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소의 분석 경은
세존께서 마가다를 유행하실 때 라자가하에 도착하셔서 도공 박가와(가띠까라)를 찾아 가셔서
그의 작업장에서 하룻밤을 묵을 것을 청하셔서, 거기에 먼저 머물고 있던 출가한 선남자
뿍꾸사띠 존자에게 설하신 경입니다.
■ 왕이었던 뿍꾸사띠 선남자,
친구로부터 세존의 교법을 전해듣고 왕국을 버리고 출가를 위해 나서다.
대림스님은 주석에서 맛지마니까야의 주석서에서 14쪽에달하는 전하는 뿍꾸사띠 선남자의
불법인연을 요약하여 알리십니다.
마가다의 왕인 빔비사라 왕이 라자가하에서 통치하고 잇을 때 뿍꾸사띠는 딱까실라라는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왕이었습니다. 빔비사라 왕은 왕래하는 상인들로부터 뿍꾸사띠 왕이 덕망있고
존경받고 자신과 동갑임을 알게 되어 그와 친교를 맺기 원했고 딱까실라 상인들에게는 관세도
물리지 않는 등 홍의를 베풀었습니다.
빔비사라 왕은 딱까실라에 삼보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세존을 그곳으로 가시게 하는 일도 여의치
않고 사리뿟따 존자나 목갈라나 존자를 그곳으로 가게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황금접시에 '여기 여래께서 출현하t셨으니,,,'로 시작하는 부처님 공덕, '세존에 의해 법은 잘 설해졌고,,'로 시작하는 가르침의 공덕,, '세존의 승가는 도를 잘 닦고,,'로 시작하는 승가의 공덕을 새기고,
여섯 가지 감각 대문의 단속, 마음챙김과 알아차림, 네 가지 필수품으로 만족함, 다섯 가지 장애의
제거 등 부처님의 가르침을 새겨, '세존의 교법은 잘 설해졌고, 향상으로 인도하니 만일 내 친구가
가능하다면 집을 나와 출가하기를 바랍니다.'라고 새겨서 뿍꾸사띠 왕에게 보냈습니다.
뿍꾸사띠 왕은 그것을 받고 불법승의 공덕을 차례로 읽고 맨 마지막에 들숨날숨의 명상주제를 읽고
초선∼4선을 일으킨 禪의 기쁨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그는 왕국과 세존의 교법을 놓고 고민하다가
세존의 교법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많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왕궁을 떠납니다.
그는 제따와나로 들어가는 문 근처까지 갔지만 45요자나나 되는 길을 지나쳐버립니다.
해거름에 왕사성에 도착하여 스승이 어디 계신지를 묻고 먼 길을 지나쳤음을 알고 날이 저문 탓에
하룻밤을 도기공의 집에 머물고 그 다음날 스승을 찾아 떠나기로 합니다.
세존께서 그날 새벽 세상을 둘러보시다가 뿍꾸사띠를 보고 '이 선남자는 단지 친구가 보내준 그 교법을 읽고 왕국을 버리고 나를 믿고 출가하여 왕사성에 도착했다. 만일 내가 그를 만나러 가지 않으면
그는 세 가지 사문의 결실을 얻지 못하고 하룻밤이 지난 뒤 의지처 없이 죽게 될 것이다. 내가 가서
법을 설하면 세 가지 사문의 결실을 얻게 될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십만겁을 더한
네 아승지 겁 동안 바라밀을 닦았다. 그러니 그를 구하리라."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그가 왕국을 버리고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은 채 걸어서 온 것을 생각하시면서, 당신도
어떤 신통도 나투시지 않고 발로 걸어서 왕사성으로 가셨습니다. 세존께서는 32대인상을 감추고
어느 비구의 모습으로 45요자나를 걸어 해거름에 선남자가 먼저 도착해 머물고 있는 그 도기공의 집에 도착하십니다.(MA.v.33∼46)
■ 가르침의 '뼈'를 그에게 설하시다.
