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니까야(中部)/M23.개미집 경-천신의 수수께끼

※後記: 개미집 경을 마치며,,,,

이르머꼬어리서근 2016. 8. 11. 18:46

 

개미집 경은

 

세존께서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실 때

어떤 천신이 꾸마라깟사빠 존자에게 밤에 칮아와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하고

세존께서 해설해 주시는대로 호지하라고 한 것을 계기로 세존께서 꾸마라깟사빠 존자에게

설하신 법문을 그 내용으로 합니다.

 

 

 

저는 3년전 이 경의 전재성 박사님 번역을 보고 마음에 느낀 바가 있어 사경한 적이 있는데

그 느낌을 이같이 적은 것이 있습니다.(http://blog.daum.net/ibakdal/17371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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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이 법문을 전해 들으면서,,,,
아주 묘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들었던,,, 그러나 잊어버렸던,,,,
수수께끼 하나를 다시 들은 것 같은 기분 말입니다,,,,

그리고 어떤 구멍을 파도 파도 그 안에서 무멋이 다시 나오는  
저의 꿈과도 비슷한,,, 제 삶과도 비슷한,,,
그런 기분 말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이 법문을 들으면서,,,
공부를 하면서 얻게된 저의 확신이 틀리지 않았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 과연 이 방향은, 아니 이 방향마저도,,,
틀린 것이 아니다라는 확신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것도 같았던,,,,
기나긴 미몽에서 께어날 때가 되었습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                    2013.08.07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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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들었던 수수께끼고 풀이도 들었지만, 마음챙김이 절실하지 않아서

답이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은 지금도 똑같습니다.

심지어 3년전에 사경을 하고 다시는 잊지 말아야지 했는데 경을 덮고 답을 생각을 해내려 해도

여전히 가물가물한 것입니다.

 

스핑크스가 지나는 행인에게 수수께끼를 내듯 염라대왕이 다시 물어볼 때 또 답을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천신이 낸 이 질문은 실제 수수께끼 같은 양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타고 연기나는 개미언덕은 실제 우리 몸이나 세상과 닮아 있고,

이 모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구한다면 칼로 계속 파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고,

 

빗장을 밀어제치지 못하면 계속 갇혀서 살 수 밖에 없고,

두꺼비는 그 모습이 실제 분노하고 절망에 쩐 자와 같고,

두 갈래 길 혹은 두 갈래 갈퀴는 헤매고 긁을수록 상처나게 하는 의심과도 같고,

체는 모든 것을 걸러내는 막과 같으니 모든 존재가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장애와 같고,

거북이는 머리와 네 다리를 합하면 다섯이니 오온과 닮아 있으며,

도마와 칼은 그것을 추구하면 할 수록 그 존재를 도려내니 감각적 욕망과 닮아 있고,

고기덩이는 감각적 욕망에 탐닉하다가 결국 칼과 도마에 피 묻은 한 점 살덩어리로 전락한 

모습이며,

 

용(龍)은 번뇌 다한 비구 혹은 번뇌의 멸진이니 용이라 할만하고, 예배할 만한 대상이기 때문

입니다.

 

 


다시는 이 수수께끼를 잊지 않기 위해서 아래와 같이 순서대로 실로 꿰듯이 연결해 보았습니다.

 

1. 빗장_무명(지혜 없음)


빗장은 모든 사람이나 존재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존재를 입은 바, 내 몸을 시작으로

자신과 자기 앞에 펼쳐지는 세상(오온)의 실상를 보는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팔정도의 첫 번째인 바른 견해(正見)의 일부분조차도 없는 즉 '지혜 없음(無明)'입니다.

 

지혜가 없기에 그는 빗장 안의 세상이라는 큰 감옥에 갇혀 살 뿐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모릅니다. 대상을 감관하는대로 혹은 그 감관하는 주체를 세상과 자신의 실체라고 거머쥐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2. 두꺼비_분노에 따른 절망


그렇게 사는 그는 분노하고 절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늙지 않아야 하는데 늙고, 병들지 말아야

하는데 병들고, 죽지 않아야 하는데 죽고야 맙니다. 원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고, 사랑하는

사람과는 헤어지게 마련이고, 싫은 사람이라도 계속 만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감각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혹은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노력하지만 뜻대로 이루기 어렵고

그는 성을 내고 화를 내고 분노하고 악의와 적의를 품게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뜻대로 이뤄지지도

않습니다. 더 큰 좌절과 괴로움을 겪습니다. 분노와 절망입니다.

