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니까야(中部)/M72.왓차곳따 불 경-존재의 소멸

※後記: 왓차곳따 불 경을 마치며,,,

이르머꼬어리서근 2017. 10. 23. 05:34


왓차곳따 불 경은


세존께서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실 때

왓차곳따 유행승에게 설하신 경입니다.


주석을 따르면 왓차곳따 유행승은 라자가하의 왓차라는 족성을 가진 부유한 바라문의 가문에서

태어나. 본경 다음의 「왓차곳따 긴 경」을 통해서 마침내 출가하게 되고 아라한이 되신 분입니다.

           

                      

■ 나는 영원(時), 무한(空), 자아(我), 존재(在)에 대하여

                               다른 이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왓차곳따 유행승은 세존께 먼저 십사무기(十事無記)로 알려진 질문 즉,

세상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유한한가 무한한가?, 생명은 이 몸인가 아닌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존재하기도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가, 존재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의 각각에 대하여 세존께서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신지 묻습니다.

                      

세존께서는 그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답하십니다.

                           

이 십사무기(十事無記)의 질문은 시간(時), 공간(空), 자아의 실체(我), 존재(在)에 대한 질문이라고도

생각됩니다. '존재'라면 그 앞에 펼쳐지는 물질정신의 세계(名色)의 본질에 대해서 '이 모든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이 질문들을 주제로 하는 

「말룽꺄 짧은 경」의 후기를 쓰면서 이 십사무기(十事無記)의 질문들의 의미와 본질을 나름대로

별도로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http://blog.daum.net/ibakdal/17372322)



■ 어떤 재난을 보시기에 그런 일체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_ 견해에 빠진 것이어서 벗어남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세존께서는 '어떤 재난을 보시기에 이런 일체의 견해 중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습니까?'라는

왓차곳따의 질문에,

                   

그러한 견해는

                        

   '견해에 빠진 것이고,

    견해의 밀림이고, 견해의 황무지이고,

    견해의 뒤틀림이고, 견해의 요동이고,

    견해의 족쇄이다

                                     

    그것은

    1) 괴로움과 함께하고

    2) 속상함과 절망과 열병이 함게하고, 또그것은

    3) 역겨움으로, 탐욕의 빛바램으로, 소멸로, 고요함으로,

        최상의 지혜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나는 이러한 재난을 보기 때문에 이런 일체의 견해 중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라고 설하십니다.

                   

                            

'도대체 이 모든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을 때, '이 모든 것' 내지 '이 모든 정신물질현상(名色)'이라는

집을 구성하는 필수요소인 '시간, 공간, 자아, 존재'라는 벽돌들에 대해서,,,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견해를 표명하고, 세상의 여러 종교나 교설들이 주장하고,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신념으로 맏는 바로 그러한 견해들을,,,

                                                 

세존께서는 이렇게 질그릇처럼 부숴버리시고 묵사발처럼 으깨버리십니다.

십사무기의 질문들에 대한 그런한 견해들은 근본적으로 '시간, 공간, 자아, 존재'라는 벽돌들에 대해서

'잘못 본 것(邪見)'이라는 가르침이요, 그러한 '잘못 거머쥔 견해(邪見)'가 '재난'으로, '괴로움'으로,

'벗어나지 못함'으로 인도한다천명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경천동자(驚天動地)할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시각'입니다.

세존께서는 그러한 족쇄에 묶여있지말고 '마음의 문을 열고(Open your mind), 이 모든 것들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바로 보라(正見)!'라고 설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을 연민하고 중생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법을 설하시는 그분의 가르침은 참으로 다른 이들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 도대체 왜 그러십니까? 이유가 뭡니까?

               _ 나는 이 모든 것(오온, 존재 무더기들, 물질정신)이 무엇인지 보았기 때문이다.

                                    

왓차곳따 유행승은 세존께서는 '어떤 사변적 견해도 갖지 않으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변적 견해를 버렸다.'라고 하십니다.

                           

'사변적 견해'란 무엇입니까? 꿰뚫어 알든 알지 못하든 '이것은 이것이다.'라고 규정짓거나 고정하여

생각하는 것일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그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하십니다.

                     

   '왜냐하면 여래는 참으로 이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질(色)이다. 이것은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은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은 느낌(受)이다. 이것은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은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은 인식(想)이다. 이것은 인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은 인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은 심리현상들(行)이다. 이것은 심리현상들의 일어남이다. 이것은 심리현상들의 사라짐이다.

