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꿀루다이 짧은 경은
세존께서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에 있는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무실 때, 탁발을 가시다가
사꿀루다이 유행승이 머물고 있는 유행승들의 원림으로 가셔서 그에게 설하신 경입니다.
그와 그 무리들이 세존께서 오셨으니 세존의 법문을 기대한다고 하자 세존께서는 그러면 내가
설할 것을 제안해 보라고 하시자,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근자에 '지와 견의 완전한 상주와 현전'을
이야기하는 니간타 나따뿟따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런데 그는 완전한 지와 견의 현전을 말하면서도
전생에 대해 물으면 답을 피하며 노여움과 성냄과 불만족을 드러낸다고 전합니다.
이에 세존께서 만일 어떤 사람이라도 전생을 아는 지혜(숙명통)나 미래를 아는 지혜(천안통)를
얻었다면 세존께서는 그와 서로 질문하고 대답하여 그를 만족시킬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사꿀루다이 유행승이 이같지 않은 사정을 감안하여 과거나 미래를 접어두고 그대에게
연기(緣起)에 대한 가르침을 설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자신은 현재 이 몸으로 경험한 것도 다 기억하지 못하는 어떻게 전생을
얘기하고, 지금 진흙탕에서 나온 유령도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천안으로 중생들의 나고죽음을
이야기 하겠느냐고 하며, 또한 설하고자 하시는 연기(緣起)의 법은 자신에게 더욱 불분명하다고
사양하고, 차라리 저희 스승들의 가르침에 대해서 세존과 문답하겠노라고 합니다.
이리하여 본경에서 사꿀루다이 유행승과 세존의 문답이 시작굅니다.
숙명통이나 천안통에 대한 솔직한 답변을 보면 사꿀루다이 유행승의 사람됨이 솔직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유행승의 이어지는 문답을 보면 스승들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무엇이 핵심인지
바로 드러내지 않고 일단 숨겼다가 나중에야 드러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가르침이나 배움을 일언자하애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바른 법이 아닌 가르침의 특징이기도
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숨길 것이 있거나 숨기고 싶은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존의 법은 숨기는 바가 없습니다. 비밀(秘密)도 없고, 어떤 자만이 알 수 있게 하는 무슨 장치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적어도 지금은, 백주 대낮 길거리의 풍경처럼 누구나 보고 다가갈 수 있고 알 수 있는 것처럼
환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 최상의 광명이 자아이며 죽고나서도 소멸되지 않는다
vs 천명하지도 못하는 반딧불보다도 못한 광명
그대들의 스승들의 가르침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라는 세존의 물음에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그 광명보다는 더 수승한 광명이란 없는 최상의 광명이 있는데 그것이 자아이고 죽고나서도
소멸되지 않는다는 가르침이 있다고 합니다.
세존께서는 '그 최상의 광명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라고 물으시지만 그는 그것이 무엇이라고
설명하지 못합니다. 세존께서는 이는 누군지도 모르면서 나라에서 제일가는 미녀를 갈망하고
사랑한다고 하는 것과 같으며, 당신께서는 해도 미치지 못하는 광채를 지닌 훌륭한 신들을 알고
있고 그보다 더 큰 광명도 있다고 하시며, 그대가 말하는 광명은 '반딧불보다도 더 희미하고 하잘 것
없는 것이며, 그 조차도 그 광명이 무엇인지 천명되지 못한다.'라고 지적하십니다.
눈부신 광명(光明)은 흔히 깨달음의 상징이나 고귀한 그 무엇에 비교되곤 합니다. 특히 자아나 세상에
대하여 어떤 깨달음이 생간 많은 사람들이 빛을 얘기하곤 합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그 광명이란
과연 무엇인가?'라고 물으십니다.
■ 계를 수지하는 것이 행복한 세계의 실현을 위한 도닦음이다.
vs 즐거움과 괴로움이 섞인 도닦음을 행하면서 행복뿐인 세계의 실현을 말하는가?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오직 행복뿐인 세계가 있고, 그를 위한 근거있는 도닦음이 있다.'라는 스승들의
가르침을 말합니다. 세존께서는 그에게 어떤 것이 그 오로지 행복뿐인 세계의 실현을 위한 도닦음인가
물으십니다.
