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가니까야(長部)/D15.대인연경(大因緣經)-연기·해탈

※ 대인연경의 전개에 관한 작은 고찰

이르머꼬어리서근 2013. 10. 9. 17:56

 

연기(緣起)를 설하신 대인연경은 참으로 심오하다고 생각됩니다.

 

경(經)의 시작도 아난다 존자가 '연기는 참으로 심오하며, 참으로 심오하게 드러난다.'라고

세존께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아난자 존자의 연기에 대한 지혜를 꿰뚫어 보시고

'그와 같이 말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시며,

 

'연기는 참으로 심오하며, 참으로 심오하게 드러난다.'고 다시 말씀하시며, 또한

'이 법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시며 본경을 설하십니다.

 

 

 

연기는 자체로도 참으로 심오한 바,

이 대인인경의 전개 또한 어렵고 심오하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본경에서 세존의 법문은 도약에 도약을 거듭하는 것처럼 보이고

왜 그 부분에서 그러한 법을 설하시는지 영문을 모르게 될 수도 있는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이 연기의 법문은 바로

1) '윤회의 전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관한 법문이며,

2) 그 '윤회의 전개'에 있어서 '나란 무엇인가'에 관한 법문이며,

3) 어떻게 보아야 '나를 바로 보는 것인가'에 관한 법문이며,

4) 나를 보게 되면 그는 '존재를 어떻게 보게 되는가'에 관한 법문이며,

5) 존재를 바로 보게 되는 것은 '그 이유(조건)'가 무엇인가에 괸한 법문이며,

6) 그 이유(조건)인 '해탈'이란 무엇이며, 

    그 '해탈'을 하게 되면 윤회가 끝나는 바,

    그  '윤회의 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관한 법문이며,

7) 그렇다면 그 '해탈'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지에 관한 법문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주요한 전개는

 

1] 연기를 설하시고,

 

2] 그 연기의 끝에서 윤회가 끊이지 않고 전개되는 도리를 설하시고,

    → 1) '윤회의 전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관한 법문을 하심


3] 이제 '넘어가지 못하는' 정신·물질(名色)과 알음알이(識)의 상호연기라는
    벽을 어떻게 넘어가서 윤회를 끝내는가를 설하시는 바,


    - 자아의 존재론을 방편으로 (범부의 자아관/성자의 자아관)

       → 2) 그 '윤회의 전개'에 있어서 '나란 무엇인가'에 관한 법문을 하심


    - 느낌에 촛점을 맞추어, 오온을 바로 봄으로 종결취착없어져서 열반을 증득

       → 3) 어떻게 보아야 '나를 바로 보는 것인가'에 관한 법문을 하심



4] 위 3)에서 어떻게 넘어가지 못하는 것을 넘어갔는지에 대해서 설하셨고
    그 방법에 있어서 '자아의 존재론'을 들으셨으므로,
    십사무기에 해당하는 '여래의 사후존재여부'를 들어 바른 자아의 존재론과 

    → 4) 나를 보게 되면 그는 '존재를 어떻게 보게 되는가'에 관한 법문을 하심


    그 이유를 설하시며,  → 이유는 해탈

    → 5) 존재를 바로 보게 되는 것은 '그 이유(조건)'가 무엇인가에 괸한 법문을 하심


 

    
5] 이제 위의 해탈이 무엇인지 설하신다.
    혜해탈을 말씀하시면서,
    9가지 알음알이가 선 곳을 꿰뚫어 알고 벗어남이 그것이라고 설하심

    → 6) 그 이유(조건)인 '해탈'이란 무엇이며, 

        그 '해탈'을 하게 되면 윤회가 끝나는 바,  그  '윤회의 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관한 법문


6] 이제 다시 팔해탈을 설하신다.
    위5)에서 해탈이 '무엇'인지를 상세히 별기하신 바,

 

    혜해탈에 의해 '모든 알음알이의 선 곳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넘어가지 못하는 정신·물질과 알음알이의 상호연기'를 넘어섬을 보이셔서

    통찰지(觀)에 의한 논리적이고 단도직입적인 그 '윤회의 끝'을 증명하신 後,

 

 

    이제 이 팔해탈로써 그 알음알이의 各 거주처(세상, 정신·물질 현상체계, 혹은 界라고 해도

    좋고, 욕계세상으로부터 벗어남을 시작하여 4선-4처-상수멸의 9차제주라 해도 좋다.)의

    위험과 구속을 보면서도 그곳에 들어가고(入定) 체험하며 머물고(止) 벗어남(出定)을 

    설하시는 바, 

 

    이는 단지 통찰지에 의한 꿰뚫음(혜해탈)으로

    各 알음알이의 선 곳이 1) 무엇인지 꿰뚫어 알고, 2) 일어남, 3) 사라짐, 4) 달콤함, 5) 위험을

    꿰뚫어 알아 6) 그곳으로부터 벗어남만에 능한 것(觀)만이 아니라,

 

    빤짤라경(A9:42)에서 이르신 바와 같이 各 알음알이의 거주처가 구속임을 알면서도

    그곳에 들어가고, 머물고(止), 벗어남에 까지 능할 것(팔해탈)을 말씀하시어

    '구속 가운데서도 기회를 얻음'과 '대 지혜와 초연함과 성스러움과 선(禪)을 증득'할 것을

    천명하신다.

