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 비유의 긴 경은
세존께서 라자가하의 독수리봉 산에 머무실 때
그때 데와닷따가 교단을 떠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데와닷따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비구들에게 설하신 경입니다.
본 경을 마무리하시면서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천명하십니다.
"청정범행은
1) 이런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공덕으로 삼지 않는다.
2) 계의 구족을 공덕으로 삼지 않고,
3) 삼매의 구족을 공덕으로 삼지 않고,
4) 지와 견의 구족을 공덕으로 삼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이야말로
청정범행의 목적이고 청정범행의 심재이고, 청정범행의 완결이다."
왜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는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자들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배우면서,
1) 이득과 존경과 명성이 생겨 이에 취하여 방일하게 된 자가 있는 바
이들은 그것으로 흡족해 하고 의도가 성취된 바,
'나는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가졌다.
그러나 저 다른 비구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고 신도들도 적다.'라고 하면서
그는 이 이득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신을 칭송하고 남을 비난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자는 청정범행의 잔가지나 잎사귀를 들고 그것으로 끝나버린 자라고 하셨습니다.
2) 한 발 더 나아가 계의 구족을 성취한 자 중에는 그에 취하여 방일하게 된 자가 있는 바
이들은 그것으로 흡족해 하고 의도가 성취된 바,
'나는 계를 구족한 자이며 좋은 법을 가졌다.
그러나 저 다른 비구들은 계행이 나쁘고 삿된 법을 가졌다.'라고 하면서
그 계의 구족으로 자신을 칭송하고 남을 비난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자는 청정범행의 겉껍질을 들고서 그것으로 끝나버린 자라고 하셨습니다.
3) 더 나아가 삼매의 구족을 성취한 자 중에는 그에 취하여 방일하게 된 자가 있는 바
이들은 그것으로 흡족해 하고 의도가 성취된 바,
'나는 삼매에 들고 마음이 전일하다.
그러나 저 다른 비구들은 삼매에 들지 못하고 마음이 산란하다.'라고 하면서
그 삼매의 구족으로 자신을 칭송하고 남을 비난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자는 청정범행의 속껍질을 들고서 그것으로 끝나버린 자라고 하셨습니다.
4) 더 나아가 지와 견의 구족을 성취한 자 중에는 그에 취하여 방일하게 된 자가 있는 바
이들은 그것으로 흡족해 하고 의도가 성취된 바,
'나는 알고 보면서 머문다.
그러나 저 다른 비구들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며 머문다.'라고 하면서
그 지와 견의 구족으로 자신을 칭송하고 남을 비난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자는 청정범행의 겉재목을 들고서 끝나버린 자라고 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위 1)∼4)의 무리들에 대해서 모두 '방일해서는 괴로움에 머무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5) 그러나 지와 견의 구족까지를 성취한 자 중에는
그와 같은 지와 견의 구족으로 자신을 칭송하지 않고 남을 비난하지 않으며
이런 지와 견의 구족에 취하지 않고 방일하지 않아서 방일함에 빠지지 않아서
'일시적이지 않은 완전한 해탈'에 이르는 자가 있는 바
이와 같은 자를 부처님 가르침의 심재를 얻은 자라고 하며,
그러한 자 즉 '일시적이지 않은 완전한 해탈에 이른 자'가 다시 타락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라고 천명하십니다.
세상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얻어서 거기에 취한 자, 혹은 계의 구족,
혹은 삼매의 구족, 혹은 지와 견의 구족에 취하여 그친 자가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설사 처음 그
출가의 목적이 '괴로움의 종식'에 있었다 하더라도 중간에 이와 같이 옆길로 새버리거나 거기서
그쳐버리는 일이 많은 것입니다. 그것이 재가든 출가자든 에나 지금이나 말입니다.
