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니까야(中部)/M131.지복한하룻밤경-정복당하지않음

※後記: 지복한 하룻밤 경을 마치며,,,

이르머꼬어리서근 2017. 6. 15. 19:58


지복한 하룻밤 경은


세존께서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실 때

비구들에게 설하신 경입니다.



세존께서는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미래를 바라지 마라

        과거는 떠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현재 일어나는 현상들[法]을 바로 거기서 통찰한다.


        정복당할 수 없고 흔들림이 없는 그것을

        지혜 있는 자 증장시킬지라.


        오늘 정진하라. 내일 죽을지 누가 알리오?

        죽음의 무리와 더불어 타협하지 말라.

        이렇게 노력하여 밤낮으로 성성하게 머물면

        지복한 하룻밤을 보내는 고요한 성자라 하리." 

                                                   

라고 먼저 게송으로 설하시고, 이어서 이 게송의 요약과 분석을 설하십니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혹은 '그러므로 현재가 중요하다.'라는 취지의 격언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형태로 전해 내려오는 바입니다.

                                              

그러나 물질, 느낌, 인식, 심리현상, 알음알이(色受想行識)의 다섯 무더기(五蘊)를,

혹은 이 모든 정신·물질(현상)을 바로 본다는 '지혜의 관점'에서의 세존의 이 법문은 참으로 특이하여

그 어느 것과도 같지 않습니다. 또한 세존과 같은 분께서  과거 혹은 미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가르치신 것이라는 면에서 큰 소득입니다.

                                    

                                              

혹자는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고, 현재는 머물러 있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무상(無常)이라는 관점에서 이 말은 법다운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용이 있어도 그 눈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는 본경에서 '현재 일어나는 현상들(法)을 바로 거기서 통찰하라.'라고 설하십니다.

이 한 마디의 말씀이야말로 이 모든 것을 , 나를 포함한 이 세상을, 삼계 어디라도 펼쳐지는 이 모든

정신·물질(현상)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신 바라고 새겨집니다.

                                                 

세존께서는 이 게송의 분석에서 설하시는 이러한 지혜, 즉 오온을 바로 보는 지헤를

'정복당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그것'이라고 설하시고, 지혜 있는 자는 그를 증장시키라고 

설하십니다. 그런 지혜로 '밤낮으로 성성하게 머물러' 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법이고,

그것이 '고요한 성자'의 모습이라고 설하십니다.




1. 과거를 돌아보지 말라 _ 과거의 오온에서 기쁨을 찾지 마라.


우리는 현재가 불행할 때 종종 과거의 행복했던 때를 회상하며 즐거움을 찾기도 합니다.

반대로 과거의 슬프고 괴로웠던 일에 사무쳐서 현재가 떠내려가게 버려두기도 합니다.



시간에 대한 단상 _ 존재에게 시간은 존재한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무엇인지는 아직 정의된 바가 없습니다. 시간이 무엇인지는 당금의 과학자들의

최고의 화두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모든 현재의 물리방정식은 틀린 것이라는

각성도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이 절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시공간이 같이 엮어져 있으며, 그에 따르면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자에게 시간은 정지합니다.


시간은 우리의 인식(識)에만 존재하고, 인식의 순서 혹은 인과의 순서로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만,,,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걷는 시간 혹은 다른

지역으로 비행기를 타고 갈 때 엄연 작용하는 실재하는 시간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아라한들은 삼명(三明)을 얻는 바, 그 중 숙명통(宿命通)을 얻어서 수십만생의 전생을 모두

기억한다고 합니다. 새로 몸을 받아서 태어난 바인데,,, 그 '기억의 저장소'가 어디이길래

그것을 알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빅뱅(big bang)의 가설처럼 이 우주가 질량 무한대 부피 제로의

한 개 점으로부터 나왔기에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서로 얽어져(entangle)있어서

시공을 초월하여 어디에서라도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도록 되어있는 것일까요?,,,,


