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란 무엇인가.
인류 역사상 무수한 종교가 혹은 사상가들이 출현하여 제각기 진리를 역설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오직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
그들 중에서 어느 하나가 옳다면 필시 다른 나머지는 저절로 거짓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가르침을 참된 진리로 받들어야 할까.
도대체 진리와 진리 아닌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무수한 제각기의 진리들을 보면서 오히려 당혹해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방향을 가늠해야 할까.
과연 무엇에 의지하여 거칠고 험난한 인생길을 헤쳐 나가야 할까.
붓다는 이와 같은 문제를 첨예하게 의식했던 인물이다.
그는 당시까지 전해져 내려온 여러 유형의 형이상학적 세계관에 정통해 있었다.
최초로 결집된 경전인 ‘범망경(梵網經)’에서는 당시 존재했던 사상을 62가지로 분류하고
그들 하나하나를 고찰한다.
거기에는 영혼의 불멸을 주장하는 상주론(常住論)이라든가,
죽고 나면 모든 것이 소멸되어 없어진다는 단멸론(斷滅論),
조물주에 의해 세상이 창조·유지된다는 일분상주론(一分常住論) 등이 포함된다.
사실 이들은 동서고금의 형이상학적 논의에서 끊임없이 쟁점이 되어 왔다.
그러한 주장들에 대해 붓다는 치우침 없는 반성적 태도로 일관한다.
붓다는 그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지지하거나
혹은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형이상학적 추구가 내면의 탐욕과 집착에 연결될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즉 경험 세계를 벗어난 문제들에 대한 견해나 주장은
집착이라든가 불안과 같은 심리적 요인에 뿌리를 둔 것일 수 있다고 환기시킨다.
예컨대 영혼의 불멸에 대한 주장은 현재의 자기를 영속화하려는 집착의 산물이며,
죽고 나면 모든 것이 소멸한다는 단멸론은 현실의 불만에 대한 자포자기적 심리를 반영한다.
이것은 조물주에 의해 세상이 창조·유지된다는 견해에도 마찬가지이다.
초월적 절대자에 대한 주장 역시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견해나 주장들은 개인적인 신념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를 야기한다.
즉 특정한 견해를 확신하는 대다수 사람들은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려 든다.
그리고 바로 이것은 지난 수 천 년 동안 목격되어 온 비극적 인류 역사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역사상 대규모로 자행된 거의 모든 종류의 핍박과 박해에는
이와 같은 특정 견해에 대한 요지부동한 확신과 강요가 전제되어 있었다.
초기경전에서는 그것이 발생하는 양상을 다음과 같은 소박한 문구로 정형화한다.
“그대는 그릇된 길을 가는 자이고 나는 바른 길을 가는 자이다.
나의 주장은 옳고 그대의 주장은 그릇되었다.”
붓다는 누구보다 일찍 교조적 신념체계가 가져올 수 있는 위험성을 간파하였다.
형이상학적인 견해나 주장들은 증명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힘의 논리로써 정당화되기 마련이며
종국에는 타인을 억압하고 스스로를 경직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따라서 붓다는 경험 영역을 벗어난 문제들에 대해 의도적으로 침묵(無記, avyākata)한다.
그는 우리의 삶이 황폐해지는 중요한 원인이
스스로의 한계를 망각하고서 독단(獨斷)이라는 함정에 빠지는 데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한 이유에서 붓다는 내면에 도사린 편견과 집착부터 가라앉힐 것을 권한다.
45년에 이르는 붓다의 설법 여정에서 우리는 깨달음에 관련한 여러 내용을 듣는다.
그러나 ‘상적유경’에 제시되듯이 그의 모든 가르침은 사성제(四聖諦)로 집약될 수 있다.
괴로움이라는 현실(苦)과,
그것의 원인으로서의 탐욕(集)과,
괴로움이 소멸된 경지(滅)와,
거기에 도달하는 길(道)이라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諦, sacca)가 그것이다.
붓다는 이러한 사성제에 대해서만 삿짜(sacca) 즉 진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는 이와 같이 중생들의 괴로움 해소라는 현실적 문제에 오로지 주력했으며,
여타의 사변적 견해들에 대해서는 차가운 태도를 유지하였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다른 종교가 혹은 사상가들과 구분되는 붓다만의 독특한 진리관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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