데와닷따의 행적을 보면 이 가르침은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는 추앙받는
제자였으며 신통을 행한 것을 보면 삼매를 얻은 자라고 생각됩니다. 그가 총명했으므로 그가
지와 견을 성취하지 못했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얻은 자라 하더라도,
혹은 계를 구족하였다고 해서, 혹은 삼매를 구족하거나 그로 말미암아 신통을 행한다고 해도,
혹은 연기의 지혜를 체득하여 위빳사나의 지혜를 갖추어 지(앎)와 견(봄)을 구족하였다 하더라도,
그가 이르러야 할 곳에 이른 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런 자들 중에서 데와닷따와 같은 자가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도고십장(道高十丈)이면 마고십장(魔高十丈)이라는 말이 있는 것은 이와 같은 경우를
두고한 말이라 하겠습니다.
유익한 법을 배워서 알면서도 왜 이같은 나락에 떨어지는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갈애와 자만과 사견이 이러한 삿된 길(邪道)로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라 배뒀습니다. 그러나 이 셋 중
하나만 뽑으라면 그것은 다름아닌 '갈애'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을 추구하는
갈애에 묶여서, 이에서 벗어나는 법을 세존으로부터 잘 배우고도 갈애를 채우기 위해 자만과 사견으로 치닫게 되는 것일테니까 말입니다.
세존께서는 알 것을 알고, 버릴 것을 버리고, 닦아야 할 것을 닦아, 실현해야 할 바를 실현한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갈애의 소멸'입니다.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소멸'이야말로 '열반'이라고 늘 말씀하신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수많은 자들이 알 수 없는 현란한 말로 '열반'을 운운합니다만 본경 부처님의 가르침을
숙고해 보면, 사리뿟따 존자의 이같은 '열반'에 대한 정의야말로 단순명쾌한 것이며 더 이상이란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탐진치의 소멸', '갈애의 소멸', '일시적이지 않은 완전한 해탈',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이야말로
부처님 가르침의 '목적'이며, '알맹이'이며, '완결'이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수브라흐마 숫따 게송(상윳따니까야 제2상윳따 17번째 게송)에서
세존께서는 수브라흐마 천신에게 이렇게 설하셨습니다.
"칠각지와 두타행을 제외하고, (난 냐뜨라 봇자 따빳사
감각기능의 단속을 제외하고, 난 냐뜨린드리야 상와라
모든 것 놓아버림을 제외하고, 난 냐뜨라 삽바닛삭가
생명들의 행복을 나는 보지 못하노라." 솟팅 빳사미 빠니낭)
이같이 상세한 가르침을 주신 세존께 두 손 높이 모아 에경합니다.
거룩하신 부처님께, 가르침에, 승가에 귀의합니다.
이와 같이 받아 지녔습니다.
이 경을 사경한 공덕으로
행복하고 위험없는 열반으로 장애없이 도착하기를
수 많은 생 윤회할 때
고통 위험 원수들과 나쁜 것들 안 만나고
모든 행복 축복들을 바람대로 이루기를
오늘 지금 행한 공덕 몫을
부모 스승 친척 친구 자신보호
어려울 때 연민과 도움을 주신 도반들
천신들을 시작으로 삼십일천 존재하는 제도가능 모든 중생
성취하길 바라면서 회향합니다.
경을 번역하여 알리느라 노고를 마다 않으신 대림스님과 각묵스님 건강하시기를,,,
이 방과 인근에 거하는 천신들과 비인간들
집과 인근에 거하는 천신들과 비인간들
김해 장유 반룡산에 거하는 천신들과 비인간들
지리산 실상사와 지리산에 거하는 천신들과 비인간들
보라산에 거하는 천신들과 비인간들
모두 이 회향을 받아
걱정에서 벗어나시기를, 고통에서 벗어나시기를, 위험에서 벗어나시기를,
평안하고 행복하시기를,,,,,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 ∼ 두 ∼ 사 ∼ 두 ∼ 사 ∼ 두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 ∼ 두 ∼ 사 ∼ 두 ∼ 사 ∼ 두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 ∼ 두 ∼ 사 ∼ 두 ∼ 사 ∼ 두 ∼
2016.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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