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진암(識盡庵)/마음의 다함

쇠살처럼/박혀있는/더미(蘊)를 향한/열망,,, 철환 경(S51:22)

이르머꼬어리서근 2023. 9. 15. 06:45

 

"존재의 근거를 모두 부수어",,,,,,

 

철환 경(S51:22)

Ayogula-sutta

 

 

2.

    그 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3.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신통에 의해서

    마음으로 만든 몸으로 

    범천의 세상에 가신 것을 알고 계십니까?”

 

   “아난다여, 나는 신통에 의해서 마음으로 만든 몸으로 범천의 세상에 간 것을 알고 있다.”

                                                                                                   (*1: 미음으로 만든 몸)

 

4.

   “세존이시여, 그런데

    세존께서는 네 가지 근본물질로 된 이 몸으로

    신통에 의해서

    범천의 세상에 가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아난다여,

    나는 네 가지 근본물질로 된 이 몸으로 신통에 의해서 범천의 세상에 간 것을 알고 있다.”

                                                                                 (*2: 네 가지 근본물질로 된 이 몸)

 

5.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신통에 의해서

    마음으로 만든 몸으로 범천의 세상에 가실 수도 있고

 

    네 가지 근본물질로 된 이 몸으로 신통에 의해서

    범천의 세상에 가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니 이것은 세존의 입장에서는

    경이롭기도 하고 놀라운 것이기도 합니다.”

 

 

   “아난다여, 여래는 경이롭기도 하고 경이로운 법을 구족하기도 하였다.

    아난다여, 여래는 놀랍기도 하고 놀라운 법을 구족하기도 하였다.

 

    아난다여, 여래가 

     몸을 마음에 스며들게 하고

    그리고 마음을 몸에 스며들게 하여

 

    몸에 대한 

    행복의 인식가벼움의 인식에 들어가서 머물 때

 

    여래의 몸은

    더욱더 가벼워지고

    더욱더 부드러워지고

    더욱더 다루기에 적합하고

    더욱더 빛이 난다.”

 

                        (*3: 몸을 마음에 스며들게 하고, 그리고 마음을 몸에 스며들게 하여

                         *4: 행복의 인식과 가벼움의 인식에 들어가서)

 

 

6.

   "아난다여, 예를 들면

    철환이 낮에 열을 받아 달궈지면

    더욱더 가벼워지고

    더욱더 부드러워지고

    더욱더 다루기에 적합하고

    더욱더 빛이 나는 것과 같다.

 

    아난다여, 그와 같이 여래가

    몸을 마음에 스며들게 하고

    그리고 마음을 몸에 스며들게 하여

 

    몸에 대한 행복의 인식과 가벼움의 인식에 들어가서 머물 때

 

    여래의 몸은

    더욱더 가벼워지고

    더욱더 부드러워지고

    더욱더 다루기에 적합하고

    더욱더 빛이 난다.”

 

7.

   "아난다여, 여래가

    몸을 마음에 스며들게 하고

    그리고 마음을 몸에 스며들게 하여

 

    몸에 대한 행복의 인식과 가벼움의 인식에 들어가서 머물 때

 

    여래의 몸은

    더욱더 가벼워지고

    더욱더 부드러워지고

    더욱더 다루기에 적합하고

    더욱더 빛이 난다.”

 

8.

   "아난다여, 예를 들면 마치

    목화나 케이폭의 씨를 싸고 있는 솜털이

    가벼워서 바람을 받으면 아무 어려움 없이 땅에서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것과 같다.

 

 

    아난다여, 그와 같이 여래가

     몸을 마음에 스며들게 하고

    그리고 마음을 몸에 스며들게 하여

 

    몸에 대한 

    행복의 인식 가벼움의 인식에 들어가서 머물 때

 

    여래의 몸은

    아무 어려움 없이 땅에서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그는 여러 가지 신통변화를 나툰다.

 

    1) 하나인 채 여럿이 되기도 하고, 여럿이 되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한다.

