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형성되어진 것은 무상하다.(諸行無常)
모든 형성되어진 것은 괴로움이다.(一切皆苦)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실체가 없다.(諸法無我)"
『增支部』III 134. AN I, 286.
"비구들이여, 생각해 보라.
물질적 현상(色)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존자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존자여."
"이처럼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는 것들에 대하여,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이다. 이것이 나의 자아(아트만)이다.'라고
간주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존자여."
"비구들이여, 생각해 보라.
감수작용(受) 영원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존자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존자여."
"이처럼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는 것들에 대하여,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이다. 이것이 나의 자아(아트만)이다.'라고
간주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존자여."
"비구들이여, 생각해 보라.
표상작용(想)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존자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존자여."
"이처럼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는 것들에 대하여,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이다. 이것이 나의 자아(아트만)이다.'라고
간주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존자여."
"비구들이여, 생각해 보라.
형성작용(行)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존자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존자여."
"이처럼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는 것들에 대하여,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이다. 이것이 나의 자아(아트만)이다.'라고
간주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존자여."
"비구들이여, 생각해 보라.
인식작용(識)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존자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존자여."
"이처럼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는 것들에 대하여,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이다. 이것이 나의 자아(아트만)이다.'라고
간주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습니다. 존자여."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과거, 현재, 미래의 것이거나,
멀리 있는 것이거나 가까이 있는 것이거나,
자신의 내부에 있는 것이거나 외적인 것이거나,
거친 것이거나 미세한 것이거나,
저열한 것이거나 뛰어난 것이거나,
긴 것이거나 짧은 것이거나,
모든 물질적 현상(色)에 대해서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아트만)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如實하게) 알고 보아야 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것이거나,
멀리 있는 것이거나 가까이 있는 것이거나,
자신의 내부에 있는 것이거나 외적인 것이거나,
거친 것이거나 미세한 것이거나,
저열한 것이거나 뛰어난 것이거나,
긴 것이거나 짧은 것이거나,
모든 감수작용(受)에 대해서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아트만)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如實하게) 알고 보아야 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것이거나,
멀리 있는 것이거나 가까이 있는 것이거나,
자신의 내부에 있는 것이거나 외적인 것이거나,
거친 것이거나 미세한 것이거나,
저열한 것이거나 뛰어난 것이거나,
긴 것이거나 짧은 것이거나,
모든 표상작용(想)에 대해서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아트만)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如實하게) 알고 보아야 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것이거나,
멀리 있는 것이거나 가까이 있는 것이거나,
자신의 내부에 있는 것이거나 외적인 것이거나,
거친 것이거나 미세한 것이거나,
저열한 것이거나 뛰어난 것이거나,
긴 것이거나 짧은 것이거나,
모든 형성작용(行)에 대해서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아트만)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如實하게) 알고 보아야 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것이거나,
멀리 있는 것이거나 가까이 있는 것이거나,
자신의 내부에 있는 것이거나 외적인 것이거나,
거친 것이거나 미세한 것이거나,
저열한 것이거나 뛰어난 것이거나,
긴 것이거나 짧은 것이거나,
모든 인식작용(識)에 대해서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아트만)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如實하게) 알고 보아야 한다.
『相應部』 XXII 59. 『五群比丘』SN III, 66-8
*
[무아설(無我說) :
전체 세계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존재는
모두 다섯 가지 무더기에 의해 구성되어진,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의 흐름이라는 점에 있어서만 실재적인 것이다.
이 흐름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 기억할 수 없는 시간에서부터 시작되어
우리가 죽은 후에도 끝없는 시간에 걸쳐 이어질 것이다.
그 조건이 있는 한만큼 오랫동안 그리고 멀리.
위의 경전에서 설해진 바와 같이
다섯 가지 무더기는 분리되어 있거나 결합되어 있거나 어떠한 방식으로든,
실재적인 자아의 실체 또는 영속적인 인간임을 구성할 수는 없으며,
마찬가지로 그것들의 '주인'으로서의 그 어떠한 자아도 영혼도 실체도
이 다섯 무더기의 바깥에서 발견될 수 없다.