 

그러나 출구는 없습니다. 그런 곡절을 다 수용하게 되어 마음이 다스려진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하지만 꿰뚫어 알지를 못하기에 그것은 일종의 절망 혹은 포기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꺼비의 툭 튀어나온 눈과 곱지 않은 피부색 등을 보면 그는 분노와 절망의 표상을 담고있다고 

할 수있을 것입니다.

 


3. 두 갈래 길/두 갈래 갈퀴_의심


그는 부처님이나 그 제자들의 가르침을 듣게될지 모릅니다. 혹은 다른 전승에서 유익한 법을 대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진짜로 유익한 것(善)인지 해로운 것(惡)인지에 대한 확신이나 지혜가 없습니다.


유익한 것은 열 가지 유익한 길(十善業)으로 산 목숨을 해치지 않음, 주지 얺은 것을 가지지 않음,

삿된  음행하지 않음,거짓말하지 않음, 중상모략하지 않음, 거친 말하지 않음,, 잡담하지 않음, 감각적 욕망을 탐하지 않음, 악의를 품지 않음, 의심에서 벗어남이며, 해로운 길(十惡業)은 유익한 

길의 반대입니다. 이 몸으로 짓는 3가지, 말로 짓는 4가지, 마음으로 짓는 3가지의 10가지입니다.


유익한 것은 유익할 뿐이요, 해로운 것은 해로울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확신을 가지는데는

많은 시행착오와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유익함과 해로움(善惡)을 꿰뚫어 알아 의심이라는 강을 

건너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은 그것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두 갈래 길에서 갈애와 욕망 때문에 알면서도 해롭다고 배운 적이 있는 길을 갑니다. 

두 갈래 퀴로 자신을 긁으면 상처가 날 뿐인데도 계속 그 길을 갑니다. 꿰뚫어 알지 못하여 

확신이 없어서 수없이 갈퀴로 긁어서 자신을 피나게 하는 것이 바로 대부분 사람의 모습입니다.

 


4. 체_다섯 가지 장애(五蓋)


그가 의심아리는 사막을 건넜다고 하더라도, 모든 존재가 가지는 다섯 가지 장애를 꿰뚫어 알고

벗어나야 하는 숙제를 해내야만 합니다.


의심에서 벗어나 길을 가기 시작했다손 치더라도, 감각적 욕망, 악의, 해태와 혼침, 들뜸과 후회,

뿌리깊은 의심과 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들을 바로 보고 마음챙겨서 그러한 장애로부터 벗어나고 다시는 묶이는 일이 없고 혹은 잠시

장애가 생겼다 하더리도 그때그때 바로 보아 그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체를 통과하지 않으면 그의 마음은 더 수승한 곳으로 가기 어렵습니다. 빚을 다 갚은 자, 

중병에서 나은 자, 감옥에서 풀려난 자, 종살이를 벗어난 자, 사막을 건너 비로소 집으로 돌아온 

자 즉, 자유로운 자가 매임없는 자가 되어,


그 마음은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四梵住)으로, 희열과 경안과 행복으로, 그리하여 

삼매(心一傾)로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리고, 떨쳐버림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을 구족한 선정(禪定)으로 이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5. 거북이_오취온(五取蘊)


그가 체를 통과하여, 즉 다섯 가지 장애를 통괴하고 나면 그는 이제 실상을 볼 때가 된 것입니다.

장애를 벗었지만 그는 자신과 세상을 보는 지혜를 얻은 것은 아닙니다.


        1) 취착의 [대상인] 물질의 무더기[色取蘊],

        2) 취착의 [대상인] 느낌의 무더기[受取蘊],

        3) 취착의 [대상인] 인식의 무더기[想取蘊],

        4) 취착의 [대상인] 심리현상들의 무더기[行取蘊],

        5) 취착의 [대상인] 알음알이의 무더기[識取蘊]


이라는 form(色), feel(受), perception(想), formation(行), consciousness(識)의 무더기들을

내 것이 아니요, 내가 아니요, 나의  자아가 아님을 통찰하여, 무상하고 그리하여 괴로움인 줄을 보아

이들을 버려 나가야 합니다.