뿍꾸사띠 존자는 이 밤이 지나면 죽을 것입니다. 그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친구가 황금접시에 새겨준
세존의 법을 보고는 믿음을 내고 출세간의 환희를 느끼고,,, 왕국을 버리고 홀로 출가의 길을 나섭니다. 세존께서는 이 사나이의 마음을 보시고 몸소 먼 길을 걸어서 도공 박가와의 집으러 가셔서
그 작업장에서 하룻밤 지낼 것을 청하시고, 스스로 풀을 깔아 자리를 만드신 다음 그 밤을 앉아서
지내시다가,, 그 됨됨이를 보시고 '그를 구하기 위해',,, 이 법을 설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절절하고 아름다운 광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도할 만한 중생을 제도하시는 데 가장 으뜸이신 분(아눗따로 뿌리사 담마사라티, 調御丈夫)'이신
그분이십니다. 사람의 그릇과 그의 업과 잠재성향에 따라 달리 설하시는 그분이시지만,,,
이 밤이 지나고 나면 죽을 그 사나이에게 무슨 법을 어떻게 설하셔서 그를 구하신 것인지,,,
믿음이 있고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접했지만, 그 '뼈'가 무엇인지는 알지못했을 뿍꾸사띠에게
세존께서는 당신 가르침의 '뼈'를 설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 「여섯 가지 요소(dhatu)의 분석」
◎ 여섯 가지 요소의 분석에 대한 요약
"비구여,
1] 이 사람은 여섯 가지 요소[界, dhatu]로 이루어졌다.
2] 이 사람은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處, ayatana]로 이루어졌다.
3] 이 사람은 열여덟 가지 마노[意]의 고찰[伺, vicara]로 이루어졌다.
4] 이 사람은 네 가지 토대[adhitthana]를 가지고 있다.
5] 여기에 굳게 선 자에게 공상(空想, 허황된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며
공상이 일어나지 않을 때 고요한 성자(muni-santa)라 한다.
6] 이 사람은
1) 통찰지(panna)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
2) 진리(sacca)를 보호해야 한다.
3) 버림(caga)을 길러야 한다.
4) 고요함(upasama)을 공부지어야 한다.
비구여, 이것이 여섯 가지 요소의 분석에 대한 요약이다."
1】이 '나'란 무엇인가 설하심 _ '존재', '중생'이란 무엇인지 설하시다.
- 세존께서는 뿍꾸사띠 선남자에게 '이 사람은'이란 것을 주어로 '나', '존재', 혹은 '중생'이란
무엇인지 설하셨다고 생각됩니다.
위 「여섯 가지 요소의 분석에 대한 요약」에서,
1]'이 사람은 여섯 가지 요소[界, dhatu]로 이루어졌다'라고 설하시고, 이에 대해
이 사람은 1) 땅, 2) 물, 3) 불, 4) 바람, 5) 허공, 6)알음알이로 이루어졌다라고 설하신 바,
1)∼4)는 사대(四大)라 불리는 근본물질, 그리고 5)허공은 물질현상이 펼쳐지기 위한 공간의
메카니즘으로 물질에 의한 파생물질이고, 6) 알음알이는 'winnana' 즉 마음이 대상을 아는
작용 즉 '마음(心)'이라 불리는 정신의 요소이니,,, '나', '존재', '중생'이라는 것은 요약하면
물질과 정신으로 이루어졌음을 6가지 요소(dhatu)로 구경법으로 나누어 설하신 것이라
새겨집니다.
2]'이 사람은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處, ayatana]로 이루어졌다.'라고 설하시고
이에 대해 이 사람은 1) 눈, 2) 귀, 3) 코, 4) 혀, 5) 몸, 6) 마노의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로
이루어졌다라고 설하신 바, 이는 이 '나'를 천명하기 위한 '세상'도 물질과 정신으로 이루어진 바,
이 '나'는 여섯 가지 감각장소(ayatana)로 그 '세상'을 감득(感得)하므로 그 메카니즘을 설하신
것이라 새겨집니다.
