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 노래와 얘기

심장토대(pali. hadaya-vatthu)에 관한 논의

이르머꼬어리서근 2024. 1. 21. 07:33

<심장토대(pali. hadaya-vatthu)에 관한 논의>

 

 

 

남방상좌부 불교 아비담마에 의하면,

육신을 가진 자들에게 마음이 일어날 때 그 마음은 반드시 물질적 토대를 가진다고 한다.

 

안식(眼識)이 일어날 때는 눈을 물질적 토대로 하고,

이식(耳識)은 귀를 물질적 토대로 하며,

비식(鼻識)은 코를,

설식(舌識)은 혀를,

신식(身識)은 몸을 물질적 토대로 해서 일어난다.

 

그러면 이러한 전오식(前五識)이 아닌

의(意, mano)와 의식(意識)이 일어날 때는 무엇을 토대로 해서 일어나는가?

 

여기에 대해서 남방상좌부 아비담마에서는

이러한 의와 의식은 모두 심장토대(hadaya-vatthu),

― 심장이라는 물질을 토대로 해서 일어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마노(mano, 意)를 인식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그 기관은 당연히 그 기관이 의지할 토대가 있어야 한다.

 

그런 마노와 마노의 알음알이[의식(意識)]들의 의지처를 초기불교에서는 심장으로 봤다.

이와 같이 아비담마에서는 심장에 깃들어 있다는 심장토대는 전오식을 제외한

우리의 마음이 일어나는 중요한 물질적인 토대라고 했다.

 

 

마음작용이 일어나는 물질적 토대를 심장, 즉 가슴으로 여기는 것은 동⋅서양이 비슷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흔히 우리들 상식에서 ‘마음 아프다’라고 하면서 자기 가슴에 손을 얹는다.

극한 슬픔을 만났을 때,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한다. 그러면서 ‘가슴이 찢어질 듯하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을 보고 ‘속이 검다’고 한다.

이런 일연의 통속적인 사례들이 모두 마음의 토대가 심장으로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삶의 흐름의 기초가 되는 바왕가(bhavanga citta, 잠재의식)의 흐름은 의식에 속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바왕가도 심장토대를 의지해 일어나고,

한 생의 마지막 바왕가인 죽음의 마음[사몰심(死沒心)]도 당연히 심장토대라는 물질을 의지해 일어난다.

그러므로 잠재의식이라 번역할 수 있는 바왕가(존재지속심)는 아주 수동적이고 미세한 알음알이인데,

의식이 없어 보이는 깊은 잠 속이나 기절했을 때도 이 바왕가는 흐르고 있다.

이러한 바왕가가 흐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것이다. 그 바왕가의 토대도 심장이다.

 

<청정도론>에서도 마음의 토대는 심장이라고 했다.

그리고 심장에 있는 한 물질[심장물질]이 바로 심장토대이다.

그런데 ‘눈’과 ‘눈의 감성’이 다르듯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심장’과 ‘심장토대’는 다르다.

 

심장이란 심장의 살이다. 이것은 붉은 것이 마치 홍련 잎의 뒷면의 색깔과 같다.

밖의 잎을 제거하고 거꾸로 놓아 둔 연꽃봉우리 형태이다.

통찰지가 있는 자의 것은 약간 피었고, 통찰지가 둔한 자의 것은 봉우리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아주 작은 씨앗만한 구멍이 있다.

그 속에 빠사다(pasata, 빗방울) 반만큼의 피가 있다.

그것을 의지해 마노의 요소[의계(意界)]와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의식계(意識界)]가 활동한다.

이러한 심장토대는 의계와 의식계의 의지처가 된다. 

그리고 심장토대는 심장 안의 빠사다(pasata, 빗방울) 반만큼의 피를 의지해서 있다고 한다.

심장토대라는 말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붓다고사의 <청정도론> 시대 이후일 것으로 추정한다.

일부 <발취론>에 주목하는 사람도 있다.

붓다고사와 그 이후 주석가들은 심장토대를 의계와 의식계가 의지하는 육체적인 토대로 봤다.

<청정도론>도 그렇지마는 그 주석서들도 심장토대는 의지하는 바처럼

이 피와 더불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당시는 해부학이 발당하지 않아서 해부학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고,

상상이겠지마는 참으로 재미있는 발상이었던 것 같다.