숙명통의 수십만생에는 엄연 순서가 있고, 시간이 있습니다. 시간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간이란 것은 없다.'함은 부처님의 말씀과도 맞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분명히 '겁(怯)'을 

씀하시고 그 겁에 출현하셨던 부처님들에 대해서도 설하시기 때문입니다. 대전기경(D14)에서

91겁 전의 위빳시 부처님에 대해서도 설하시고,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시간에 대한 고찰: http://blog.daum.net/ibakdal/173717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 길 몸뚱이 안에서

                                           

존재를 벗어난 자에게 시간이 존재하는지,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아직 존재를 입고 있는 자에게 즉, 존재에게 시간은 존재합니다. 그러기에 그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존의 가르침을 살펴보면, 어떤 이에게는 비록 '무한 시공간'이든(예를 들면 공무변처)

은 어떤 이에게는 실상은 시공간은 아예 차치하고 실제는 그것이 '아무것도 없든'(예를 들면

무소유처)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경(經)을 보면 무한대의 중력에 의해 우리가 아는 시공간을

이야기할 수 없는 블랙홀이라고 칭해지는 곳에도 중생들이 살고 있는 것처럼 설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그에게 펼쳐지는 시공간의 유무 혹은 유무한은 '그만의 일'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이 무한한 것이라고, 혹은 유한한 것이라고, 유한하기도 무한하기도, 혹은 유한한 것도

아니요 무한한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무망한 일인 것입니다.



이같은 부분에 있어서 세존의 가르침은 참으로 특이합니다.

이같은 정신·물질(현상)이 펼쳐지는 무대에 대해서 그것이 무엇인지 실마리를 찾기 위해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자신의 고향동네인 행동의 영역에서 유행(遊行)하라."

                                                      

라고 자신의 몸, 느낌, 마음, 법에서 마음챙김을 확립하라고 설하십니다.

그래야 마라가 내려앉을 곳을 찾지 못한다고 설하십니다.

                                          (* D26, 전륜성왕 사자후 경:  http://blog.daum.net/ibakdal/17371277 )

                             

                                                             

또한 세존께서는 세상의 끝에 관해 질문하는 신의 아들 로히땃사가 '세상의 끝'에 대해서 질문하자

                              

   "도반이여, 참으로

    태어남도 없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고, 떨어짐도 없고, 생겨남도 없는  

    그런 세상의 끝을 발로 걸어가서 알고 보고 도달할 수 있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도반이여, 

    그러나 나는 세상의 끝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괴로움을 끝낸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도반이여, 나는  

    인식과 마음을 더불은 이 한 길 몸뚱이 안에서

                                    

    1) 세상과, 2) 세상의 일어남과, 3) 세상의 소멸과, 4) 세상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

    천명하노라."

                                      (* 로히땃사 경, S2:26:  http://blog.daum.net/ibakdal/17370791)

                                                

라고 설하십니다.



과거를 돌아보는 자에서 벗어남


세존께서는 어떻게 괴거를 돌아보지 않는가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설하십니다.


"'나는 과거에 이러한 물질을 가졌다.'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에서 기쁨을 발견하지 않는다.

 '나는 과거에 이러한 느낌을 가졌다.'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에서 기쁨을 발견하지 않는다.

 '나는 과거에 이러한 인식을 가졌다.'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에서 기쁨을 발견하지 않는다.

 '나는 과거에 이러한 심리현상들[行]을 가졌다.'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에서 기쁨을 발견하지 않는다.

 '나는 과거에 이러한 알음알이를 가졌다.'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에서 기쁨을 발견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그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


과거에 내가 그러한 오온(五蘊)을 가졌다라고 생각면서 그것에서 기쁨을 찾지 않음으로써

과거를 돌아보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난다는 가르침입니다. 과거의 '나'도 그러한 '오온'도 원인을

조건으로 형성된 현상일 뿐, '나'가 그러한 오온을 '가졌다'함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나갔습니다. 그것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간에 말입니다.




