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진암(識盡庵)/임승택교수님의 초기불교순례

마치며,,,

이르머꼬어리서근 2013. 6. 22. 15:11

 

 

임승택 교수께서 법보신문에 1년에 걸쳐 연재하신

초기불교 순례 칼럼  공부를 마쳤습니다.

'13년 2월말에 시작했는데 4개월이 걸려 마쳤습니다.

 

 

학자 혹은 수행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법보신문이라는 매체에 대중을 상대로 '초기불교'를 전하시는 입장이시다보니

글쓰시는데 여러가지 고려가 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초기불교 즉, 부처님의 말씀을 소개, 전달한다는 점에서 쓰신 글이다 보니

다양한 내용을 전반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

제게는 여러가지 좋았습니다.

 

 

 

애초 이 연재 글을 이렇게 공부하고 정리하게 된 이유는

초전법륜경(初轉法輪經)을 사경하고 무아경(無我經)을 사경하려다

큰 어려움에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오온(五蘊) 즉,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을

어떻게 우리 말로 옮겨야 그 새김이 적당한 것인지 알기 어렵고,

우리 말 번역도 번역하신 분에 따라 다양하여 선택하기 어려운 반면,

 

무엇보디도 이 오온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는 것은

마치 벽돌로 지은 집이 있는데 이 벽돌이 잘못 만들어진 것과 같아서

전체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데에 큰 장애가 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를 철저히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교수님의 연재를 떠올리게 된 것입니다.

 

 

 

법보신문을 보다가 임승택 교수께서 색(色)을 '물질현상'이라고 번역하신 것을 보고

큰 울림이 있었기 때문에 이 연재 글을 찬찬히 다시 봐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수님은

 

색(色)을 '물질'이라고 하지 않고 '물질현상'이라고 하셨으며

또한 이것은 '물질적 경험현상'이라고 하셨으며

이것은 ''나'의 육체를 포함하여 이리는 것'이며,

이것은 ''나'라는 스펙트럼을 투과하여 경험된 것'이며

'사고나 추리를 통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알려지는 직접적인 것'이며

'과연 이것이 어떻게 발생하였는가?'라는 의문 이전에

'나'라는 경험주체가 있으므로 혹은 있는 한 그전에 이미 존재히며,

따라서 이것은 ''나'의 존재여부와 관계없는 객관적인 현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이며

 

따라서 붓다께서는 "물질현상에 대해 무상(無常), 괴로움(苦), 무아(無我)로 관찰하라"고

하셨음을 말하십니다.(SN. III. 21).

 

 

 

이것은 아주 독특하고 탁월한 번역이며 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질을 '물질'이라고 하면 그것은 객관적인 물질로 해석될 여지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물질현상'이라고 번역하면 그것은 '나'리는 오온을 여과한 어떤 질서계의

현상에 그칠 뿐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기실 그러한 것은 당연히 그러한 것이기 때문에

'물질'이라 함은 응당 '물질현상'이고

따라서 구태여 '물질현상'이라고 할 필요가 없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견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자라면

적어도 제가 이해하기에는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단히 가까이 다가간 자라고 생각됩니다.

생명을 받아 눈을 떠서 '나'가 '나'라며 살 때 이 세상 혹은 이 물질계 혹은 이 물질현상계는

나의 오온이 느끼는 절대한 세상이요 물질이요 현상겠습니다만,

 

'나'라는 것이 언젠가는 정해진 것처럼 눈 한 번 감은 뒤에 이 모든 세상, 물질계, 물질현상계가

다 무엇이란 말입니까?

 

 

 

하여,,,,

 

"'모든 것이 있다.'는 것도 하나의 극단적 견해요

 '모든 것이 없다.'는 것도 하나의 극단적 견해이다.

 

  여래는 이들 두 극단에 다가가지 않고

  가운데서 가르침을 드러낸다." (SN. II. 17)

 

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색(色), '물질' 혹은 '물질현상'에 있어서도

곰곰히 되씹어 보지 않을 수 없는 문제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오온(五蘊)울 '현상계'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로

 

십이처를 논하면서 법(法)을 '마음현상'으로

또한 이 마음현상(法)마음(心,意,識, mano)라는 '감관'의 대상이 된다고 하여

육입의 하나로서 감관인 마음(mano)과 그 대상인 마음현상(法)의 관계를 분명히 하신 것 等

마음 깊히 와 닿은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제 이러한 가르침과 정리를 바탕으로

무아경(無我經) 사경에 임하려 합니다.

오온의 뜻을 정확히 알고 무아경에 임하는 저의 발걸음은 훨씬 가볍습니다.

 

임승택 교수님과 법보신문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자애와 함께,,,

sadhu∼ sadhu∼ sadhu∼

 

 

 

2013.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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