3]'이 사람은 열여덟 가지 마노[意]의 고찰[伺, vicara]로 이루어졌다.'라고 설하시고
이에 대해 사람은 그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內處, 六門, 六入)로 여섯 가지 감각대상(六外處,
六境)을 만나, 그 마노(마음, 心)으로 항상 기쁨, 슬픔, 평온을 일으키는 형색, 소리, 냄새, 맛,
감촉, 법(정신적 현상)을 쫓으니,, 그 마음으로 이같이 18가지로 찾고 추구하는 것이
사람이다라고 설하십니다. 이는 6가지 요소(dhatu)로 이루어지고, 6가지 감각접촉의 장소로
이루어진 이 '나', '존재', '중생'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vicara)를 설하신 것이라
새겨집니다.
- 세존께서는 이같이 여섯 가지 요소의 분석에 대한 요약의 첫 3개조에서 뿍꾸사띠 선남자에게
'나'란 무엇인가를 위빳사나의 지혜로 보야야 할 구경의 법으로 설하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2】'존재'에 묶여있는 이 '나'가 어떻게 '존재로부터 벗어나는가?'를 설하심
_ '존재 벗음', '열반'에 이르는 방법을 설하심
4]'이 사람은 네 가지 토대[adhitthana]를 가지고 있다.'라고 세존께서는 이어서 설하시고
이에 대해 이 사람은, 즉 깨달음, 열반에 이르고자 하는 자는 1) 통찰지(panna), 2) 진리(sacca),
3) 버림(caga), 4) 고요함(upasama)의 4가지의 토대(adhitthana)f를 가지고 이를 닦아서,
통찰지를 소홀히 여기지 않고, 진리를 보호하고, 버림을 기르고, 고요함을 닦아서 열반에 이름을
세존께서는 설하십니다.
이는 세존께서 「초전법륜경」을 설하실 때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는 '철저히 알아야'하고,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에 대해서는 '버려야'하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는 '닦아야'하고,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는 '실현해야' 함을
설하시는 것과 그 궤를 같이 합니다.
(* 초전법륜경, S56:11, http://blog.daum.net/ibakdal/17370892)
5-1]'어떻게 통찰지를 소홀히 여기지 않는가?'라고 설하시면서 통찰지(panna)의 토대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하시면서, 이 통찰지(지혜)라함은 바로
'모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지혜, 즉 '열반'에 대한 지혜라고 설하십니다.
1) 먼저 내 안에 있는 땅, 물, 불, 바람, 허공이라는 물질의 요소를 꿰뚫어 알아 내적이든
외적이든 단지 요소(dhatu)일 뿐이어서,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르게 통찰지(panna)로 보아, 이들 요소를
염오하고 마음이 이들 요소들에 대한 탐욕을 빛바래게 함이 그 통찰지(지혜, panna)것임을,
2) 또한 정신의 요소인 '알음알이(winnana)'의 요소에 대하여는
알음알이로는 즐겁다, 괴롭다,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다라고 아는 것이 알음알이인 바,
그 알음알이는 감각접촉(觸)을 반연하여 즐거움, 괴로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라는
느낌을 느끼면서(受) 아는 것(識)이고, 그 감각접촉이 소멸하면 그 느낌도, 따라서
그 알음알이도 소멸한다고 꿰뚫어 아는 것이 그 통찰지(지혜, panna)임을 설하십니다.
[※ 알음알이에 대한 두 개의 막대기의 비유]
이는 두 개의 막대기를 마찰시키면 열과 불꽃이 일어나고, 막대기를 분리시키면 그 열기도
가라앉는 것과 같다고 설하십니다. 한 개의 막대기는 대상이요, 마찰은 감각접촉이요, 또
한 개의 막대기는 알음알이(心, winnana, 識)이라는 도리를 설하심입니다.