2. 미래를 바라지 말라_ 미래의 오온에서 기쁨을 찾지 마라.


우리는 현재가 불행할 때 종종 미래의 행복할 때를 상상하며 즐거움을 찾기도 합니다.

반대로 미래의 슬프고 괴로울 일을 상정하면서 현재에 괴로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의 일이고 어떻게 될 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괴로워하기도 하고, 그건 나중의 일이니까 하면서 웃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미래를 바라지 말라.'라고 천명하십니다.

'오늘 정진하라. 내일 죽을지 누가 알리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미래에 이러한 물질을 가질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에서 기쁨을 발견하지 않는다.

   '나는 미래에 이러한 느낌을 가질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에서 기쁨을 발견하지 않는다.

   '나는 미래에 이러한 인식을 가질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에서 기쁨을 발견하지 않는다.

   '나는 미래에 이러한 심리현상들[行]을 가질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에서 기쁨을 발견하지 

    않는다.

   '나는 미래에 이러한 물질을 가질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에서 기쁨을 발견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그는 미래를 바라지 않는다." 


미래에는 내가 그런 오온(五蘊)을 가질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거기서 기쁨을 찾지 않음으로써

미래를 바라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난다는 가르침입니다. 미래의 '나'도 그러한 '오온'도 원인을

조건으로 형성될 현상일 뿐이어서, '나'가 그러한 오온을 '가질 것'이다 함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일어났다가 사라질 것이 분명하며, 또한 그것은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는가에 달려있을 뿐이기도 합니다. 




3. 현재에 정복당하지 말라 _ 현재의 오온을 바로 봄으로써 


세존께서는 여기서 어떻게 중생들이 '현재에 정복당하는가?'에 대해서 먼저 설하십니다.

중생들이 어떻게 자신을 포함한 이 모든 정신·물질(현상)에 속고, 정복당하고, 그리하여 끝없이

괴로움과 윤회의 굴레에 갇혀서 살게 되는지 그 메카니즘을 설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르고, 배운 바가 없는 것을 이유로,


   '물질을 자아라고 여기고, 

    물질을 가진 것을 자아라고 여기고, 

    자아 안에 물질이 있다고 여기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


    느낌을 자아라고 여기고,

    느낌을 가진 것을 자아라고 여기고, 

    자아 안에 느낌이 있다고 여기고, 

    느낌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 


    인식을 자아라고 여기고,

    인식을 가진 것을 자아라고 여기고, 

    자아 안에 인식이 있다고 여기고, 

    인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 


    심리현상들을 자아라고 여기고,

    심리현상들을 가진 것을 자아라고 여기고, 

    자아 안에 심리현상들이 있다고 여기고, 

    심리현상들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 


    알음알이를 자아라고 여기고,

    알음알이를 가진 것을 자아라고 여기고, 

    자아 안에 알음알이가 있다고 여기고,

    알음알이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

                                          

    이와 같이 그는 현재 일어나는 현상들[法]에 정복당한다.'

                                        

라고 천명하십니다.

                            

                                       

'나는 무엇인가?' 혹은 '이 세상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궁극의 질문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이같이 분명히 답하신 것입니다. 무변광대하게 펼쳐진 Matirx를 여는 열쇠를 주신 것이며,

화려하게 펼져져 있지만 언제든 삭제가능한 'Program'이 아닌 'Source Code'를 알려주신 것입니다.

                                

실제 우리는 현재라는 현실(현상)에 압도되어서 삽니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入)의 감각접촉으로 일어나는 다섯 무더기(五蘊)의 30가지,

내지 더하여는 근경식촉수상행애심사(根境識觸受想行愛尋伺)의 60가지를,

                                 (D22, 대념처경, 고집성제: http://blog.daum.net/ibakdal/17370353)

'나 등으로 취착하여', 혹은 '자아'라고 거머쥐고,

거기서 일어나는 갈애에 지배되고 정복되고 함몰되어 사는 것입니다.

