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라까빠나 경은
세존께서 꼬살라의 날라까빠나에 있는 빨라사 숲에 머무실 때
그 즈음에 아누룻다, 난디야, 낌빌라, 바구, 꾼다다나, 레와따, 아난다 존자 등과 같이 잘 알려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출가했던 바, 그들이 '청정범행에 기뻐하고 있는가?'라고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물으신 일을 계기로 아누룻다 존자에게 설하신 경입니다.
■ 출가한 이유에 어울리는 것 _ 청정범행을 기뻐함
세존께서는 축복받은 인생의 초년에 감각적 욕망을 두루 즐길 수도 있었지만,
왕의 명령도, 도둑의 협박도, 빚 때문도, 두려움 때문도, 생계 때뮨도 아니고,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 ‧ 탄식 ‧ 육체적 고통 ‧ 정신적 고통 ‧ 절망에 짓눌렸다.
괴로움에 짓눌렸다. 괴로움에 압도되었다.
이제 참으로 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끝을 꿰뚫어 알아야겠다.'
라는 이유로 출가한 그 비구들이 '청정범행에 기뻐하는 것은 참으로 어울리는 일이다.'라고
먼저 설하십니다. 출가하는 자가 마땅히 무엇 때문에 출가하는 것인지?, 그렇게 출가한 자는 무엇을
해야 마땅한 것인지를 이렇게 분명히 밝혀서 설하십니다.
■ 출가한 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_ 선정을 얻어 '5가지 장애/싫어함/게으름'을 벗어남
세존께서는
- 감각적 욕망을 멀리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여읜 희열과 행복을 얻거나
→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에 대한 갈애를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十惡業)을 떨쳐버리고,
'떨쳐버림에서 생겨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을 말씀하시는 것
- 이보다 더 평화로운 경지
→ 초선(初禪)보다 더 평화로운 경지는 제2선∼제4선의 바른 삼매(正定)을 말씀하시는 것
의 증득을 통해서,
1) 탐욕, 2) 악의, 3) 들뜸과 후회, 4) 해태와 혼팀, 5) 의심의 5가지 장애(五蓋)와 싫어함과 게으름을
벗어나 머무는 것이야말로 출가한 자가 해야하는 일이라고 설하셨습니다.
반대로 이같이 선정(janha, 禪定)을 얻지 못하면, 5가지 장애(五蓋)와 싫어함과 게으름이
'그의 마음을 제압하여 머문다'라고 설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수행자는 삼매 수행과 선정의 증득으로 그 날뛰는 마음을 조복받는 것이
첫 번째 할 일인 것입니다.
■ 여래는 번뇌들을 모두 제거하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였다.
- 그래서 숙고한 뒤에 수용하고, 감내하고, 피하고, 버린다.
세존께서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여래는
정신적 오염원이고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두렵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여래는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수용하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감내하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피하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버린다.'라고."
이 질문은 그리 간단한 내용이 아니라 깊은 교의를 담고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세존께서 비록 여래이시지만 여래라 할지라도 '번뇌들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것을 수용하고, 감내하고, 피하고, 버리실 때 '숙고한 다음에'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닌가?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즉 마음에 갈애와 번뇌가 멸질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일어나고,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제어하느라고 숙고하셔서 그렇게 결정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고 물으시는 묻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질문임에 틀림없습니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 제기하시고,
"여래는
정신적 오염원이고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두렵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모두 제거하고
그 뿌리를 자르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했다.
아누룻다들이여, 예를 들면
야자수가 그 윗부분이 잘리면 다시 자랄수 없는 것처럼,
그래서 여래는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수용하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감내하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피하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버린다.'라고."
천명하십니다.
갈애와 번뇌가 멸절되지 않아서 계속 일어나는데 그때마다 그것을 제어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뿌리를 잘라서 멸절하였고, 그러므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다'라고 하셨고,
그러하기에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은 수용하고, 감내하고, 피하고, 버린다라고 설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이 가능합니다.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숙고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라고.
혹은 '그렇디면 숙고할 때 무엇 때문에 숙고하느냐?'고,,,,,
세존께서는 '어리석음의 본성을 초월하셨고' 그 법을 설하심은
1)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2) 세상을 연민하여,
3) 신들과 인간들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 M12, 사자후의 긴 경: http://blog.daum.net/ibakdal/17371131)
법을 설하신다고 세존께서는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세존께서 법을 설하시는 '이유'인 동시에 '목적'입니다.
