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굿따라니까야3/A3. 셋의 모음

A3.163 탐욕의 반복 경: 16가지 마음의 오염원과 무명을 철저히 알고, 부수고, 소멸하기 위해서는,,, 공한 삼매/표상없는 삼매/원함 없는 삼매를 닦아야 한다.

이르머꼬어리서근 2025. 7. 13. 16:05

Rāga-peyyala

 

1.

     "비구들이여,

      탐욕[lobha]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공한 삼매[空三昧],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昧], 원함 없는 삼매[無願三昧]이다.

 

      비구들이여,

      탐욕을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2.

     "비구들이여,

      성냄[dosa]을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공한 삼매[空三昧],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昧], 원함 없는 삼매[無願三昧]이다.

 

      비구들이여,

      성냄을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어리석음[moha]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공한 삼매[空三昧],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昧], 원함 없는 삼매[無願三昧]이다.

 

      비구들이여,

      어리석음을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분노[kodha]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공한 삼매[空三昧],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昧], 원함 없는 삼매[無願三昧]이다.

 

      비구들이여,

      분노를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원한[upanaha, 적의]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공한 삼매[空三昧],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昧], 원함 없는 삼매[無願三昧]이다.

 

      비구들이여,

      원한을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위선[makkha, 모욕]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공한 삼매[空三昧],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昧], 원함 없는 삼매[無願三昧]이다.

 

      비구들이여,

      위선을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앙심[palasa, 얕봄]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공한 삼매[空三昧],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昧], 원함 없는 삼매[無願三昧]이다.

 

      비구들이여,

      앙심을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질투[issa]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공한 삼매[空三昧],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昧], 원함 없는 삼매[無願三昧]이다.

 

      비구들이여,

      질투를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인색[maccariya]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공한 삼매[空三昧],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昧], 원함 없는 삼매[無願三昧]이다.

 

      비구들이여,

      인색을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속임[maya]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공한 삼매[空三昧],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昧], 원함 없는 삼매[無願三昧]이다.

 

      비구들이여,

      속임을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사기[satheyya]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공한 삼매[空三昧],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昧], 원함 없는 삼매[無願三昧]이다.

 

      비구들이여,

      사기를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완고함[thambha]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공한 삼매[空三昧],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昧], 원함 없는 삼매[無願三昧]이다.

 

      비구들이여,

      완고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성마름[sarambha, 뻔뻔스러움]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공한 삼매[空三昧],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昧], 원함 없는 삼매[無願三昧]이다.

 

      비구들이여,

      성마름(뻔뻔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자만[mana]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공한 삼매[空三昧],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昧], 원함 없는 삼매[無願三昧]이다.

 

      비구들이여,

      자만을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거만[atimana]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공한 삼매[空三昧],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昧], 원함 없는 삼매[無願三昧]이다.

 

      비구들이여,

      거만을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교만[mada]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공한 삼매[空三昧],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昧], 원함 없는 삼매[無願三昧]이다.

 

      비구들이여,

      교만(허영)을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방일[pamada]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공한 삼매[空三昧],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昧], 원함 없는 삼매[無願三昧]이다.

 

      비구들이여,

      방일을 최상의 지혜로 알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1) 탐욕[lobha]을,,,

        2) 성냄[dosa]을,,,

 

            어리석음[moha]을,,,

 

        3) 분노[kodha]를,,,

        4) 원한[upanaha, 적의]을,,,

      

        5) 위선[makkha, 모욕]을,,,

        6) 앙심[palasa, 얕봄]을,,,

        7) 질투[issa]를,,,

        8) 인색[maccariya]을,,,

 

        9) 속임[maya]을,,,

      10) 사기[satheyya]를,,,

      11) 완고함[thambha]을,,,

      12) 성마름[sarambha, 뻔뻔스러움]을,,,

 

      13) 자만[mana]을,,,

      14) 거만[atimana]을,,,

      15) 교만[mada, 허영]을,,,

      16) 방일[pamada]을,,,,

 

 

        1) 철저히 알기 위해서는

        2)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는 

        3) 버리기 위해서는

        4) 부서지게 하기 위해서는

        5) 사그라지게 하기 위해서는

        6) 빛바래게 하기 위해서는

        7) 소멸하기 위해서는

        8) 떨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9) 방기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무엇이 셋인가?

 

      공한 삼매[空三昧],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昧], 원함 없는 삼매[無願三昧]이다.

 

      비구들이여,

      방일을 방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 가지 법을 수행해야 한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 주석서는 공한 삼매[空三昧, sunnato samadhi]와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 , animitta samadhi]와

           원함 없는 삼매[無願三昧, appanihita samadhi] 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공한 삼매 등의 세 가지 삼매를 통해 오직 위빳사나를 설했다.

           왜냐하면 위빳사나는 영원함(nicca, 常)을 천착함(abhinivesa),

           영원함에 대한 표상(nimitta), 영원함을 원함(panidhi) 등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세 가지] 이름을 얻기 때문이다."(AA.ii.386)

 

           즉 공한 삼매 등으로 '삼매(samadhi)라는 술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내용상 위빳사나를 뜻한다는 말이다.

           위빳사나는 이처럼 무상·고·무아를 통찰해서 각각 無相·無願·空의 해탈을 실현하는 체계이다.

           공·무상·무원의 해탈에 대해서는 「청정도론」 XXI.70 이하와 「아비담마 길라잡이」 9장

           836을 참조할 것.

 

 

      ※ 사경을 하면서 붙이는 말:

          - 여기 전개되는 무명(moha) 外 16가지는 모두 「법의 상속자 경」(M3) 등에서,,,

            세존께서 여러 번 말씀하신 '마음의 오염원' 16가지와 동일하므로,,,

            대림스님이 옮기신 번역에 더불어 해당 경에서 번역하신 용어들을 부기하여 보았습니다.

