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노래, 그의 이야기/그의 야그

이르머꼬어리서근이 된 까닭

이르머꼬어리서근 2010. 12. 7. 14:17

 

무호(無號)는 재곤,재룡 형님께서 지어주신 호(號)입니다

 

저 유명한 이군대락득호무호설(李君大洛得號無號說)을 인용하면

도인들이 登三角道峰하여 일대 장관이 벌어지는데,,,

 

하여,,,,제가 무호가 된 것이

설명을 하자면 '狂'이라는 한 자 뿐입니다.

풀이하면 '이름이 없다' 혹은 '부를 수 없다'라는 광대한 그 무엇 혹은 거시기 ㅋㅋ

 

 

 

그로부터 20년 후,,

한 때 이런 생각이 들었읍니다.

 

무엇이든 도모하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고

심지어는 제가 무슨 생각만해도 귀신들이 다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아무리 교묘한 생각을 하더라도 결국 되지 않는다는 생각 말입니다.

 

꼭 강물울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다는 느낌이 들었죠.

 

 

 

돌아보면 공부가 심히 덜 되어 있었는데

자신은 알만큼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때 눈에 띈 글씨가 어리석을 '遇'입니다.

자전을 찾아보니 허수아비라는 뜻도 있더군요.

 

이룰 수 없는 자신 혹은 똑똑함을 버리고 크게 어리석게 살아보자 혹은

바람이 부는대로 날리는 허수아비처럼 살아보자는 뜻으로..

 

뭐 그런 자세가 답이 된 것은 아닙니다만,,,

마음은 좀 편해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형님들이 지어주신 "무호" 뒤에 "대우"를 붙여서

그 이름도 엄청난 무호대우(無號大遇)가 된 것이죠.

좀 부담스럽지 않나요? ㅎㅎㅎ

 

 

무협지에 나오는 이름처럼도 들리거니와

한학 내지 불교 내지 도교에 닿아있는 현학 내지

먹물 냄새가 물씬 풍기는,

혹은 듣기만 해도 내가 나라는 생각에 붙어있는 느낌이 있어

부담스러워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해서 "이름없고어리석은"으로 바꿔봤읍니다.

훨씬 낮아서 떨어질 염려가 없습니다.

낙낙장송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만

사실 요새는 낮게낮게 혹은

보도블록 틈 사이라도 틈만있으면 돋아나는 작은 풀 쪽을 더 많이 돌아보게 되었고요,,,

낙낙장송은 구경이 되겠읍니다만

풀들은 이름없이 자라서 뭇 생명들이 먹을 수가 있지 않습니까? ㅋㅋ

 

 

 

이러한데 한얼 회원있던 최용선님이

예,,이분 불가사의 해탈하신 보살이라고나 할까,,,여튼 그분이

"이르머꼬어리서근"이라는 팁을 주셔서

과연 이것이야말로 세종대왕님의 유지를 받드는,,

"나랏말이문자와로서로사맛디아니할쎄"로 세우신

폼 다 빼고 소리나는대로 적으면 될 거 아니냐는

흠.... 이걸 표음문자라고 하나요?...

 

 

 

선배님이 지어주신 원형을 지키고,,

호의 뜻을 살리되,,,

무거움을 피하고,,

또한 세종대왕님의 성지를 살려서,,,

해서 파이널리

"이르머꼬어리서근"이 된 것입니다.

 

 

휴∼∼∼

이와 같이 개명신고를 올리오니,,,,

제좌들께서는 깊히 통촉하시옵고

오늘도 행복하시기를 바라옵니다...()

 

 

2009.9.2

 

 

 

 

 

 

李君大洛得號無號說(1980.4월이던가..)

 

  이군대락이 무호(無號)라는 호를 얻게 된 이야기로다..

 

 

 

 

 

 신유년 춘 삼월에 온갖 꽃들은 흐들어지게 피고 새들은 무리를 지어 서로를 부를 때

 봄날 노곤한 말의 기운을 이기지 못하여 반가운 친구 몇몇이 함께 삼각 도봉을 올랐더라.

 만장봉은 우뚝 서 있고 계곡 물은 기쁜 소리를 내며 흘러갈제

 마음에 기쁨이 솟아올라 각각 다른 봉우리를 올라 크게 틀고 않아 미친 듯 소리들을 내더라.

 넓은 계곡은 크게 메아리쳐 울리고

 나(청하,문재곤)는 신선의 뗏목처럼 생긴 바위에 올라 태허의 신기를 뽑아 발하다가

 아래를 굽어 보니 잘 익은 술 한 독을 얻었도다 (호리병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었다)

 문득 벽운(이재룡)의 맑은 피리 소리가 들리고, 통기(통기. 권오상)는 쇠천둥 같은 노래를 부르고

 또 한 사람(나)은 청산별곡을 뽑아대더라.

 

 어렵게 감로주 한 항아리를 얻었거늘 어찌 서로 잔 기울일 사람이 없겠는가

 단 한 사람이 호가 없어 (저만 그때 호가 없었습니다.)

 불러 청할 수가 없더라.

 

 이 일후 며칠이 지난 다음 내가(청하) 벽운과 더불어 음양의 이치를 격론할 때

 현명한 동생 대락이가 웃음지며 말하기를

 '空靈宇宙 虛心狂舞' 라

 '맑은 영 가득한 텅빈 우주에 매임없는 맘으로 미친 춤을 추노라' 하더라.

 

 이에 내가 그에 감탄하여 말하기를 '無號'라 !!! 

 '(그대와 이 지경이여) 이름할 수 없도다' 하였다.

 

 이에 이르러  할 !

 

 '狂'야라.

 미쳤도다 !! 하였다.

 

 

 신유년 봄 무르익을 때

 푸른 마음은 하늘에 빛나고

 청하는 짓고 벽운이 쓰다.

 

 

 (이때 벽운兄은 낙관이 있었다. 그 낙관이다.

  이때 청하兄은 낙관이 없었다. 손바닥으로 대신했다)

 

 

 (그래서 나의 호 '무호'의 說은 단 한 자이다. 狂이다. 

  형님들 덕분에 단 한 자로 된 호설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