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상속자경은
세존께서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따삔디까 원림에 머무실 때.
비구 제자들에 대한 연민이 생겨서,
'어떻게 제자들이 재물의 상속자가 아니라 법의 상속자가 될까?'라는 생각을 하시어
'그대들은 내 법의 상속자가 되지 재물의 상속자가 되지 마라.'라고 천명하시는 것을 그 시작으로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세존께서 공양하고 남은 음식을 버리려고 하실 때
그때 마침 온 배고프고 힘없는 두 비구의 예를 들면서
한 비구는 '이 음식은 일종의 재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배고프고 힘없는 상태로 하루를 보내려 하고,
또 한 비구는 그 음식을 먹고 배고픔과 기운없음을 떨쳐서 하루를 보내고자 하는 바,
세존께서는 첫 번째 비구를 더 존중하고 칭송한다고 하시면서,
그 이유로 '그 비구는 오랜 세월 소욕하고, 지족하고, (오염원들을) 지워 없애고, 공양하기 쉽고,
열심히 정진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5가지 이유를 들어서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는 그 시사하는 바가 큰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떻게 보면 먹고 남아 어차피 버릴 음식인데, 그것도 마침 배고파 힘이 없는 두 비구인데,
그것을 예를 들어 이렇게까지 가르치셔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생들에게 첫 번째 중요한 것은 음식이다.'라고 천명하시는 부처님께서 이러한 비유로 이런
가르침을 주시는 것은 그분의 말씀이 항상 진실한 것임을 상기할 때 의미심장한 것이 아닐 수 없고,
또한 이러한 비유를 통해서라도, 과연 부처님 가르침의 평소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확연히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비구를 더 존중하고 칭송하시는그 다섯 가지 이유는 비록 짧은 것이지만,
부처님께서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제자들이 어떤 지향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 바, 잘 새기고, 호지하고, 오늘날에도 먼 훗날에도 이로써 자신을 비춰보며 그대로
수행해야 할 요긴한 법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랜 세월
1) 소욕(小慾)하고,
2) 지족(知足)하고,
3) (오염원들을) 지워 없애고(出離),
4) 공양하기 쉽고,
5) 열심히 정진하는 것"
이라는 세존의 가르침이시니, 금구(金口)이 있다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라 하겠습니다.
의문이 드는 것은 왜 갑자기 부처님께서 '제자들에 대한 연민이 생겨서' 이런 말씀을 하셨는가인데,
경에도 주석에도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엄연히 살아 계시며 법을
펴시던 그때도 데와닷따의 일이나 꼬삼비에서 비구들간의 다툼으로 세존께서 혼자 안거를 지내신 일
등을 생각하면 세존께서는 이미 승단을 이루었던 그 제자들의 마음을 살피시고,
이미 그때도 '법의 상속자'가 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법 보다는 '재물의 상속자'가 되려 하는 자들이
있었고, 그런 마음을 살피시고 미리 경계하시고, 훗날이라도 바른 승가의 기준을 정해 주신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고 혼자 원림으로 들어가시는 장면도
그러한 부처님의 씁쓸한 소회를 전해 주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러한 세존과 비구들의 공백을 매우기라도 하듯이 법의 장군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비구들에게 가르침을 베푸십니다.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는 것입니까?"
라는 화두를 꺼내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1) 제자들도 한거를 따라 공부짓고,
2) 스승께서 버려야 한다고 설하신 법들을 버리고,
3) 사치스럽지 않고, 부주의하지 않으며, 퇴보를 멀리하고, 한거에 솔선수범하는 것
이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는 것이라고 설하십니다.
이런 경우 장로 비구들, 중진 비구들, 신참 비구들이 모두 위와 같은 이유로 칭송받아야 한다고
설하십니다.
그렇지 않고 스승이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1)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지 않고,
2) 스승께서 버려야 한다고 설하신 법을 버리지 않고,
3) 사치스럽고, 부주의하고, 퇴보에 앞장서고, 한거를 멀리 내팽겨쳐버리는 것
이것이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지 않는 것이며,
이런 경우 장로 비구들, 중진 비구들, 신참 비구들이 모두 이와 같은 이유로 비난받아야 한다고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설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부처님의 제자를 칭하면서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 그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사리뿟따 존자의 가르침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렇다면
위 1)에서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는' 데, '무엇을 공부지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또한 위 2)에서 스승께서 버려야 한다고 설하신 법들을 버려야 하는데, 그리하여
'무엇이 버려야 하는 법들인가?'에 대해서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부분 사리뿟따 존자의 가르침은 참으로 간명하고 심오한 것이라 생각되는바,
그 '무엇을 공부지어야 하는가?'에 대한 존자의 가르침은 바로 팔정도(八正道)입니다.
팔정도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 中 바로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진리(苦滅聖諦)'이기도,
그리고 37보리분법의 마지막이기도 합니다만, 여기서 팔정도는 없애야 하는 법들을 버리는 방법으로
무려 8번이나 강조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 「법의 상속자 경」에서 보다 이 팔정도가 더 강조되어 나오는 경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마저
드는 것입니다.