세존께서 그렇게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을 끊어버린 채 세상에 머무실 때', 그리고 그 법을 설하실 때
그 법을 듣는 중생들이 있고 세상이 있습니다. 아직 무여열반을 하신 것도 아니고 유여열반에
머무시므로 그분 앞에도 이 물질정신세계는 분명히 전개됩니다. 그러므로 법을 설하실 때 그 법을
듣는 중생들의 근기가 있고 상황과 조건과 원인이 있는 것이기에,
법을 설하심에 있어서도 분명하고 한순간도 잊어버림이 없는 마음챙김과 더불어, 그분께서 세상에
머무시는 이유와 법을 설하시는 이유를 살피시고 '숙고한 뒤에' 그에 맞게 행위하신다는 말씀은
전혀 이상하지가 않습니다. 갈애와 번뇌와 미련이 있어서 숙고하시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이 법문 뒤에 당신께서 '왜 제자들이 죽은 뒤에 그 재생을 말씀하시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 설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제자들의 재생에 관한 법문과 같이 그를 설하시는 이유가
그 법문을 듣는 이들에게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이라고 세존께서는 밝히십니다.
그와 같이 '숙고하신 다음에' 그런 법을 설하신다는 한 개의 사례로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가 아니라면 이 다음에 제자들의 재생에 관한 법문을 하시는 이유와 같은 법문을 하실
이유가 없고, 어찌보면 도약이기도 하여 뜬금없는 법문을 하신 것처럼 보이는 바, 세존께서는
그같이 법문하시는 경우를 저는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ㅇ 「모든 번뇌 경」(M2)의 반추와 비교
- 세존께서는
"그대들에게 모든 번뇌를 단속하는 법문을 설하리니,,,"로 시작하셔서,,,
"이를 일러 '비구가
1] 모든 번뇌를 단속하며 머물고, → 모든 번뇌의 소멸, 모든 번뇌의 여읨(아라한)
2] 갈애를 끊어버렸고, → 갈애의 소멸
3] 족쇄를 풀어버렸고, → '삶의 족쇄를 부수었으며'(아라한)
4] 자만을 바르게 꿰뚫었고,
5] 마침내 괴로움을 끝내버렸다.' → 괴로움의 종식
고 한다."
라고 이 법문을 맺으시면서 이 법문과 같이 해탈, 열반에 이르름을 설하셨습니다.
- 그 방법은 이 법문 서언(序言)의 가르침에서
"알고 보는 자의
번뇌들이 소멸한다고 말하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들의
번뇌들이 소멸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고 설하신 연후에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는 자의 번뇌들이 소멸하는가?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과
지혜없이 마음에 잡도리함이다."고 설하셔서
바로 지혜로운 마음 기울임(如理作意, yoniso manasikara)이야말로 바로 그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이 법문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기본 원리입니다.
- 이어서 세존께서는 이러힌 '지혜로운 마음 기울임'의 바탕 위에
1) 사성제를 항상 마음에 잡도리하여 지혜롭게 통찰하여
자아 혹은 존재의 실상을 바로 보고 알아 유신견에 벗어나고,(봄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
2) 여섯 가지 감각기능을 제어하고 거기서 일어나는 갈애들을 지혜롭게 통찰하여 보고 알아
단속하는 것을 기본으로,(단속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
3) 그러나 극단의 고행으로 흘러서는 안되므로 이를 지혜롭게 통찰하여 보고 알아
최소한의 필수품은 수용하고,(수용함으로써 엾애야 할 번뇌들)
4) 그런 정도의 수용이므로 그에 따라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불편과 고통과 혹은 죽음이라
할지라도 지혜롭게 통찰하여 그 본질을 보고 알아 수행으로 삼고 이를 감내하고,
(감내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
5) 감내한다 하더라도 위험을 자초함에 따른 어리석음은 지혜롭게 통찰하여
그 위험을 보고 알아 이들은 피해야 하며,(피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
6) 위와 같은 자세의 수행에도 불구하고 감각적 욕망, 악의, 해코지의 생각 및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삿되고 해로운 법은 이를 지혜로운 통찰로 보고 알아, 이를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애야 하는 것이며,(버림으로써 없애야 활 번뇌들)
7) 위 6가지와 같은 수행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마음챙김, 법의 간택, 정진, 희열, 경안, 삼매,
평안의 깨달음의 구성요소(칠각지)를 닦지 않음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번뇌들은
지혜롭게 통찰하여 이들을 보고 알아 떨쳐버림을, 빛바램을, 소멸을, 철저한 버림을
지향하면서 7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수행함으로써(수행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
번뇌들을 단속하고 없애어 열반에 이르는 것임을 설하셨습니다.
- 세존께서는 본 날라까빠나 경에서는 숙고하신 후에 수용하고, 감내하고, 피하고, 버리는 것만을
설하셔서 모든 번뇌 경의 7가지 中 봄(見)으로써, 단속함으로써, 그리고 수행함으로써 번뇌를
단속하는 3가지에 대해서는 설하지 않으신 것이 그 차이입니다.
