사꺄 여인들과 함께
출가하였다. 출가한 뒤에 아라한이 되었고 최상의 지혜(초월지)를 얻어
한 자리에 앉아서 수백 수천 겁 이전을 기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위대한 최상의 지혜를 얻은(mahā- bhinñappatta) 비구니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세존께서 칭찬하시는 것이다.
5-12.
"남루한 옷을 입는 자들 가운데서 끼사고따미가 으뜸이다."
* 끼사고따미(Kisāgotami) 장로니는 사티의 가난한 집안 출신이다.
그녀는 아주 말랐기 때문에 끼사(kisa)라고 불리었고 고따미는 이름이었다.
그녀는 부잣집에 시집가서 구박을 받았지만 사내아이를 낳자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막 걸을만했을 때 아이는 죽어버렸다.
그녀는 죽은 아이를 허리에 끼고 거의 미쳐서 아들을 살리려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녀를 불쌍히 여긴 사람들이 세존께로 보내었고
세존께서는 아직 사람이 죽은 적이 없는 집안에서 겨자씨를 구해오면 아들을
살려주겠노라고 하셨다.
그녀는 하루 종일 그런 겨자씨를 구하러 다녔지만 헛수고였다.
그녀는 마침내 죽음은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아이를 공동묘지에 내려놓고
세존께 와서 출가하도록 허락해달라고 하였다. 그때 그녀는 예류과를 얻었다.
출가한 뒤 어느 날 그녀가 깊게 위빳사나를 닦고 있는데
세존께서 광휘로운 모습으로 오셔서 설법하셨고 그래서 아라한이 되었다.
그 후 그녀는 항상 남루한 옷을 입고(lukha-civara-dhara) 다녔기 때문에
세존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신 것이다.
5-13.
"신심이 깊은 자들 가운데서 시갈라마따가 으뜸이다."
* 시갈라마따 (Sigalamata) 장로니는 라자가하의 상인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결혼하여 시갈라(Sigala 혹은 Sigālaka)라는 아이를 낳았다.
그래서 승단에서도 시갈라마따(시갈라의 어머니)라 불리게 되었다.
그녀는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출가하였다.
세존에 대한 지극한 믿음을 가졌는데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그 믿음을 깨달음으로 승화시키도록 가르침을 베푸셔서
그녀는 마침내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갈라마따 장로 니는 신심이 깊은 자(saddhādhimutt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6) 여섯 번째
* 남자 신도들 가운데서 으뜸가는 열 사람을 들고 있다.
6-1.
"먼저 나의 가르침에 귀의한 남자 신도제자들 가운데서 따빳수와 발리까 상인이 으뜸이다."
* 따빳수(Tapassu)와 발리까(Bhallika)는 욱깔라(Ukkala) 지방의 상인이 었는데
세존께서 깨달으신 후 8주째에 녹야원을 향하고 계실 때
라자가하 를 향하다가 라자야따나(Rajayatana) 나무 아래서 쉬고 계시는 세존을 뵙고
세존께 떡과 꿀을 공양올린 뒤 첫 번째 재가신도가 되었다.
6-2.
"보시자들 가운데서 수닷따 급고독 장자가 으뜸이다."
* 수닷따 급고독 장자(Sudatta gahapati Anāthapindika)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 「수닷따 경」 (A4:58) §1의 주해를 참조할 것.
※ 급고독 장자(Anathapindika gahapati)는 부처님 당시 제일의 재가신도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본서 제1권 「하나의 모음」 (A1:14:6-2)에서
보시자(dayaka)들 가운데서 제일이라고 언급되고 있다.
그는 사왓티의 상인이었으며 무의탁자(anātha)들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었기
때문에 급 고독(孤獨, Anathapindika, 무의탁자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자)이라는
급고독 장자가 세존을 처음 뵌 것은 세존께서 성도하신 다음 해에
그가 사업상 라자가하를 방문했을 때라고 한다. (Vin.ii.154.; SA.i.240. 등)
그래서 그는 일찍부터 세존의 신도가 되었다.