「심장토대는 심장 안의 빠사다(pasata, 빗방울) 반만큼의 피를 의지해서 있다.」

이 얼마나 구체적면서도 환상적인 상상이었던가.

(※빠사따(pasata)는 어떤 자료에는 한 움큼 혹은 4분의 1 리터 정도 되는 액량의 단위라고 말하지만

    이 문맥에 적용시키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다. 산스크리트 ‘pṛṣata’가 빗방울을 뜻하기도 하므로

    빗방울 하나 정도의 양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뇌 과학이 발달하면서

<청정도론>의 심장토대에 관해 뇌과학자들은 허무맹랑한 상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현대의학에서 말하고 있는 뇌사문제와 심장사문제로 연결된다.

뇌사(腦死)냐 심장사(心臟死)냐 했을 때 아비담마의 입장은 분명히 심장사를 지지한다.

 

왜? 의식은 모두 심장에 깃든 심장토대라는 물질을 의지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식이나 인식이 전혀 없어 보이는 상태에서도

바왕가는 지속적으로 기멸을 거듭하며 심장토대를 의지해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뇌가 기능을 못하고 있다하더라도 심장이 제 기능을 하고 있다면

살아있는 것으로 간주해야한다는 것이 아비담마의 분명한 입장이다.

이와 같이 아비담마에서는 '의식'의 토대를 '심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엔 이에 비판적이다.

뇌 과학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척돼 있어서 의식의 토대는 뇌라는 것이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컴퓨터를 예로 들어서 오히려 <청정도론>의 심장토대 설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다.

 

「컴퓨터 하드웨어는 크게 네 부분으로 돼 있다.

①연산장치(CPU) ― 전자회로를 이용해 셈 등을 하게하는 장치.

②기억장치(memory) ― 연산장치는 인텔, 기억장치는 삼성전자가 최고다.

③보조기억장치 ― 하드디스크 등.

④주변장치 ― 프린터 스캐너 카메라 등.

이러한 컴퓨터는 인간생활에 유익한_프로그램을 돌리기 위한 장치이다.

그 유익한 프로그램을 돌리는 토대는 시계이다.

 

컴퓨터 속에는 일반시계가 아닌 ‘수정진동시계’라는 장치가 있다.

수정이 1초에 수만 번 진동하는 원리를 응용한 이 장치는 컴퓨터의 모든 장치에

동일한 펄스(맥박)을 보낸다.

 

그러면 그 신호를 받은 연산장치(CPU)는 프로그램의 명령 1개씩을 실행하게 된다.

즉, 펄스가 없이는 프로그램이 돌지 않는다.

프로그램 운용의 토대는 펄스를 발생시키는 시계(clock)이다.

인간의 의식도 뒤죽박죽되지 않으려면 뇌를 포함해 온몸에 똑같이 전달되는

명령 실행의 신호가 있어야 한다. 심장이 바로 그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의식의 토대는 심장이다.」― 수가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붓다께서는 의(意, mano)를 안ㆍ이ㆍ비ㆍ설ㆍ신과 마찬가지로 같은 감각기관으로 봤다.

즉, 붓다께서는 의(意) 그 자체는 마음이 아니라 생각하는 감각기관, 물질로 본 것이다.

그러나 아비담마에서는 이 의(意)가 감각기관이고, 의근(意根)의 심장토대라고 설명하면서도

물질이 아닌 마음(마노), 정신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 의(意)가 오늘날 밝혀진 뇌 과학에 의하면 뇌라는 것이다.

보통 의근(意根)을 마음이라 부르는데, 그것의 실상은 뇌의 기능, 뇌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비담마에서는 마음이 물질인 육체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도

인간이 죽으면 재생연결식을 통해 다른 존재로 이동한다고 한다.

재생연결식을 실체적 존재로 본 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논리적으로도 전혀 이치에 맞지 않고, 붓다의 가르침에도 전혀 맞지 않는다.

 

 

아비담마나 <청정도론>에는 불멸 후 불교의 힌두화로 힌두교 이론을 불교에 끌어들여 놓았다.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든 논리적으로 변명을 하자니 붓다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황당한 과대망상 창작으로 억지변명을 늘어놓게 된 것이다.