그러므로 통찰지의 토대라 하심, 즉 지혜(panna)라는 것은 물질과 정신(마음, 心, 앎)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이어서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물질과 정신의 6가지 요소(dhatu)를 자혜(panna)로 꿰뚫어
아는 자의 마음이 '평온'으로 기울어짐을 설하십니다. 그런 그의 마음은 물질의 세계를
초월하여 무색계선 즉,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의 '평온'을 향하게
됨을 설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그러한 무색계의 선(禪)도 형성된 것임을 꿰뚫어 보아 그곳으로부터
벗어나 열반을 성취함을 설하십니다.
4) 세존께서는 이러한 궁극의 열반의 성취에 대해 아래와 같이 존재를 벗어남으로 설하십니다.
"1) 그는 존재나 비존재를 형성하지도 않고 의도하지도 않는다.
2) 그가 존재나 비존재를 형성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을 때
그는 세상의 어느 것에도 취착하지 않는다.
3) 그가 세상의 어느 것에도 취착하지 않을 때 그는 동요하지 않는다.
4) 동요하지 않을 때 그는 스스로 완전한 열반을 얻는다.
그는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안다."
라고 설하셨습니다. 그가 위 1), 2)와 같이 물질과 정신을 바로 보아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慾漏)가 다하고, 3) 무색계선의 증득에 의한 평온을 벗어나고, 4)존재·非존재에 대한
갈애(有漏)를 다했을 때, 그가 무명(無明漏)을 벗어 해탈·열반에 이르는 도리를 설하신
것입니다. 여기 세존께서는 漏盡(有漏) > 無着 > 無搖 > 涅槃 임을 설하고 계십니다.
5) 이어서 세존께서는 이같이 해탈·열반에 이른 자의 머묾과 반열반에 대해서 설하십니다.
유여열반인 아라한의 머묾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소중한 법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 그도 즐거움을, 괴로움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느낍니다.
- 그러나 그는 '이것은 무상하다.', '연연할 것이 못된다.', '기뻐할 것이 아니다.'라고
꿰뚫어 압니다.
- 그러므로 그는 그것에 매이지 않고 그것을 느낍니다.
- 그는 임종할 때도 '나는 지금 몸의, 생명의 마지막 느낌을 느낀다.'라고 꿰뚫어 압니다.
[※ 열반에 대한 호롱불의 비유]
세존께서는 이를 호롱불이 기름과 심지를 의지하여 타는데,
기름과 심지가 다하면 호롱불이 꺼지는 것과 같음에 비유하셨습니다.
그 각각은 아래를 비유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호롱불: '세상', '오온', 일체 물질·정신, 지·수·화·풍·허공·알음알이의 6가지 요소,
일체 괴로움
- 심지 : '나', '나'라는 자만
- 기름 : 갈애, 무명, 사견
= 기름과 심지가 다하여 호롱불이 꺼짐:
바른 지혜로 해탈하여 무명이 다하고, 갈애가 다하여,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 존재에 기인한 번뇌, 무명에 인한 번뇌가 다함
위 각각에 대하여 다른 말로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다함
일체 괴로움, 오취온의 소멸
이 비유는 '모든 괴로움의 소멸' 즉, '열반'에 대한 비유입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이 부분 법문의 끝에 이같이 설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통찰지를] 구족한 비구는
이런 최상의 통찰지[panna]의 토대를 구족하였다.
비구여,
이것이 최상의 성스러운 통찰지이니
바로 모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지혜이다."
5-2]'진리(sacca)를 보호해야 한다.'라고 설하시면서 진리(sacca)의 토대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이같이 설하시며 열반이 진리(sacca)라고 설하십니다.
"이런 그의 해탈은 진리에 확고하여 흔들림이 없다.
비구여,
허황한 법은 거짓이고,
허황하지 않은 열반은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진리를] 구족한 비구는 최상의 진리의 토대를 구족한다.