이에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생명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고, 삿된 음행하지 않으며,
거짓말하지 않고, 다른 종류의 고행을 하는 것(술마시는 것을 금하는 것)이 그 도닦음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그 각각에 대하여 그렇게 행할 때 그대는 즐거움만을 느끼는가, 즐거움과
괴로움을 모두 느끼는가라고 물으십니다.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즐거움과 괴로움을 모두 느낍니다.'
라고 답합니다.
세존께서는 그러한 오계를 지킴이 '즐거움과 괴로움이 섞인 도닦음'임을 설하시면서, 그런 도닦음을
하면서 어떻게 행복뿐인 세계의 실현을 말하는가라고 그 모순을 설하십니다.
오계를 지키는 것이 '즐거움과 괴로움이 섞인 도닦음'이라는 세존의 말씀은 제게 충격입니다.
항상 계를 수지할 것을 말씀하시는 부처님이시고, 계를 수지하는 것이 도닦음의 근본이요 기본적
요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를 수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실제 계를 호지하는 것 즉 바른 계행은
그에 따른 청정함 즐거움을 우리에게 줍니다. '안으로 비난받지 않는 즐거움'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계행을 하기 위해서는 계행을 지키지 않음으로 인해서 얻을 수도 있는 감각적 욕망을
충족시키지는 못하는 괴로움이 따릅니다. 계행을 지키는 어떤 자에게 계를 지키는 것이 '괴로움'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를 지키지 못하고 계를 버리는 원인이 됩니다.
이것은 계를 지키는 자가 무엇을 위해 계를 지키는지 개인의 문제일 것이라 생각되며, 세존께서는
그를 두고 하신 말씀이라 새겨집니다. 죽은 뒤 천상에서 더 큰 즐거움을 얻기 위한 계행이라면
그에게는 현생에 계를 지키는 것이 괴로움이 되겠지만, 그야말로 계금취(戒禁取)가 되겠지만,
감각적 욕망을 바로 벗어난 자에게는 계를 지킴이 오직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계를 어기라고
강요 받더라도 그는 결코 계를 어기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에 따른 정신물질이 펼쳐지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세존께서 계를 지키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즐거움과 괴로움이 섞인 도닦음'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 제3선이 행복뿐인 세계의 실현이다 vs 제4선에서 행복뿐인 세계가 실현된다.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세존께 '행복뿐인 세계가 있기는 한지, 그를 위한 근거있는 도닦음이 있기나
한지'를 세존께 여쭙나다. 그는 실로 그가 배운 것에 대해서도 대해서도 확신이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도 온전하지 못한 가르침의 특징이라 생각됩니다. 세존께서는 '있다.'라고 하십니다.
이에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어떤 것이 그 도닦음이냐고 여쭙나다.
세존께서는 그에게 초선, 제2선, 제3선을 차례로 설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행복뿐인 세계를 실현하는 근거있는 도닦음'이라고 설하십니다.
이에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그것은 도닦음이 아니라 이미 행복뿐인 세계가 실현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에 세존께서는 그것은 '행복뿐인 세계가 이미 실현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를 위한 근거있는
도닦음일 뿐이다.'라고 천명하십니다.
이에 사꿀루다이 유행승과 그 회중들은 큰 혼란에 빠집니다. 그들이 알고 있기로는 제3선의 그것보다
더 높은 지경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는 수행자가 제3선의 '행복'마저 버려버린 제4선에 이르러 '오로지 행복뿐인 세계가 실현된다.'고 천명하십니다. 바른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에 의해 얻어진 평온과 행복마저 그 위험을 보아
버렸을 때 비로소 '행복뿐인' 세계가 실현된다는 세존의 가르침은 과연 깨달음 내지 '오온을 바로 봄'의 여정이 실로 어떠한 것인지 우리에게 여실히 전해줍니다.
