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空)에 대한 짧은 경은
세존께서 한때 사왓티에 있는 동쪽 원림[東園林]의 녹자모 강당에 머무실 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서 전에 '나는 요즈음 자주 공에 들어 머문다.'라고 하신 말씀을 들어
그것을 상기시켜 드리면서 다시 그 뜻을 묻는 것을 계기로 아난다 존자에게 설하신 경입니다.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나는 전에 그랬듯이 요즈음도 자주 공에 들어 머문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서 전에 하신 말씀을 바르게 듣고, 이해하고, 마음에 새기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공(空)이라는 표현은 대승의 경전에서 수없이 들었던 터입니다. '공(空)' 한 자는 세존께서
가르치신 바 궁극의 뜻과도 같을 정도입니다. 반야바라밀다심경에서도 오온개공(五蘊皆空),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등과 같이
그러한 공(空)의 도리를 간곡히 드러내고 있고,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이 지혜의 바라밀을 의지하여
위없는 깨달음을 얻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초기경전'을 공부하면서 과연 세존께서 '공(空)'에 대해서 설하셨는지 많은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후대에 만들어진 개념이나 철학 정도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입니다.
「교리문답의 긴 경」(M43)을 보면서 마하꼿티따 존자와 사리뿟따 존자와의 담론에서
'표상이 없는 마음의 해탈', '공한 마음의 해탈'과 같은 표현이 상용되는 것을 보고 놀랐으며
대림스님의 주석을 따라 찾게 된 본경 「공에 대한 짧은 경」인데, 세존께서 그 뜻을 상세히 밝히신
것을 보고 과연 세존께서는 공(空)에 대해서 설하셨고 그것이 'sunnata'라는 팔리어를 갖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예, 세존께서는 분명히 공(空)에 대해 설하셨습니다.
과연 세존께서 설하신 공(空)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 사람의 근기나 수행의 정도에 따라서
수많은 언설이 있겠습니다만, 종횡무진 그 요의를 풀어헤쳐 가슴을 시원하게 했던 원효대사의
대승기신론소를 처음 대했을 때 소회가 떠오릅니다.
그러나 수많은 불자들을 답답하게 하는 것은 그러한 '공(空)'의 경지에 어떻게 해서 이르게 되고
무엇이 증득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막상 설명이 없다는 것일 것입니다. 혹자는 이런 말에 웃으면서 반론할지 모르겠습니다. '공(空)이라는 것은 증득할 수 없다. 그것은 증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알 수 없는 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그것은 언설을 떠나있고 그대가 말로 하는 공이란
이미 공이 아니다.'라고.
어쨌든 이렇게 하여 안다고 하는 자는(알고 모르고의 경계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말한다하여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겠습니다만) 혼자 안다하고, 모르는 자는 결국 어떻게 해도 모르는 것이 되고 마는 지경에 이르러, 쉽게 근기 운운하면서 '공(空)' 내지 '진공(眞空)'이라 해야할 '부처님이 가르치신 바 구경의 뜻'이 미궁에 빠져버리고 말며 그 낙처(落處)가 어딘지를 모르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틀린 말은 아니라 할지라도 '언어도단(言語道斷)'이, 할(喝)이, 몽둥이가, 심지어는 칼로
베어 생명을 죽임까지 매이지 않는다 하거니와, 그 열렬한 기세는 있을지언정 종래에 그 뜻을 꿰뚫어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법을 말로 전하셨으며, 상세히 전하셨으며, 45년 동안 전하셨으며,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그러기에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고 하시며,
내 안에 머물도록 하면 열반으로 인도한다.'라고 천명하십니다. 그것은 다 말로 전하신 것입니다.
본경은 이런 경우를 살뜰히 반증하는 사례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존께서는 이 법문을 통하여
공(空)이 무엇인지, 그것은 어땋게 증득되는 것인지, '지극히 청정한 구경의 위없는 공(空)'이란
무엇인지, 그것에 머묾이란 무엇인지 상세하게 말로 설하고 계십니다.
역자이신 대림스님은 당신의 주석을 통해 그 뜻을 간곡히 밝히고 계십니다. 대승으로 출가하신
분이시라 저와 같은 의문을 가지셨을 터인데 그 뜻을 꿰뚫어 아래와 같이 담담히 밝히십니다.
감히 참으로 통달하신 견해요 주석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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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에 들어 머묾
- 이 말씀은 본서 「탁발음식의 청정 경」(M151) §2에서 사리뿟따 존자의 말로도 나타나고 있다.
