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노래, 그의 이야기/그의 야그

Episode3: 어떤 약카의 말

이르머꼬어리서근 2023. 11. 3. 11:05

 

"見惡"

이라고 무심코 말했다.

 

그에게 물은 말도 아니고,,,,

그를 청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나를 봐?"

 

 

어찌보면 무서운 세상이다.

무착(無着)이면 무유(無有)요,

무생(無生)이요, 무노(無老)요, 무사(無死)요,

그러므로 무요(無搖)요, 무갈(無渴)이다.

이미 죽을 내가 없기로,,, 흔들림도 무서울 것도 없다는,,,

그분의 말씀이다.

 

보이는 이도, 보는 이도 무서울 게 없어야 하는 세상인데도,,,,

보는 것이,,, 누구로부터 보임을 당하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그러므로,,, 숨고,,, 가린다.

하여 어찌 보면 세상은 매 순간

'보느냐?', '보임을 당하느냐?'의 싸움판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네가 어찌 나를 알랴?'라고,,,,

그렇게까지 꼭꼭 숨어버리고 만다.

그래야 안심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놓으면,,,

그는 곧 죽임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매양 속인다.

 

 

 

맛지마니까야 제 50경(M50) 「마라 견책 경」에서

마라는 목갈라나 존자의 뱃속 창자에 붙었다가, 또 나와서는 문빗장에 서서

"너는 나를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다.'"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를 목갈라나 존자는 알고 본다.

간파를 당하는 것, 보이는 것이 그렇게 중대사다.

                               (* https://ibakdal.tistory.com/17372202)

 

 

「범천의 조대 경」(M49)에서

대범천인 바까 범천은 세존으로부터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고,

자신이 어떻게 대범천에 이르게 되었는지 등 가르침을 듣게 되자,,,

"존자여, 그렇다면 내가 당신에게서 사라져 보이겠습니다."라고 하고

사라지고자 했으나 결코 세존으로부터 사라질 수 없었고,

오히려 세존께서는 그로부터 사라져 소리만 들리게 하는 신통을 드러내신다.

보느냐 보임을 당하느냐는 여기서도 중대사다.

                                (* https://ibakdal.tistory.com/17372196)

 

 

세존께서 보리수 아래서 정등각을 이루시고 하신 게송

즉, 세존께서 하신 첫 번째 법문은 아래와 같다.

 

     "한없는 세월의 생사윤회 속에서

      집 짓는 자가 누군지 알기위해

      찾아 헤매다 헤매다 찾지 못하여

      계속해서 태어났나니 이는 괴로움(dukka)이었네.

 

      아! 집 짓는 자여! 나 이제 그댈 보았나니,

      그대 더 이상 집 짓지 못하리. 

      이제 그대의 모든 골재들은 무너졌고

      대들보는 산산이 부셔졌나니, 

 

      나의 마음은 업 형성을 멈추었고

      갈애의 부숴짐을 성취하였다."

 

                          (* 법구경 153~154

                           * 디가니까야 주석서 서문, https://ibakdal.tistory.com/17371457)

 

"나 이제 그댈 보았나니",,,,,,,,,,

보느냐, 보지 못하고 보임을 당하느냐는,,,,

이같이 세존과 같으신 분이 4아승지 10만 대겁을 닦을 만큼 중대사다.

 

 

 

무심코 내뱉은 '見惡'이라는 말에

'네가 나를 봐?'라고 한 것을 보면,,,,

'見惡'이라는 저의 말에 그의 심사가 많이 상했던 모양이다.

 

 

 

"끝"은 '끊음'이다.

마음을 한 '끝'에 집중하여 물질과  정신현상의 흐름을 끊는 것이다.

마음을 그렇게 길들이는 것이고,,,, '끝'은 그리하여 삼매다.

 

"細"는 세밀함이다.

바위를 뚫고 나무가 뿌리를 내리듯 그 뿌리의 끝은,,,,

부드럽지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밀하다.

그 빈틈 없는 세밀함이,,,, 바위를 분해시키고 뚫는다.

이 몸을 시작으로 한 물질과 일체 정신현상을 그렇게 

세밀하게 빠뜨리지 않고 빈 틈이 없이 꿰뚫어서 알고 보고

분해할 줄 알고 다시 모아서 그 무더기 됨을 애증 없이

자애와 연민의 마음으로 담담히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걸그적거리는 것이 없다.

베지 못하는 것이 없고 보호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혜(慧), 연기(緣起)의 검(劍)이요,,, 위빳사나다.

 

"징(澂)"은 맑음이다.

갈애가 멸진하여 소멸하였으니,,, 열반이요,,, 맑다.

좌든 우든 위든 아래든 앞으로든 뒤로든 흔들림이 없으니

삼천대천세계 어디라도 생사를 뛰어넘은 진실한 중도(中)을 그는 얻는다.

'존재의 소멸'이다.

그는 존재를 벗을 줄 알기에,,, 아무도 그를 볼 수 없다.

새 날아간 자리 흔적이 없듯이.

타다 꺼진 불이 어디로 간 게 아니듯이.

 

 

 

하여,,,, 오늘의 화두는,,,

"見惡끝細澂"입니다.

 

'見惡'도 어렵고,,,

'끝細澂'은 더 어렵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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