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습니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습니다."
1)
"깟사빠여,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다.'라는 것은
세속에서는 당연하다.
깟사빠여, 그런데 만일
나체수행자이고, 관습을 거부하며 살고, 손에 (받아) 핥아서 먹고,
(음식을 주기 위해서) 오라 하면 가지 않고, (음식을 주기 위해서) 서라 하면 서지 않으며,
가져온 음식을 받지 않고, (자기 몫으로 지칭된 것을) 받지 않으며, 초청에 응하지 않고,
그가 그릇으로 (주면) 받지 않고, 접시로 (주면) 받지 않고, 문지방을 넘어서 주는 것,
막대기에 꿰어진 것, 절구공이 안에 있는 것을 받지 않으며,
두 사람이 먹을 때, 임신부로부터, (아이에게 젖을) 억이는 여자로부터, 남자 (품에) 안겨
있는 여자로부터 받지 않으며,
(보시한다고) 널리 알릴 때 받지 않으며, 개가 옆에 있을 때 받지 않으며,
술, 과즙주, 발효주를 마시지 않고,
그가 한 집만 가서 한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두집만 가서 두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 일곱 집만 가서 일곱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한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두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 , 일곱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며,
하루에 한 번만, 이틀에 한 번만, ··········· ,
이런 식으로 반달에 한 번만 방편으로 음식을 먹으며 사는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고 너무나 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심지어는 물 긷는 하녀까지도
'오, 참으로 나는 나체수행자가 되어야지, 관습을 거부하며 살아야지,
손에 (받아) 핥아서 먹어야지, · ···········
··········· 이런 식으로 반달에 한 번만 방편으로 음식을 먹으며 살아야지.'라고 하면서
이렇게 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깟사빠여, 그러나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과는 다른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고 너무나 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1]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2] 마음의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의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2)
깟사빠여, 그런데
채소를 먹는 자이고,
수수, 니바라 쌀, 닷둘라 쌀, 수초, 등겨, 뜨물, 깻가루, 풀, 소똥을 먹는 자이며,
야생의 풀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해서 살고, 떨어진 열매를 먹는 자라는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고 너무나 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심지어는 물 긷는 하녀까지도
'오, 참으로 나는 채소를 먹는 자가 되어야지, · ···········
야생의 풀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해서 살고, 떨어진 열매를 먹는 자가 되어 살아야지.'라고
하면서 이렇게 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깟사빠여,
그러나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과는 다른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고 너무나 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1]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2] 마음의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의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3)
깟사빠여, 그런데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마포로 된 거친 옷을 입고, 시체를 싸맨 헝겊으로 만든 옷을 입고,
넝마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영양 가죽을 입고,
영양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입고, 꾸사 풀로 만든 외투를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외투를 입고,
판자로 만든 외투를 입고, 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꼬리털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올빼미 털로 만든 옷을 입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수행에 몰두한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자이고,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는 자이며,
쪼그리고 앉는 수행에 몰입한 쪼그리고 앉는 자이며,
가시를 가까이 하는 자이어서 가시로 된 침상을 사용하며,
밤에 세 번을 물에 들어가는데 몰두하며 지낸다 할지라도,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고 너무나 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심지어는 물 긷는 하녀까지도
'오, 참으로 나는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살아야지, 마포로 된 거친 옷을 입고 살아야지,
··········· , 밤에 세 번 물에 들어가는 데 몰두하여 살아야지.'라고 하면서
이렇게 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깟사빠여,
그러나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과는 다른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고 너무나 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다.'는 말은 적절하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1]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2] 마음의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의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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