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니까야(中部)/M118.들숨날숨에대한마음챙김경-수행

6. 어떻게 들숨날숨에 마음챙김 수행을 하는가?

이르머꼬어리서근 2019. 3. 22. 11:56


16.   "비구들이여,    어떻게 들숨날숨에 마음챙김을 닦고    어떻게 거듭거듭 행하면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는가?"

17.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숲 속에 가거나, 나무 아래 가거나, 빈 방에 가거나 하여

    가부죄를 틀고 상체를 곧추 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한다.

     그는     마음챙기면서 숨을 들이쉬고     마응챙기면서 숨을 내쉰다."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한다."

 「위방가」는 "이 마음챙김은 코끝이나 입의 표상에 확립되고
  잘 확립되었다고 해서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라고 한 것이다."  (Vhh.252)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위방가 주석서」는 "입의 표상이란 윗입술의 가운데 부분이라고
  봐야 하나니, 즉 코의 바람이 닿는 곳을 말한다."(VhhA.368)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전면'은 구체적으로 코끝에나, 숨이 닿는 윗입술의
  중간부분에 혹은 인중(人中) 즉 코의 밑과 윗입술 사이에 오목하게 끝이
  진 곳에라는 뜻이다
 

 

 

18.   "1)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pajanati)    길게 내쉬면서는 '길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2)     짧게 들이쉬면서는 '짧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내쉬면서는 '짧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3)    '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sikkhati)    '온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4)    '몸의 작용(身行)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몸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 "온몸을 경험하면서"
 청정도론은 다음과 같이 부연하고 잇다. "온 들숨의 몸의, 온 날숨의 몸의 처음과 중간과 끝을 체험하면서 분명하게 하면서 들이쉬고 내쉬리라고 공부짓는다. 이와 같이 체험하면서  지혜와 함께한 마음으로 들이쉬고 내쉰다."(청정도론 VIII.171)
 여기서 말하고 있듯이 이 문맥에서 몸(kaya)는 호흡 그 자체를 나타낸다.



※ "몸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여기서 '몸의 작용(身行, kaya-sankhara)'은 들숨날숨을 말한다.


 상윳따니까야 제4권 까마부 경(S41:6/iv293) §5에서 까마부 존자는 찟따
 장자에게 "장자여, 들숨날숨은 몸에 속하는 것이고, 이런 법들은 몸에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들숨날숨은 몸의 작용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본서 제2권 교리문답의 짧은 경(M44) §14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청정도론의 복주서인 빠라맛타 만주사도
"여기서 '몸의 작용(身行, kaya-sankhara)'이란 들숨날숨을 말한다.
 비록 이것은 마음에서 생긴 것이지만
 그것의 존재가 몸에 묶여 있고 몸을 통해 형성되기 때문에
 몸의 작용이라 부른다."(Pm.230)
 

 

 

 19.    5)    '희열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희열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6)    '행복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7)    '마음의 작용(心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라라.'며 공부짓고    '마음의 작용을 경험하면서 내쉬라라.'며 공부짓는다.

 

     8)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희열을 경험하면서"
"두 가지 방법을 통해서 '희열을 경험한다(piti-patisamvedi).' 그것은 대상을 통해서와 미혹하지 않음을 통해서이다.


 1) 그는 희열이 있는 두 禪(즉 초선과 제2선)에 든다.    그가 그것에 드는 순간에 禪을 얻음으로써 대상을 경험했기 때문에     대상을 통해서 희열을 경험한다.
 2) 희열이 있는 두 禪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禪과 함께한 희열을 파괴되기 마련이고 사라지기 마련이라고 명상한다.    그가 위빳사나를 하는 순간에 특상을 경험하기 때문에 잊어버리지 않음을     통해서 희열을 경험한다."(청정도론 VIII.226∼227) 즉
 1)은 사마타를 닦았을 때의 희열이고,  2)는 禪에서 출정하여 무상, 고, 무아의 특상(lakkhana)을 꿰뚫는 위빳사나를 할 때의 희열을 말한다.

※"행복을 경험하면서"
 청정도론은 "행복을 경험하면서(sukha-patisamvedi)"도 희열의 경험과 같은  방법으로 두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1) 사마타를 닦아서 禪에 들었을 때의 행복 2) 禪에서 출정하여 무상, 고, 무아의 특상을 꿰뚫는 위빳사나를 할 때의    행복말한다.
 다른 점은 행복은 초선부터 제3선까지 경험된다는 것이다.                                                 (청정도론 VIII.229)

※"마음의 작용을 경험하면서"
"마음의 작용(心行, citta-sankhara)은 느낌의 무더기(受蘊) 인식의 무더기(想蘊)을 말한다.
 네 가지 禪들로 '마음의 작용을 경험한다(citta-sankhara-patisamvedi)'고  알아야  한다."(청정도론 VIII.229)
 본서 교리문답의 짧은 경(M44) §14에서도 "도반 위사카여,  들숨과 날숨이 몸의 작용이요,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이 말의 작용이고,인식(想)과 느낌(受)이 마음의 작용입니다."라고 하여  느낌과 인식을 마음의 작용으로 설명하고 있다.
 


