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진암(識盡庵)/임승택교수님의 초기불교순례

70. 오온(五蘊)의 이해 - 현상계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

이르머꼬어리서근 2013. 6. 9. 14:05

 

오온((五蘊)이란 무엇인가.

 

현상계를 구성하는 다섯 요소를 일컫는 말이다.

물질현상(色) · 느낌(受) · 지각(想) · 지음(行) · 의식(識)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현상계란 ‘나’에 의해 경험되는 세계를 가리킨다.

‘나’에게 비추어지고 ‘나’에 의해 이해된 세계를 말한다.

 

이렇듯 오온이란 ‘나’에게 포착된 경험적 요인들을 다섯으로 분류해 놓은 것이다.

오온으로 구성된 세계란 ‘나’의 외부에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세계가 아니다.

오온의 가르침은 오로지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며 ‘나’ 자신에 대한 분석이다.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는 혼자만의 존재이다.

‘나’ 자신과 더불어 ‘내’가 처한 모든 환경은 ‘나’대로의 경험과 이해가 빚어낸 결과이다.

 

설령 부처님이나 하느님이 계신다고 하더라도 그분들을 떠올리는 ‘내’가 우선 존재해야만 한다.

결코 그분들이 ‘나’일 수 없으며, 세상의 여느 존재와도 다른 ‘내’가 지금 이렇게 있을 뿐이다.

 

 

 


‘나’란 존재는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밀폐된 공간에 비유할 수 있다.

‘나’에 대한 관념이 강해질수록 폐쇄된 공간이 불러일으키는 질식의 공포는 더해 간다.

그러나 어쩌란 말인가.

 

‘내’가 존재하는 한 밖으로 빠져나갈 여지는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또한 밀폐된 공간 너머의 또 다른 ‘나’를 상정할 수도 없는 문제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때의 ‘나’는 이미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라는 생각마저 폐쇄공포증으로 야기된 정신착란의 결과일 수 있다.

어떠한 경우를 가정하더라도 현재 경험하는 이 모든 것이 밀폐된 공간 속 혼자만의 이야기일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오온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는 실재론이다.

 

물질현상·느낌·지각·지음·의식 따위를 객관적 실재로 간주하는 경우이다.

이것에 따르면 오온은 마치 원자와 같은 알갱이로 존재하며, 이들이 밀고 당기는 과정을 걸치면서 ‘나’를 포함한 일체의 사물을 이루어진다.

 

‘나’를 비롯한 모든 존재는 물질현상이라든가 느낌 따위의 낱알들로 해체될 수 있고,

그러한 해체가 완료되면 남김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오온설의 취지를 망각하게 만들 위험성이 있다.

낱낱의 요소로 해체되고 나면 그만이라는 허무주의를 조장하거나,

해체되기 이전에 실컷 즐기고 보자는 쾌락주의를 조장할 수 있다.

 

 

 


오온설의 본래 의도는 ‘나’라는 신화(神話)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는 데 있다.

대부분의 중생은 오온의 장벽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심지어는 오온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이것의 양상은 다음과 같다.

 

배우지 못한 범부는

 

 1) 물질현상을 자아라고 관찰한다. 혹은

 2) 자아가 물질현상을 소유한다고, 혹은

 3) 자아가 물질현상이라고, 혹은

 4) 물질현상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

 

 느낌·지각·지음·의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SN. III. 102).”

 

이러한 잘못된 관찰을 통해 ‘현재의 몸에 매인 견해(有身見, sakkāyadiṭṭhi)’가 발생한다.

 

 

 


‘현재의 몸에 매인 견해’는 스스로를 더욱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물질현상이라든가 느낌이라든가 충동·생각·이미지 따위에 달라붙어

그들과 하나가 되도록 부추긴다.

 

이처럼 달라붙어 뒤엉킨 상태에서 경험되는 오온에 대해

5가지 집착된 경험요소’ 즉 오취온(五取蘊)이라고 달리 일컫는다.

 

 

 

 

붓다는 오온 각각에 대해 질병과 같은 것으로, 종기와 같은 것으로, 죄악으로 보라고 이른다

(MN. I. 435).

 

그리하여 오취온의 상태에 빠지지 말라고 충고한다.

 

오온에 대해 나의 것(mama), (aham), 나의 자아(me attā)가 될 수 없음을 꿰뚫어

스스로를 특정한 모습으로 고착화하거나 한정하지 말라고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