■ 더 높고 더 수승한 법들
이에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비구들은 바로 그 '행복뿐인 세게의 실현'인 제4선의 실현을 위해서
세존 아래서 청정범행을 닦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그것을 위해서 내 아래서 청정범행을 닦는 것이 아니다라고 천명하십니다.
세존께서는 '더 높고 더 수승한 법들'이 있어서 제자들은 그것을 위해서 청정범행을 닦는다 하십니다.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게 됩니다.
세존께서는
- 여래의 출현
- 출가
-----------------------------------------------
1] 계(戒)를 구족함
2] 필수품만으로 만족함
3] 감각기능의 단속을 구족함
4]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구족함
5] 외딴 장소를 의지하여 수행함
6] 다섯 가지 장애(五蓋)를 제거하여 마음을 청정하게 함
-----------------------------------------------
7] 삼매(定)의 구족
-----------------------------------------------
8] 명지(慧)를 구족하여 해탈함
-----------------------------------------------
을 설하시고 그 중 7]∼8]이 바로 그 더 높고 더 수승한 법임을 설하십니다.
■ 회중이 사꿀루다이 유행승의 출가를 방해함 _ 사꿀루다이 유행승의 인과
이 가르침에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스승들로부터의 가르침이 실없고, 헛되고, 결핍된 것임을 일고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려 하자 유행승의 무리들은 출가하지 말라고 벙해하는 바, 주석을 따르면
아래와 같은 일화가 있습니다.
'이 유행승은 깟사빠 부처님 시대에 출가하여 사문의 법을 실천 수행한다.
그런데 동료 비구가 교단에 흥미를 잃어버려 '도반이여, 나는 환속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는데,
그는 그의 발우와 가사가 탐이 나서 환속하도록 부추겼다. 그리하여 그 동료는 그에게 발우와 가사를
주고 승단을 떠났다. 그는 그 업으로 지금의 세존 곁으로 출가하는데 장애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앞 경 「사꿀루다이 긴 경」에서도 아주 깊게 설법을 하셨고, 여기서도 깊게 법을
설하셨다. 이 설법으로 그가 도와 과를 통찰하지는 못하지만 통찰을 위한 미래의 조건이 될 것이라고
아시고 법을 설하셨다.
세존께서는 미래의 조건을 보시고는 자애관을 닦으면서 머무는 자(metta-vihari)에 관한 한 어떤
비구도 이 사람의 앞에 앉히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세존께서는 미래에 이 사람이 나의 교단에
출가하여 자애관을 닦으면서 머무는 자들 가운데 최고가 될 것이라고 아셨기 때문이다.
그는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신 뒤에 아소까 법왕의 시대에 빠딸리뿟따(지금의 빠뜨나)에 태어나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 그는 앗사굿따 장로라는 이름으로 자애관을 닦으면서 머무는 자들
가운데 상수가 되었으며 전 인도 비구승가의 교계사가 되었다. 아소까 법왕이 장로의 공덕을 듣고
뵙기를 청하여 세 번이나 사자를 보냈지만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MA.iii.275∼276)
※ 선정(jhana)에 대한 고찰
본경 「사꿀루다이 짧은 경」(M79)와 바로 앞의 「사마나만디까 경」(M78)은 '선정(禪定)'에
대한 뜻하지 않은 소중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정형구로만 대하는 초선∼제4선의 가르침은
말씀그대로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가르침이지만, 실제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두 경은 그것에 대한 세존의 보충적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선정(禪定, jhana)은
삼매(心一境, samadhi, ekkagatā)와 구분하여 팔정도에서 '바른 삼매(正定)'로 일컬어지는 중요한
가르침이요, 깨달음의 과정에서 불가피한 과정으로 설해지며, 그 증득과 과보는 크나큰 것입니다.