그 연유는 세존께서는 바로 당신의 관한 말씀을 하고 계사는 것이므로, 여래이신 세존께서는
봄(見)으로써, 단속함으로써, 수행으로써 단속해야할 번뇌는 이미 해당이 되지 않고,
세상에 머무시면서 불가피하지만 잡다하게 일어나는 여러 일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세상을 연민하여, 신들과 인간들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숙고하신 후에', 어떤 것은 수용하고, 어떤 것은 감내하고, 어떤 것은 피하시고,
어떤 것은 버림을 설하신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 죽어서 임종한 제자들의 재생을 설하시는 이유
_ 숙고하신 바, 듣는 이들에게 이익과 행복이 되기 때문
세존께서는
임종한 비구들과 비구니들에 대해서는
어떤 이들은 아라한의 길을, 어떤 이들은 불환자로 정거천에 태어났음을, 어떤 이들은 일래자가
되었음을, 어떤 이는 예류자가 되었음을 말슴하시고,
청신사와 청신녀들에 대해서는
어떤 이들은 불환자가 되어 정거천에 태어났음을, 어떤 이는 일래자가 되었음을, 어떤 이는 예류자가
되었음을 설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여래가 '아무개는 이런 곳에 태어났다. 아무개는 저런 곳에 태어났다.'라고
죽어서 임종한 제자의 재생을 설명하는 것은
결코
1)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것이나,
2) 사람들에게 발림 말을 하기 위한 것이거나,
3) 이득과 환대와 명성을 얻기 위한 것이거나,
4) '이와 같이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겠지.'라는 이유 때문도 아니다.
아누룻다들이여, 그것은
믿음과 큰 기쁨과 큰 환희를 가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할 것이고,
그것은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되기 때문이다."
라고 그것을 설하시는 이유를 분명히 드러내십니다.
세존의 그러한 말씀을 듣는 이들은, 혹은 다른 이들로부터 들은 적이 있는 사람들은
"그분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분의 법은 이러했고, 그분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분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분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는 그 부처님 제자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근는 편안히 머물 것." 이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설하심으로써 출가한 비구나 비구니는 아라한을 성취할 수 있음을,
그러나 재가자인 청신사나 청신녀는 불환자까지 성취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제 출가한지 얼마되지 않은 훌륭한 자질을 가진 제자들이 청정범행을 기뻐하는지 궁금해 하시고
염려하시고, 그들을 위해 출가의 목적을 상기시키시고, 그래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근본을 설하시고,
그들이 궁금해할 세존 당신께서는 어떤 분인지를 밝히시고, 그 연장선상에서 그들이 얻어아 할
도과(道果)의 길을 설하시면서, 왜 어떤 법문을 설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시는 스승의 모습입니다.
여래이시며, 세존이시며 아라한이시며 정등각자이시며 일체지자이시며 삼계의 주인이신
세존이십니다. 그러나 본경에서 세존이 아누룻다 존자에게 법문하시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자신을 제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자애롭게 설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대각자(大覺者)시며, 대웅자(大雄者)이시며,
비민(悲愍)의 스승님이시요, 일체세간의 자애자(慈愛者)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새겼습니다.
이깉이 상세한 법문을 해주신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거룩하신 부처님과, 그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
저 또한
"그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는 이런 법을 지녔고, 그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의 믿음은 어떠했고, 배움은 어떠했고, 베풂은 어떠했는지,,,,'
그렇게 말해질 수 있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발원합니다.
시작을 모르는 과거로부터 윤회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처님, 가르침, 승가,
부모님, 스승님,
저보다 공덕이나 나이가 많은 분들께,
혹은 이때까지 저와 인연이 닿았던 천신들, 비인간들, 사람들,
축생들, 혹은 미물의 몸을 입은 자들이라 할지라도,
제가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하여
몸과 말과 마음으로
잘못한 것들,,, 수미산처럼 많이 있습니다.
이제 그러한 잘못을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면서
예경드립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또한 다른 이들이
저에게 범한 잘못들도
때를 벗은 선한 이들의 마음으로 다 용서합니다.
마음 속 깊이 박힌 적대와 악의와 잔인할 수 있음과 비난의 쇠살들 모두 버립니다.
본경을 사경한 공덕 몫을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처와 제 가족들에게, 곤경과 속박을 건너려는 저 자신에게,,,,
저를 지켜보고 도우시려는 모든 천신들과 비인간들에게,,,,
어려울 때 도움을 주신 친척, 친구들, 도반들께
경를 번역하시느라 노고를 마다 않으신 대림스님과 각묵스님,
장유 반룡산과 지리산 실상사와 지리산, 설악산 그리고 보라산에, 그리고 영천의 식진암에 계시는
모든 천신들과 용들과 비인간들에게,,,
우 또다나 사야도와 일창스님께,,,
새로이 인연을 맺게된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법과 그 제자들을 보호하는 천신들을 시작으로
31천 거주하는 제도가능 모든 중생들께
부처님의 법을 따라 행복과 평안을 얻으시기를,,,
이 회향으로도 큰 힘을 얻으시기를,,,
장애없이 닙바나 이르시기를 염원하면서,,,,
회향합니다.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2017.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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