 
20.    9)    '마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10)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11)    '마음을 집중하면서 들이쉬라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집중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12)    '마음을 해탈케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해탈케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마음을 경험하면서"
"마음을 경험하면서(citta-patisamvedi)"란  네 가지 禪들로 마음을 경험한다고 알아야 한다."(청정도론 VIII.231)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abhippamodayam cittam)':  여기서는 삼매와 위빳사나의 두 가지 방법으로 기쁘게 한다.
 어떻게 삼매를 통해 기쁘게 하는가? 희열(piti)이 있는 두 禪에 든다. 그 증득의 순간에 그 禪과 함께한 희열로 마음을 반갑게 히고 기쁘게 한다.
 어떻게 위빳사나를 통해 마음을 기쁘게 하는가? 희열이 있는 두 禪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禪과 함께한 희열을 파괴되기 마련이고 사그라지기 마련이라고 명상한다.  이와 같이 위빳사나를 하는 순간에 禪과 함께한 희열을 대상으로 삼아  마음을 반갑게 하고 기쁘게 한다."(청정도론 VIII.232)

※"마음을 집중하면서"
 청정도론 VIII.232는 두 가지로 '마음을 집중하면서(samadaha-citta)'을  설명하고 있는데,
 하나는 네 가지 禪에 드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찰나삼매(刹那三昧, 순간적으로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 (刹那心一境性, khanika-citt-ekaggata)를 통해서이다.
 찰나삼매는 "그 禪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禪과 함께한 마음을 파괴되기  마련이고 사그라지기 마련이라고 생각할 때 그 위빳사나를 하는 순간에  특상을 통찰하는 것"이라고 청정도론 VIII.232은 정리하고 있다.

※"마음을 해탈하게 하면서"

"'마음을 해탈하게 하면서(vimocayam cittam)':


 초선을 통해 장애들로부터 마음을 벗어나게 하고, 해탈하게 하면서,
 제2선을 통해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로부터,
 제3선을 통해 희열로부터,
 제4선을 통해 행복과 고통으로부터


 마음을 벗어나게 하고 해탈하게 하면서들이쉬고 내쉰다.


 혹은 그가 그 禪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禪과 함께한 마음은 파괴되기 마련이고 사그라지기 마련이라고 명상한다.
 그가 위빳사나를 하는 순간에


 무상의 관찰로 영원하다는 인식으로부터,
 괴로움의 관찰로 행복하다는 인식으로부터,
 무아의 관찰로 자아라는 인식으로부터,
 염오의 관찰로 즐김으로부터,
 탐욕이 빛바램의 관찰로 탐욕으로부터,
 소멸의 관찰로 일어남으로부터,
 놓아버림의 관찰로 가짐으로부터,


 마음을 벗어나게 하고 해탈하게 하면서 들이쉬고 내쉰다."
                                                 (청정도론 VIII.233)
 

 

 

 


21.   13)    '무상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무상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14)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15)    '소멸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소멸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16)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무상을 관찰하면서"        "'무상을 관찰하면서(anicca-anupassi)'라고 했다.  여기서 무상한 것이란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이다.
 왜 그런가? 그들은 일어나고 멸하고 변하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무상한 성질이란 그들에게 존재하는 일어나고 멸하고 변하는 성질이다. 혹은 생겻다가 없어지는 것이다. 생긴 무더기(蘊)가 본래의 모습으로  머물지 않고 순간적인 부서짐을 통해 부서진다는 뜻이다.

 무상의 관찰이란 그 무상함으로 물질 등에 대해 무상하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청정도론 VIII.234)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viraga-anupassi)':  여기 탐욕의 빛바램은 파괴로서의 탐욕의 빛바램과 절대적인 탐욕의 빛바램의  두 가지가 있다. 여기서
 파괴로서의 빛바램이란 형성된 것들(行)이 순간적으로 무너지는 것 (khana-bhanga)이다. 절대적인 탐욕의 빛바램이란 열반이다.
 탐욕의 빛바램을 관찰함이란 이들의 관찰로 일어나는 위빳사나의 도(magga)이다.'소멸을 관찰하면서'라는 구절에서도 이 방법이 적용된다."(청정도론 VIII.235)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여기서도 '놓아버림(patinissaga)'은 두 가지다.
 버림으로서의 놓아버림과 들어감으로서의 놓아버림이다.
 놓아버림의 관찰이란 놓아버림 그 자체가 관찰이다. 이것은 위빳사나와 도와
 동의어이다.


 1) 위빳사나는
 ① 반대되는 것으로 대체하여 (과보로 나타난) 무더기들과 업형성력들과 함께
    오염원들을 버리기 때문에,
 ② 형성된 것에 대해 (무상 등의) 결점을 보고 그 (형성된 곳의) 반대인
    열반으로 기울어짐으로써 열반에 들어가기 때문에,
 각각 버림으로서의 놓아버림과 들어감으로서의 놓아버림이라 한다.


 2) 도는
 ① 근절로서 무더기를 생기게 하는 업형성력들과 함께 오염원들을 버리기 때문에,
 ② 열반을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열반에 들어가기 때문에,
 각각 버림으로서의 놓아버림과 들어감으로서의 놓아버림이라 한다.


 이 두 (위빳사나의 지혜와 도의 지혜)는
 각각 이전의 지혜를 계속해서 따라 보기 때문에 관찰(髓觀)이라 한다."
                                                         (청정도론 VIII.236)




※ 4개조에 대한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적용에 대해서


 청정도론의 설명에서 보듯이
 12)까지의 앞의 세 번째 4개조까지는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방법이 둘 다
 적용되지만,


 이 네 번째의 네 개조는 위빳사나의 방법만이 적용되고 있다
 

  

 

 

 
22.   "비구들이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거듭거듭 행하면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