 

이런 희론들 때문에 붓다의 원 가르침[근본불교]에 역행하는 내용도 많다.

논서 뿐만 아니라 아함이나 니까야 경전조차도 변질, 왜곡된 부분이 있기에

어떤 내용이 후대 사람들에 의해 변질, 왜곡됐고,

어떤 내용이 붓다의 원 가르침에 부합하는 내용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아주 냉정한 비판적 선택 수용자세가 필요하다.」 ― 붓다의 뗏목에서

 

오늘날 의료기술의 발전에 따라 죽음에 대한 견해도 달라졌다.

죽음은 전통적으로 호흡과 심장의 박동의 정지에 의해 결정됐다.

일단 이와 같은 필수적인 기능들이 정지하고 나면 다른 유기적 체계들의 파괴가 거의 즉시 뒤따른다.

 

이는 죽음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관찰자들에게 개체 전체의 완전한 죽음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식적 견해는 최근 몇 십 년 사이에 인공적으로 신체의 기능들을 유지시킬 수 있는

기계들이 개발됨으로써 도전받게 됐다.

 

이러한 장치들의 사용을 통해 호흡과 심장박동이 거의 동시에 완전하게 멈추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됐다. 이런 상황은 집중적인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에게서

거의 공통적으로 일어나는데, 그들은 다양한 기계적 장치들로부터 인공적인 자극을 받게 되는 것이다.

 

죽음의 전통적 견해가 토대를 두고 있는 모든 신체기관들의 완전한 붕괴가 없을 경우에는

언제 죽음이 일어났는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정확하게 어떤 기관의 기능들이 중심적인 것인지에 관한 문제가 일어난다.

뇌사는 뇌간을 포함한 뇌전체가 비가역적으로 기능을 정지해도

인공호흡기나 중환자 관리로 호흡을 하고 심장이 박동하는 상태를 말한다.

 

 

다시 한 번 <청정도론>의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심장이란 염통의 살이다.

① 색깔로서: 이것은 붉은 것이 마치 홍련 잎의 뒷면의 색깔이다.

② 형태로서: 밖의 잎을 제거하고 거꾸로 놓아둔 연꽃봉오리의 형태이다.

    밖은 부드럽고 안은 꼬사따끼 넝쿨 열매의 안과 비슷하다.

    통찰지를 가진 자의 것은 약간 피었고, 통찰지가 둔한 자의 것은 봉우리의 상태이다.

    그 안에는 씨앗의 크기만한 한 구멍이 있다.

    그 속에 빠사따(pasata) 반만큼의 피가 있다.

    그것을 의지하여 마노의 요소(意界)와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意識界)가 활동한다.

 

그런데 마음은 정말 뇌의 기능 또는 작용일 뿐이며, 마음은 뇌에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불교의 마음관은 어떤 것일까.

 

마음에 대해 가장 잘 설명 해 놓은 논서가 아비담마이다.

마음을 해체하고 분석해 도표화 한 것이 아비담마이다.

그런 아비담마에서 마음은 뇌의 작용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는 없다.

적어도 아비담마에서는 뇌는 별로 주목 받지 못한 기관이다.

그런 대신에 ‘심장’에 대해 주목했다. 즉, 마음은 심장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심장 그 자체에 마음이 있다고 말하지 않고 심장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왜 하필이면 심장토대일까.

 

심장토대라는 말은 빠알리어 하다야왓투(hadayavatthu)를 번역한 말이다.

한국 빠알리성전협회에서는 이를 ‘마음의 물적 토대’라고 번역했다.

마음에도 물질적 토대가 있어야 함을 말한다.

마음은 물질을 통해서 발현될 수 있음을 말한다.

심장을 마음의 물적 토대로 본 것은 사실상 몸 전체가 마음의 물적 토대임을 알 수 있다.

<청정도론>에서는 지혜 있는 자의 심장은 연꽃봉우리가 약간 벌어진 모양이라고 한다.

지혜 없는 자는 봉우리진 모습이라고 한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심장은 지혜와도 관련이 있다.

이렇게 본다면 마음의 물적 토대로서 심장은 정신 능력과도 관련이 있다.