    2)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고,

    3) 벽이나 담이나 산을 아무런 장애없이 통과하기를 마치 허공에서처럼 한다.

    4) 땅에서도 떠올랐다 잠겼다 하기를 물속에서처럼 한다.

    5) 물 위에서 빠지지 않고 걸어가기를 땅 위에서처럼 한다.

    6) 가부좌한 채 허공을 날아가기를 날개 달린 새처럼 한다. 

    8) 저 막강하고 위력적인 태양과 달을 손으로 만져 쓰다듬기도 하며,

       심지어는 저 멀리 범천의 세상까지도 몸의 자유자재함을 발한다.[神足通]"

 

                                                                                       (*5: 케이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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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음으로 만든 몸(manomaya kāya)’은 『디가니까야』 「사문과경」(D2) §85에서

 

    “그는 마음으로 만든 몸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합니다.

    이 몸으로부터 그는 형색을 가지고,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수족이 다 갖추어지고,

    감각기능[根]이 결여되지 않은 다른 몸을 만들어냅니다.”라는 문맥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제4선에 능숙한 수행자가

    자신의 몸으로부터 만들어낸 다른 미묘한 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청정도론』 Ⅻ.25에서는

    “[자기의] 몸 안에서 마음으로 만든 [다른] 몸을 생기게 하기 때문에

    마음으로 [다른 몸을] 만드는(manomaya) 신통이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청정도론』 Ⅻ.135에서는 위의 「사문과경」(D2)의 정형구에 나타나는 단어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결의하는 마음(『청정도론』 Ⅻ.57 이하 참조)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감각기능[根]이 결여되지 않은 것은; 이것은 눈, 귀의 형상으로 설했다.

    그러나 창조된 형상에는 감성(感性, 『아비담마길라잡이』 6장 §3의 해설 2 참조)은 없다.”

 

 

*2: 여기서 ‘몸(kāya)'은

 

신통으로 만든 몸이 아니라 자연적인 몸을 말한다.

 

 

*3: “‘몸을 마음에 스며들게 하고(kāyampi citte samodahati)’란

 

몸을 취하여 마음에 올라가게 한다(āropeti), 마음에 의지하게(citta-sannissita) 만든다.

마음의 행처(citta-gati)로 보낸다(peseti)는 말이다.

마음이란 고귀한 마음(mahaggata-citta, 즉 색계와 무색계의 마음)이고,

마음의 행처의 움직임(citta-gati-gamana)은 재빠르다(lahuka).

 

‘마음을 몸에 스며들게 하여(cittampi kāye samodahati)’

마음을 취하여 몸에 올라가게 한다. 몸에 의지하게 만든다. 몸의 행처로 보낸다는 말이다.

몸이란 물질로 된 몸(karaja-kāya)이고 몸의 행처의 움직임은 느리다(dandha)”(SA.ⅲ.261)

 

 

*4: “‘행복의 인식과 가벼움의 인식(sukhasaññañ ca lahusāñañ ca)’이란

 

신통지의 마음에서 생긴 인식(abhiññā-citta-sahajātā-saññā)이다. 

[마음이] 평화로워 행복을 구족하였기 때문에(santa-sukha-samammāgatattā) 

행복의 인식이라 하고

오염원의 지둔함(kilesa-dandhāyitatta)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가벼움의 인식이라 한다.”(SA.ⅲ.261)

 

 

*5: ‘케이폭’ 혹은 ‘케이폭 나무’는 kappāsa(Sk. karpāsa)를 옮긴 것이다.

 

영어로 kapok(케이폭) 나무라고도 하며 silk-cotton tree라고도 한다.

케이폭은 이 나무의 씨앗을 싼 솜을 뜻하며,

이것은 베개나 이불 속이나 구명대 등에 넣는다고 한다.

 

 

                                                                     * 각묵스님 옮김 『상윳따니까야』 제6권 135~1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