이 급고독 장자가 제따 왕자와 함께 승단에 기증한 사원의 이름이
바로 사왓티에 있는 제따 숲(祇園)의 급고독원이다.
이것은 세존 성도 후 21년째 되는 해의 일이다.
6-3.
"법을 설하는 자들 가운데서 맛치산다의 찟따 장자가 으뜸이다."
* 맛치까산다의 찟따 장자(Citta gahapati Macchikasandika)는
까시 (Kasi)에 있는 맛치까산다의 상인이다.
그가 태어나는 날 여러 가지 (citta) 꽃비가 흩날렸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 한다.
그는 5비구 가운데 한 분인 마하나마 장로(아래 나타나는
삭까의 왕인 마하나마가 아님)를 뵙고 자신의 망고 원림(Ambātakarama)에
정사를 짓고 머물게 하였으며 마하나마 장로로부터 법을 듣고 불환과를 얻었다.
그 후 많은 비구들이 망고 원림을 방문하여 그의 환대를 받았다.
그가 여러 장로 비구들과 나눈 대화가 『상윳따니까야』의 「찟따 상응」 (S41)에
전해오는데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경들은 왜 부처님께서 그를 두고 법을 설하는 자
(dhamma-kathik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칭찬하셨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보기가 된다.
찟따와 다음의 핫타까는 본서 「발원 경」3(A2:12:3)과 본서 제2권
「부 경」(A4:176) 83에서 본받아야 할 대표적인 남자 신도로 거명되고 있다.
6-4.
"네 가지 섭수하는 행위[四攝事]로 회중을 잘 섭수하는 자들 가운데서
알라위의 핫타까가 으뜸이다."
* 네 가지 접수하는 행위(sarigaha-vatthu, 四攝)와 알라위의 핫타에 대해서는
본서 「알라와까 경」 (A3:34) §1의 주해를 참조할 것.
※ 사섭사(四攝事)라고도 한다.
① 보시(布施):진리를 가르쳐 주고(法施), 재물을 기꺼이 베풀어 주는 일(財施),
② 애어(愛語):사람들에게 항상 따뜻한 얼굴로 대하고 부드러운 말을 하는 일,
③ 이행(利行):신체의 행위(身業), 언어행위(口業), 정신행동(意業)의 3업에 의한 선행으로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일,
④ 동사(同事):자타(自他)가 일심동체가 되어 협력하는 일
※ 알라위의 핫타까(Hatthaka) 왕자는
본서 「하나의 모음」(A1:14:6-4)에서 사섭법을 실천하는 자들 가운데
최상이라고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본서 「발원 경」3(A2:12:3)에서 재가자들이 본받아야 할 사람으로
부처님께서 말씀하고 계실만큼 그는 뛰어난 재가자였다.
그는 알라위 왕의 아들 이었으며
그가 아이였을 때 알라와까의 약카(Yakkha, 야차)에게 먹힐 뻔 했던 것을
세존께서 구해주셨으며
약카가 손으로 그를 세존의 손에 놓아 주었기 때문에 핫타까(hattha는 손을 뜻함)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AA.i.391) 그만큼 세존과 인연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커서 세존의 법문을 듣고 불환과를 얻었으며 500명의 재가자들을 거느렸다고
한다. (AA.i.392; SnA.240) 그와 관련된 몇몇 경들이 초기경에 전해온다.
DPPN은 본서 「핫타까 경」 (A3:125)에 나타나는 신의 아들 핫타까는
바로 이 핫타까 왕자가 죽어서 무번천(Aviha)에 태어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6-5.
"뛰어난 보시를 하는 자 가운데서 사꺄 족의 마하나마가 으뜸이다."
* 마하나마(Mahānama)는 사꺄의 왕이었으며 아누룻다 존자의 형이기도 하다.
그에 대해서는 본서 「마하나마 경」 (A3:73) §1의 주해를 참조할 것.
※ 마하나마(Mahānāma)는 사꺄족 왕의 한 사람이었으며
아누룻다(Anu- ruddha)존자의 형이고 세존의 사촌이 된다.