어떤 중생이 죽음에 이르러 어떤 마음의 상태로 죽느냐에 따라 그 행처가 정해지느냐가 결정되기도
합니다. 초선은 범보천 등에, 제2선은 광음천 등에, 제3선은 변정천 등에, 제4선은 정거천 등에
테어나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기 두 경의 보충적 가르침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정형구 | 의의 | 보충적 | 도닦음 |
초선 | -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 - 감각적 욕망(형색, 소리, 냄새, 멋, 감촉)을 바로 보아 | -
해로운 사유의 소멸 | 사정근 |
-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 -
몸, 말, 마음의 | -
해로운 행위의 소멸 | ||
-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있고, | -
아직은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라는 동인(動因)이 있음 | |||
-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 -
감각적 욕망,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림에 의한 희열과 행복을 증득 | |||
제2선 | -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 고찰[伺]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 -
대상인 까시나에 | -
유익한 사유의 소멸 | 사정근 |
-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은 없고, | -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라는 동인(動因)이 없음 | |||
-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 -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을 증득 | |||
제3선 | -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온하게 머물고 | -
정신물질(名色)에 마음이 들뜨지 않아 희열이 일어나지 않음 | 사정근 | |
-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正念‧正知]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 -
정신물질(名色)에 마음챙김을 잃지 않고 바로 보고 앎에 의한 행복을 경험 | |||
- [이 禪 때문에] 성자들이 그를 두고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라고 묘사하는 | -
비로소 평온을 증득하여 행복하게 머묾울 증득 | |||
제4선 | -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 -
제3선의 평온과 행복도 원인을 조건으로 형성된 것이므로, 이도 소멸한다는 위험을 보아 행복과 괴로움에서 벗어남 | 사정근 | |
-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소멸하였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 -
정신물질(名色)을 바로 보아 기쁘하고 슬퍼하거나 괴롭거나 즐거워 할 이유거 아예 없음을 관(觀)함 → 비로소 초월을 향함 | |||
-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한 [捨念淸淨] | -
마음챙김에 의한 앎과 봄으로 평온을 증득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평온을 얻었기에 마음챙김이 청정할 뿐임 | -
오로지 행복뿐인 세계가 실현됨 | ||
※ 유익한 행위(몸, 말, 마음)는 해탈·열반을 증득함에서 소멸됨 |
이와 같이 새겼습니다.
이같이 상세한 법문을 해주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거룩하신 부처님과, 그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
시작을 모르는 과거로부터 윤회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처님, 가르침, 승가,
부모님, 스승님,
저보다 공덕이나 나이가 많은 분들께,
혹은 이때까지 저와 인연이 닿았던 천신들, 비인간들, 사람들,
축생들, 혹은 미물의 몸을 입은 분들이라 할지라도,
제가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하여
몸과 말과 마음으로
잘못한 것들,,, 수미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이제 그러한 잘못을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면서
예경드립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또한 다른 이들이
저에게 범한 잘못들도
때를 씻어버린 선한 이들의 마음으로 다 용서합니다.
마음 속 깊이 박힌 적대와 악의와 잔인할 수 있음과 비난의 쇠살들 모두 뽑아버립니다.
본경을 사경한 공덕 몫을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처와 제 가족들에게,
곤경과 속박을 건너 세간과 출세간의 빚을 갚고자 하는 저 자신에게,,,,
저를 지켜보고 도우시는 모든 천신들과 비인간들에게,,,,
어려울 때 도움을 주신 친척, 친구들, 도반들께,
경를 번역하시느라 노고를 마다 않으신 대림스님과 각묵스님,
장유 반룡산과 지리산 실상사와 지리산, 설악산, 그리고 보라산에, 그리고 영천의 식진암에 계시는
모든 천신들과 용들과 비인간들에게,,,
우 또다나 사야도와 일창스님께,,,
새로이 인연을 맺게된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법과 그 제자들을 보호하는 천신들을 시작으로
31천 거주하는 제도가능 모든 중생들께,
부처님의 법을 따라 행복과 평안을 얻으시기를,,,
여래님들의 무한한 자애와 지혜와 위신력이 함께 하시기를,,, 보호 받으시기를,,,
이 회향으로도 늪을 벗어나고 강을 건너갈 큰 힘을 얻으시기를,,,
장애없이 닙바나 이르시기를 염원하면서,,,,
회향합니다.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2017.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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