비구여,
이것이 최상의 성스러운 진리이니, 바로 허황하지 않는 법인 열반이다."
세존께서는 여기서
1) 열반이 허황되지 않음을 천명하십니다.
2) 열반이 아닌 다른 것들이 허황하고 그것이 거짓임을 천명하십니다.
3) 허황하지 않은 열반이 최상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천명하십니다.
4) 해탈한 자는 이 진리 즉, 열반에 확고하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다고 설하십니다.
5-3]'버림(caga)을 길러야 한다.'라고 설하시면서 버림(caga)의 토대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이같이 설하시며 모든 집착을 놓아버림이 버림(caga)라고 설하십니다.
"전에 그가 어리석었을 때
그에게는 재생의 근거가 있었고 거기에 빠졌다.
이제 그것을 제거하고 그 뿌리를 자르고 그것을 야자수 줄기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버림을] 구족한 비구는 이런 최상의 버림의 토대를 구족한다.
비구여,
이것이 최상의 성스러운 버림이니, 바로 모든 집착을 놓아버림이다."
5-4]'고요함(upasama)을 공부지어야 한다..'라고 설하시면서 고요함의 토대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이같이 설하시며 탐냄, 성냄, 어리석음의 고요함이 고요함(upasama)라고
설하십니다.
"전에 그가 어리석었을 때
그는 탐욕, 열망, 욕망이 있었다.
그는 분노, 악의, 혐오가 있었다.
그는 무명과 어리석음이 있었다.
이제 그것을 제거하고 그 뿌리를 자르고 그것을 야자수 줄기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고요함을] 구족한 비구는 이런 최상의 고요함의 토대를 구족한다.
비구여,
이것이 최상의 성스러운 고요함이니. 바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고요함이다."
- 이 법문에서 세존의 가르침에서 탐·진·치의 소멸을 말씀하실 때, 즉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소멸을 설하실 때,,,
· 그 '탐욕'이라 하심은 '탐욕, 열망, 욕망'이라는 무더기를 대표하는 것임을,
· '성냄'이라 하심은 '분노, 악의, 혐오'의 무더기를 대표하는 것임을,
· '어리석음'은 '무명'의 무더기를 대표하는 것임을 잘 알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6]'여기에 굳게 선 자에게 공상(空想, 허황된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며
공상이 일어나지 않을 때 고요한 성자(muni-santa)라 한다.'고 설하신 바, 이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설하십니다. 여기서 세존께서는
'열반(nibbana)'은 '나'라는 '존재'로부터 어떻게 벗어나 있는 것인가를 다시금 상세히
설하여 뿍꾸사띠에게 법문의 낙처(落處)를 분명히 하시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비구여,
1) '나는 있다.'라는 것은 공상(空想, 허황된 생각)이다.
2) '이것이 나다.'라는 것은 공상이다.
3) '나는 있을 것이다.'라는 것은 공상이다.
4) '나는 있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공상이다.
5) '나는 물질을 가진 자가 될 것이다.'라는 것은 공상이다.
6) '나는 물질을 갖지 않은 자가 될 것이다.'라는 것은 공상이다.
7) '나는 인식을 가진 자가 될 것이다.'라는 것은 공상이다.
8) '나는 인식을 갖지 않은 자가 될 것이다.'라는 것은 공상이다.
9) '나는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요 인식을 갖지 않은 것도 아닌 자가 될 것이다.'라는 것은
공상이다.
비구여, 공상은 병이고 공상은 종기이고 공상은 화살이다.
비구여, 그러나 모든 공상을 극복하여 성자는 고요하다고 말한다.
비구여, 고요한 성자는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
그는 흔들리지 않고 갈망하지 않는다.
비구여, 그에게는 태어나야 할 어떤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태어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늙을 것이며,
늙지 않는데 어떻게 죽을 것인가?
죽지 않는데 어떻게 흔들릴 것이며,
흔들리지 않는데 어떻게 갈망할 것인가?