달리 말하자면,
이 다섯 가지 무더기는 자아가 아니며(無我)
또한 그것들은 자아에 속해 있지도 않다.
모든 존재의 무상함과, 조건에의 의존성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형태의 자아에 대한 믿음도 환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들이 '수레'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은
축, 바퀴, 끌채, 몸체 등등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또한 '집'이라는 말이,
여러 가지 자재들을 함께 조립해 놓아 어떤 모양을 갖추게 되어서,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게 된 것에 대한 단지 편의상의 명칭일 뿐이지,
그 자체로 존재하는 독립된 집이라는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존재'니 '개인'이니 '사람'이니 또는 '나'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들이
단지 변화하고 있는 육체적, 정신적 현상의 결합에 지나지 않으며,
그 자체에 있어서는 실재적인 존재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존재는 영원한 자아나 실체가 없다는 가르침, 즉
붓다의 무아(無我)의 가르침이다.
이 무아설은 다른 어떤 종교적인 가르침이나 철학적인 체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그 의미를 완전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추상적이고 지적인 방식에 있어서가 아니라,
끊임없는 실제적인 체험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며,
실제적 체험을 통한 파악이,
붓다의 가르침(佛法; Buddhadhamma)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필수불가결의 조건인 것이다.
무아설은,
실제적인 현상에 대해 철저한 분석이 행해졌을 때 얻어지는 필연적인 결론이며,
여기에서 예로 든 오온(五蘊)에 대한 가르침은
경전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제시될 수 있는 단순한 표지에 지나지 않는다.
오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불교사전} Buddhist Dictionary를 참조하기 바람.]
"비구들이여,
눈이 멀지 않은 어떤 사람이 있어서,
갠지스강에서 떠내려가고 있는 수많은 물거품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자.
그는 물거품을 살피면서 아주 주위 깊게 검토하고 있었다.
주위 깊게 검토 해보니 그 물방울들은
비어있는 것, 실재하지 않는 것, 견고하지 아닌 것임을 그는 알게 되었다.
비구들이여, 물거품에 어떻게 견고한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어느 비구가,
과거의 것이거나 현재의 것이거나 미래의 것이거나,
멀리 있는 것이거나 가까이 있는 것이거나,
자신의 내부에 있는 것이거나 외적인 것이거나,
거친 것이거나 미세한 것이거나,
저열한 것이거나 뛰어난 것이거나,
긴 것이거나 짧은 것이거나,
모든 물질적 현상(色), 감수작용(受), 표상작용(想), 형성작용(行), 인식작용(識)을 보고
있다.
그는 이 다섯 무더기들을 살피고 주위 깊게 검토하였다.
주의 깊게 검토 해보니
그 다섯 가지 무더기들은
비어있는 것, 실재하지 않는 것, 견고하지 아닌 것임을 그는 알게 되었다.
비구들이여, 인식작용(識)에 어떻게 견고한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비구들이여,
물질적 현상(色), 감수작용(受), 표상작용(想), 형성작용(行), 인식작용(識)을
즐기고 있는 사람은
괴로움을 즐기고 있는 사람이다.
괴로움을 즐기고 있는 사람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나는 말한다."
"무엇을 웃고, 어찌하여 즐거워하는가?
끊임없이 불타고 있는 세상에서.
그대는 어둠에 둘러싸여 있는데
등불을 찾지 않고 있구나.
보라, 이 꾸며놓은 몸뚱이를.
상처 덩어리인 이 몸뚱이를.
병치레 끊일 새 없고,
욕망에 타오르고
견고하지도 영원하지도 못한 꺼풀.
이 몸은 늙어서 시들어 버리고,
깨지기 쉬운 질병의 둥지.
썩은 육신은 마디마디 흩어지고,
생명은 반드시 죽음으로 끝난다."
'식진암(識盡庵) > 붓다의 말씀-The Word of the Buddha'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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