            아마도 원문 pali어에 쓰인 용어들이 부기한 의미들을 포함하여 쓰이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 '공한 삼매'[空三昧, sunnato samadhi],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 , animitta samadhi],

            '원함 없는 삼매'[無願三昧, appanihita samadhi]에 대한 위 앙굿따라니까야 주석서의

            해석 즉, '오직 위빳사나를 설했다.'라고 하는 부분은 동의가 되는 바입니다.

 

            그러나,,,, 「공에 대한 짧은 경」(M121)에서,,,,

            세존께서는 "아난다여, 나는 전에도 그랬듯이 요즈음도 자주 공에 들어 머문다."로 시작

            하여 '공(空)'에 대해 설하시는 바,,, 

 

            1) 그는 대상 하나에 마음을 집중합니다. 그 나머지는 공(空)함을 봅니다.

            2) 그는 대상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까시나 하나에 마음을 집중합니다.

                나머지는 공(空)함을 봅니다.

            3) 그는 물질에 대한 인식을 초월하고 부딪힘에 대한 인식을 소멸하고

                '무한한 공간'이라는 공무변처(空無邊處)의 무색계(無色界)의 삼매에 듭니다.

                그 이하 나머지는 공(空)함을 봅니다.

            4) 그는 '무한한 알음알이'라는 식무변처(識無邊處)의 삼매에 듭니다.

                 그 이하 나머지는 공(空)함을 봅니다.

            5) 그는 '아무 것도 없다'라는 무소유처(無所有處)의 삼매에 듭니다. 

                 그 인식말고는 공(空)함을 봅니다.

            6) 그는 '인식하는 것도 인식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삼매에 듭니다. 

                그 인식말고는 공(空)함을 봅니다.

 

            7) 그는 '표상이 없는 마음의 삼매'에 듭니다.

                생명을 조건으로 하고 이 몸을 의지하는 여섯 감각장소 外에는

                일체가 공함을 꿰뚫어 봅니디.

 

            8) 그는 '표상이 없는 마음의 삼매'에 든 상태에서

                '이 표상이 없는 마음의 삼매도 형성된 것이고 의도된 것이다.

                형성되고 의도된 것은 무엇이건 무상하고 소멸하기 마련인 것이다.'라고

                그 최후의 마음 끝마저 공(空)함을 꿰뚫어 봅니다.

 

                여기서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하여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존재로부터 무명으로부터 기인하는 일체 번뇌들이

                거머쥘 만한 것이 아님을 또 그것이 공(空)함을 보아 그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합니다.

                                                    

                단지 거기에서도 생명을 조건으로 이 몸을 의지하는 

                여섯 감각장소만이 남아있음을 꿰뚫어 압니다.

                어떤 아라한의 유여열반입니다.

 

                세존께서는 여기에 그치지 않으시고,

                위 8)의 공(空)을 '지극히 청정한 구경의 위없는 공(空)'이라고 별칭하시며,

 

                1) 과거세 미래세 현세의 모든 사문·바라문들이

                    지극히 청정한 구경의 위없는 공에 머물렀다함은

                    바로 이 공(空)에 머무른 것이라 하시니

                    실로 삼세제불(三世諸佛)이 거하시는 곳이요,

 

               2) 부처님의 제자들도 모두

                   이 '지극히 청정한 구경의 위없는 공(空)에 머물리라.'라고

                   공부지어야 함을 설하셨습니다.

 

                위 법문은 바로 '공한 삼매(空三昧, sunnato samadhi)'에 대한 법문이요,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 , animitta samadhi)'는 위에서 설하신 바,,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다음에 '표상이 없는 마음의 삼매'이니

                상수멸(멸진정)의 삼매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식(perception)과

                느낌(feel)이 모두 정지하였으니 그 다음 행(行)과 마음의 앎(識) 작용까지

                모두 멈추어,,,, 표상작용(nimmitta)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함 없는 삼매(無願三昧, appanihita samadhi)'라 함은 무엇입니까?

                바로 위 8) 즉 '표상없는 마음의 삼매'도 '의도된 것'이므로 무상하고

                소멸될 것임을 알아,,, '지극히 청정한 구경의 위없는 공(空)' 즉,,,, 

                '열반(nibbana)'에 머무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일체 마음의 앎(識, mano-winnana, 알음알이)을 떠났습니다.

                일체 물질과 정신(名色)이 소멸했습니다. 그에게는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습니다. '나', '나의 것', '나의 자아'라는 것에서 벗어났습니다.

                '나'가 이미 없는 이에게 무슨 '바램(願)'이라는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원함이 없는',,, '바램이 없는' 삼매라하는 것이 바른 표현이라 

                생각되어서입니다.

 

                들숨날숨에 마음챙김으로부터 시작하여,,, 네 가지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그에 기반하여 칠각지(定覺支를 포함한)를 성취하고,,, 그에서 영지와 해탈에

                이르는 것이니,,,, 위빳사나에 시작하여 삼매를 정득하고 바른 삼매인 선정을

                증득하고, 이 삼매는 전향이, 입정이, 머묾이, 출정이, 반조가 함께하는 것이니,,,

                반조라 함은 바로 삼매에 대한 위빳사나를 위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한 삼매, 표상없는 삼매, 원함없는 삼매가 그 시작도 끝도

                위빳사나이니,,,, '오직 위빳사나를 설했다.'라고 하는 주석서의 주석은,,,

                위같은 의미를 생각하면 꼭히 틀렸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삼매는 삼매요, 위빳사나는 위빳사나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생각됩니다.

 

 

 

제16장 나체수행자 품이 끝났다.

 

작은 50개 경들의 묶음이 끝났다.

 

셋의 모음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