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니까야(中部)/M12.사자후의 긴 경-세존은 어떤 분

後記: 사자후의 긴 경에 대해서,,,

이르머꼬어리서근 2016. 5. 29. 16:04


사자후의 긴 경(M12)은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서쪽의 교외 숲에 머무실 때

환속한 수낙캇따가 집회 등에 돌아다니며 세존에 대해서 말한 것을 사리뿟따 존자께서 탁발을

나가서 들으시고 이를 세존께 아뢴 바, 이에 대해 세존께서 사리뿟따 존자에게 설하신 경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궁금해 합니다.

과연 그분은 어떤 분이셨던가?,,,,,


들은 바로는 부처님으로는 24번이나 거슬러 올라가서 디팡카라 부처님(연등불) 시대에

수메다 존자로 붓다가 될 것을 서원하시고 수기를 받으시고, 4아승지 10만 대겁을 십바라밀을 

구족하게 닦으시고 당세에 붓다를 이루셨다는 그분. 실로 어떤 분이셨을까요.


본경은 2,560년 전에 이 세상에 오셔서 실존하셨고,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자께서, 단 한 마디도 

거짓이 없으신 그분께서,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직접 설하신 바라 실로 그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경입니다.


대영웅(大雄)이라 불리시고, 사나이 중에 사나이시며, 끝없는 미망과 괴로움의 유일한 출구를 열어

놓으신 삼계도사 (三界導師) 사생자부(四生慈父)의 모습을 본 경을 빌어 감히 정리해 봅니다.





본 경은 환속한 수낙캇따가 한 말로부터 시작됩니다. 그것은


   '사문 고따마는 

    1) 인간의 법을 초월했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툭별함이 없다.

 

    사문 고따마는

    2) 이론으로 완전 무장하여 법을 설하고, 자기의 영감에 따라 검증된 법만을 설한다.

 

    3) 그리고 그가 어떤 목적을 위해 어떤 사람에게 법을 설하면,

        그 법은 그렇게 실천하는 사람을 바르게 괴로움의 멸진으로 인도한다.'라고



수낙캇따의 말은 부처님의 말씀처럼 앞뒤가 맞지 않고 오히려 부처님을 칭송하는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2,56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주장될 수 있는 견해들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만이 진리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그것은 그분의 견해일 뿐이며 있을 수 있는

여러 견해 중의 하나일 뿐이다.


혹은 이론적으로 완벽하게 다듬어진 체계를 가지고 있고 특별한 지성을 지닌 그분의 영감으로 철저히 검증되어서 하나의 완전한 세계를 이루고는 있으나, 그것은 그럴 수도 있는 한 가치관의 체계이고

예시일 뿐이다. 다른 종교는 그러하지 않다는 말인가.


혹은 그분이 말씀하신대로 실천하면 어떤 사람은 행복해진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실로 중생은 다양하지 않은가. 어떻게 그 방법만이 모든 중생을 행복으로 인도한다고

장담하는가와 같은 견해가 바로 그러한 것들입니다.


따라서 세존의 이어지는 말씀은,

바로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하여 오늘날의 중생들에게 들려주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수낙캇따와 같은 무리들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1. 그들은 내가 누군지 아는 지혜가 없다.


    1) 아라한(應供): 모든 번뇌를 여의어서 천신, 인간, 마라, 범천들로부터 공양받아 마땅한 분

    2) 삼마삼붓도(正等覺, 正遍智): 알아야 할 모든 법들을 스스로 바르게 깨우치신 분

    3) 윗짜짜라나 삼빤노(明行足): 영지와 실천을 구족하신 분

    4) 수가또(善逝): 바르고 훌륭한 말씀만을 하시는 분

    5) 로까위두(世間解): 모든 세상을 잘 아시는 분

    6) 아눗따로뿌리사 담마사라띠(調御丈夫): 제도할 만한 중생을 제도하시는데 으뜸이신 분

    7) 삿따 데와 마눗사낭(天人師, 無上師): 신들과 인간들의 참된 스승

    8) 붓도(): 네 가지 거룩한 진리(사성제)를 스스로 깨달으신 분

    9) 바가와띠(世尊): 모든 공덕을 구족하신 세상에 존귀하신 분


    임을 아는 지혜가 없다.


2. 그들은 내가 여러 가지 신통변화(神足通)을 얻었음을 아는 지혜가 없다.