또한 과거 전생에 이룩해 놓은 성과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 모두가 마노의 문을 통해서 일어난다. 그래서 심장을 마음의 물적 토대로서 봤을 것이다.

 

마음의 물적 토대는 심장이다. 그렇다면 뇌는 어떨까?

<청정도론>에는 그 어디에도 뇌가 마음의 물적 토대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뇌는 단지 32가지 신체기관 중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심장을 마음의 물적 토대로 보는 것은 피와 관련이 있다. 피의 순환으로 설명된다.

피는 세포 구석구석까지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당연히 뇌에도 전달된다.

이와 같은 피의 순환은 정보를 전달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을 하는 것과 같다.

일종의 두뇌 역할을 하는 곳이 심장으로 본 것이다.

고대에는 지금과 같이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마음의 물적 토대를 뇌가 아닌 심장으로 삼은 것이다.

 

마음은 뇌에 있을까 심장에 있을까,

재생연결식과 심장토대의 마음을 보면 마음이란 무엇일까.

마음이 무엇이기에 마음 마음 하는 것일까.

그런데 그 마음은 어디에서 나오고 어디에 있는 것일까. 마음은 뇌의 기능일 뿐일까?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마음이라고 한다.

볼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냄새도 없는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예로부터 마음에 대해 수많은 연구가 있었고 주장이 있어왔다.

그런 마음에 대해 최근에는 단지 뇌의 작용에 불과 하다고 주장 하는 사람도 있다.

신경과학계통의 학자를 통해서이다.

그 뇌 신경과학자는 주장하기를 정신이나 마음이니 영혼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뇌의 기능일 뿐이지

하나의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마음은 두뇌에 있을까?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과학자들은 마음을 알 수 없다.

물질을 탐구하는 것과 마음을 탐구하는 것은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양자론으로 마음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다. 양자도 물질에 대한 것이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마음의 영역을 넘볼 수 없다.

물질을 탐구하면 할수록 새로운 것이 발견돼 이전의 이론이 폐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신영역은 이미 완성돼있다.

지금으로부터 2천5백년 전에 부처님은 마음을 탐구해 마음의 지도를 완성해 놓은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마음의 영역을 탐구할 것이 없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아눗따라삼먁삼보디(anuttara sammāsambodhi)”라고 했다.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는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말한다.

마음의 물적 토대로서의 심장은 부처님 가르침을 근거로 한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맞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아직 마음의 실체도 규명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의(意, mano)와 의식(意識)의 토대를 심장이다, 아니 뇌다, 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  성불하십시오.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이 글을 작성함에 많은 분들의 글을 참조하고 인용했음을 밝혀둡니다. 감사합니다.

 

           * https://blog.naver.com/ldh5111/223169088170

 

<심장토대(pali. hadaya-vatthu)에 관한 논의>

<심장토대(pali. hadaya-vatthu)에 관한 논의> 남방상좌부 불교 아비담마에 의하면, 육신을 가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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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생각이 있어 여기 적어듭니다.

 

1. "「붓다께서는 의(意, mano)를 안ㆍ이ㆍ비ㆍ설ㆍ신과 마찬가지로 같은 감각기관으로 봤다.

      즉, 붓다께서는 의(意) 그 자체는 마음이 아니라 생각하는 감각기관, 물질로 본 것이다.

      그러나 아비담마에서는 이 의(意)가 감각기관이고, 의근(意根)의 심장토대라고 설명하면서도

      물질이 아닌 마음(마노), 정신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 세존께서 의(意)를 설하시면서 일체 정신현상을 감득하는 '감각기관'처럼 설하신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의(意, mano)가 '물질;이라고 설하신 것은 아닙니다.

          물론 아비담마에서는 예를 들면 「빳타나」에서,,,

 

             양 루빵 닛사야                                    어떤 뭃질을 의지하여

             마노 다뚜짜 마노윈냐나 다뚜짜            의계, 또한 의식계가

            왓딴띠                                                 생길 때

 

            땅 루빵                                                그 물질은

            마노 다뚜야짜                                      의계에게도

            마노윈냐나 다뚜야짜                            의식계에게도

            땅 삼빠윳따까난찌 담마낭                    또한 그 의계나 의시계와 결합한 법들에게도

           앗티빳짜예나 빳짜요                            '존재 조건'으로 조건이 된다.

