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영역(六入)이란 무엇인가.
무명으로부터 시작되는 십이연기의 지분들 가운데 5번째에 해당하는 항목이다.
여섯 영역은 접촉(觸)의 조건이 되며 또한
그들 자체는 정신·물질현상(名色)을 조건으로 발생한다.
여섯 영역이란 눈이나 귀 따위의 감관을 중심으로 하는 인식 발생의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통해 안팎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여섯 영역이란 무엇인가?
1) 눈의 영역,
2) 귀의 영역,
3) 코의 영역,
4) 혀의 영역,
5) 몸의 영역,
6) 마음의 영역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여섯 영역이라고 한다(SN. II. 3).”
여섯 영역은 십이처(十二處)의 가르침과 일부 중첩된다.
십이처란
눈(眼)과 시각대상(色), 귀(耳)와 소리(聲), 코(鼻)와 냄새(香),
혀(舌)와 맛(味), 몸(身)과 감촉(觸), 마음(意)과 마음현상(法)을 가리킨다.
이들은 인간의 경험 내용을 6쌍의 12가지로 단순 분류한 것이다.
이들 각각은 새로운 경험이 성립하는 토대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이들 각각에는
개인마다의 독특한 경험방식에 따른 왜곡과 변형이 얼마간 깃들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동일한 맛이나 냄새라고 할지라도 저마다 다른 농도와 강도로 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십이처의 가르침은 인식의 한계를 일깨운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무지하면 자신이 보았거나 들었던 내용을 궁극의 실재로 오인하기 쉽다.
또한 경험세계를 벗어난 무의미한 형이상학적 난제들에 휘말려 갖가지 사변적 유희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십이처가 가져다주는 교훈은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십이처의 교설에서는 각각의 항목들이 어떻게 구체화되고
또 어떤 과정을 통해 괴로움의 실존으로 귀결되는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바로 이 부분을 보완하는 가르침이 십이연기의 여섯 영역이다.
여섯 영역은 십이연기의 첫 지분인 무명(無明)에서부터 마지막 지분인 늙음·죽음(老死)으로
귀결되는 과정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등장한다.
특히 여섯 영역은 4번째 지분인 정신·물질현상(名色)과 구분이 되며,
바로 그들을 조건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여섯 영역을 눈·귀·코 따위의 육체적 기관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여섯 영역이란 정신·물질현상이 6가지 감각채널의 방식으로 분화되는 양상을 묘사한 것
이다. 바로 이 단계를 걸쳐 접촉(觸)과 느낌(受)과 갈애(愛) 따위의 연쇄적 과정이 뒤따르게 된다.
여섯 영역은 눈·귀·코 따위의 여섯 감관(六根)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들은 보거나 듣거나 맡는 따위의 여섯 대상(六境)과 함께
눈의 의식이나 귀의 의식 등 여섯 의식(六識)까지를 망라한다고 할 수 있다.
즉 감관(根)과 대상(境)과 의식(識)이 6가지 패턴으로 한 데 어우러지는 과정을 포착해낸 것이다. 따라서 여섯 영역은 6가지 패턴의 감관(根)과 대상(境)과 의식(識) 모두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들로써 그 다음 지분인 접촉(觸)의 발생 조건이 마련되는 셈이다.
이러한 설명은 여섯 영역에 앞서 3번째 지분인 의식(識)과 4번째 지분인
정신·물질현상(名色)이 미리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과 부합한다.
눈·귀·코 따위는 괴로움(苦)이며 무아(無我)로 설명되곤 한다.
또한 이들의 달콤함과 위험함을 바른 지혜로 알아차려야 한다고 강조된다.
그러나 생리적 기관으로서의 눈 따위가 괴로움일 수 없는 문제이다.
또한 이들 자체가 달콤하거나 위험한 것일 수도 없다.
그렇지만 여섯 영역에 배속된 이들 각각에는
무명(無明)에서부터 지음(行)을 걸쳐 의식과 정신·물질현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계기들이 전제된다.
바로 이러한 계기들을 포함하는 까닭에
여섯 영역이라는 인식의 틀은 왜곡된 경험세계로 넘어가는 매개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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