'공에 들어 머묾'은 sunnata-vihara를 옮긴 것인데 주석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공에 들어 머묾(sunnatavihara)'이란
공한 과의 증득으로 머묾(sunnata-phala-samapatti-vihara)을 뜻한다."(MA.iv.154)
"이것은 공을 수관(隨觀)하여 얻은 아라한과의 증득을 말한다."(MAT.ii.437)
- 본경의 가르침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마을이라는 인식을 물리치고(§4)로부터 시작해서
7단계로 점진적으로 '청정한 공의 경지'를 규명해 들어간다.(§4∼§12)
그리하여 마침내 §13에서 '지극히 청정한 구경의 위없는 공' 즉 '공을 통한 과의 증득'에 도달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공에 들어 머묾'이라 할 수 있다.
- 한편 본서 제2권 「교리문답의 긴 경」(M43) §36∼37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아라한의 마음의 해탈-MA.ii.354)야말로
탐욕이 공하고, 성냄이 공하고, 어리석음이 공합니다."
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열반의 공한 측면을 강조하는 가르침이다.
본경 §131의 '지극히 청정한 구경의 위없는 공'은 이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과 일종의 동의어
라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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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공(空)에 들어 머묾'을 어떻게 설하셨습니까?
공(空)의 단계를 아래와 같이 첫 단계부터 구경의 위없는 공(空)까지 8단계로 축차적으로 설하십니다.
세존의 이 부분 가르침을 보면 그 이전에 새겨둘 것이 있습니다.
'공(空)'은 적어도,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1) 계를 구족하고, 2) 감각기능의 단속을 구족하고,
3)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4) 필수품만으로 지족하며, 5) 외딴 처소를 의지하여 수행에 전념히면서, 6) 다섯 가지 장애(五蓋)를 제거하고,
이와 함께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자애, 연민, 함께 기뻐함, 평온의 네 가지 거룩한 머묾(四梵住,
四無量心)으로 한없는 사악함이라는 강을 결단코 건넌 자가,
비로소 그렇게 마음이 매임이 없는 자유로운 수행자가 되어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리고, 더 이상은 느낌에 마음이 지배당하지 않는 자가 되어 떨쳐버림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 정도로 마음을 제어하고 조복받은 자의 삼매(三昧)에 관한
이야기이며, 정신·물질을 바로 볼 줄 앎이라는 위빳사나의 지혜가 함께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점진적 가르침은 이렇습니다.
1) 그는 대상 하나에 마음을 집중합니다. 그 나머지는 공(空)함을 봅니다.
2) 그는 대상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까시나 하나에 마음을 집중합니다.
나머지는 공(空)함을 봅니다.
3) 그는 물질에 대한 인식을 초월하고 부딪힘에 대한 인식을 소멸하고 '무한한 공간'이라는
공무변처(空無邊處)의 무색계(無色界)의 삼매에 듭니다. 그 이하 나머지는 공(空)함을 봅니다.
4) 그는 '무한한 알음알이'라는 식무변처(識無邊處)의 삼매에 듭니다.
그 이하 나머지는 공(空)함을 봅니다.
5) 그는 '아무 것도 없다'라는 무소유처(無所有處)의 삼매에 듭니다.
그 인식말고는 공(空)함을 봅니다.
6) 그는 '인식하는 것도 인식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삼매에
듭니다. 그 인식말고는 공(空)함을 봅니다.
7) 그는 '표상이 없는 마음의 삼매'에 듭니다.
생명을 조건으로 하고 이 몸을 의지하는 여섯 감각장소 外에는 일체가 공함을 꿰뚫어 봅니디.
8) 그는 '표상이 없는 마음의 삼매'에 든 상태에서
'이 표상이 없는 마음의 삼매도 형성된 것이고 의도된 것이다. 형성되고 의도된 것은 무엇이건
무상하고 소멸하기 마련인 것이다.'라고 그 최후의 마음 끝마저 공(空)함을 꿰뚫어 봅니다.
여기서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하여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존재로부터 무명으로부터
기인하는 일체 번뇌들이 거머쥘 만한 것이 아님을 또 그것이 공(空)함을 보아 그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합니다.
단지 거기에서도 생명을 조건으로 이 몸을 의지하는 여섯 감각장소만이 남아있음을 꿰뚫어
압니다. 어떤 아라한의 유여열반입니다.
1)∼7)까지의 각 단계에서 각 단계마다 세존께서는 그는 그러한 인식에
'깊이 들어가고, 깨끗한 믿음을 가지고, 확립하고, 확신을 가짐'을 세존께서는 말씀하시고,
또한 각 단계마다
'거기에 없는 것은 공(空)하다고 관찰하고,
거기에 있는 것은 존재하므로 '그것은 있다.'라고 꿰뚫어 앎을 설하신 바를 새겨야 하겠습니다.