3. 그들은 내가 천상과 인간의 모든 소리를 다 들음(天耳通)을 아는 지혜가 없다.

4. 그들은 그는 내가 다른 중생들의 마음을 꿰뚫어 앎(他心通)을 아는 지혜가 없다.


5. 나는 여래만이 갖추는 열 가지 힘(여래십력, 如來十力)이 있다

.

    1) 원인원인이라고, 원인이 아닌 것은 원인이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힘

    2) 과거 미래 현재에 행하는 업의 과보를 조건과 원인에 따라 있는 그대로 아는 힘

    3) 모든 태어날 곳(行處)로 인도하는 길을 있는 그대로 아는 힘

    4) 여러 요소(界)와 다양한 요소를 가진 세상 있는 그대로 아는 힘

    5) 중생들의 다양한 성향을 있는 그대로 아는 힘

    6) 다른 중생들과 다른 인간들의 기능(根)의 수승한 상태와 저열한 상태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힘

    7) (禪)해탈삼매의 증득(等至) 오염원깨끗함출현을 있는 그대로 아는 힘

    8)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宿命通)하는 힘

    9)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 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는 힘(天眼通)

  10)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통찰지의 해탈(慧解脫)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무는 힘(漏盡通)


    여래가 가진 이러한 힘 때문에,

    여래는 대웅(asabha)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수승한 바퀴(梵輪)을 굴린다




여기까지 말씀하신 後에,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당신에 대해 그렇치 않다고 삿된 말을 하는 존재는


"그 말을 철회하지 않고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놓아버리지 않는 한,

 마치 누가 그를 데려가서 놓는 것처럼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 라고 천명하십니다.

 

 그것은 " 마치 비구가 계(戒)를 구족하고, 삼매(三昧)를 구족하고, 통찰지(慧)를 구족하여

 지금·여기에서 구경지를 성취하듯이 그와 같이 이것을 성취한다고 나는 말한다."라고 천명하십니다.



6. 나는 여래의 네 가지 담대함(사무외, 四無畏)이 있다. 

                                                                                     

    어떠한 사문이건, 바라문이건, 신이건, 마라건, 범천이건, 혹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1) 그대가 정등각자라고 천명하지만, 이러한 법들은 완전히 깨닫지 못했다.

    2) 그대가 번뇌 다한 자라고 천명하지만, 이러한 번뇌들은 완전히 멸하지 못했다

    3) 그대가 설한 장애가 되는 법들을 수용하더라도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4) 그대가 어떤 목적을 위해 법을 설하더라도,

        그 법은 그렇게 실천하는 사람을 바르게 괴로움의 멸진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라고 하면서 당신을 근거있는 말로 질책할 그런 표상을 보지 못한다.



    여래가 가진 이러한 힘 때문에,

    여래는 대웅(asabha)의 위치를 천명하고, 회중에서 사자후를 토하고, 수승한 바퀴(梵輪)을 굴린다



    여덟 가지의 회중이 있는 바,

    1) 끄샤뜨리야의 회중, 2) 바라문의 회중, 3) 장자의 회중, 4) 사문의 회중,

    5) 사대왕천의 회중, 6) 삼십삼천의 회중, 7) 마라의 회중, 8) 범천의 회중이 그것이다.


    전에 그들의 회중에 다가가 대화하고 토론했으나

    그것에 관해 내게 두려움이나 당혹감이 생길 어떤 표상도 나는 보지 못했다.

 

    나는 내게서 이런 표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안은(安隱)을 얻고, 무외(無畏)를 얻고, 담대함을 얻어 머문다.



7. 나는 네 부류의 태어남(四生)을 알고 본다


    1) 난생(卵生): 알의 껍데기를 깨고 태어나는 중생들

    2) 태생(胎生): 태의 막을 찢고 태어나는 중생들

    3) 습생(濕生): 부패한 생선, 부패한 시체, 부패한 유제품, 소택지, 오물구덩이에서 태어나는 중생들

    4) 화생(化生): 신들, 지옥에 태어난 자들, 몇몇 인간들, 몇몇 악처에 태어난 자들



8. 나는 다섯 가지 태어날 곳(五趣)과 열반을 알고 본다.


