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얼마나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는가는
녹야원에서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신사빠 숲의 말씀에서 다시 확인된다.
한 때 세존께서는 꼬삼비(알라하바드 근처)의 신사빠 나무숲에서 머무셨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신사빠 나뭇잎들을 손에 들고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에 있는 신사빠 잎사귀와 저 숲에 있는 잎들 중, 어느 쪽이 더 많은가?”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손에 드신 잎사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저편 숲에 있는 잎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렇다. 비구들이여, 내가 완전히 깨닫고서도 너희들에게 설하지 않은 것은 많다.
내가 너희들에게 설한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비구들이여! 왜 내가 그 모두를 설하지 않는가?
그것들은 유익하지도 않고 청정한 삶에 꼭 필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1) 싫은 마음을 일으킴[厭離 nibbidā],
2) 탐욕을 멀리 함[離慾],
3) 멸진[滅盡],
4) 적정[寂靜],
5) 완전한 지적능력[神通智 abhiññā),
7) 완전한 깨달음,
8) 열반
으로 이끌어 주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내가 그것들을 설하지 않은 이유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내가 설한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괴로움이다. - 이것을 나는 설한다.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 이것을 나는 설한다.
이것은 괴로움의 멸진이다. - 이것을 나는 설한다.
이것은 괴로움의 멸진에 이르는 길이다. - 이것을 나는 설한다.
비구들이여! 나는 왜 이러한 진리를 설하는가?
이 진리들은
실로 유익하고 청정한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진리들은
1) 싫은 마음을 일으킴[厭離 nibbidā],
2) 탐욕을 멀리 함[離慾],
3) 멸진[滅盡],
4) 적정[寂靜],
5) 완전한 지적능력[神通智 abhiññā),
7) 완전한 깨달음,
8) 열반
으로 이끌어 준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내가 이 진리들을 설하는 이유이다.
비구들이여! 따라서,
이것이 괴로움이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고,
이것이 괴로움의 멸진이고,
이것이 괴로움의 멸진에 이르는 길임을 깨닫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느니라.”32)
부처님은 역설하신다.
“나는 오직 한 가지를 알려 줄 따름이니
괴로움과
괴로움의 멸진이노라.
(dukkhamceva paññāpemi, dukkhassa ca nirodham)”33)
이렇듯 명쾌하게 일러주신 말씀을 올바로만 이해한다면 불교를 다 이해한 셈이 된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이 이 한 가지 원리의 적용일 뿐 다른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부처님이든 발견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이 사성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사성제야말로 어떤 시대의 부처님일지라도 한결같이 가르치실 전형적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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