세존께서는 여기에 그치지 않으시고,
위 8)의 공(空)을 '지극히 청정한 구경의 위없는 공(空)'이라고 별칭하시며,
1) 과거세 미래세 현세의 모든 사문·바라문들이 지극히 청정한 구경의 위없는 공에 머물렀다함은
바로 이 공(空)에 머무른 것이라 하시니 실로 삼세제불(三世諸佛)이 거하시는 곳이요,
2) 부처님의 제자들도 모두 이 '지극히 청정한 구경의 위없는 공(空)에 머물리라.'라고
공부지어야 함을 설하셨습니다.
"텅 비었음이여, 태허(太虛)와 같아서 사사로움이 없으며
넓음이여, 큰 바다 같아서 지극히 공평하도다.
지극히 공평함이 있기에 동(動)과 정(靜)이 따라 이루어지며,
사사로움이 없기에 염정(染淨)이 이에 융합된다.
염정이 융합되므로 진속(眞俗)이 평등하며,
동정(動靜)이 이루어지므로 승강(乘降)이 가지런하지 않다.
승강이 가지런하지 않으므로 감응(感應)의 길이 통하며,
진속이 평등하므로 생각하는 길이 끊어졌다.
생각하는 길이 끊어졌기에 이 대승(大乘)을 체득한 이는 그림자와 메아리를 타서 방소(方所)가 없고
감응의 길이 통하기에 이 대승을 구하는 이는 명상(名相)을 초월하여 돌아가는 데가 있다.
타는 바의 영향은 나타낼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으며,
이미 명상(名相)을 초월하였으니 무엇을 초월하고 어디로 돌아가겠는가?
이를 이치가 없는 지극한 이치(無理之至理)라 하며,
그러하지 않으면서 크게 그러한 것(不然之大然)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논(論)의 됨됨이가 세우지 않는 것이 없으며, 깨뜨리지 않는 것이 없다. ·········"
- 대승기신론소 별기, 원효대사
한때 가슴을 흔들었던 원효대사의 대승기신론소 별기를 적어 곰곰히 읽어봅니다.
"형성된 이 모든 것 참으로 무상하여 (諸行無常)
이 오직 일어나 사라짐일 뿐 (是生滅法)
일어남 사라짐 다시는 들지 않음 (生滅滅已)
그대로 적멸하고 청정하구나." (寂滅爲樂)
라고 부처님의 게송을 풀이하여 적어봅니다. '적멸(寂滅)'이라는 말을 곰곰히 새겨봅니다.
어떤 분인지는 모르지만 참 잘 만든 말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원효대사의 광대설보다 의미와
곡절과 표현을 다 갖추고도 간명한 부처님의 게송이 훨씬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 어찌 비교를
하겠습니까마는 말입니다.
무변광대한 시공에 무변광대한 일체 중생이 무변광대한 방향으로 거품처럼 일어나고 사라짐을
거듭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겨자씨 한 개의 점만큼도, 이것만큼은 영원하다고, 행복하다고, 나
혹은 나의 것이라고 의지할 바 없는 오직 '적멸(寂滅)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서,,
오욕을 털어내고 한없는 사악함이라는 강을 건너 행복한 저녁을 맞겠습니다.
이와 같이 새겼습니다.
이같이 상세한 법문을 주신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두 손 높이 모아 거룩하신 부처님과 그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
이 경을 사경한 공덕으로
행복하고 위험없는 열반으로 장애없이 도착하기를
수 많은 생 윤회할 때
고통 위험 원수들과 나쁜 것들 안 만나고
모든 행복 축복들을 바람대로 이루기를
오늘 지금 행한 공덕 몫을
부모 스승 친척 친구 자신보호
어려울 때 연민과 도움을 주신 도반들
천신들을 시작으로 삼십일천 존재하는 제도가능 모든 중생
성취하길 바라면서 회향합니다.
경을 번역하여 알리느라 노고를 마다 않으신 대림스님과 각묵스님 건강하시기를,,,
이 방과 인근에 거하는 천신들과 비인간들
집과 인근에 거하는 천신들과 비인간들
김해 장유 반룡산에 거하는 천신들과 비인간들
지리산 실상사와 지리산에 거하는 천신들과 비인간들
보라산에 거하는 천신들과 비인간들
또한 나와 숙업이 쌓였던 그에게 회향합니다.
그와 나 사이에 청정한 자애가 연민이 강물처럼 흐르기를,,,
모두 이 회향을 받아
걱정에서 벗어나시기를, 고통에서 벗어나시기를, 위험에서 벗어나시기를,
한없는 사악함이라는 강을 건너게 되시기를,,,
평안하고 행복하시기를,,,,,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 ∼ 두 ∼ 사 ∼ 두 ∼ 사 ∼ 두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 ∼ 두 ∼ 사 ∼ 두 ∼ 사 ∼ 두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 ∼ 두 ∼ 사 ∼ 두 ∼ 사 ∼ 두 ∼
2017.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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