    1) 지옥, 지옥에 이르는 길, 지옥으로 인도하는 도닦음

    2) 축생, 축생에 이르는 길, 축생으로 인도하는 도닦음

    3) 아귀, 아귀에 이르는 길, 아귀로 인도하는 도닦음

    4) 인간, 인간계에 이르는 길, 인간계로 인도하는 도닦음

    5) 신, 신의 세계에 이르는 길, 신의 세계로 인도하는 도닦음


    그 길을 그렇게 가다가

    몸이 무너져 그 세계에 각각 태어남을 아심.



    6) 열반, 열반에 이르는 길, 열반으로 인도하는 도닦음


    그 길을 그렇게 가다가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무는 것(漏盡通)을 아심.


      

    마음으로 마음을 대하여 어떤 사람이 각각으로

    그 길을 그렇게 가고, 그렇게 행하고, 그 길에 들어서서 그곳에 태어날 것을 일고

    몸이 무너진 뒤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天眼)으로 그가 그곳에 태어나서 고통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을 본다.


   1) 지옥: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界), 파멸처, 지옥에 태어날 것을 알고

                죽은 뒤 지옥에 태어나서,

                고통스럽고 살을 에는 듯하고 쓰라린 느낌을 느끼는 것을 본다.


                불꽃이나 연기도 없이 새빨갛게 달구어진 한 길이 넘는 숯불구덩이가 있는데,

                그때 열기에 타고, 열기에 지쳐 맥이 빠지고, 목이 타고 갈급증을 느끼는 어떤 사람

                외길을 따라 오직 그 숯불구덩이를 향했다가 거기서 고통을 받는 것과 같다.


    2) 축생: 축생의 모태에서 태어날 것을 알고,

                죽은 뒤 축생의 모태에 태어나서,

                고통스럽고 살을 에는 듯하고 쓰라린 느낌을 느끼는 것을 본다


                 똥으로 가득찬, 한 길이 넘는 똥구덩이가 있는데,

                 그때 열기에 타고, 열기에 지쳐 맥이 빠지고, 목이 타고 갈급증을 느끼는 어떤 사람

                 외길을 따라 오직 그 똥구덩이를 향했다가 고통을 받는 것과 같다.

                                                                        

    3) 아귀계:

                 아귀계에 태어날 것을 알고

                 죽은 뒤 아귀계에 태어나서

                 괴로움을 더 많이 느끼는 것을 본다.


                 잎사귀와 가지가 적어 그림자가 드문드문 있는 비탈진 곳에 자라는 나무가 있는데,

                그때 열기에 타고, 열기에 지쳐 맥이 빠지고, 목이 타고 갈급증을 느끼는 어떤 사람

                외길을 따라 오직 그 나무를 향했다가 그 그늘에 거하면서 괴로움을 더 많이 느끼는 것과

                 같다.


    4) 인간계:

                인간으로 태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죽은 뒤 인간으로 태어나서

                즐거움을 더 많이 느끼는 것을 본다.


                잎사귀와 가지가 많아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평지에서 자라는 나무가 있는데,

                오직 그 나무를 향했다가 그 그늘에 거하면서 즐거움을 더 많이 느끼는 것과

                같다.


    5) 신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죽은 뒤 그곳에 태어나서

               오로지 즐거움만늘 느끼는 것을 본다.


               모든 것을 갖춘 좋은 저택이 있는데

               그때 열기에 타고, 열기에 지쳐 맥이 빠지고, 목이 타고 갈급증을 느끼는 어떤 사람

               외길을 따라 그 저택읅 향하다가 그 저택의 누각이나 침대에 앉거나 누워서

               오로지 즐거움만을 느끼는 것과 같다.


    6) 열반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라는

               것을(漏盡通) 알고


               물이 맑고 상쾌하고 차고 투명하고 아름다운 제방이 있는데, 

               그때 열기에 타고, 열기에 지쳐 맥이 빠지고, 목이 타고 갈급증을 느끼는 어떤 사람

               외길을 따라 오직 그 호수를 향했다가,


               목욕하고 물을 마시고 모든 근심과 피로와 열병을 가라 앉히고,나와서 숲에 앉거나 누워서 

               오로지 즐거움만을 느끼는 것을 안다.



    이와 같이 나는 모든 존재의 행처(行處)를 알고 본다.



 9. 나는 네 가지를 갖춘 청정범행을 실천했다.


    1) 나는 극도로 고행하는 자였다.

