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니까야(中部)/M8.지워 없앰 경-44가지 실천

2. 여덟 가지 증득(八等至)은 '지금·여기에서의 행복한 머묾'일 뿐, 오염원을 지워 없애는 것은 아니다.

이르머꼬어리서근 2015. 9. 20. 16:36

 

4.

    1]

   "쭌다여, 이런 경우가 생길 것이다.

 

    여기 어떤 비구가

 

    1)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린 뒤,   (원인) 

    2) 일으킨 생각(尋)과 고찰(伺)이 있고   (수행) 

    3) 떨쳐버림에 생긴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결과)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그러면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나는 (오염원들을) 지워 없애면서 머문다.'라고.

 

 

    쭌디여,

    그러나 성자의 율에서는 이런 것을 (오염원들을) 지워 없앰이라 부르지 않는다.

    이것은 성자의 율에서 '지금·여기에서의 행복한 머묾'이라고 부른다."

 

 

5.

    2]  

   "쭌다여, 이런 경우가 생길 것이다.

 

    여기 어떤 비구가

 

    1) 일으킨 생각과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  (원인)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2) 마음이 단일한 상태이고 (수행) 일으킨 생각과 고찰은 없고

    3)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결과)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그러면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나는 (오염원들을) 지워 없애면서 머문다.'라고.

 

 

    쭌디여,

    그러나 성자의 율에서는 이런 것을 (오염원들을) 지워 없앰이라 부르지 않는다.

    이것은 성자의 율에서 '지금·여기에서의 행복한 머묾'이라고 부른다."

 

 

6.

    3]

   "쭌다여, 이런 경우가 생길 것이다.

 

    여기 어떤 비구가

 

    1)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원인)  평온하게 머물고 

    2)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正念·正知)   (수행) 

    3)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결과)

 

       (이 禪 때문에) 성자들이 그를 두고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라고 묘사하는

 

    제3선(三禪)을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그러면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나는 (오염원들을) 지워 없애면서 머문다.'라고.

 

 

    쭌디여,

    그러나 성자의 율에서는 이런 것을 (오염원들을) 지워 없앰이라 부르지 않는다.

    이것은 성자의 율에서 '지금·여기에서의 행복한 머묾'이라고 부른다."

 

 

7.

    4]

   "쭌다여, 이런 경우가 생길 것이다.

 

    여기 어떤 비구가

 

    1) 즐거움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슬픔소멸했으므로   (원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2) 평온으로 인해   (수행) 

    3) 마음챙김이 청정한(捨念淸精)   (결과)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그러면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나는 (오염원들을) 지워 없애면서 머문다.'라고.

 

 

    쭌디여,

    그러나 성자의 율에서는 이런 것을 (오염원들을) 지워 없앰이라 부르지 않는다.

    이것은 성자의 율에서 '지금·여기에서의 행복한 머묾'이라고 부른다."

 

 

8.

    5] 

   "쭌다여, 이런 경우가 생길 것이다.

 

    여기 어떤 비구가

 

    1) 물질(色)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초월하고   (원인) 

    2) 부딪힘의 인식소멸하고,  갖가지 인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수행) 

    3)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면서   (결과)

 

    공무변처(空無邊處)를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그러면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나는 (오염원들을) 지워 없애면서 머문다.'라고.

 

 

    쭌디여,

    그러나 성자의 율에서는 이런 것을 (오염원들을) 지워 없앰이라 부르지 않는다.

    이것은 성자의 율에서 '지금·여기에서의 행복한 머묾'이라고 부른다."

 

 

9.

    6] 

   "쭌다여, 이런 경우가 생길 것이다.

 

    여기 어떤 비구가

 

    1)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원인/수행) 

    2) '무한한 알음알이(識)'라고 하면서   (결과)

 

    식무변처(識無邊處)를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그러면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나는 (오염원들을) 지워 없애면서 머문다.'라고.

 

 

    쭌디여,

    그러나 성자의 율에서는 이런 것을 (오염원들을) 지워 없앰이라 부르지 않는다.

    이것은 성자의 율에서 '지금·여기에서의 행복한 머묾'이라고 부른다."

 

 

10.

    7]

   "쭌다여, 이런 경우가 생길 것이다.

 

    여기 어떤 비구가

 

    1)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원인/수행) 

    2)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결과)

 

    무소유처(無所有處)를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그러면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나는 (오염원들을) 지워 없애면서 머문다.'라고.

 

 

    쭌디여,

    그러나 성자의 율에서는 이런 것을 (오염원들을) 지워 없앰이라 부르지 않는다.

    이것은 성자의 율에서 '지금·여기에서의 행복한 머묾'이라고 부른다."

 

 

 

11.

    8] 

   "쭌다여, 이런 경우가 생길 것이다.

 

    여기 어떤 비구가

 

    1)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원인/수행)

    2)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결과)

 

 

    그러면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나는 (오염원들을) 지워 없애면서 머문다.'라고.

 

 

    쭌디여,

    그러나 성자의 율에서는 이런 것을 (오염원들을) 지워 없앰이라 부르지 않는다.

    이것은 성자의 율에서 '지금·여기에서의 행복한 머묾'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