    이것은 알음알이(識)다. 이것은 알음알이의 일어남이다. 이것은 알음알이의 사라짐이다.'라고.

                     
    그러므로

    여래는  모든 허황된 생각[空想]과 모든 잘못된 생각

    즉 모든 ''라는 것과, 모든 '내 것'이라는 것과, 자만의 잠재성향들을 부수고 

                     

    그것에 대한 탐욕을 빛바래게 하고, 그것을 소멸하고 버리고 완전히 놓아버려 

    취착없이 해탈한다고 나는 말한다." 

              

                      

위와 같이 '오온을 바로 보아' 그것이 '나', '나의 것', '나의 자아'라는 허황되고 잘못된 생각임을 알아

거기서 벗어나 취착이 없어져서 먼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기 때문임을 이같이 천명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눈 먼 자가 빛을 얻어 모든 것을 명료하게 보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 해탈한 자는 어디에 태어납니까? 어떤 존재입니까?

                                                           _ 그는 태어남(존재)를 벗어난다.

                               

왓차곳따 유행승은 세존께 그렇게 해탈한 비구는

1) 어디에 태어나는지? 2) 태어나지 않는지?, 3)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하는지?,

4)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닌지? 여쭤봅니다.

                                  

이 질문은 '존재'에 대한 질문입니다.

세존께서는 위와 같은 태어남과 관련한 어떤 말도 그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라고 설하십니다.

                        

                                           

'존재로부터의 벗어남'을 알지 못하는 왓차곳따 유행승은 여기서 크게 당황하고 혼돈을 일으킵니다.

세존께 가졌던 조그만 믿음도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존재에 대한 논리적인 토론의 영역을 벗어나

버렸기에 알토당토 않은 말씀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도 아닌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러나 분명히 세존께서는 '존재의 소멸'을 말씀하십니다.

'존재의 소멸'은 '존재에 대한 매임으로부터의 벗어남'에 다름 아닙니다.

                                          (* M60, 확실한 가르침 경: http://blog.daum.net/ibakdal/17372276)

                        

                                                 

■ 어떻게 존재를 벗어나는가? 어떻게 오온을 바로 보는가?

                           _ 연기(緣起)로써 존재 무더기(오온)를 바로 보아 벗어난다


세존께서는 '존재로부터의 벗어남'이 이같이 왓차곳따에게 그대가 당황하고 혼돈이 생긴 것은

당연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조건[緣]에 대한] 가르침


    1) 심오하여, 

    2) 보기 어렵고

    3) 깨닫기 어렵고

    4) 고요하고

    5) 수승하고

    6) 사유의 영역을 넘어섰고

    7) 미묘하여

    8)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며, 

                              

다른 가르침을 받아들인 그대는 알기가 어렵다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세존께서는 이렇게만 말씀하시고, 이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왓차곳따 유행승에게 직접

설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세존께서는 왜 일체의 사변적 견해들을 버리셨는지 섫하고

계십니다.

                           

'그 모든 것', '오온(존재 무더기)', '이 모든 정신물질현상(名色)' 내지

그러한 집을 이야기할 때 불가피한 '시간(時), 공간(空), 자아(我), 존재(在)'라는 이름의 벽돌들까지도 

고정된 혹은 규정된 어떤 견해에 적합한 '독립자존적 본질'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조건할 때 이것이 일어나고, 이것이 없으면 이것이 멸하는', '일어남·사라짐의 본질'만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연기에 대한 직접적인 가르침을 건너 뛰시고,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은 '불의 비유'로써

왓파곳따 유행승에게 '존재의 소멸' 내지 '존재에 매임으로부터의 벗어남'을 가르치십니다.

                                 

- 불이 타오르고 있으면 그대는 불이 타오르고 있음을 아는가?/ 예, 압니다.

- 그 불은 무엇을 조건으로 타오르고 있는가?

             /마른 풀과 나뭇가지라는 연료를 조건으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 불이 꺼지면 그대는 불이 꺼졌음을 아는가?/ 예 압니다.

- 꺼진 그 불은 어디로 갔는가? 동쪽으로 서쪽으로 남쪽으로 북쪽으로?/

             /그 말씀은 적당하지 않습니다. 그 불은 연료가 다하여 꺼졌다고 합니다.

                       

                                    

이 물질정신세계가 끝없이 전개되는 것은 나의 '갈애'를 연료로 끝없이 타오르는 것이요,

오온을 바로 보아 오온에 대한 갈애가 다하면 거머쥠이 없어

그로써 '나'라는 존재에 대한 매임도, '물질정신현상(오온)'이라는 나와 세상에 매임도 없어

'존재로부터 벗어남' 즉 '존재의 소멸'에 이르게 되는 도리를 이렇게 설하셧습니다.

