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따무카 경은
세존께서 이미 열반에 드신 후의 일로 우데나 존자가 바라나시의 케미야 망고 숲에 머무실 때,
고따무카 바라문이 어떤 일로 바라나시에 와서 숲에서 같이 경행을 하다가
'법에 부합하는 출가의 삶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존자님과 같은 분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거나 법을 보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라는 말로 우데나 존자에게 법을 묻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법을 구하는 이 바라문은 우데나 존자를 보고 어떤 것을 느껴서일 것이라
상상됩니다.
지금도 삶에서 답을 구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미 답을 구한 자'들을 보지 못하는 이유로도
많은 종교나 전승을 찾아가도 결국 그것은 그들의 믿음이요 신념이다 정도로 생각하고 말게됩니다.
바른 지혜와 바른 계행 바른 성취로써 우러나오는 '그 무엇'을 지닌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고따무카 바라문은 우데나 존자에게 '그 무엇'을 보고 발심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법에 부합하는 출가의 삶'과 같은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른 전승을 따르는 자가 '법에 부합한다.'고 할 때 일단 도대체 그 '법'이 무엇인가를 풀어서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우데나 존자는 두 가지의 설명으로 이 '법'을 드러내시는데 참으로 놀라운 지혜의 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주석은 우데나 존자에 대한 설명이 없다고 하지만 분명 법을 꿰뚫어 아시는 성취하신
아라한이실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비록 세존께서 깐다라까 경(M51)에서 설하신 내용입니다만,
그 용처(用處)를 분명히 꿰뚫고 계신 것입니다.
고따무카 바라문은 한 마디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내지 '어떻게 도닦아야 합니까?'라고
물은 것입니다. 이에 대한 우데나 존자의 답변은 이와 같습니다.
1. 학대를 기준으로 하는 4가지의 삶
1)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는 사람
- 나체수행자들과 같이 관습을 거부하고, 먹고, 입고, 자는 것에서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
→ 스스로 행복을 원하고 괴로움을 싫어하면서도, 자신을 괴롭히고 학대함
(세존께서는 고행에 대해서 염오로, 탐욕의 빛바램으로, 소멸로, 고요함으로, 최상의 지혜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2) 다른 중생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는 사람
- 도살, 사냥, 도둑질, 사형집행관, 감옥지기 내지 잔인한 직업을 가진 자
→ 다른 중생이 행복을 원하고 괴로움을 싫어하는데도, 다른 중생을 괴롭히고 학대함
3) 자신과 다른 중생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는 사람
- 권력이 있는 왕이나, 재산이 많은 장자들이 짐짓 수행자나 고행자 흉내를 내면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축생들을 죽이고, 나무나 풀을 훼손하면서, 그 일하는 사람들이
형벌과 두려움에 떨면서 눈물 흘리게 만드는 일
→ 자신과 다른 중생이 행복을 원하고 괴로움을 싫어하는데도, 자신과 다른 중생을 괴롭히고
학대함
4) 자신을 학대하지도, 다른 중생을 학대하지도 않는 사람
- 자신을 학대하지도 다른 중생을 학대하지도 않아서
1) 바로 지금여기에서 갈애가 없고,
2) 모든 오염원들이 적멸하고,
3)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오염원들이 없어 평온하고
4) 삼매와 도와 과와 열반의 행복을 경험하면서,
5) 스스로 고결하게 되어 머무는 사람
실로 이같이 보면 도닦음의 기본이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 자명한 것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2. 욕망을 기준으로 하는 2가지의 삶
1) 장식품, 여자, 땅, 재산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그를 구하는 자
2) 장식품, 여자, 땅, 재산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출가하는 자
위 학대를 기준으로 하는 자 中, 자신도 다른 이도 학대하지 않는 자는 자신을 학대하는 방법이 아니러
자신의 마음을 길들여서 팔정도를 따라 스행하는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각적 욕망의
무상하고, 그리고 결국 괴로움을 가져오는 것을, 그안에 진실로 내라할 것이 없음을 보아,
그것을 떨쳐버리고 수행의 길을 가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길들이고 팔정도를 따라 수행하는
그 첫단추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팔정도(八支聖道)는 극단으로 괴로움을 추구하는 고행(苦行)의 방법도 아니고, 극단으로 감각적 욕망
을 추구하는데 그치고 마는 쾌락(快樂)의 길 두 가지를 다 여읜 중도(中道)입니다.
우데나 존자는 놀랍게도 위 두 가지 방편으로 바로 이 팔정도를 드러내고 계신 것입니다.
고따무카 바라문은 '어떻게 도닦아야 하는가?것인가?'를 물었습니다.
전승에 따라 종교에 따라 사람에 따라 수많은 도닦는 법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법답게, 바르게' 도닦는 방법은 팔정도(八正道) 단 한가지 말고는 없습니다.