여기에 굳게 선 자에게 공상이 일어나지 못하며
공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때 고요한 성자라고 한다.'라고 한 것은
이것을 두고 설한 것이다."
- 세존께서는 내가 '있다, 이것이다, 있을 것이다. 없을 것이다, 물질여부, 인식 내지 정신의
여부' 등 일체 '나'라는 견해가 오직 허황한 생각일 뿐이며, '병'이고, '종기'이고, '화살'임을
설하시어 무아(無我)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드러내십니다. '나'라 함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 실상일 뿐인 것입니다.
- 이어서 세존께서는 어째서 '열반'이 '불사(不死)인지를 설하십니다.
1) 그가 일체 거머쥠이 없으므로(모든 집착을 놓아버림) _ 無着
2) 거머쥠이 없으므로 '나'라 함이 없고 존재를 벗어났으며 _ 無有
3) 없기에 태어날 이유도 없고, 태어나지 않으며, 존재를 입지 않으며 _ 無生
4) 태어나지 않으므로 늙는다는 것이 없으며 _ 無老
5) 늙는다는 것이 없으므로 죽는다는 것이 없으며 _ 無死
6) 죽음이라는 것이 없기에 흔들리거나 두려워할 것이 없으며 _ 無搖
7) 흔들림이라는 것이 없기에 갈망할 것이 없다 _ 無渴
이렇게 모든 헛된 생각을 극복한 자, 나고죽음을 여읜 자를 고요한 성자(muni)라고 한다고
세존께서는 설하셨습니다.
■ 뿍꾸사띠 존자의 죽음과 행처
뿍꾸사띠 선남자는 이같은 세존의 법문을 듣고,,, 자신을 찾아오셔서 자신 앞에앉아 계신 분이 바로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는 세존께 '도반이여'라고 호칭한 것을 먼저 사죄드립니다.
이것은 법다운 일입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세존으로부터 구족계를 받고 비구가 되고자 하지만 그는 발우와 가사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 길로 발우와 가사를 구하기 위해 나갑니다. 이 사나이는 발우와 가사를 구할 때도
빔비사라 왕이나 딱꺼실라 상인들 가까이는 가지 않고 묘지나 쓰례기 더미에서 같은 곳에서 구하려
했습니다. 그가 쓰레기 더미에서 천을 찾고 있을 때, 그곳을 베회하던 어린 새끼 달린 어미 소가
달려와서 뿔로 받아 그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선남자는 허공에서 생명이 다하여 떨어졌고 쓰레기 더미에 머리를 숙이고 앉았는데 마치 금으로 만든
동상과 같았다고 합니다. 그는 죽자마자 정거천 중 무번천에 태어났는데, 거기 태어나자마자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가 무번천에 태어나자마자 곧 바로 일곱 명이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주석서는 전합니다. 이 일곱 분 중의 한 명이 뿍꾸사띠 존자였습니다. (MA.v.62)
상윳따 니까야 「가띠까라 경」(S1:50)의 게송에는
"일곱 분의 비구들이 해탈하여
무번천에 태어났나니
탐욕과 성냄을 완전히 제거하여
세상에 대한 애착을 건넜습니다."
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비구들이 그가 죽은 뒤의 행처를 묻자
"비구들이여,
뿍꾸사띠 선남자는 현자이다. 그는 법답게 도를 닦았다.
그는 법을 이유로 나를 성가시게 하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뿍꾸사띠 선남자는 다섯 가지 낮은 족쇄를 완전히 부수고 [정거천에] 화생하였고
그 세계에서 다시 돌아오는 법이 없이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뿍꾸사띠 존자께서는 사람의 삶이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얻으신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내일 죽음을 앞둔 믿음으로 출가한 한 남자를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법의 뼈'를 그에게 설하셨다고 생각됩니다. 나는 무엇인지, 세상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나로부터 어떻게 벗어나는 것인지를 상세하게 차례로 설하셨습니다.