        - 나는 나체수행자였으며 관습을 거부하고 여러가지 형태로

           먹고 입는데 몸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데 몰두하며 지냈다.


    2) 나는 국도로 더럽게 살았다.

         - 몸의 때와 번지가 켜켜히 쌓였다.

           그러나 나나 다른 사람을 통해 밀어서 없애야지 하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았다.

    3) 나는 극도로 나쁜 행위를 혐오하는 자였다.

        - 나는 나쁜 행위를 극도로 혐오했다.

          그러나 마음챙기고 나아가고 들어오며,

          한 방울의 물에도 연민을 일으켰다. '내가 땅의 틈새에 있는 저 미물들을 해치지 않기를.'

          이라고 이와 같이 지냈다.


    4) 나는 극도로 은둔했다.

        - 그들이 나를 보지 못하고 내가 그들을 보지 않기 위해서

           숲에서 숲으로, 밀림에서 밀림으로, 골짜기에서 골짜기로, 능선에서 능선으로 피했다



10. 나는 고행(苦行)하는 자였다.


    1) 어린 송아지의 똥, 나 자신의 똥과 오줌이 다하지 않는 한 자신의 똥과 오줌을 먹었다.


    2) 나는 탐욕이 끊어지지 않은 자가 그 숲에 들어가면 거의 대부분 무서워서 털이 곤두서는

        무시무시한 슾에서 궁구를 거듭하며 지냈다. 

        그런 내게 이런 전에 듣지 못한 게송이 저절로 떠 올랐다.

                                                                  

          '더위와 추위에 시달리며,

           혼자 무시무시한 숲에서

           발가벗은 채 불에 다가가지 않고

           성자는 궁구를 거듭하노라.'

                                                                    

    3) 나는 송장의 뼈다귀를 베게로 하여 공동묘지에서 잠자리를 만들었다.


        소치기들이 내게 다가와서 

        침을 뱉고, 오줌을 누고, 오물을 던지고, 창살로 귀를 찔렀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결코 나쁜 마음을 일으켯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이렇게 평온하게 머물렀다.


    4) 나는 오직 한 개의 대추만을, 오직 한 개의 녹두만을, 오직 한 개의 참깨만을,

        오직 한 개의 쌀만을 먹고 살았다.


        나의 몸은 아주 쇠약해졌다.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사지는 마치 아시띠까 덩쿨의 마디나 깔라 풀의 마디와 같았다.

        나의 엉덩이는 마치 낙타의 발처럼 되었다.

        나의 등뼈는 줄로 엮어둔 구슬처럼 되었다.

        나의 갈빗대들은 오래된 집의 서까래가 허물어지고 부서지듯이 허물어지고 부서졌다.

        내 동공 안에서 눈동자의 빛은 마치 깊은 우물에서 물빛이 깊고 멀리 들어가 보이듯이

        깊고 멀리 들어가 보였다.

        나의 머리 가죽은 마치 익지 않은 쓴 호리병박이 바람과 햇빛에 시들듯이 시들었다.



11. 그러한 고행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간의 법을 초월하는 특별함을 얻지 못했다.


    나는 참으로 그러한 행위와, 그러한 도닦음과, 그러한 고행으로도

    인간의 법을 초월했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知)와 견(見)의 특별함을 증득하지 못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성스러운 통찰지를 증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2. 나는 윤회와, 재생과, 머무는 곳과, 제사와, 불을 섬김에 의해서 청정해 질 수

     없음을 알았다.


     1) 정거천의 세상을 제외하고 내가 윤회하지 않았던 그런 윤회(輪廻)는 없다.

     2) 정거천의  신들을 제외하고는 내가 재생하지 않았던 그런 재생(再生)은 없다.

     3) 정거천의 신들을 제외하고는 내가 머무르지 않았던 그런 주처(住處)는 없다.

         * 민일 정거천에 윤회, 재생하거나 주처로 삼았셨으면, 

            나는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4) 내가 끄샤뜨리야의 왕이거나 대갓집 바라문이 되어서 지내지 않은 그런 제사(祀)는 없다.

     5) 내가 끄샤뜨야의 왕이거나 대갓집의 바라문이 되어서 섬기지 않은 그런 불은 없다.