그것은 자신도 다른 이도 학대하지 않고, 감각적 욕망을 떨쳐버리고 여의고, 자신의 마음을 길들이는
것입니다,
마음을 길들여,,,
계를 지키고(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마음을 조복시키고(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
지혜를 닦는(바른 견해, 바른 사유) 것입니다.
1) 학대하는가?, 2) 감각적 욕망을 떨쳐내었는가?의 두 가지 구분으로
'법에 부합하는 출가의 삶이란 없다.'라는 고따무카 바라문의 질문에 대해서 그가 이야기하는 것이
어떤 '법'인지 상정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우데나 존자께서는 그에 대한 더헐 나위 없는 명징하고
상세한 설명을 하신 것입니다. 논박할 여지가 없습니다. 사실 '법'이란 세존께서 가르치신 '법'말고는 다른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따무카 바라문은 이 설명을 알아듣습니다. 그래서 더 상세한 설명을 우데나 존자에 청하게 됩니다.
우데나 존자께서는 그 유일한 '법' 즉 세존께서 가르치신 계정혜 삼학의 가르침을 그에게 전합니다.
계를 구족함 > 필수품만으로 만족함 > 감각기능의 단속을 구족함 >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구족함>
외딴 장소를 의지하여 수행함 >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여 마음을 청정히 함의 예비단계를 거쳐,
초선∼제4선의 바른 삼매의 구족, 그리고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에 이르는 삼명(三明)의 구족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이 그 '순차적 가르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한 방법과 과정을 통하여,,,
"자신을 학대하지도 다른 중생을 학대하지도 않아서
1) 바로 지금여기에서 갈애가 없고,
2) 모든 오염원들이 적멸하고,
3)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오염원들이 없어 평온하고
4) 삼매와 도와 과와 열반의 행복을 경험하면서,
5) 스스로 고결하게 되어 머무는 사람"
이 되는 것을 설하신 것입니다.
고따무카 바라문은 자신이 구하던 답을 얻은 바, 깊이 감읍하여
1) 우데나 존자에게 귀의하려 하지만 존자는 그것이 아니라 '내가 귀의한 세존께 귀의하라.'고 하시고,
2) 앙가의 국왕이 매일 자신에게 보시하는 바 돈을 존자께 보시하려 하나
존자께서는 '우리는 금이나 은을 보시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시고,
3) 그러면 우데나 존자에게 승원을 보시하겠다고 하자, 존자는 그렇다면 '승가의 집회소'를 보시하라고
자신이 아닌 승가에 보시할 것을 권하십니다.
참된 부처님의 제자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귀한 자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같이 새겼습니다.
이같은 특별한 법문을 듣게 해주신 석가모니 부처님과 우데나 존자와 같은 아라한께 감사하고
예경드립니다, 거룩하신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
시작을 모르는 과거로부터 윤회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처님, 가르침, 승가,
부모님, 스승님,
저보다 공덕이나 나이가 많은 분들께,
혹은 이때까지 저와 인연이 닿았던 천신들, 비인간들, 사람들,
축생들, 혹은 미물의 몸을 입었던 분들이라 할지라도,
제가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하여
몸과 말과 마음으로
잘못한 것들,,, 수미산처럼 쌓여있습니다.
이제 그러한 잘못을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면서
예경드립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또한 다른 이들이
저에게 범한 잘못들도
때를 씻어버린 선한 이들의 마음으로 다 용서합니다.
마음 속 깊이 박힌 적대와 악의와 잔인할 수 있음과 비난의 쇠살들 모두 뽑아버립니다.
본경을 사경한 공덕 몫을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처와 제 가족들에게,
곤경과 속박을 건너 세간과 출세간의 빚을 갚고자 하는 저 자신에게,,,,
저를 지켜보고 도우시는 모든 천신들과 비인간들에게,,,,
어려울 때 도움을 주신 친척, 친구들, 도반들께,
경을 번역하시느라 노고를 마다 않으신 대림스님과 각묵스님,
장유 반룡산과, 지리산 실상사와 지리산, 설악산, 그리고 보라산에, 그리고 영천의 식진암에 계시는
모든 천신들과 용들과 비인간들에게,,,
우 또다나 사야도와 일창스님께,,,
새로이 인연을 맺게되는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법 듣기를 좋아하고 그 제자들을 보호하는 천신들을 시작으로
31천 거주하는 제도가능 모든 중생들께,
부처님의 법을 따라 무너지지 않는 행복과 평안을 얻으시기를,,,
여래님들의 무한한 자애와 지혜와 위신력이 함께 하시기를,,, 보호 받으시기를,,,
이 회향으로도 늪을 벗어나고 강을 건너갈 큰 힘을 얻으시기를,,,
장애없이 닙바나 이르시기를 염원하면서,,,,
회향합니다.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2018.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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