본서 「하나의 모음」 (A1:14:6-5)에서 그는 맛난 공양을 승가에 올린 자들 가운데
제일이라고 언급되고 있을 정도로 정성을 다하여 세존을 모시고 승가를
후원하였다.
여러 문헌(DhpAi.339; J.i.133; iv.144 등)에 의하면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부처님과 인척 관계를 맺고 싶어 하였으며 그래서 사꺄의 딸과 결혼 하고자 하였다.
자부심이 강한 사꺄족은 마하나마와 하녀 사이에서 난 딸인
와사바캇띠야(Vāsabhakhattiya)를 보냈으며,
이들 사이에서 난 아들이 바로 위두다바(Vidudabha) 왕자이다.
위두다바 왕자가 커서 까삘라 왓투를 방문하였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 격분하였고,
그래서 후에 위두다바는 사꺄를 정복하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참한 살육을 하였다고 한다.
6-6.
"마음에 흡족한 보시를 하는 자들 가운데서 웨살리의 욱가 장자가 으뜸이다."
* 웨살리의 욱가 장자(Ugga gahapati Vesalika)의 원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키가 크고 덕스러운 성품을 가졌기 때문에 욱가(ugga, 고상한) 상인이라고 불리었다
한다.
그는 세존을 처음 뵙고 예류과를 얻었고 뒤에는 불환과를 얻었다고 한다.
본서 제3권 「마음에 흡족한 공양을 올리는 자 경」은 (A.ji.49~51)은
왜 그가 마음에 흡족한 공양을 올리는 자 (manapa-dayaka)들 가운데 으뜸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보기이다.
6-7.
"승가를 시봉하는 자들 가운데서 욱가따 장자가 으뜸이다.”
* 욱가따 장자(Uggata gahapati)는 왓지(Vajji)에 있는 핫티가마(Hatthi -gama)의
장자이다.
한번은 세존께서 유행을 하시다가 핫티가마의 나가 와누나(Nagavanuyyana)에
머무셨는데
그는 7일 동안 계속되는 그 지방의 축제에서 흥청망청 마시며 무희들과 놀다가
부처님의 모습을 뵙고 정신이 들어 자신을 크게 부끄러워하였으며
세존의 설법을 듣고 바로 불환과를 얻었다.
그 뒤로는 무희들을 멀리하고 승가를 시봉하는 일에 몰두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를 증가를 시봉하는 자(saigh- upatthaka)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칭찬하시는 것이다.
6-8.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수라 암밧타가 으뜸이다.”
* 수라 암밧타(Sura Ambattha)는 사왓티의 상인이었다.
그는 외도를 섬기고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그의 집에 탁발을 오시자 공양을 올리고
설법을 듣고 예류과를 얻었다고 한다.
세존이 떠나시고 나서 마라가 세존의 모습을 하고 그에게 와서 말하기를,
아까 모든 형성된 것은 무상하고 고통스럽고 무아라고 했는데
그것은 형성된 것 가운데 어떤 특정한 것만이 그러하지
모든 형성된 것이 무상하고 고통스럽고 무아인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세존에게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마라라는 것을 알고
물리쳤다고 한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를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가진 자(avecca-ppasanna)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칭찬하신 것이다.
6-9.
"사람들을 신뢰하는 자들 가운데서 지와까 꼬마라밧차가 으뜸이다."
* 지와까(Jivaka Komārabhacca)는
부처님의 주치의로 잘 알려진 부처님 당시의 명의(名醫)이다.
중국에서는 지와까를 기구(耆舊)로 음역하기도 하였고
꼬마라밧짜를 수명(壽命)이나 수명동자(壽命童子)로 의역하기도 하였다.
그는 라자가하의 기녀였던 살라와띠(Salavati)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나자마자 광주리에 담아서 쓰레기 더미 위에 버려졌다고 한다.