그것도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공포와 함께하는 끝없고도 이상한 가학이요 피학입니다.

                                               

                                         

세존께서는 그러한 현재에 '정복당하지 말라'라고 가르치십니다.

현재에 펼쳐지는 그러한 오온(五蘊)은, 그러한 정신·물질(현상)은 원인을 조건으로 형성된 것일 뿐으로

일어나서는 사라지는 것이 정해진 것이어서 즉, '형성된 모든 것은 소멸하기 마련'이어서,

처절하게 무상(無常)한 것이고, 그러기에 괴로움(苦)일 수밖에 없으며, 그곳에서 '내라 함'을 찾을 수 없을 뿐아니라, 실제로 그것은 '내가 아니다.'라는 것(無我)을 보라고 가르치십니다.

                                                  

참으로 청천벽력 같은 가르침이요, 삼계(三界)를 꿈에서 깨어나게 하시는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온을 바로 보아,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다.'라는 그분의 선언이십니다.




4. 행복한 하루 _ 정복당할 수 없고, 흔들림이 없는 이 지혜로써


세존께서는 이렇게 설하시고, 어떻게 하루를 행복하게 보내는지에 대해서 설하셨습니다.

                             

       "정복당할 수 없고 흔들림이 없는 그것을

        지혜 있는 자 증장시킬지라.

                                 

        오늘 정진하라. 내일 죽을지 누가 알리오?

        죽음의 무리와 더불어 타협하지 말라.

                                                      

        이렇게 노력하여 밤낮으로 성성하게 머물면

        지복한 하룻밤을 보내는 고요한 성자라 하리." 

                      

                                  

'이렇게 노력하여 밤낮으로 성성(惺惺)하게 머물면' 그것이 행복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요,

그렇게 하는 자를 일러 '고요한 성자'라고 할 만하다고 설하신 것입니다.



이같은 가르침은 세존께서 수 브라흐마 천신에게 설하신 중생의 행복에 관한 다음의 가르침과도

일치하는 가르침입니다.

                                                                                   

     "칠각지와 두타행을 제외하고

      감각가능의 단속을 제외하고

      모든 것 놓아버림을 제외하고

      생명들의 행복을 나는 보지 못하노라."

                                                              (*수브라흐마 게송, 제2상윳따 17번째 게송)

                                                         


 


이와 같이 새겼습니다.

이같이 상세한 가르침을 주신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거룩하신 부처님과, 그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




본경을 사경한 공덕 몫을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처와 제 가족들에게, 어려움을 건너려는 저 자신에게,,,,

마음 속 깊은 곳 아직도 잠재한 내라함과 분노와 폭력과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하길 바라면서,,,

영겁의 윤회에서 제 잘못으로 인해 고통받은 중생들에게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면서,,,

그들이 악의의 족쇄에서 풀려나 이제 평안하고 번영하기를 바라면서,,,,


저를 지켜보고 도우시려는 모든 천신들과 비인간들에게,,,,

어려울 때 도움을 주신 친척, 친구들, 도반들께,,

경를 번역하시느라 노고를 마다 않으신 대림스님과 각묵스님,

장유 반룡산과 지리산 실상사와 지리산 그리고 보라산에 계시는 천신들과 용들과 비인간들에게,

우 또다나 사야도와 일창스님께,

병상에 누운 맏처남에게,,,,,


부처님의 법과 그 제자들을 보호하는 천신들을 시작으로

31천 거주하는 제도가능 모든 중생들께,,,


부처님의 법을 따라 행복과 평안을 얻으시기를,,,

이 회향으로도 힘을 얻으시기를,,,

장애없이 닙바나 이르시기를 염원하면서 회향합니다.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2017. 6.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