거북이가 네 다리를 내어놓고 있다면 그 형상은 머리를 합하여 다섯입니다. 거북은 단단한 껍질을

쓰고 있어 깨기 어렵고, 숨으면 한 개의 덩어리로 보이는 것은 존재의 발현이요 인지의 방식인 오온과

닮아 있다고 하겠습니다.



6. 칼과 도마(도살장)_감각적 욕망


그가 도의 길에 들어 위와 같은 지혜가 생겼다 하더라도 그가 성취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법을 만나기도 어렵지만 설사 법을 듣고 이해했다 하더라도 그 법은 자기의 것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실제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수행을 통해서 감각적 욕망 즉,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짝하고, 매혹적인,


       1)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

       2)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

       3)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

       4) 혀로 인식되는 맛들

       5)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


이 다섯 가지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들과 싸워 나가야 합니다.


세존께서는


  ''감각적 욕망이란 달콤함은 적고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는 것이어서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르게 통찰지로써 잘 본다 하더라도,


   그가 감각적 욕망을 멀리 여의고 해로운 법들도 멀리 여읜 희열과 행복에 도달하지 않고, 

   그 보다도 더 평화로운 다른 것에 도달하지 않는 한

   그는 결코 감각적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라 할 수 없다.'

                                                          (http://blog.daum.net/ibakdal/17371839)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지 간에  

    이들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묶이고 홀리고 푹 빠져서 

    재난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에 대한 통찰지가 없이 그것을 즐기면,

 

   '그들은 불행을 만났고 재난을 얻었고 사악한 [마라]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http://blog.daum.net/ibakdal/17371948)


등과 같이 얽어매는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그분 가르침의 요체로 설하십니다.


이것을 실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 분이 있다면 이미 그분은 성자(聖者)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참으로 세존의 가르침은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고, 듣고, 맡고, 먹고, 느끼는 것에 대한 빠짐은 그 존재를 실로 도마에 올려놓고 칼로 

해체하는 것과 같이 그 존재를 결국 재난과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을 봅니다. 그가 전생이든 

현생이든 공덕이 그만하거나 혹은 벗어남에 대한 지혜를 갖추었다면 모르거니와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로 이것을 위해서 가다가 악과 재난의 구렁텅이에 이르는 것이 인간세입니다. 



7. 고깃덩이_향락과 탐욕


다섯 가지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빠져서 향락하고 탐닉하는 모습은 '개, 돼지'라고 불려도 좋을 것입니다. 공덕이 있어야 사람으로 태어나고, 사람의 몸 받기가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은 축생과 달라 부처님의 법을 듣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약카이기도 하고 축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신(神)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경이로운 기능들을 가지고 상상하지 못할 일들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고귀한 몸을 받고 태어나서 보고, 듣고, 맡고, 먹고, 느끼는 것에 빠져서, 폭력과 살생과 괴롭힘, 술과 음행에 빠져있으면서도 그것이 괴로움인 줄, 해로운 길인 줄, 재난에 이미 들어섰음을 

모르는 자는 이미 마라의 도마 위에서 칼로 난도질 당한 끝에 피가 흥건한 한 웅큼의 고깃덩이가 되고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8. 용(龍)_번뇌 다한 비구/번뇌를 부숨


이와 같이 수행하여 번뇌 다한 자는 실로 용이라 할 만하니, 용에게 예경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공양하여 마땅하고, 환대하여 마땅하고, 보시하여 마땅하고, 두 손 모아 예경하기 마땅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새겼습니다.




이 경을 사경한 공덕으로

행복하고 위험없는 열반으로 장애없이 도착하길

수많은 생 윤회할 때 고통 위험 원수들과 나쁜 것들 안만나고

모든 행복 축복들을 바람대로 이루기를.


부모 스승 찬척 친구 자신보호

천신들을 시작으로 삼십일천 존재하는 제도가능 모든 중생

성취하길 바라면서 회향합니다.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2016.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