그 다음 '무엇이 버려야 하는 법들인가?'에 대해서인데
탐욕과 성냄으로부터 허영과 방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16개의 오염원들(upakkilesa) 즉,
1] 탐욕(lobha)
2] 성냄(dosa)
3] 분노(kodha)
4] 적의(upanaha)
5] 모욕(makkha)
6] 얕봄(palasa)
7] 질투(issa)
8] 인색(macchariya)
9] 속임수(maya)
10] 사기(satheyya)
11] 완고함(thambha)
12] 뻔뻔함(sarambha)
13] 자만(mana)
14] 거만(atimana)
15] 허영(mada)
16] 방일(pamada)
의 각각에 대해서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이것들은 '나쁘고, 그래서 버려야 하는 것들이라고 천명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오염원들을 '버리기 위해' 중도(中道)'가 있는 것이며,
이 중도라는 것은 바로 팔정도(八支正道)인 바, 이 팔정도는
"1) 안목을 만들고,
2) 지혜를 만들며,
3)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4)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5)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6) 열반으로 인도합니다."
라고 천명하시는 것인데 팔정도에 대한 사리뿟따 존자의 의미부여를 보면,
팔정도가 얼마나 심차대한 것인지, 또한 그것으로 열반에 이르게 된다는 간명한 천명의 의미를
다시 새기게 되는 것입니다. '팔정도가 았는 한 아라한이 끊기지 않는다'는 세존의 말씀을 상기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비록 16가지의 오염원(upakkilesa)이 욕망에 기인한 번뇌, 존재에 기인한 번뇌, 무명에 기인한 번뇌로
표현되는 번뇌의 뿌리 혹은 모든 번뇌는 아니라 할지라도, 소욕하고 지족하고 오염원들을 지워 없애고
공양하기 쉽고 열심히 정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반대로 갔을 때 생기는 잘못된 결과물 혹은
엉덩이에 머리에 뿔이 난 것과 같다는 것을 상기할 때, 이러한 것들은 반드시 버려야할 대상이며,
벗어나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나 자신이나 혹은 다른 사람이라도 이와 같은 것을 드러낸다면 누구라도 아! 나는, 이 중생은 마음이
오염원을 벗어나지 못했구나라고 알아차려야 하겠고, 기실 이런 것들을 만났을 때 우리의 마음은
오염되는 것을 느끼고 청정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맛지마니까야의 첫 번째 경인 「뿌리에 대한 법문 경」이 철저히 알아 번뇌를 소멸하는
방법으로 열반을 설하신 경이라면, 두 번째 경인 「모든 번뇌 경」에서는 이 열반에 이르름 즉, 모든
번뇌를 단속하고 멸진 하는 데 이르는 법을 설하셨고, 세 번째인 본 「법의 상속자 경」에 와서는
번뇌 혹은 갈애의 열매라고도 할 수 있는 버려야 할 법들인 오염원을 상세히 설하셨고, 아울러 이러한 오염원들에서 벗어나는 법이 팔정도라고 밝히신 바, 이것은 버려야 할 것들의 법인 멸성제와 닦아야 할 것들의 법인 도성제를 설하신 것이어서,
이같이 법을 이치에 맞게 순서대로 배열한 아라한들의 각별한 마음이 들어있는 경의 배치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후 네 번째 경이 존재라면 만니지 않을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에 대해서 설하신 「두려움과 공포 경」임을 보면 참으로 많은 생각과 배려가 들어가 있는 경의 순서이며 배치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같이 알아야 할 벋들을 순서에 따라 차례로 법을 전하는 것입니다.
왜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16가지 오염원들을 한꺼번에 말씀하시지 않고, 이들을 짝을 지어 8번으로
나누어 각각 팔정도를 배대하여 설하신 것일까요? 그만큼 그 오염원 각각들이 버려져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쉽지 않은 것이며, 그만큼 팔정도가 그러한 것들을 버리는 데 있어서 중요하기 때문
일 것이라고, 그래서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어 낱낱이 설하신 것일 거라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
탐내는 대로 안되면 성을 내고,
분노하여 즉시에 갚아지지 않으면 두고두고 적을 상정하고 해코지하려 하며,
모욕이 한 발 더 나아가 얕봄으로 굳어지고,
나보다 나은 이가 있으면 질투를 내고, 그가 나보다 행복해지는 것을 못마땅해 하므로 인색해지고,
속이다 못해 사기를 치며,
완고함을 버리지는 못할 망정 아예 뻔뻔함으로 대하고,
자만하다 못해 아예 거만을 떨며,
허영으로 흐르다 아예 방일함으로 굳어지는 것이니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이 16가지를 8가지로 짝을 지어 설하시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으신 것이라고도
감히 생각헤 봅니다,
이와 같이 받아 지녔습니다.
이같이 상세한 법문을 전해주신 세존께, 사리뿟따 존자께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거룩하신 붓다, 담마, 상가에 귀의합니다.
이 법의 상속자 경을 사경한 공덕을
제 처와 아들과 정진하고 있는 딸에게 회향합니다.
아버님, 어머님과 누님과 그 가족들, 동생과 그 가족들에게 회향합니다.
보라산과 김해 장유 반룡산의 천신들께도 감사드리며 회향합니다.
대림스님, 각묵스님 건강하시기를,,,,, 모든 천신들이 지키시기를,,,,
회향을 받아
행복하시기를,,,,
평안하시기를,,,,
걱정에서 벗어나시기를,,,,
고통에서 벗어나시기를,,,,
원수들과 적들과 위험과 장애들로부터 벗어나시기를,,,,
장애 없이 열반에 이르시기를,,,,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맛지마니까야(中部) > M3.법의상속자경-팔정도,오염을 여읨'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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