빔비사라 (Bimbisara) 왕의 아들이며 아자따삿뚜와는 이복형제인 아바야(Abhaya)
왕자가 이를 발견하고,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가 묻자, '그는 아직 살아있습니다(jivati)'라고 대답하여서
그의 이름이 지와까가 되었으며, 왕자 (kumara)에 의해서 양육되었다(posapita)고 해서
꼬마라밧짜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설명에 의하면 그는 소아과 전문의 (Kaumara-bhrtya)였다고도 한다.(VT.ji.174)
그는 자라서 그의 출신에 대해서 알게 되자 아바야 왕자 몰래 딱까실라 (Takkasila)로 가서
7년 동안 의술을 배웠다고 한다. 공부를 마치고 라자가하로 돌아와서는
빔비사라왕의 고질병을 치료하여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왕과 궁중의 주치의로 임명이 되었고 부처님과 승가의 주치의 역 할도 하였다.
아버지 빔비사라왕을 시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아자따삿뚜도 지와까를 주치의로 삼아서
가까이에 두었다.
6-10.
"[나와] 친근한 자들 가운데서 나꿀라삐따 장자가 으뜸이다."
* 나꿀라삐따 장자(Nakulapita gahapati, 나꿀라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 「어울리는 삶 경」1(A4:55) §1의 주해를 참조할 것.
※ 나꿀라삐따(nakulapita, 나꿀라의 아버지)와 나꿀라마따(Nakulamāta,
나꿀라의 어머니)는 박가(Bhagga)의 수마라기리(Surnsumāragiri)에 살고 있었으며
세존께서 베사깔라 숲(Bhesakalāvana)에 오셔서 머무실 때
처음으로 세존을 찾아가 뵙고 발에 엎드려 "아들이여, 왜 이렇게 늦게 오셨습니까?"ㅋ라고
하면서 좋아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500생을 부처님의 부모였고 500생은 부처님의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였고
500생은 부처님의 작은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였다고 주석서는 적고 있다.(AA.iii.95)
본서 「하나의 모음」(A1:14:6-10과 7-9)에서 세존께서는
나꿀라삐따와 나꿀라마따를 두고 친근한 자(vissasak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하시는 데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세존께서는 그들에게 법을 설하셨고 그들은 예류과를 얻었다고 한다.
나꿀라삐따와 나꿀라마에게 설하신 경들이 몇 개 가 있는데
그만큼 부처님과 인연이 많았던 부부였고 본서에서 보듯이 금슬이 좋은 부부였다.
(7) 일곱 번째
* 여자 신도들 가운데서 으뜸가는 열 사람을 들고 있다.
7-1.
"먼저 나의 가르침에 귀의한 여자 신도[淸信女] 제자들 가운 데서
세나니의 딸 수자따가 으뜸이다."
* 세나니의 딸 수자따(Sujata Senanidhita)는
고행을 버리신 세존께 우유 죽을 공양 올린 바로 그 수자따이다.
그녀는 우루웰라(Uruvella) 세나니 마을의 땅주인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마을 주위에 있는 보리수나무의 목신에게 만일 아들을 낳게 해주면
우유죽을 바치겠다고 빌었따고 마침내 아들을 낳자 하녀를 시켜서 목신에게 우유죽을
바치게 했다.
그날 세존께 서는 고행을 버린 뒤 그 나무 아래 앉아 계셨는데
하녀는 그분이 목신의 화현이라 믿고 기뻐하며 수자에게 일렀다.
수자따는 황금 그릇에 우유 죽을 담아서 공양을 올렸으며
세존께서는 49일 만에 처음으로 음식을 드시고
그날 저녁(정확히 다음날 새벽)에 깨달음을 증득하신 것이다.
본경에 해당하는 주석서는 야사(Yasa) 존자(오비구를 제외한 첫 번째 출가제자)가
수자따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야사 존자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아라한이 되었는데
그를 찾아서 달려온 그의 아버지의 초청으로 세존께서는 야사 존자와 함께
그의 집에 가서 공양을 받고 법을 설하셔서 부부는 예류과를 얻었다고 한다.
그때 수자따는 여자 신도로는 처음으로 불 · 법 · 승 모두에 귀의하는 삼귀의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수자따를 첫 번째 여자신도로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주석서는 밝히고 있다.