13. 내가 나이가 들고, 설사 침상에 옮겨 놓더라도, 네 가지 마음챙김에 대한 질문에 대한

    여래의 대답은 다함이 없을 것이고, 통찰지에 의한 총명함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14. 나는 누구인가?


   "누군가가 말하기를

   '어리석음의 본성을 초월한 분세상에 출현하셨으니,

 

    그것은  

    1)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위하고

    2) 세상을 연민하고

    3) 신들과 인간들의 이상이익행복 위한 것이다.' 

    라고 어떤 사람에 대해 바르게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나를 두고 그렇게 말할 때

    바르게 말하는 것이다."



본 경을 설하실 때 세존의 뒤에서 부채질을 해드리고 있던 나가사말라 존자는

이 법문을 듣고 '온몸에 털이 곤두섰다.'라고 세존께 이룄습니다.

세존께서는 그렇다면 이 법문을 '온몸에 털이 곤두서는 법문'으로 호지하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들었기에 나가사말라 존자는 온몸에 털이 곤두섰을까요?,,,,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습니다.

더하고 뺄 것도 없어서 後記를 쓰면서도 있는대로 다시 다 쓸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항상 그렇습니다.


이 가르침을 세존께서 수낙캇따와 같은 자의 말을 전해 듣고 화가 나셔서 이같이 말씀하셨을까

곰곰히 생각해보게 됩니다. 존귀한 자라 하더라도 세상으로부터 당치 않은 말을 듣는 경우는

오늘에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럴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가집니다. 세존께서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그렇게 진실을 말씀하시고 전하신 것입니다.



세존과 같으신 분이 '나는 이런 사람'라고 처음부터 끝까지를 아우르는 말씀을 하시는 것은 실로 듣기

어려운 이야기일 것입니다. 본 「사자후의 긴 경」은 예외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의 말씀으로

'나는 과연 누구이며, 어떠한 자인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말씀을 종합해 보면, 수낙캇따의 무리들은 한 마디로 '세존이 누구신지' 아는 지혜가 없어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그러하다고 생각됩니다. 오늘날의 세상에도 무명에 끄달리고 갈애를 향해 치달리기만 하는 대부분의 중생들은

그곳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도 않을 뿐아니라, 그분의 가르침을 그냥 수많은 종교나 전승과 같은

반열에 두고 그 중에서 한 분 정도로 생각하고 마는 것입니다.



세존께서 깨달음을 증득하신 후 법을 세상에 전하지 않으려 하시면서,


   '내가 증득한 이 법은

 

    1) 심오하여 알아차리기도 이해하기도 힘들며,

    2) 평화롭고 숭고하며,

    3)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4)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감각적 쾌락을 좋아하고, 감각적 쾌락에 물들어 있고, 감각적 쾌락에 탐닉하고 있다.   

    감각적 쾌락을 좋아하고, 감각적 쾌락에 물들어 있고, 감각적 쾌락에 탐닉하는 사람들이

  

    이런 경지, 즉

   '이것의 조건짓는 성질(此緣性)인

    연기(緣起)를 본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또한 모든 형성된 것(行)들을 가라 앉히고(止),

    일체의 생존에 대한 집착을 포기함,

    갈애의 소진, 욕망의 빗바램(離慾), 소멸, 열반,

 

    이러한 것들을 본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탐욕과 성냄으로 가득한 자들이 이 법을 실로 잘 깨닫기란 어렵다.

 

 

       1) 흐름을 거스르고

       2) 미묘하고

       3) 깊고

       4) 보기 어렵고

       5) 미세한

 

      법을

 

      어둠의 무더기로 덮혀있고

      탐욕에 빠진 자들은 보지 못한다.'      

                                                               (* 대전기경: http://blog.daum.net/ibakdal/17371154


과 같이 생각하셨던 것은 바로 세상의 대부분이 이러한 경우인 것을 꿰뚫어 보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이 '내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에 대해서 설하신 법이 이 법문이라면,

세존께서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설하신 데에는 이런 방법으로 설하셨음을 일 수 있습니다.


먼저, 1에서 말씀하신 것 처럼 나는 세존·아라한·정등각이다라고 천명하십니다.



이후 방법론으로써 그를 나타내시기 위하여 전개하십니다.


첫째, 2,3,4에서와 같이 신족통, 신이통, 타심통을 이루었다.