부처님 법에서 참으로 그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오온, 육내외처, 연기, 사성제의 법입니다.
이 참으로 아름다운 동화와 같은 이야기, 길지 않은 법문에서 세존께서 법을 설하심은
대나무를 쪼개듯 거침이 없고, 군더더기가 없고, 삿된 것을 파하심이 종횡무진이며,
그 크기와 깊이는 망망대해와도 같고, 그 심오하고 힘이 있음이 삼계를 흔들고도 남으니,,,,
감히 범부가 짐작하기 어려운 참으로 '조어장부(調御丈夫)'의 그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같이 새겼습니다.
이같이 상세한 법문을 해주신 거룩하신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성자이신 뿍꾸사띠 존자님께 예경드립니다.
거룩하신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
시작을 모르는 과거로부터 윤회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처님, 가르침, 승가,
부모님, 스승님,
저보다 공덕이나 나이가 많은 분들께,
혹은 이때까지 저와 인연이 닿았던 천신들, 비인간들, 사람들,
축생들, 혹은 미물의 몸을 입었던 분들이라 할지라도,
제가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하여
취착으로,, 애욕으로,,, 성냄으로,,, 학대와 잔인함으로,,, 무명으로,,,
몸과 말과 마음으로 잘못한 것들,,,
수미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이제 그러한 잘못을 진실로 참회하오며,,,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면서,,,
예경드립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또한 다른 이들이 저에게 범한 잘못들도
때를 씻어버린 선한 분들의 마음으로 다 용서합니다.
마음 속 깊이 박힌 악의와 잔인함과 싫어함과 적대,
감각적 욕망을 향한 갈애와 나라는 자만,,,
다른 이에 대한 비난과 사악함의 쇠살들,,, 모두 뽑아버립니다.
본 경을 사경한 공덕 몫을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처와 제 가족들에게, 야다나바투의 공부 성취되기를 바라면서,,
곤경과 속박을 건너 세간과 출세간의 빚을 갚고자 하는 저 자신에게,,,,
저를 지켜보고 도우시는 모든 천신들과 비인간들에게,,,,
어려울 때 도움을 주신 친척, 친구들, 도반들께,
경을 번역하시느라 노고를 마다 않으신 대림스님과 각묵스님 건강하고 평안하시기를,,,
장유 불모산과 반룡산과 보리원, 지리산과 실상사, 설악산, 영천의 식진암,
그리고 기흥의 보라산에 거하시는
모든 천신들과 약카들, 간답바들, 꿈반다들, 용들과 비인간들에게,,,
부처님의 법을 지키고 전하시는 우 또다나 사야도와 일창스님께,,,
또한 야마천왕과 그를 따르는 천신들에게,,,,
약카들을 거느리시는 꾸웨라 대천왕과 그를 따르는 약카들,
간답바들을 거느리시는 다따랏따 대천왕과 그를 따르는 간답바들,
꿈반다들을 거느리시는 위룰하까 대천왕과 그를 따르는 꿈반다들,
용들을 거느리시는 위루빡까 대천왕과 그를 따르는 용들과 그 권속들에게,,
부처님의 제자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공덕을 새기고 감사드리며,,,
부처님의 법 듣기를 좋아하고 그 제자들을 보호하는 천신들을 시작으로
31천 거주하는 제도가능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의 법을 만나 무너지지 않는 행복과 평안을 얻으시기를,,,
여래님들의 무한하신 자애와 지혜와 위신력이 함께 하시기를,,, 보호 받으시기를,,,
이 회향으로도 이 늪을, 진흙탕을, 윤회와 미혹을 벗어나고 건너갈 큰 힘을 얻으시기를,,,
장애없이 닙바나 이르시기를 염원하면서,,,,
고통에 빠져있는 모든 존재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위험에 빠져있는 모든 존재들이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슬픔에 빠져있는 모든 존재들이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염원하면서,,,
회향합니다.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2020.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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