 

    그리고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의 해탈(慧解脫)을 둘 다 구족하고 머무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것이라고, 즉 양면해탈(兩面解脫)이라고 천명하신다.

 

    혜해탈(觀)로 이미 열반을 이루었으면 빠르고 그만이지,

    왜 심해탈(止)까지를 말씀하시고 또 최상을 말씀하시는 것인지를 감히 생각해 본다.

   

    알음알이가 선 모든 곳은 곧 모든 세상(界)이다.

    그곳에는 윤회를 끝내지 못하고 각자의 업(業)에 따라 무리를 지어 그 계(界)에 어울리는

    오온을 가지고 태어난 수 많은 중생들이 있다.

    만일 통찰지에 의해 벗어남에만 능하다면,,,,

 

    세존께서 즉시 아라한과를 이루시거나 정거천에 태어나시지 않고,

    '삼마삼붓따사' 즉, 알아야 할 모든 법들을 스스로 깨달으신 분'이 되고자 서원을 하시고

    4아승지 십만겁을 닦으셔서 부처를 이루신 것은

    '무지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불사(不死)의 북을 울리기 위해서'이다.

    바로 31천 이 세상과 이 세상에 거주하는 모든 중생들을 위해서인 것이다.

    닙바나만을 증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거룩하시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통찰지에 의한 벗어남(觀) 뿐아니라, 各 界에 오롯하고 당당하게 머묾(止)을

    설하셔서 그 界와 그 界에 사는 중생들을 확철하여 아는 것을 설하심과,

    또한 그 제자들에게도 그와 같은 것을 강조하여 가르치시는 것은 그러한 자비(慈悲)와

    연민(憐愍)이 그 바닥에 깔려 있음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겠다.

 

    부처님의 공덕 9가지 中 '로까위두' 즉, 모든 세상를 잘 아시는 분', 또

    '아눗따로 뿌리사 담마사라띠' 즉, '제도할 만한 이를 제도하시는데 으뜸이신 분'이라는 것

    또한 '삿타 데와마눗사낭' 즉 천신들과 인간의 진정한 스승'이라는 가르침과도

    그 맥이 닿아 있디고 생각된다.  

 

    이와 같이 양면해탈보다도 더 수승한 것은 없다고 천명하심이 응당하다.

 

    마른 위빳사나를 닦아 해탈을 이루어 열반을 증득한 아라한과

    위빳사나와 사마디(止)를 다 같이 이루어 아라한이 된 자는

    같이 열반을 증득했다하더라도 같을 수는 없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양면해탈이 최상인 것이다.


 

 

이와 같은 이해가 없으면,

 

1) 왜 연기의 끝에서 윤회의 전개에 방점을 찍으신 후

    갑자기 범부의 자아관, 혹은 성자들의 자아관으로 넘어가는지?

    → 윤회의 종식이란 '나를 바로 봄'에 의해 이루어 지기 때문

 

2) 왜 그후 '느낌'에 관한 설법을 하시면서 자아의 존재론이 계속되는 것인지?

    → '나를 바로 봄'이란 오온을 연기의 법에 따라 바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3) 왜 갑자기 자아의 존재론의 끝에서 십사무기의 '여래사후존재여부'가 나오는 것인지?

    → 바로 보았을 때 '자아(존재)의 존재론'이란 어떤 것이를 설하시기 위하여

 

4) 왜 바른 자아의 존재론인 이유가 해탈임을 밝히신 후

    9가지 알음알이가 선 곳으로부터의 벗어남인 혜해탈을 설하시는 것인지?

    → 모든 알음알이가 선 곳으로부터의 벗어남, 그리하여 세상(정신·물질)의 얻음이 그치는

        것이 윤회의 끝(열반)이기 때문에

 

5) 왜 혜해탈 이후 여덟 가지 해탈(팔해탈)을 다시 설하시는 것인지?

    → 혜해탈만이 아닌, 심해탈까지를 구족한 더 수승한 해탈과 자비의 구현을 설하시기 위해서

 

와 같이 영문을 모르게 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와 같이 대인연경의 전개에 대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삼매는 자비와 함께 합니다.

 

 

이 글이 공덕이 있다면,

수 많은 생 살아오면서 제가 잘못을 저질러 제게 악의와 원한을 품게된 모든 분들께

회향합니다.

 

몰라서 그랬으므로 이제야 진심으로 참회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이 회향을 받으시고,,,,  용서해 주십시오,,,,,,

 .

 

모든 세상 모든 중생 행복하시기를,,, 평안하시기를,,,,

 

나무 석가모니불  ((()))

 

2013. 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