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마침내 깨치시다.
가야(현재 붓다가야)의 네란자라 강 둑 위에 있는 한 나무14) 아래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은 보살은 불퇴전의 결심으로 정진에 마지막 힘을 쏟고 있었다.
'이 몸이 가죽과 힘줄, 뼈만 남고
피와 살은 다 말라서 죽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정등각(正等覺)을 얻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노라.’
보살의 노력은 이처럼 지칠 줄 모르는 것이었고,
보살의 헌신은 이처럼 시들 줄 모르는 것이었으며,
진리를 깨치어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겠다는 결의는 이처럼 단호한 것이었다.
보살은 출입식념(出入息念 anāpānasati) 15)에 전념하여
초선(初禪)에 들어가 거기에 머물렀다.
다시 차례대로 제2선 제3선 그리고 제4선에 들어가 머물렀다.
이와 같이 마음에서 모든 때를 닦아내어 평온한 마음을 이룬 다음,
이 마음을 과거 생(生)을 기억하는 지혜[宿命智 pubbenivāsānussatiñāṇa]쪽으로 기울였다.
이것이 보살이 초저녁(오후 6시~10시)에 성취한 첫 번째 지혜였다.
다시 보살은 온갖 형태의 중생이 각기 지은 업에 따라 좋은 상태로 또는 나쁜 상태로
태어나고 죽는 것을 아는 지혜[死生智 cuti-upapātañāṇa]쪽으로 기울였다.
이것이 한밤중(10시~새벽2시)에 성취한 두 번째 지혜였다.
다시 그는 번뇌를 소멸시키는 지혜[漏盡智 āsava- kkhayañāṇa]쪽으로 기울였다.16)
그는 여실히 깨달았다. 즉
‘이것이 고(苦)다.
이것이 고의 일어남[集]이다.
이것이 고의 멸(滅)이다.
이것이 고의 멸에 이르는 길[道]이다.’
그는 여실히 깨달았다.
‘이것이 번뇌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번뇌의 멸이다.
이것이 번뇌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았을 때,
그의 마음은 번뇌로부터 해탈하였다.
그 번뇌란
감각적 쾌락의 번뇌[欲漏 kāmāsava],
존재하려는 욕망의 번뇌[有漏 bhavāsava],
무지의 번뇌[無明漏 avijjāsava]의
세 가지 번뇌였다.17)
그의 마음이 해탈했을 때
해탈했음을 아는 지혜[解脫知見]가 생겼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스스로 깨달았다.
“태어남은 소진되었다.
청정한 삶[梵行 brahma cariyam]은 완성되었고
할 일은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이런 상태에 이르지 않는다.”18)
이것이 새벽녘(새벽2시~6시)에 성취한 세 번째 지혜였다.
이 세 가지 지혜를 삼명(三明)이라 한다.19)
다시 보살은 승리의 게송을 읊었다.
“'집[個體] 짓는 이’를 찾아내려고,
그러나 찾지 못한 채
수많은 태어남의 윤회 속을 줄곧 서둘러 왔었네.
태어남은 언제나 실로 괴로운 것.
오, 집 짓는 이여, 드디어 너를 찾아냈도다.
너는 다시는 집 짓지 못하리.
너의 모든 서까래 부서지고
마룻대[上梁] 또한 부러졌도다.
이제 내 마음은 형성되어지지 않은 것(=열반)을 이루었네.
온갖 갈애 다 끝내어 버렸네.”20)
이렇게 보살 고따마는
5월 보름날(탄생한 날과 같은) 21), 서른 다섯의 나이에,
영원한 진리인 네 가지 성스런 진리[四聖諦]를 완전히 파악함으로써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하시어,
일체 중생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위대한 의사, 대의왕(大醫王), 붓다가 되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다른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과 구별되는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그 분이 사람이라는 점, 즉,
신이라든가 초자연적 존재와 어떤 관련도 전혀 맺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신도 아니고 신의 화신(化身)도 아니며 어떤 신화적 존재도 아니었다.
그는 오직 한 사람일 뿐이었다. 하지만 비범한 사람, 초인적 사람이었다.
그 분은 자신이 성취한 모든 것을 인간의 지성과 노력의 결과로 돌렸다.
그 분은 직접 체험을 통해 인간이 그 어떤 존재보다도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 어떤 스승으로부터, 그것이 사람이든 신이든 간에 일체 도움을 받지 않고
오직 자신의 꾸준한 정진에 의해서 보살은 최고의 정신적, 지적 성취를 달성했다.
청정의 극치에 이른 것이며 인간성이 구현할 수 있는 최선의 자질을 완성해 낸 것이다.
문자 그대로 지혜와 자비의 구현자였고,
이 지혜와 자비는 그 후 부처님의 가르침에 있어서 두 가지 기본 지침이 되었다.
부처님은 결코 계시 종교에서처럼 영혼을 구제하는 구세주로 자처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인간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잠재해 있으며,
이러한 가능성을 계발하여 현실화시키는 길은 오직 인간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을 뿐이라는 것을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과 깨달음을 통해 실증해 보이셨다.
이처럼 부처님은 깨달음과 해탈이라는 지상의 과제가
전적으로 인간의 노력이 가 닿는 범위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셨던 것이다.
사실, 신이나 초자연적 존재의 도움과 관계없이 해탈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 더구나
각자가 자신의 책임 하에 스스로 취하는 행위에 의해서만 고(苦)로부터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신 분은 인류 역사상 부처님이 처음이셨다.
아무리 해탈을 구걸하고 빌어 봐야 그 누구도 이를 성취시켜 줄 수는 없다.
타인이 우리들에게 도움의 손을 뻗친다 해야
기껏 이런저런 지시나 가르침을 주는 등의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최상의 자유는 오로지 자기 능력을 최대로 발현하여 진리에 눈뜸으로써만 성취될 수 있을 뿐이며
인간이든, 신이든, 그 어떤 초월자에게 기도하고 간청한다고 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향해서도 각자가 자신에게 일어난 짐스러운 일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려 들지 말고 연구, 분석을 통해 그 해결의 길을 스스로 찾음으로써
자기가 지닌 내면의 힘과 훌륭한 자질을 계발하는 계기로 삼도록 노력하라고 일깨워 주셨다.