 

          같이 마노는 응당 마노 윈냐나와 같이 물질이 아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이해됩니다.

 

 

2. 죽음의 마음, 재생연결식, 바왕가는 그 대상이 같습니다.

    '대상'이 깉다는 것은 그 대상의 표상(니밋타)가 같다는 말로 이해됩니다.

     그러니 이 셋은 이름을 달리할 뿐이지 같은 마음입니다. 아닌가요?

 

     일체 마음무더기가 심장토대라는 물질을 토대로 감득되는 것이기에,,,,

     죽음의 마음도, 재생연결식도, 바왕가도 모두 심장토대를 토대로 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리고 아비담마에서는 마음이 물질인 육체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도

      인간이 죽으면 재생연결식을 통해 다른 존재로 이동한다고 한다.

      재생연결식을 실체적 존재로 본 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논리적으로도 전혀 이치에 맞지 않고,

      붓다의 가르침에도 전혀 맞지 않는다."

 

      사람이 죽을 때,,, 심장토대라는 기능이 정지되면,,, '재생연결식'은 그것이

      생겨날 수 있는 토대가 이미 없는데,,, 그것이 어딘가로 날아가 새로 생겨난 어떤 '존재'의

      심장토대에 바왕가로 다시 내려 앉는다,,, 그러므로 이때 '재생연결식'은 근거가 없는

      '실체적 존재'가 되는 셈이니,,,

 

      이치에 맞지 않고, (재생연결식도 심장토대에 의지하는 것이라는 아비담마가 맞는 것이라면)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전혀 맞지 않는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1.

             3)                                                      3)

             옥깐띡카네  나마루빵                         입태 순간의 정신과 물질은 

             안냐만냥                                            서로서로

             사하자따 빳짜예나빳짜요                   '함께 생긴 조건'으로 조건이 된다.

 

             4)                                                       4)

             찟따 쩨따시까 담마                             마음과 마음부수의 법들

             찟따 사뭇타나낭 루빠낭                      마음 때문에 생겨난 물질들에게

             사하자따 빳짜예나빳짜요                   '함께 생긴 조건'으로 조건이 된다.

 

      라고 하신 것을 볼 때,,,,,

 

      2. 

      연기를 설하실 때 마음의 앎(識, mano-winnana)가 있음으로 인해

      일체 물질정신현상이 일어난다고 하신 것을 볼 때,,,

 

      3. 

      또한 재생연결의 마음이 심장토대라는 물질이 있어 그것을 토대로만 성립된다는

      아비담마의 이야기를 인정한다 할지라도,,,,

      

      어떤 존재에게 펼쳐지는 물질정신현상이 기실은 영화의 필름처럼 실상은 마디마디 

      끊어져 있는 것인데,,,, 이것을 연속해서 인식함으로 인해,,,, 마치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우리는 인식하고 있고,,, 그것이 얽힘(entanglement)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에게 펼쳐지는 물질정신현상의 인과관계를 보장하기 위한 동시성(sychronization)을

      보장하기 위한 그 최소단위가 얼마든 간에,,,,, 시간단위(장치)가 있을 뿐이라면,,,,,,

 

      어떤 이가 죽었을 때 그 죽음의 마음은,, 그리고 재생연결식은 심장토대라는 물질을 

      그 순간 의지하였고,,, 그가 존재 벗음에 이른 것이 아니라면,,,

      죽으면 즉시적으로 그 업을 따라 다른 세상의 존재를 입는 것인 바,,,

      그 다음 필름 마디에서는 역시 어떤 심장토대를 의지하여 바왕가가 있는 것을

      상정해보면,,,, 재생연결식이 심장토대라는 물질이 없이 별도의 '실체적 존재'가 

      되므로,,, 이치에 맞지 않다고 하는 것이 적절할런지?

 

4.

      '심장토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심장을 해부해도 그런 기관은 없다. 

      나는 꿰뚫어서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기 때문에 확신이 없다.

      마노(意, mano)가 정신, 심리현상을 감득하는 감각기관이라면,,,

      그리고 물질이 아니라면,,,,, 그것이 '심장토대'라는 물질을 반드시 의지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