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진암(識盡庵)/부처님,그분-The Buddha

15. 열려진 문, 그대 스스로,

이르머꼬어리서근 2012. 10. 1. 13:06

 

 

 비밀이 있다는 것은 스스로 그릇된 교의임을 드러내는 표시라고 말씀하시면서

 부처님은 비밀교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부처님께서는 아난다 장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나는 법을 가르침에 있어 드러난 교리와 비밀스런 교리를 각각 따로 세우지 않았다.

 

 아난다여!

 여래는 드러난 교의와 비밀스런 교의를 구별짓지 않고 법을 설해왔다.

 

 왜 그러느냐 하면, 아난다여, 여래에게는

 주요한 지식을 제자들에게 감추는 ‘주먹 쥔 손’ 같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54)

 


 이 우주를 다 감싸는 무한대의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가지신 부처님께서는

 인간이 윤회라는 끝없는 헤맴의 족쇄에서 풀려나는 데 필요한 지식이라면

 그 무엇 하나 감추는 일 없이 모든 것을 설해 주셨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눈 있어 볼 수 있고 마음 있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열려 있다.

 

 

 또 불교는 어떤 사람에게도 총검이나 대포를 들이대고 믿음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강요에 의한 개종은 불교도들 사이에서는 알려진 적도 없으며, 부처님의 가르침과도 모순된다.


 필딩 홀(H. Fielding Hall)은 그의 저서 『어느 한 무리의 넋?에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에 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불교전쟁이란 있을 수 없다.

 일찍이 그 어느 나라도 불교도들이 무력으로 약탈한 적은 없으며,

 붓다의 이름으로 단란한 가정을 피로 물들인 적도 없으며,

 한에 사무친 여인네들이 붓다의 이름을 입에 올려 저주한 적도 없었다.

 

 이렇듯 붓다와 그 분의 가르침은 피의 얼룩으로 더렵혀진 적이 없다.

 붓다야말로 사랑으로 이루어진 평화, 베풂으로 이루어진 평화, 연민으로 이루어진 위대한 평화

 가르치신 분이며,

 이러한 그의 가르침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그것을 잘못 이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기독교 성직자 조셉 웨인(Joseph Wain)은 평한다.

 

‘불교는 통제가 아니라 원칙에 의한 생활, 우아한 생활을 가르치며,

 그 당연한 귀결로 불교는 관용의 종교다. 태양 아래 가장 자비로운 종교체제가 불교이다.

 교법의 전파과정 그 어디에서도 피를 본 적이 없는 종교이다.

 

 신앙이 다르다고 해서 남을 박해하거나 함부로 대한 적이 없었다.

 이는 기독교가 아직까지도 배워야만 할 교훈이다.

 붓다는 사람들에게 오늘을 아름답게 만들고 현 순간을 성화(聖化)시키도록 가르쳤다.’

 

 

 


 제자들에게 법을 전하는 데 있어서도 부처님은 조금도 차별을 두지 않았다.

 특별히 선택된 애제자란 없었다.

 

 제자들 가운데서 아라한과를 성취했던 제자들은 모두 청정을 완성하여 애욕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존재에로 옭아매는 족쇄들을 풀어버린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중에는 각각 특수한 지식과 수행에 뛰어나고 또 타고난 성품에도 차이가 있어

 남다른 위치를 차지하게 된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스승은 그들이라 하여 특별한 총애를 주지는 않았다.

 

 예컨대 우빨리는 낮은 카스트의 이발사 집안 출신이었지만

 바라문이나 크샤트리아 계급에 속했던 수많은 아라한들을 제치고 계율에 관해 으뜸가는 제자가 될 수 있었다.

 

 사리뿌따와 마하 목갈라나는 바라문 계급 출신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장구한 전생동안 세워온 원력 때문에 부처님의 상수(上首)제자가 되었던 것이다.

 사리뿌따는 지혜에 뛰어나고, 마하 목갈라나는 신통에 뛰어났다.

 

 


 부처님은 제자들이 당신이나, 당신의 가르침에 맹목적이고 굴종적인 믿음을 바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 분은 항상 지성적 탐구와 면밀한 고찰을 강조하셨다.

 

 자유사상의 최초의 헌장이라고 일컬어 마땅할 어느 경전에서,

 부처님은 깔라마인들의 질문에 답하는 가운데, 단호하게 비판적 탐구자세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계시다.