                               

이미 꺼져서 없는 불을 타고 있는 '불'이라고 하지 않으며, 

이미 꺼져서 없는 불을 꺼진 '불'이라고 할 수 없으며,

이미 불이 아닌 것을 타고 있기도 하고 꺼져있기도 한 '불'이라고 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하여 그 '불'은 타고 있는 것도 아니요 꺼진 것도 아닌 '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 불은 이미 타고 있든 꺼졌든 '불'이라고 할 수 있는 '불의 영역'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유무생멸(有無生滅)을 같이 벗어나는 것입니다.

                                 

유무(有無)에 속하는 물질정신현상(名色)과,

그것을 일어나게 하고 그것을 유무(有無)로 감득하여 아는 알음알이(識, consciousness)의 상호작용의 전개오온에 대한 갈애가 빛바램으로써 온전히 같이 빛바래는 것입니다.

이같이 '오온의 전개'로부터 해탈하는 도리를 설하셨습니다.

                           

                                               

■ 오온(존재 무더기)로부터의 해탈 _ 존재로부터의 해탈

                            

이어서 세존께서는

                                                    

    '사람들은 여래를 오온(五蘊) 즉,

     물질(色), 느낌(受), 인식(想), 심리현상(行), 알음알이(識)으로 묘사하면서 묘사를 시도하지만,


     여래는 그러한 물질(色), 느낌(受), 인식(想), 심리현상(行), 알음알이(識)를 제거했고

     그 뿌리를 잘랐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다.'


     여래는 오온 즉, 물질(色), 느낌(受), 인식(想), 심리현상(行), 알음알이(識)에서 해탈하여

     심오하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나니 마치 망망대해와 같다. 


     그에게는

    '태어난다.'라는 말이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다.'


라고 설하셨습니다.



오온(五蘊)이라는 존재 무더기, 혹은 일체 물질정신현상(名色)으로부터의 해탈

바로 '존재로부터의 해탈'임을, 그것이 해탈임을 이같이 설하신 것입니다.




왓차곳따 유행승은 이 법문을 듣고 세존께 재가신자로서 귀의합니다.

그는 지혜로운 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는 이 법문을 '가지와 잎사귀가 제거되고 껍질 조각도

제거되고 백목질도 제거되어 순전히 심재만이 남은 것입니다.'라고 표현합니다. 




이와 같이 새겼습니다.

이같이 상세한 법문을 해주신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거룩하신 부처님과 그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




시작을 모르는 과거로부터 윤회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처님, 가르침, 승가,

부모님, 스승님,

저보다 공덕이나 나이가 많은 분들께,

혹은 이때까지 저와 인연이 닿았던 천신들, 비인간들, 사람들, 

축생들, 혹은 미물의 몸을 입은 자들이라 할지라도,

                                                  

제가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하여

몸과 말과 마음으로

잘못한 것들,,,  수미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이제 그러한 잘못을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면서

예경드립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또한 다른 이들이

저에게 범한 잘못들도

때를 씻어버린 선한 이들의 마음으로 다 용서합니다.

마음 속 깊이 박힌 적대와 악의와 잔인할 수 있음과 비난의 쇠살들 모두 뽑아버립니다.

                          


본경을 사경한 공덕 몫을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처와 제 가족들에게,

곤경과 속박을 건너 세간과 출세간의 빚을 갚고자 하는 저 자신에게,,,,

저를 지켜보고 도우시려는 모든 천신들과 비인간들에게,,,,

어려울 때 도움을 주신 친척, 친구들, 도반들께,

경를 번역하시느라 노고를 마다 않으신 대림스님과 각묵스님,

장유 반룡산과 지리산 실상사와 지리산, 설악산, 그리고 보라산에, 그리고 영천의 식진암에 계시는

모든 천신들과 용들과 비인간들에게,,,

우 또다나 사야도와 일창스님께,,,

새로이 인연을 맺게된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법과 그 제자들을 보호하는 천신들을 시작으로

31천 거주하는 제도가능 모든 중생들께


부처님의 법을 따라 행복과 평안을 얻으시기를,,,

이 회향으로도 늪을 벗어나고 강을 건너갈 큰 힘을 얻으시기를,,,

장애없이 닙바나 이르시기를 염원하면서,,,,

회향합니다.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2017. 10.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