        → 어떤 계, 어떤 차원, 어떤 존재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시공간 혹은 construct의 한계를

            초월했다.(세존께서는 사여의족을 닦으셔서 누구든 그렇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5, 6에서와 같이 나는 여래만이 가지는 여래십력과 사무외를 갖추었음을,

        7과 같이 나는 네 가지 부류의 태생, 즉 모든 중생들의 태어남의 종류를 그 각각대로 알고 보심을,

        8과 같이 모든 중생이 태어니는 곳과 그것으로부터 벗어남을 알고 보심을

        9, 10과 같이 극도의 고행을 하셨던 분임을

        11과 같이 그러한 고행에도 불구하고 통찰지를 증득하지 못하셨음을 솔직하게 말씀하시고

        12와 같이 윤회, 재생, 머무는 곳, 제사, 불을 섬김에 의해서도 청정함을 얻지 못함을 아셨음을

        13과 같이 여래의 법문은 다함이 없고, 늙음에 의해서도 그 통찰지에 의한 총명함이 변함없음을

        말씀하셨읍니다.




마무라로써, 14는 참으로 큰 울림을 전해줍니다.

당신 스스로 당신에게 의미를 부여하시는 이 마지막 문구에 의해서

우리는 참으로 그분이 어떤 분이셨는지 분명히 알 수 잇습니다.


이 메세지는 두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 나는 '어리석음의 본성을 초월'한 자이다.

2) 나는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세상을 연민하여, 신들과 인간들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세상에 출현하였다.'


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입니다.


1) 당신은 어떤 분이신지,

2) 왜 당신은 그런 분이 되어서 세상에 출현하신 것인지 그 이유를

천명하시는 부분입니다.


12.에 말씀하신 부분에 따르면 그분은 일부러 정거천에 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이 세상으로 돌아올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상응하는 말씀이시기도 합니다.


한편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와 같으신 분이 디팡카라 부처님(연등불) 시대에

왜 아라한을 이루시지 않고 붓다가 될 것을 서원하셨을까?,,,,,  라고 말입니다,



참으로 사나이 중에 사나이시며,

참으로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비민(悲愍)의 스승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에 사∼두(sadhu)로 칭송할 유일한 일이 있다면 바로 이분이 걸으신 행로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받아지녔습니다.



이렇게 오늘 행하고 들은 선업의 공덕 몫을

법문을 같이 듣고 수행을 하는 선한 이들을 포함해서

부모님과 도움을 주신 이들을 비롯하여

삼십일천의 모든 중생들에게

회향합니다.

지금 행한 공덕으로

행복하고 위험없는 열반으로 장애없이 도착하길

수많은 생 윤회할 때 고통 위험 원수들과 안 만나고

모든 행복 축복들을 바람대로 이루길


오늘 지금 행한 모든 공덕 몫을

부모 스승 친척 친구 자신보호

천신들을 시작으로 삽심일천 존재하는 제도가능 모든 중생

성취하길 회향하니 모두 사두 부르세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 ∼ 두 ∼  사 ∼ 두 ∼ 사 ∼ 두 ∼




2016. 5. 29

       



PS:  2016. 5. 29(일). 오늘로서 단연(斷煙)코자 합니다.

        돌이켜보니 78년 대학교 1학년 때 가치 담배를 사서 피우기 시작한 것이 38년이 되었습니다.


        인생의 고달픔을 빗대어 혹은 괴롭거나 외로울 때 유일하게 벗 삼았던

        참으로 오래된 제 친구라,,,,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네요.


        그루로도 가족들과 고마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여러 가지 핑계로 담배를 필 때만은 즐거운 마음이 되어 피워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그때가 왔음을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때도 무르익었지만 몇 가지 이유를 들라면 들겠습니다.


        첫째, 부처님의 고행과 은혜를 숙고하면서, 속행에 마음챙기며 영영 끊고자 합니다.

        둘째, 구경의 지혜를 성취코자 하는 자가 연기에 의지하여 위로받는 모습 바른 길이 아닙니다.

        셋쩨, 저는 몸을 다시 세워, 세간과 출세간의 빚을 갚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 중 한 가지만 들라면 '부처님의 고행과 은혜'를 생각해서 입니다.


      

        오랜 벗이여,,,, 참으로 고마왔네,,,, 

        그러나 이제는 각자의 길로 가야만 할 시간일세.

        그대 평안하시기를,,,,


        2016.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