7-2
"보시자들 가운데서 미가라마따(녹자모) 위사카가 으뜸이다."
* 미가라마따 위사카(Visākhā Migaramáta)에 대해서는 본서 「족쇄 경」 (A2:4:5)의
주해를 참조할 것.
※ 위사카(Visakha)는 앙가(Ariga)의 밧디야(Bhaddiya)에서 다난자야라는
아주 부유한 장자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렸을 때 자기 고장으로 오신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예류과를 얻었다고 한다.
뒤에 아버지가 꼬살라의 사께따로 이사를 가게 되어 사께따에 정착해서
살았으며 그래서 사왓티의 미가라(Migara)와 결혼하였다고 한다.
위사카는 본서 「하나의 모음」 (A1:14:7-2)에서 보시하는 여신도들 가운데
최상이라고 부처님께서 칭송하신 여신도다.
위시카는 미가라의 아내였다. 그런데도 위사카가 미가라마따(Migara- mata)
즉 미가라의 어머니(鹿子母)라고 불린 데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그녀의 남편 미가라는 니간타(Nigantha)의 열렬 신도였는데
나중에 위사카의 설득으로 휘장 뒤에서나마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예류과를 얻었 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아내에게 너무도 감사하여 '당신은 오늘부터 나의 어머니요'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위사카라는 이름보다 미가라의 어머니(미가라마따)로
더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AA.i.417)
7-3. "많이 들은 자((多聞)들 가운데서 쿳줏따라가 으뜸이다."
* 쿳줏따라(Khujjuttara)는
꼬삼비(Kosambi)의 고시따(Gosita, 고시따 원림을 지어 승가에 보시한 자)
장자의 보모로 있다가 뒤에는 꼬삼비의 우데나 왕의 첫째 왕비인
사마와띠(Samavati, 아래 주해 참조)의 하녀가 되었다.
세존이 꼬삼비에 오셨을 때 가르침을 듣고 예류과를 얻었다.
환희로 가득한 그녀를 보고 사마와띠가 전말을 묻자 모두 이야기 해주었으며
사마와띠는 그녀로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었으며, 그날부터 그녀를 자신의
어머니처럼 대했다고 한다.
사마와띠는 환희심이 생겨서 매일 그녀가 법을 듣고 와서 자신과 측근들에게
설해주도록 하였다. 그들은 쿳줏따라가 들려주는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모두 예류과를 얻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세존께서는 그녀를 많이 들은(bahussuta) 여자 신도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칭찬하시는 것이며,
본서 「발원 경」4(A2:12:4)과 본서 제2 권 「포부 경」(A4:176) 84에서 본받아야 할
대표적인 여자 신도로 쿳줏따라와 난다마따(난다의 어머니)를 거명하고 계신다.
7-4.
"자애가 가득한 마음으로 머무는 자들 가운데서 사마와띠가 으뜸이다."
* 사마와띠(Samavati)는 꼬삼비의 우데나 왕의 첫째 왕비였다.
그녀는 밧다와띠(haddavati)의 밧다와띠야 장자의 딸이었는데
그곳에 질병이 돌자 장자는 가족을 데리고 친구인 고시따(Ghosita 혹은 Ghosaka)가
살고 있는 꼬삼비로 피난을 왔다고 한다.
난민 수용소에 있던 첫날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둘째 날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녀를 불쌍히 여긴 밋따 (Mitta)의 양녀가 되었다고 한다.
후에 우데나 왕이 그녀에게 반해서 결혼을 하였으며 첫째 왕비가 되었다.
그녀는 쿳줏따라를 통해서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환희심이 생겼으며,
이를 안 둘째 왕비이자 부처님을 싫어한 마간디야(Magandiya, 그녀의 아버지가
세존께 마간디야를 시집보내려 하였으나 세존이 거절하여 그녀는 세존께 앙심을 품고
있었다고 함)의 모함과 계략에 휘말려 끝내 그녀와 500명의 측근들은 모두 불에
타 죽고 말았다고 한다. 뒤늦게 이를 안 우데나 왕이 부처님께 그들에 대해서 묻자
세존께서는 그들은 모두 예류과 이상을 얻은 자들이라고 하셨다.