“그렇소, 깔라마인들이여! 그대들이 의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대들은

 1) 세평이나 구전(口傳), 풍문에 이끌려서도 안 되며,

 2) 종교의 경전에 쓰여 있다고 해서,

 3) 아니면 단순히 논리나 유추만으로,

 4) 또는 외양만을 취하여

 5) 또는 어떤 이론에 미루어 볼 때 타당하다고 해서,

 6) 또는 그럴싸한 가능성 때문에,

 7) 또는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다 하는 생각 때문

 

 끌려가서는 아니 됩니다.

 

 

 깔라마인들이여!

 당신들 스스로 생각해서

 이런 것들은 건전하지 못하고, 이런 것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며 이롭지도 못하다고 알았을 때,

 그때는 당연히 그러한 것들을 거부하도록 하시오. (……)

 

 그리고 스스로 생각해서 이런 것들은 건전하고, 나무랄 데 없고 이롭다’고 알았을 때는

 그것을 받아들여 거기에 머물도록 하시오.”

 

 

 


 그런 연후 부처님은 물으셨다.

 

“자, 깔라마인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여기 어떤 사람에게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일어났다고 칩시다.

 이런 것들은 그 사람에게 이득이 되겠소, 손실이 되겠소.

 탓할 일이겠소, 탓하지 않아야 할 일이겠소?”

 

“존사(尊師)시여! 그런 것들은 그에게 손실이 되며, 그런 것들은 탓할 일입니다.”

 


“자, 깔라마인들이여!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어떤 사람이 탐욕, 성냄, 어리석음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칩시다.

 이것은 그에게 이득이겠소, 손실이겠소, 탓할 일이겠소, 아니겠소?

 

“존사시여! 그에게 이로움이 되고 탓할 점이 없습니다.”

 

 


“그렇소, 깔라마인들이여! 방금 내가 그대들에게,

‘그대들은 세평이나 구전, 풍문에 이끌려서도 안 되며, (……)

 건전하고, 나무랄 데 없고, 이롭다고 알았을 때는 받아들여 거기에 머물도록 하라고 한 것은

 바로 이를 말하려 함이오.”55)

 

 

 


순전히 믿음 때문에 어떤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불교의 정신과 어긋난다.

그래서 부처님과 제자들 간에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있다.

 

“(나의 가르침을) 알고 이를 따르면서 그대들이

 ‘우리는 스승을 기리고 존경하기 때문에 스승의 가르침을 받든다’고 말할 것인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찾아낸 사실만을 말하는 것인가?

 

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56)

 

 

 


 부처님은 항상 사실을 직시하였으며 진리와 부합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인정하거나 양보하지 않으셨다.  또 그 분은 우리 역시 어떤 것을 정당한 이유 없이 무분별하게 진실로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분이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여실히 이해하는 것,

 그리고 필요한 노력을 기울여 방일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해탈을 스스로 이룩해 내는 것이다.


그대들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래는 다만 길을 일러줄 따름이다.”57)

 

 


그대 스스로가 자신의 섬이 되라, 그대 스스로가 자신의 피난처가 되라.

 남을 피난처로 의지하지 마라.

 

 법을 섬으로 삼고, 굳건히 붙들어라. 법을 피난처로 삼고, 굳건히 붙들어라.

 그 밖에 다른 어떤 피난처에도 의지하려 들지 말라.”58)

 

 

 

 

이렇게 말씀하시는 부처님이야말로, 사상 최초로 인류에게

 해탈은 스스로 찾아야지

 그 어떤 구원자에게, 그것이 인간이든 또는 신이든 간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분이시다.


 남이 우리를 낮은 단계의 삶에서 높은 단계로 끌어올려 주고 또, 궁극적으로 해방시켜 준다는 관념은

 우리를 게으르고 나약하며, 무기력하고, 어리석게 만들기 쉽다.

 이런 종류의 신앙은 품위를 떨어뜨리고, 도덕적 존재로서 인간이 발할 수 있는 위엄을 여지없이

 짓눌러 버린다.


 깨달으신 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립심을 기르도록 권하셨다.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간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고(苦)로부터의 해방은 각자가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갈고 닦음으로써

 나름대로 이루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