사마와띠는 마간디야가 쏜 화살을 자애의 마음으로 무력하게 만들기도 하였으며
그녀의 계략으로 끝내 죽음을 맞았지만 끝까지 그녀에 대해서 증오심을 내지 않고
자애의 마음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사마 와띠를 자애가 가득한 마음으로 머무는 자(metta-vihari)들
가운데서 으뜸이라 칭찬하신 것이다.
7-5.
"禪을 얻은 자들 가운데서 웃따라 난다마따(난다의 어머니)가 으뜸이다."
* 웃따라 난다마따(Uttara Nandamata)는
라자가하의 뿐나시하(Punna- siha 혹은 Punnaka) 장자의 딸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수마나(Sumana) 장자의 아들이었는데 방탕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녀는 시리마(Sirima) 라는 기녀를 남편에게 딸려주고 자신은 부처님 가르침에
충실하였다.
한 번은 포살일에 그녀가 승원에서 열심히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그녀의 남편과 시리마가 원림으로 놀러 나왔다.
그녀가 남편을 보고 미소 짓는 것을 보고 질투가 난 시리마는 끓는 기름 대야를
그녀의 머리에 부었다.
웃따라는 그 순간에 자애의 [삼매] 들어있었기 때문에
기름은 연잎의 물방울처럼 흘러내렸다고 한다.
이런 일화 때문에 세존께서는 그녀를 禪을 얻은 자(jhayi)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하셨다.
「청정도론」(XII.34) 에도 그녀는 삼매가 충만함에 의한 신통을 얻은 자의 보기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주석서는 왜 웃따라가 난다의 어머니(난다마따)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한편 본서 「발원 경」4(A2:12:4)에서는 본받아야 할 대표적인 여자 신도로
쿳줏따라와 함께 웰루깐따끼 마을의 난다마따(Veļukantakiya Nandamata)가
거명되고 있으며, 본서 제2권 「포부 경」(A4:176) 84에도 웃따라 난다마따 대신에
웰루깐따끼 마을의 난다마따로 나타나고 있다. 이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웰루깐따끼 마을의 난다마따는
아완띠(Avanti)의 웰루 깐따(혹은 웰루깐다)에 살고 있었으며
그녀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존자 에게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녀의 아들 난다가 왕의 사람들에게 잡 혀서 죽어도 그는 동요하지 않았다고 하며
네 가지 禪을 증득했고 불환과를 얻었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오히려 난다의 어머니로는 웃따라 대신에 웰루깐따끼 마을의 난다마따가
더 타당한 듯하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禪의 증득에 뛰어났던 것은 분명하다.
7-6.
"뛰어난 보시를 하는 자들 가운데서 꼴리야의 딸 숩빠와사가 으뜸이다."
* 숩빠와사(Suppavasā)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 「빠와사 경」 (A4:57) §1의 주해를
참조할 것.
※ 숩빠와사(Suppavásá)는 초기경에 자주 언급되는 릿차위
마할리(Liccha -vi Mahali)의 아내였다고도 하며(Ap.494. us. 28) 사꺄 청년의
아내였다고도 한다. (AA.i.453)
꼴리야 사람인 그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처음 듣고 바로 수다원과를
얻었다고 한다.(Ibid) 세존께서 본경을 숩빠와사에게 설하실 정도로
그녀는 훌륭한 보시자였다. 그래서 본서 제1권 「하나의 모음」(A1:14:7-6)에서는
뛰어난 보시를 하는(panita-dayika) 여자 신도들 가운데서 그녀가 으뜸이라고
언급되고 있다. 그녀는 시왈리 존자 (A1:14:2-10 주해 참조)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7-7.
"병자를 돌보는 자들 가운데서 숩삐야가 으뜸이다."
* 숩삐야(Suppiya)는 바라나시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승원에 가는 도중에 고기 죽을 먹어야 하는 중병에 걸린 비구를 보고
집에 와서 하인을 시켜 고기를 구해오라 했지만 구할 수가 없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도려내어서 고기 죽을 끓여 비구를 공양하게 하였다.
이런 이유로 세존께서는 그녀를 병자를 돌보는 자(gilanupatthaki)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칭찬하신 것이다.
세존께서는 그 사실을 알고 그녀를 위로하셨으며
세존의 말씀을 들은 그녀의 상처는 깨끗하게 아물었다고 한다.
이런 사건을 계기로 세존께서는 비구는 어떤 경우에도,
비록 상대방이 자발적으로 바친다 하더라도 사람의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율의 조목을 정하셨다. (Vin.i.216)
7-8.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까띠야니가 으뜸이다."
* 까띠야니(Katiyani)는 아완띠의 꾸라라가라(Kuraraghara)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친구 깔리(Kali, 아래 주해 참조)와 함께
소나 꾸띠깐나 Sona Kutikanna) 존자(A1:14:2-9 주해 참조)가 하는
설법을 들으러 갔다.
그새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하녀가 이를 알려주었지만
그녀는 동요하지 않고 끝까지 설법을 들어서 예류과를 얻었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던 도둑의 두목은 그녀에게 감탄을 하여 물건을 도로
가져다 두게 하였으며 다음날 찾아가서 그녀에게 사과를 하였다.
그녀는 그들을 소나 존자에게 인도하였으며 그들은 모두 출가하였다고 한다.
이런 사실 때문에 그녀는 흔들리지 않는 청정한 믿음을 가진(aveccappasannā)
여자 신도들 가운데에서 으뜸이라고 칭송되는 것이다.
7-9.
"[나와] 친근한 자들 가운데서 나꿀라마따가 으뜸이다."
* 나꿀라마따(Nakulamata, 나꿀라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 「어울리는 삶 경」1(A4:55) 81의 주해를 참조할 것.
※ 나꿀라삐따(nakulapita, 나꿀라의 아버지)와 나꿀라마따(Nakulamata,
나꿀라의 어머니)는 박가(Bhagga)의 숨수마라기리(Surnsumāragiri)에 살고
있었으며 세존께서 베사라 숲(Bhesakalāvana)에 오셔서 머무실 때
처음으로 세존을 찾아가 뵙고 발에 엎드려
'아들이여, 왜 이렇게 늦게 오셨습니까?"라고 하면서 좋아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500생을 부처님의 부모였고 500생은 부처님의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였고
500생은 부처님의 작은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였다고 주석서는 적고 있다. (AA.iii.95)
본서 「하나의 모음」 (A1:14:6-10과 7-9)에서 세존께서는 나꿀라삐따와 나꿀라마따를
두고 친근한 자(vissasak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하시는 데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세존께서는 그들에게 법을 설하셨고 그들은 예류 과를 얻었다고 한다.
나꿀라삐따와 나꿀라마에게 설하신 경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만큼 부처님과 인연이 많았던 부부였고 본서에서 보듯이 금슬이 좋은 부부였다.
7-10.
"소문을 통해서도 청정한 믿음을 일으키는 자들 가운데서 꾸라라가라의 깔리가
으뜸이다."
* 꾸라라가라의 깔리(Kali Kuraragharika)는
소나 꾸띠깐나 존자(A1:14: 2-9)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임신을 했을 때 라자가하에 갔는데 거기서
사따기라(Satagira) 약카와 헤마와따 (Hemavata) 약카가
부처님과 그분의 가르침의 탁월함을 이야기하는 것(Sn. 27쪽 이하)을 듣고
큰 환희심이 생겼으며 예류과를 얻었다고 한다.
바로 그날 밤에 그녀는 아이를 낳았는데 그가 바로 소나 꾸띠깐나존자이다.
이런 인연 때문에 그녀는
소문을 통해서 청정한 믿음을 일으킨 자(anu- ssava-ppasann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그녀는 꾸라라가라로 돌아와서 깟짜나 존자의 신도가 되었으며
소나는 깟짜나 존자의 제자로 출가를 하였다.
(제14장 으뜸 품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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